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85
93화 기생의 신위 (2) >
“기생이라니?”
밖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운 외침 소리들에 진왕이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술자리에 있어야 할 한낱 기생이 정예군이라 할 수 있는 관군을 무슨 수로 뚫는단 말인가?
“무슨 헛소리들을 해대는 게야!”
이를 믿을 수 없었던 진왕은 결국 친히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막사 바깥으로 나갔다.
군장들과 신하들이 그를 호위하기 위해 뒤를 따랐다.
‘!?’
그렇게 밖으로 나온 진왕은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늘거리는 녹색 경장을 입은 여인이 막으려드는 관군을 손쉽게 쓰러뜨리며 파죽지세로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으헉!”
달려드는 관군들이 가녀린 그녀의 손짓 한 번에 튕겨나며 기절하기 일수였다.
마치 어른과 아이들의 싸움을 지켜보는 듯 했다.
“저 계집……정말 기생이 맞느냐?”
진왕이 그녀에게서 눈을 떼질 못했다.
이를 본 군장들 중 한 사람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평범한 기생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뭐란 말이냐?”
“무공을 익히지 않고서 훈련받은 정규 관군을 저리 상대할 수 없습니다.”
“하면 무림인이라는 것이냐?”
“그런 것 같습니다. 경왕 전하의 산하에 저 정도 무위를 지닌 계집이 있을 줄은 몰랐군요”
그 말에 진왕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하면 어느 정도 수준이느냐?”
진왕의 곁에도 무공을 익힌 자들이 더러 있었다.
여기 있는 군장들 중의 절반이 무공을 익혔고, 자신의 곁에 있는 이 푸른 관복을 입은 내관은 동창에서도 제독을 제외하면 가장 뛰어난 무위를 지녔다고 불리는 첩형이었다.
무공을 익힌 군장들 중 가장 젊은 군장이 호기롭게 말했다.
“계집 주제에 제법이군요. 적어도 일류 수준은 되어 보입니다. 전하께서 명하신다면 소신이 당장 저 계집을 제압해 보겠습니다.”
“호호호호.”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 간드러진 웃음소리를 냈다.
이에 젊은 군장이 인상을 굳히며 그를 바라보았다.
“고 첩형?”
그 웃음 소리의 주인은 동창의 첩형이었다.
고 첩형이라 불린 동창의 내관이 입으로 손을 가리며 말했다.
“장 천인장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소신이 보기에 저 계집은 일류 무사의 수준은 가볍게 넘어선 것 같습니다.”
“네?”
그 말에 젊은 군장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고 첩형. 신 또한 저 정도는…..”
“장 천인장 같이 일류 고수 또한 훈련받은 정규군 수십 명을 능히 상대할 수 있겠지만저처럼은 힘듭니다.”
호기롭게 자신감을 내비쳤던 젊은 군장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런 고 첩형의 말에 진왕은 흥미를 보였다.
“하면 저 기생 계집이 절정의 고수라도 된다는 것이더냐?”
“아무래도 그런 것 같사옵니다. 전하.”
“재미있구나. 궁에 몇 안 되는 여자 금의위 중에서도 저 정도 수준에 이른 자는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런 계집이 경왕의 밑에 있다라…..”
방금 전 까지만 하더라도 저 녹색 경장의 기생을 죽이라 명하려던 진왕이었다.
한데 기생임을 떠나서 그런 뛰어난 무위를 지닌 계집이 자신이 하찮게 여겼던 경왕의 산하에 있다고 생각되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녀를 빤히 쳐다보던 진왕이 명했다.
“저 계집을 제압하여 내 앞으로 데려오라.”
그런 진왕의 말에 고첩형이 속으로 웃었다.
‘버릇이 또 나왔구나.’
진왕은 다른 황자들의 수중에 탐나는 무언가가 있다면 반드시 빼앗아야 직성이 풀렸다.
지금도 탐욕 어린 저 눈빛을 보면 그런 것 같다.
충분히 이해는 갔다.
저런 반반한 얼굴에 뛰어난 무위를 지닌 계집이라면 누구라도 곁에 두고 싶을 거다.
고첩형이 손짓을 하며 자신이 데려온 세 당두들에게 명했다.
“호호호. 전하의 명을 들었겠지.”
“네이.”
간드러진 목소리와 함께 세 당두들이 나섰다.
그들은 고 첩형의 산하에 배치된 오십여 명의 당두들 중에 다섯 손가락에 꼽힐 만큼 뛰어난 무위를 지니고 있었다.
절정의 고수들이니 충분히 저 기생을 제압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군장들 중 가장 연배가 높은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동창 당두들의 실력을 볼 수 있겠군요.”
“문 장군께서 그리 말씀해주시니 저희 당두들이 전하께 오랜만에 신위를 떨쳐보여야 겠군요.”
이런 기회는 종종 오는 것이 아니었다.
당두들도 고 첩형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공을 세울 절호의 기회였다.
-파파팟!
세 당두들이 앞 다퉈 녹색 경장을 입은 기생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들은 누가 그녀를 제압할지 경쟁이라도 하듯이 각자가 황궁 비고에서 익힌 무공의 절초를 펼쳤다.
그런데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녹색 경장을 입은 기생이 가장 먼저 달려드는 당두의 턱을 무릎으로 가격하고서, 이어서 화려한 장초를 펼치는 또 다른 당두의 손목을 단숨에 금나수의 수법으로 낚아채더니 바닥에 내동댕이 쳐버렸다.
“억!”
바닥에 내리꽂힌 당두가 그대로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제대로 초식을 겨룬 것도 아니고 고작 일수에 두 당주가 당하자, 유일하게 멀쩡한 당두가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계집 실력을 숨긴 건가?’‘
기감으로 느끼기에는 분명 절정의 기운을 가졌다.
한데 자신과 거의 비슷한 무위를 지닌 두 당두들을 아이 다루 듯이 제압해버렸다.
고 첩형 정도 되는 고수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작 스무 살 밖에 안 된 계집이 초절정의 고수라고? 말도 안 돼.’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무위가 어찌 되었든 자신의 실력으로 이 기생을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진왕이 보는 앞에서 다른 당두들처럼 당한다면 이런 망신도….
-스륵!
계산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어느새 기생이 자신의 코앞으로 파고든 것을 발견한 당두.
당황해서 뒤로 신형을 날리려 했지만,
-퍽!
왼쪽 목에 꽂힌 그녀의 발차기에 당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했다.
“이럴 수가!”
“저들이 전혀 상대가 되지 못하다니.”
그 광경에 무공을 익힌 군장들이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설마 동창의 당두들 중에서 뛰어나기로 소문난 저 셋이 상대조차 되지 못할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지 못했다.
‘아니.’
자신만만하게 휘하 당두들을 보냈던 고 첩형이 제일 난감했다.
분명 절정의 고수라고 판단했다.
한데 그런데 당주들이 도리어 제압당하면서 동창의 체면을 제대로 구긴 셈이었다.
‘대체 저 계집은 뭐지?’
이런 무위를 지닌 계집이 고작 기생이라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하면 여태껏 경왕이 사람들을 속였다는 것이 된다.
고 첩형이 진왕의 눈치를 보았다.
한데 자신의 우려와 달리 진왕의 시선은 기생에게 꽂혀 있었다.
“하!”
하늘거리는 치마를 입고서 매끈하게 드러난 다리로 발차기를 하는 모습에 진왕은 진심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적을 상대하는 저 눈빛과 얼굴은 자신이 보았던 여느 여자들과 달리 당차기마저 하다.
여태껏 알고 있던 여자에 대한 기준이 산산조각 나는 느낌이다.
그녀의 동작 하나 하나가 눈에 보석처럼 박히는 것 같다.
‘……망나니 같은 놈이 왜 저 계집을 꽁꽁 감추고 있었는지 알겠구나.’
갖고 싶어졌다.
경왕 같이 주색이나 밝히는 놈에게는 과분한 계집이었다.
“전하?”
옆에서 들려오는 고 첩형의 목소리에 진왕이 생각에 잠겨있다다 정신을 차렸다.
고 첩형이 고개를 숙이며 진왕에게 말했다.
“전하 소신이 아무래도 잘못 판단한 것 같습니다. 신이 직접 나서 저 계집을 직접 전하께 데려오겠나이다.”
여기서 만회할 방법은 하나였다.
첩형인 자신이 직접 나서서 보기 좋게 제압해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서기를 청하는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전하. 소장에게 기회를 주십쇼. 신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니, 저 기생 계집을 전하의 앞으로 데려오겠습니다.”
그는 인 오천인장이었다.
진왕이 가늘어진 눈매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자가 자신의 호위로 맡긴 만큼 그 무위는 이중에 단연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못마땅하지만 어서 빨리 저 계집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좋다. 그럼 인 오천장…..”
바로 그때였다.
“어?”
“전하….저기를 보십쇼!”
몇몇 군단장들의 말에 진왕이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으로 눈에 띄는 한 무리가 보였다.
“…….경왕 저놈이.”
녹색 경장의 기생이 한바탕 날뛰는 동안 사인교를 타고서 유유자적하게 주둔지의 한가운데로 행차를 하고 있는 경왕이었다.
군이 있는 주둔지로 오면서 갑주조차 걸치지 않고 여유롭기 짝이 없었다.
* * *
[황제 폐하의 노환과 지병이 깊어지면서 용좌를 향한 다툼이 본격적으로 치열해지고 있다. 본 왕 역시도 근 두 달 사이에 세 번의 암살 시도를 당했다.] [두 달 사이에 말입니까?] [지금도 이럴 진데 폐하께서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대놓고 서로를 죽이려들 것이 자명하다.] [하여 제가 연생이로 신위를 떨쳐달라는 것입니까?] [너를 붙잡을 순 없지만 네가 아닌 진짜 연생이가 계속 본 왕의 곁에 있다면 어떻겠느냐?]이런 부탁을 받고서 나는 마지막으로 연생이로서 신위를 떨치고 있다.
경왕의 말대로 내가 떠나더라도 진짜 연생이가 붙어있다면 진왕을 비롯해 이 소문을 들은 모든 황궁의 인사들이 그녀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것이다.
-너를 부려먹는 걸 보니 이 왕도 만만치 않은걸.
뭐 이 정도야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이다.
나로 인해 금상제의 행보가 갈수록 바뀌어가는 마당에 황실의 역사마저 바뀌지 않을 거라 단언하기는 힘들다.
조금이라도 경왕에게 도움이 된다면 내게도 나쁠 건 없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둔지의 중심부까지 오면서 거의 몇 백여 명의 병사들을 쓰러뜨렸다.
정요 환의경을 쓸 수도 있었지만 연생이라는 기생의 신위는 오직 권각술 하나에 초점을 두기 위해 이를 삼갔다.
하나 대부분의 병사들을 오직 일수에 쓰러뜨렸기에 충분히 그 신위는 보인 것 같다.
병사들이 경각심으로 쉽사리 다가오지 못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경왕을 쳐다보자 그게 고개를 끄덕이며 됐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에 나는 기생들의 무리로 합류했다.
“언니. 너무 멋져요.”
“어쩜 그렇게 잘 싸우시는 거에요?”
기생들이 나를 보며 속삭였다.
이미 내가 연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들이었다.
한데 그들 역시도 암살술을 비롯해 각종 무술을 연마하여서 그런지 오히려 내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들이 하나 같이 내게 언니라고 하고 있다.
졸지에 기생들의 우두머리가 된 기분이다.
-네 부인이 될 사마영이 이를 봤으면 뭐라 할고.
소담검이 키득거리며 내게 말했다.
네가 나와만 대화가 가능한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 경왕이 사인교에서 내려와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예를 갖추어 인사를 했다.
“형님 전하께 경왕이 인사 올립니다.”
경왕이 인사를 올린 대상은 다름 아닌 진왕이었다.
혹시나 그가 무한군의 주둔지에 있을 지도 모른다고 경왕이 말했는데 그 예측이 들어맞았다.
저 자도 참 대담하다.
이리 직접 이곳까지 와서 경왕의 목숨까지 노리다니 말이다.
그런 걸 보면 당대 황제가 더 이상 국정을 운영할 만큼의 기력이 남아있지 않은 것은 확실한 듯 했다.
“흥.”
경왕이 주위를 둘러보며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아무리 진왕을 따르는 무리들이라고 하나 또 다른 황자이자 경왕이 왔음에도 누구하나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있었다.
경왕이 화가 날 만도 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망나니 연기를 하며 지내왔던 그이기에 그 이상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때 진왕이 뒷짐을 지고서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아우가 어찌 아닌 밤중에 이곳까지 와서 행패를 부리는 겐가.”
배 다른 형제라고는 하나 적대적인 말투다.
본론부터 꺼내는 진왕이었다.
그런 진왕을 바라보며 경왕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형님 전하께서 제가 발굴 책임자로 있는 구초 평왕 릉에서 십리 채 되지 않는 이곳 무한군의 주둔지에 있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미처 모른다고 그 책임이 없어지는 것 같나?”
진왕이 강하게 나왔다.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사방에서 밀려든 관군이 주위를 둘러쌌다.
내 신위에 겁을 먹었는데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군율이 잘 지켜지고 있었다.
“삼엄하군요.”
그럼에도 경왕은 나를 믿기에 여유를 잃지 않고 말했다.
그런 그의 태도에 진왕은 심기가 불편해했다.
여태껏 망나니 연기를 하며 그의 앞에서 고개조차 들지 않았던 경왕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 불만스러운 듯 했다.
“그 아이를 믿고 그러는가 보구나.”
진왕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그런 그의 말에 경왕이 미소를 짓고서 손짓을 했다.
그러자 사인교의 뒤편에서 군사들이 누군가를 끌고 왔다.
그 자는 릉 안으로 들어와 경왕과 나를 죽이려 하다 실패하고서 진왕의 이름을 판 관군이었다.
‘!?’
그를 본 진왕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모른 척 할 거라 여겼는데, 애써 숨기진 않는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렇겠지.
나는 진왕의 양 옆에 있는 푸른 관복을 입은 내관과 오천인장의 갑주를 입은 장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저기 저 내관이 동창의 첩형이에요.”
기생들 중 한 명이 내게 속삭이며 말했다.
동창에는 그 우두머리인 제독동창이 있고 그 밑으로 차기 후임자라 할 수 있는 두 첩형이 있다고 들었다.
저 얼굴에 하얗게 분칠한 내관이 그 중 한 사람인가 보다.
무공이 보통이 아니었다.
한 문파의 장로에서 문주 급 수준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경왕의 곁에도 무공을 익힌 자들이 일부 있기는 했지만, 확실히 황후에게서 태어난 적장자라 그런지 황실에 있어야 할 동창 첩형까지 호위로 붙여준 걸 보면 황제는 그를 차기 보위로 생각한 것 같다.
경왕이 포박되어 있는 관군을 앞에 꿇리게 한 후에 말했다.
“이 자가 형님 전하가 시켜서 저를 죽이라고 했다고 했는데, 그게 사실인지 궁금하여 실례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경왕의 말에 그를 빤히 쳐다보던 진왕이 피식하고 웃었다.
증인마저 데려와 추궁하는데 저런 태도를 보이다니, 역시 아직까지 자신의 유리한 상황이라 여기는 모양이다.
진왕이 포박되어 있는 관군을 쳐다보며 말했다.
“본 왕은 모르는 자다. 설마 그 자의 말을 믿는 것은 아니겠지?”
“정녕 모르십니까?”
“모른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시군요. 이 자가 이야기 했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이군요.”
추궁하는 경왕의 말에 진왕이 불쾌하다는 듯이 얼굴을 굳히고서 말했다.
“감히 본 왕을 의심하는 것이냐?”
진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군장들 중에 한 사람이 손을 들어 올리자, 포위하고 있던 병사들 중 궁병들이 궁을 빼들어 시위에 화살을 장전했다.
화살비가 내릴 상황이 되자 기생들이나 경왕이 데리고 온 군사들이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경왕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발뺌도 모자라 아우인 제 목숨마저 위협하시는군요.”
그런 경왕을 바라보며 진왕이 웃으며 답했다.
“아우가 무례를 범한 것도 모자라 이 형을 의심하니 어찌하겠는가. 그 건방진 버릇을 가르쳐줘야 하지 않겠나.”
“…….버릇을 목숨으로 가르치시려 하십니까?”
경왕의 그 물음에 진왕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설마 이 형이 아우님의 버릇 하나 고치자고 죽이려 들겠는가?”
“그럼 시위를 거두시지요.”
“그건 아우님이 하기 나름이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말에 진왕이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산하에 제법 재미있는 아이를 데리고 있더구나.”
“무공이 뛰어난 아이입니다.”
경왕의 대답에 진왕이 내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그 아이를 본 왕에게 넘기거라. 그렇게 한다면 오늘 아우가 저지른 잘못은 묻지 않겠다.”
‘!?’
진왕의 입에서 나온 말에 경왕의 말문이 막혔다.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위를 떨쳐가며 위협을 가했기에 내게 불만을 품거나 경각심을 느낄 거라 여겼는데, 대뜸 나를 넘기라 할 줄은 몰랐다.
심지어 진왕은 내게 묘하게 탐욕스러운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푸하하하하핫.
소담검은 이 상황이 웃겼는지 폭소를 터뜨렸다.
배다르다고 하나 형제는 형제인 모양이다.
여자를 보는 눈에 차이가 없다.
“풋.”
경왕의 입술이 실룩거리고 있었다.
내가 여자인 줄 알고 범했던 우를 진왕마저 저지르고 있으니, 절로 웃음이 나왔나 보다.
진왕이 그런 경왕의 모습에 한 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언성을 높였다.
“지금 웃는 것이냐?”
경왕이 웃음을 겨우 참아가며 말했다.
“그래서 형님 전하께선 제게 이 아이를 내놓으란 말씀이십니까?”
그런 그의 말에 진왕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네게는 과분한 아이 같구나.”
그리고는 내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나는 진왕에게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춰서 답했다.
“연생이라 하옵니다.”
“연생이라……이름이 마음에 드는구나. 짐의 곁으로 오거라.”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하는데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이를 개의치 않는지 진왕이 내게 손을 내밀며 다가오라 말했다.
“저는 경왕 전하의 사람이옵니다.”
“오늘 네 선택에 따라 아우의 목숨이 달려 있다. 네가 아무리 무위가 뛰어나다고 한들 수천의 군사와 짐의 제장들을 상대로 아우를 보호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 말과 함께 진왕이 손을 위로 들어올렸다.
그러자 이에 호응하듯이 궁병들의 시위가 더욱 팽팽해졌다.
“짐이 이 손을 내리면 화살이 시위를 떠날 것이다. 네가 정녕 아우를 살리고 싶다면 그만 고집부리고 오거라.”
“후우.”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경왕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런 나의 모습에 진왕이 네가 별 수 있느냐는 듯이 비웃음을 흘렸다.
그러다 이내 부드럽게 나를 달래듯이 말했다.
“네 주인의 목숨을 담보로 오라고 하니 마음이 쉬이 동하지 않는가 보구나. 하면 네게 제안하마.”
“제안이라 하시면?”
“짐의 빈(嬪)으로 삼도록 하마. 한낱 기생으로 아우를 모시는 것보다 비교도 할 수 없는 자리를 네게 제안하는 것이다.”
진왕이 내게 이 정도면 어떻느냐는 듯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경왕 전하의 제안보다 짜시군요.”
“뭐라?”
-스륵!
그 순간 나는 이형환위의 수법으로 순식간에 진왕의 뒤로 섰다.
이곳에 있는 자들 중에 내 움직임을 잡아낼 자는 누구도 없었다.
내가 어디로 갔는지 고개를 돌리며 찾기에 나는 진왕의 뒷목을 잡고서 밑으로 짓누르며 강제로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네, 네가 어찌…..”
사색이 되어 놀라하는 그의 귓가에 속삭이듯이 말했다.
“손을 내리면 어찌 될지 한 번 내려 보시죠.”
‘!?’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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