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84
93화 기생의 신위 (1) >
전신의 피부가 구릿빛과 은빛으로 뒤섞인 이 괴이한 존재들은 인간의 사체로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이들이 쏟아낸 검은 피에서는 시체에서 날 법한 썩은 악취가 났고 심장을 비롯하여 전신의 맥이 뛰지 않는다.
“대체 이 괴이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마지막 놈이 나의 손에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자, 경왕이 혀를 내두르며 다가와 물었다.
“확신할 수 없지만 강시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강시?”
강시(僵尸)의 강(僵)은 빳빳하게 서다라는 의미가 있다.
즉 시체가 서서 다닌다는 뜻이다.
경왕이 믿기 힘들다는 듯이 죽은 괴인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강시라니? 그저 떠도는 풍문인줄 알았건만.”
세상의 풍문들이 그냥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 역시 많은 일들을 겪고 나니 이런 것들에 익숙되고 조금 무뎌졌을 뿐이다.
평범한 자들이라면 죽은 시체가 움직이는 걸 보고서 얼마나 놀라겠는가.
“한데 참으로 대단하구나. 이런 강시들조차 네게 전혀 상대가 되지 못하다니 말이다. 정말 괴물은 너로구나.”
경왕의 칭찬에 나는 그저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사실 지금 내가 상대한 강시는 거의 금강불괴 수준에 달할 만큼 단단한 육신을 가졌다.
게다가 이들이 가진 괴력은 초절정 고수에 버금 갈 정도였다.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상대를 공격하니 벽을 넘은 고수조차 자칫 방심하면 낭패를 볼 만큼 위험한 것들이었다.
-그 정도였어? 쉽게 상대해서 몰랐는데.
그동안의 경험 때문에 원만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중단전과 하단전의 조화를 통해 공력을 폭증시킨 후에 이들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머리를 노렸다.
-그 동안의 경험이 헛된 게 아니었네.
그러게.
어쨌거나 석관 속에 이런 강시들을 숨겨놓다니.
어지간히 방심할 수 없게 만들어놓았다.
그만큼 불로불사의 비술이 누군가의 손에 쉽게 들어가지 못하도록 장치를 내놓은 것이겠지만 말이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나의 물음에 경왕이 신기하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대체 어찌 한 것이냐? 손발의 고통이 이렇게나 줄어드니 정신마저 맑아진 느낌이다.”
“양기로 막혀있던 주요 혈맥의 절반을 뚫었습니다.”
그 말에 경왕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게 정말이느냐?”
“절반이더라도 그 흐름이 원활해져서 통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을 겁니다.”
“네 말대로다. 아직까지 아픔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만 이 정도라면 술을 마시지 않고도 버틸 수 있을 만하다.”
“맥을 전부 뚫어드리고 싶었지만 전하의 체력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도중에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나의 말에 경왕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하, 하면 맥을 전부 뚫으면 완치될 수 있는 것이냐?”
기대에 찬 눈빛을 부응하지 못해서 안타깝지만 사실대로 말해줘야 겠다.
“송구하오나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힘들다니? 신의라 불린다는 그 자조차 이 정도로 통증을 완화시켜주지 못했다. 그 맥이라는 것을 전부 뚫는다면….”
“전하의 병은 선천적으로 발현되었습니다.”
“그게 어떻다는 것이냐?”
“맥을 뚫고 나서 양기가 정상인의 범주만큼만 자연적으로 형성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전하의 몸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면 재발한다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그 말에 흥분하여 상기되었던 경왕이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내심 불로불사의 비약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던 것 같다.
부정적인 소식부터 알려줬으니 긍정적인 것도 알려줘야 겠다.
“하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뭐라?”
“적어도 양기가 커져서 다시 주요 맥을 막기 전에 꾸준히 관리를 해준다면 전하께서도 태양절맥으로 단명하는 일은 없으실 겁니다.”
“그게 정말이느냐?”
“의원이 아니라 절대적이라고 말씀드리기 힘들지만, 적어도 제가 살펴본 바로는 그럴 것 같습니다.”
“아아아!”
그 말에 경왕의 얼굴이 다시 상기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되살아난 희망으로 감격에 겨운 모양이었다.
인간은 절망 속에서 일어나는 한 줄기의 희망에 뜨거운 감정을 느낀다.
나 역시도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에서 다시 무공을 익힐 수 있게 되면서 저 같은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다.
감격스러워 하던 경왕이 내게 정중히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전하?”
“고맙다. 이건 왕이나 황자가 아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은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의 지위나 신분을 떠나서 참 괜찮은 사람이다.
경왕을 알면 알수록 이런 생각이 든다.
마주 모은 두 손을 푼 경왕이 내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 사람으로서의 감사의 예를 취했으니, 왕으로서 아니 장차 이 나라의 용좌에 앉을 군주로서도 네게 보답을 하고 싶다. 원하는 것이 없느냐?”
“아직 낫지 않으셨습니다. 전하.”
“차도가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게다가 연생이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자리에서 이 역도의 무리들에게 목숨을 잃었을 거다.”
뭔가 내게 보답을 해주고픈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에 나는 원하는 게 없었다.
“전하의 말씀은 감사드리지만, 저는 바라는 것인 없습니다.”
“바라는 게 없다?”
그 말에 경왕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내게 다시 말했다.
“너 같은 자로는 처음이구나. 아니면 이미 불로불사의 비술을 앞에 두고 있어서 바라는 것이 없는 것이더냐?”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불로불사에 그리 미련이 있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것이 무슨 낙이 있겠는가 싶다.
게다가 나 역시도 이미 반 불로불사의 상태다.
다만 가장 위험한 존재인 그 자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한데 어찌하여 그 비술을 취하려는 것이더냐?”
“그건 그릇된 사상을 가진 자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굳이 그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
그런데 경왕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그릇된 자를 막이 위함이다라……죽은 저 놈들이 그분이라 했던 자가 혹시 금상제이더냐?”
“그걸 어찌?”
“아까 전에 내가 기절하지 않았던 걸 잊었더냐?”
‘아……’
순간 깜빡했다.
하면 내가 파궁귀 초사를 추궁할 때 들었던 모양이다.
본의 아니게 그의 귀에 금상제가 들어갔다.
이건 조금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다.
-왜?
금상제는 폭군이라 불렸으나 이 연나라의 황제였다.
즉 경왕의 오랜 조상들 중 한 명이란 소리다.
그런 그가 이 흉막이 연나라의 6대 황제임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그렇네. 피로 이어졌잖아.
난감해하고 있는데 경왕이 내게 진지하게 물었다.
“네가 말한 금상제가 연 대제국의 6대 황제이신 그분을 말하는 게 맞느냐?”
그저 호칭만 같다고 하기에 제(帝)의 칭호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긴 어떡해.
이렇게 된 이상 상황을 납득할 만하게 설명해줘야지.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그렇습니다.”
그 말에 경왕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더냐? 금상제는 삼백여 년 전에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죽지 않았습니다. 그저 오랫동안 모습을 숨기고 있었을 뿐이지요.”
“모습을 숨겨? 황상이셨던 금상제가 어찌 그런…..”
“폭군이라 불렸던 금상제는 중원 무림인들을 전부 몰살시키려 했습니다. 그건 전하께서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 알고 있다.”
연나라의 황실 사기에도 남겨져 있을 테니 모를 순 없다.
자세한 사정을 말할 순 없으니 간략하게 이야기를 해야 겠다.
“금상제는 무림을 지우려는 것 외에도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이더냐?”
“전하와는 결이 다르지만 금상제 역시도 불로불사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런 나의 말에 경왕이 혀를 차며 말했다.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다만 사실 역대 황제들 중에서 불로불사에 관심이 없던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겠지요. 하나 그는 수많은 무림인들과 백성들을 죽인 폭군입니다.”
“…….부정할 수 없구나.”
“그런 금상제이지만 전하처럼 불로불사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경왕이 놀라서 물었다.
“불로불사의 기회? 그럼 금상제는 불로불사를 이루었단 말이더냐?”
“아닙니다. 이룰 뻔했지만 운이 없었지요. 그때 검선의 후예가 나타나 그의 야욕을 저지했습니다.”
“검선? 그 전설로 불린다는 천하제일검이라 불리는 자가 아니더냐?”
“맞습니다.”
“한데 사기에는 그런 기록이 남아있지 않건만.”
“남아 있을 리가 없지요. 그 사건은 금상제에게 있어서 최악의 치욕과 두려움을 주었을 테니 말입니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도 참 낯간지럽다.
남 일처럼 이야기를 해도 말이다.
“……기록에 남아있지 않은 것을 연생이 너는 어찌 아는 것이냐?”
“당대 검선의 후예와 연이 있어 들었습니다.”
“허어.”
내가 생각해도 나는 정말 거짓말에 능통한 것 같다.
상황에 맞춰 술술 나온다.
이런 나의 말에 신음성을 흘리던 경왕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 말대로 검선의 후예가 금상제의 야욕을 막았는데, 어찌하여 그분이 살아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느냐?”
“살아있습니다. 불완전한 불로불사의 상태로 말이죠.”
“불완전한 불로불사?”
반문하는 그에게 나는 오각 석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안에 숨겨져 있는 비술의 반 쪽 짜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 나의 말에 경왕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하면 금상제께서 완전한 불로불사의 비술을 얻기 위해 본 왕을 이용하고 죽이려고마저 했다는 것이 아니더냐?”
“결론만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아! 그리고 진왕 전하와 관련이 있는 것을 보니, 그분을 용좌에 옹립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 같군요.”
“뭐라?”
“진왕 전하도 금상제만큼은 아니더라도 무림을 억누르고 사파 무림을 말살시키고 싶어하시니 가장 그 의지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마지막 말에 경왕의 인상이 무섭게 굳어졌다.
계기가 어떻든 간에 그는 황제가 되려고 한다.
그런 그의 앞을 선대조라고는 하나 금상제가 가로막는다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의도해봤는데, 결과적으로 원하는 반응이 나왔다.
“오래 전에 물러나신 분이 어찌 그런 짓을!”
“권력이라는 게 손에 쥐게 되면 쉽게 놓을 수가 없지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죽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숨겨 놓고서, 이리 현 황실을 일에 개입하는 것은 첨정과 다를 바가 없는 짓이다.”
그러고 보면 금상제가 최종적으로 원하는 것은 어쩌면 황제의 자리일 수도 있겠다.
불로불사마저 이루고 숙적이라 할 수 있는 나를 처리하고 나면 그는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어진다.
그렇게 된다면 영원한 황제로서 군림하려 들지도 몰랐다.
심기가 불편해하던 경왕이 내게 말했다.
“네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절대로 그 분의 손에 불로불사의 비술이 들어가선 안 되겠구나.”
“누구의 손에도 들어가지 않는 게 답이죠.”
애초에 불로불사라는 것은 반칙이나 다름없다.
그런 힘을 폭군에게 주는 것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을 넘어서 위태롭게 만든다.
경왕이 내게 말했다.
“하면 비술을 어찌할 것이냐?”
“없앨 겁니다. 누구도 얻지 못하게.”
그게 내 목적이었다.
불로불사를 얻어 죽지 않는 삶에는 애초에 관심 없다.
이런 나의 말에 경왕이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게 정답이구나. 너 같은 자의 손에 비술이 들어가는 것이 옳다.”
“일단은 금상제가 후발대를 보낼 만큼 많이 지체했으니 비술을 없애야 겠습니다.”
“그리 하도록 하거라.”
나는 피로 얼룩진 오각 석실 안으로 들어갔다.
석관 안에 있던 강시들이 전부 죽었으니 더는 함정이 없기를 바라야 겠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와 석관으로 다가간 나는 당혹스러웠다.
‘……이게 대체.’
열려 있는 석관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은 불로불사의 비술이 없다는 건가?
아니면 죽은 강시들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의아해하던 찰나에 문득 석면의 벽면에 뭔가를 발견했다.
‘이게 뭐지?’
석관의 벽면에 독특한 형태로 음각이 파여져 있었다.
그 모양이 정확하게 검의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혈마검?’
그 형태가 혈마검과 동일했다.
심지어 문양까지도 동일한 걸로 보아 석면에 검을 맞춰 끼워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설마…..’
나는 다른 석관으로 가보았다.
석관으로 가보니 마찬가지로 검의 형태로 음각이 파여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혈마검과는 다른 형태였다.
세 번째 석관에는 사련검과 동일한 문양이 새겨져, 그 음각 안에 검을 집어넣을 수 있는 형태를 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혈마검과 비슷한 형태의 음각이 있는 석관으로 다가갔다.
‘……확인해보자.’
품속에서 무엇이든 들어가는 복주머니를 꺼내 나는 혈마검을 빼냈다.
나오자마자 혈마검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젠장. 망할 인간. 저 안은 답답하기 짝이 없다.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곳에 숨겨둘 순 없지 않나.
나는 혈마검의 검집을 뽑고서 석관에 패여진 음각을 향해 가져갔다.
그러자 파여진 곳에서 강한 흡착력이 일어났다.
검병에서 손을 떼어보았다.
-철컹!
-으헛!
손에서 벗어난 혈마검이 정확하게 음각에 맞춰들어 가졌다.
이윽고 석관을 비롯해 석실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들썩거리더니, 그 내부에서 끼릭 거리며 기관 장치의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뭐지?’
기관 장치의 소리에 뭔가 변화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것을 끝이었다.
석실은 그대로였다.
나는 혈마검을 흡착시킨 석관에서 물러나, 오각 석실의 한가운데로 왔다.
그리고 찬찬히 석관이 놓인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라도 나왔어?
석실 바닥에 뭔가가 흘러나왔다.
검은 액체 같은 것인데 그것이 뭔가를 그리다 말았다.
문양도 아니었고 글자도 아닌 걸로 보아 아무래도 지도의 외곽 선을 그리다 만 것 같다.
-사련검도 넣어봐.
그래야겠다.
나는 사련검까지 빼서 그것에 맞는 석관의 음각에 넣어보았다.
-철컹!
-아흑! 박혀버렸어.
…..그런 목소리로 이상한 소리 좀 하지마라.
어찌 되었든 사련검이 음각 속에 들어가자, 마찬가지로 기관장치의 소리가 들리며 바닥에서 액체가 올라와 또 다른 선을 만들었다.
그러나 외곽선의 형태가 또렷해지는 수준에서 멈췄다.
이 외곽선만 본다면,
‘사천성인가?’
형태만 본다면 분명 사천성이 틀림없었다.
두 자루의 검을 석관의 음각에 집어넣었더니 이런 지도가 나왔다는 것은 결국 다섯 자루를 모두 집어넣어야 완전한 지도가 생성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에이. 좋다 말았네. 그럼 아무 성과도 없는 거잖아?
없지는 않지.
적어도 금상제가 불로불사의 비술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두 자루의 요검과 오대악인의 일인인 절심의 겁살검까지 전부 탈취해야 가능해졌다.
그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 상당한 성과다.
적어도 놈이 내게서 두 자루의 검을 빼앗지 못한다면 불로불사의 꿈을 이룰 일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니 말이다.
-철컹!
나는 벽면에 있던 혈마검과 사련검을 전부 회수했다.
신기하게도 음각에서 검을 떼어내자 바닥에서 올라왔던 액체가 스며들며 사라졌다.
-운휘야. 차라리 여길 없애는 게 어때?
‘없애라고?’
-그래. 어차피 넌 불로불사의 비술을 없앨 거라고 했잖아. 여길 부수면 그 지도도 사라지는 거 아냐?
아니 남겨놔야 돼.
그래야 놈을 유인할 수 있으니까.
-유인한다고?
놈도 이곳의 비밀을 알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내게서 검을 빼앗으려 들 거다.
그때가 놈을 끌어내서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오. 그런 방법도 있네.
놈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강제로 드러내게 만들어야지.
나는 석실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경왕에게로 갔다.
“비술을 얻은 것이냐?”
“네. 곧바로 비술을 파기했습니다.”
-엥? 구하지도 못했잖아.
아니 일부러 그렇게 말한 거다.
경왕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만약을 위해서였다.
혹여 그가 자신과 황위를 다투고 있는 진왕을 견제한다고, 계속해서 이곳에 주둔해 있으면 오히려 위험에 노출된다.
내가 경왕의 곁에 상시 머무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차라리 이곳에 더 이상 불로불사의 비술이 없다고 여기게 하는 게 낫다.
경왕이 내게 감탄을 하며 말했다.
“참으로 대단하구나. 설령 아무리 불로불사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그런 보물을 앞두고서 망설임 없이 없애다니.”
“위험한 물건이니 어쩔 도리가 있겠습니까?”
“그렇다 하여도 대단한 건 대단한 거다. 네가 관직에 마음이 있다면 내 곁에 두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드는구나.”
“송구하지만 저는 무림인입니다.”
그런 나의 말에 경왕이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다 뭔가를 떠올렸다는 듯이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네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물어보소서.”
“진짜 연생이는 어디에 있느냐?”
“주둔지 막사 처소의 침상 밑에 잠들어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사하다는 거로구나.”
설마 무고한 여인을 변장 하나를 위해서 죽였겠는가.
안심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던 경왕이 혈도가 점해져서 기절해있는 관군을 힐끔 쳐다보더니 내게 말했다.
“내 너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느냐?”
“무슨 부탁입니까?”
그런 나의 물음에 경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한 번만 더 연생이가 되어다오.”
* * *
평왕의 릉에서 불과 십 리 정도 떨어진 곳.
그곳의 평야에는 오천 여 명에 이르는 관군들로 이루어진 막사 주둔지가 있었다.
주둔지의 정중앙 막사에는 무한이라 적혀 있는 깃발이 걸려 있었다.
이들은 무한의 관군이었다.
그런 중앙 막사 내에는 의외의 인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진왕이었다.
이런 진왕 이외에도 여러 군장들과 내관의 복장을 하고 몇몇 관인들이 있었다.
상석에 앉아 있던 진왕이 한 턱수염을 길게 기른 중년의 장수에게 말했다.
“그 무덤에 대체 무엇이 있기에 인 오천인장의 휘하 수하들을 보낸 것인가?”
“송구하오나 신도 모르옵니다.”
“모르는데 어찌 보낸 것이야?”
“신은 그저 그분께 하달 받은 명을 이행했을 뿐이옵니다.”
그런 그의 말에 진왕이 혀를 찼다.
“그대가 내 사람인지 아니면 그분이란 자의 사람인지 모르겠구나.”
“신은 그저 전하를 보필하라는 명을 이행할 뿐입니다.”
“또 그 소리구나.”
진왕이 심기가 불편해했다.
자신을 보필하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인 오천인장은 비밀이 많은 자였다.
뛰어난 무위를 지니고 그 자와의 약조만 아니었다면 별로 곁에 두고 싶지 않았다.
‘용좌에 오를 때까지 만이다.’
그때가 된다면 자신을 이용하려 드는 이들을 전부 처리할 것이다.
그렇게 속으로 되뇌고 있는데 막사 바깥에서 누군가 다급히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전하. 긴히 아뢸 것이 있나이다.”
“무슨 일이냐?”
군장들 중 한 사람이 대신 물었다.
그러자 밖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지금 주둔지 밖에서 경왕 전하가 군의 책임자를 뵙길 청합니다.”
“경왕이?”
그 말에 진왕의 가늘어진 눈매로 인 오천인장을 쳐다보았다.
이에 인 오천인장 또한 당혹스러웠는지 인상을 찡그렸다.
진왕이 무거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경왕이 살아서 이곳으로 왔다는 구나.”
“……뭔가 착오가 생긴 것 같습니다.”
“그 자가 심어놓은 자들로 전부 처리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것도 모자라, 네 산하 수하들도 보내고 이제는 경왕이 이곳으로 왔다라…..”
“신이 처리하겠습니다. 전하께서는 서둘러 주둔지를…..”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왕이 자리에 박차고 일어서며 말했다.
“됐다. 진짜 군장도 아닌 네놈에게 일을 맡기는 것도 더 이상 신물이 나는구나. 게 밖에 있느냐?”
“네. 전하.”
“경왕이 군을 이끌고 왔느냐?”
“아니옵니다. 휘하 호위 무관 백여 명과 기생들로 보이는 계집들만을 데리고 왔습니다.”
밖에 들리는 보고에 진왕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기생 계집들을 끌고 와? 하! 참으로 그놈답구나. 망나니 놈에게 괜한 우려를 한 듯 싶구나.”
혹 군사들을 끌고 왔을까 우려했던 진왕이었다.
그리 되면 전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고작 그 정도 수라면 적당히 경왕을 어르고 달래서 보내거나, 아니면 여차하면 자연스럽게 처리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타타타타탁!
그때 막사 밖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저, 전하! 큰일 났사옵니다.”
진왕이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무슨 일이기에 그러느냐?”
“웬 녹색 경장을 입은 기생 계집이 군의 주둔지로 난입해서 저희 관군들을 뚫고서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뭐? 기생?”
밖에서 들려오는 병사의 보고에 진왕을 비롯한 막사 내 관인들이 무슨 소리냐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진왕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짐을 능멸하는 게야? 무슨 헛소리를 하는….”
그때 막사 밖에서 군사들의 외침 소리들이 터져나왔다.
“마, 막아라!”
“저 기생 계집을 잡아라!”
‘!?’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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