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88
94화 그가 돌아왔어 (2) >
‘그다. 그가 돌아왔어.’
조성원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존재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쿵쿵쿵!
송자현 마을 동쪽을 어둠으로 잠식시키며 다가오는 검은 인영의 모습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만 해도 이런 괴물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누구라도 그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럴 수가!”
장로 의구생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동쪽 대로를 향해 달려가는 수십 명의 개방 방도들.
두려움을 잊기 위해 함성까지 질러가며 사기를 끌어올리던 개방 방도들이 어둠을 향해 달려들다 이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져갔다.
무슨 영문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어찌 이런 일이….’
검은 인영은 그저 걸어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달려드는 개방 방도들은 누구 하나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쓰러졌다.
더 의문인 것은 나와 있던 마을 사람들이 무엇에 홀린 듯이 발걸음을 돌려 전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마다 건물의 등불들이 꺼졌다.
이제 그들이 있는 가옥의 앞까지 불과 삼십여 장에 불과했다.
“방주! 도망치든 놈을 상대하든 대처를 취해야 합니다!”
장로 의구생이 넋을 놓고 있는 조성원을 다그쳤다.
그 외침에 조성원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이를 어찌 하지?’
분명 그였다.
저렇게 마을 동쪽 편을 어둠으로 잠식시켜가며 다가올 정도라면 분노했을 게 틀림없었다.
혈교의 지부에 나타났었다면 자신이 배신했다고 여길 지도 몰랐다.
‘…….빌어먹을.’
그의 죽음을 기정화한 것이 멍청한 짓이었다.
팔대고수이자 오대악인의 일인이었다.
그런 괴물 같은 그가 일곱 달 동안 소식이 두절된 것이라면 분명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던 그였다.
물론 아주 만약의 사태를 생각하여 선을 넘진 않았다.
‘변명할 틈이 있을까?’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어도 그가 혈마로서 오면서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
개방의 방도들은 자신이 그에게 충성한 사실을 모른다.
그런 상황에 변명을 한답시고 달려가 무릎이라도 꿇으면 방주 직에서 물러나야 할 거다.
‘도망치면…..’
그것대로 최악이 된다.
그렇게 되면 그가 자신이 배신을 했다고 확신하게 될 거다.
어차피 도망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어검비행을 펼치는 자를 상대로 무슨 수로 도망친단 말인가.
그런 그를 장로 의구생이 다그쳤다.
“방주 결정해야 합니다!”
조성원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별 수 없구나.’
어차피 원래 자신은 전 방주인 홍구가의 계략에 죽었어야 할 운명이다.
그런 자신을 이렇게 방주로 만들어준 것이 그였다.
혈교의 교주인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상 그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자리를 내어줘야 하는 상황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것은 늘 각오했었다.
“의 장로.”
“방주.”
“갑시다.”
뭔가 결의가 담긴 목소리에 장로 의구생은 조성원이 각오를 다졌다고 여겼다.
상대는 손 한 번 쓰지 않고 방도들을 쓰러뜨린 괴물이다.
그런 괴물을 상대로 고작 자신과 방주 둘이서 어찌 해볼 수 있으리란 기대는 없었다.
하나 정파인으로서 어찌 동료를 버릴 수 있겠는가.
목숨을 던지라도 신념을 지켜야 했다.
“노부가 방주를 잘 본 것 같소.”
그런 장로 의구생의 말에 조성원은 가슴이 뜨끔했다.
자신은 싸우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한데 장로 의구생은 마지막을 불태우려 한다고 여기는 듯 했다.
‘실망시켜서 송구합니다.’
자신은 그에게 무릎을 꿇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개방의 방도들은 이 자리에서 모두 죽는다.
조성원은 말없이 지붕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가옥의 대문을 통해 동쪽 대로를 향해 나아갔다.
그런 그를 장로 의구생이 따랐다.
‘엄청난 위압감이다.’
어둠 속에서 걸어오는 인영의 모습이 보였다.
어두웠지만 점점 가까워지면서 얼굴이 또렷해졌다.
‘얼굴이?’
한데 자신이 알고 있던 진운휘의 얼굴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자였다.
‘인피면구인가?’
다른 자일 확률도 있었지만 그건 아닌 듯 했다.
손 한 번 대지 않고 적들을 쓰러뜨릴 수 있는 신기를 보일 자는 오직 그뿐이었다.
장로 의구생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조성원은 각오한 대로 무릎을 꿇으려 했다.
“조성원이……”
-쿵!
‘!?’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조성원이 고개를 돌렸다.
장로 의구생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의 장로?”
그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장로 의구생은 심지어 코까지 골면서 깨어나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잠이 든 것이었다.
조성원이 놀라서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퍽!
“끄헉!”
복부로 날아드는 발길질에 그의 신형이 뒤로 십여 장이 넘게 튕겨나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내공으로 보호할 수도 없었다.
바닥을 뒹군 조성원이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더 강해졌어.’
초인의 영역에 이른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 또한 항룡십팔장을 부단히 연마하고, 개방의 방주들에게 내려온다는 영단을 먹고서 초절정의 경지에 발을 올려놓았다.
방주의 자리에 부끄럽지 않으려 미친 듯이 노력했는데, 고작 발길질 한 번에 오장육부가 뒤틀릴 것 같았다.
‘벽을 넘은 고수가 이리 강했던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스륵!
어느새 그가 자신의 앞으로 나타났다.
고개를 들자 그의 얼굴 골격이 뒤틀리며 변하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자신이 알고 있던 그의 얼굴이 되었다.
‘아!’
역시였다.
그가 틀림없었다.
조성원이 다급히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외쳤다.
“미천한 교인이 혈교의 교주이신 혈마를 배알하나이다!”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그에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너는 매를 벌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당황한 조성원이 고개를 들고서 황급히 변명을 하려 했다.
“주군. 당연히 오해하실 수도 있지만…..”
-퍽!
“끄억!”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발길질에 어깨를 맞은 그의 몸이 부웅하고 날아올라, 임시 근거지로 삼고 있던 빈 가옥의 벽면에 처박히고 말았다.
-쾅!
온몸이 으스러질 것 같았다.
벽에 처박힌 조성원이 겨우 고개를 들었다.
진운휘가 무서운 얼굴로 자신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조성원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갔다.
“주, 주군!”
“이 꽉 깨물어.”
* * *
빈 가옥의 대청 위에 걸터앉은 나는 피멍으로 곤죽이 된 조성원을 내려다보았다.
무릎을 꿇고 있는 조성원은 지쳤는지 반쯤 넋이 나갔다.
처음 내게 충성을 맹세했던 그 날도 이렇게 얻어터졌던 그였다.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을 것이다.
“참 곤죽으로 만드셨네요. 도련님.”
아송이 혀를 내둘렀다.
조성원 녀석을 두드려 패다가 아송이 어딨는지 다그치자, 가옥의 창고에 구금되어 있던 것을 직접 데려왔다.
방주 취임식을 가느라 녀석은 아송을 몰랐다.
아송의 몸에 털 끝 하나라도 상처가 있으면 더 곤죽을 내려 했는데, 다행히 무사했다.
“저 녀석이 네게 고문 같은 걸 하진 않았겠지?”
“고문이요? 특별히 건드리진 않던데, 먹을 것도 주지 않고 잠도 안 재웠지만 그거야….”
“뭐?”
내가 눈썹을 치켜 올리자 조성원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정말 몰랐습니다!”
“쯧쯧.”
한 번 더 혼쭐을 내려다 나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나마 이 정도로 끝낸 것은 녀석이 마지막 선을 넘어서지 않아서였다.
녀석은 무림 연맹에서 대대적으로 혈교 지부들을 소탕하는 작전에 개입하지 않고서 그들에게 미리 정보를 흘려준 것을 내게 알려줬다.
결과적으로 조성원이 정보를 입수한 혈교의 지부들은 소탕 전에 무사히 빠져나간 것 같다.
물론 모든 지부들을 돕지는 못했다고 이실직고했다.
-나름 살 구멍은 마련해놓았네.
그러게.
처음 보았을 때는 첩자로서는 어리숙하기 짝이 없었는데 그새 많이 발전했다.
이 모든 게 일말의 확률로 내가 돌아왔을 때를 대비한 걸 테지만.
“하아….하아….”
연신 내 눈치를 보고 있는 조성원을 바라보았다.
개방 방주의 역할을 하면서 혈교와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애를 쓴 것 같다.
-네가 진짜로 죽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글쎄.
나름 가운데서 줄타기를 하며 계속 상황을 관망했을 거다.
내가 사라졌다고 해도 본교에 녀석의 정체를 아는 자들이 있으니까.
섣불리 변절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믿을 수 있겠어?
중간에서 간 본 게 괘씸하지만 녀석은 개방의 방주다.
극비가 아닌 이상 무림 연맹의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역으로 정보를 교란시키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기에 쉽게 버릴 패가 아니었다.
녀석을 빤히 쳐다보던 나는 앞으로 걸어가 앞에 멈춰서서 물었다.
“정보를 흘려서 지부 사람들을 도와놓고 이곳에 매복을 해서 교인들을 왜 잡으려 한 거지?”
“……개방은 무림 연맹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 개방이 혈, 아니 본교에 대한 정벌을 대놓고 반대하고 불참하게 되면 의심을 받게 됩니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그랬다?”
“죄송합니다. 조금이라도 연맹의 일을 보조한다는 느낌을 줘야 했습니다.”
녀석이 죽을 죄를 지었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이에 나는 피식하고 웃었다.
그리고 녀석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젠 제법 첩자 같아졌군.”
조성원이 떨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주군?”
“가운데서 간을 본 건 더 벌을 줘야 마땅하나, 네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 이것으로 넘어가겠다.”
“…….감사합니다.”
-꽉!
녀석이 안도의 얼굴을 하며 내 손을 잡았다.
무릎을 꿇고 있던 녀석을 일으켜 세운 나는 다시 대청에 걸터앉았다.
조성원이 그런 내게 말했다.
“다시 주군과 함께 본교로 복귀하겠습니다.”
“아니. 지금 그 자리에서 계속 방주의 역할을 해줘야 겠어.”
“……정말이십니까?”
“농담 같나?”
개방을 통제해야 할 녀석이 나와 함께 움직이면 활용도가 떨어진다.
지금처럼 자리를 지키고 정보를 취합하는 게 더 쓸모 있었다.
“내가 왜 개방의 방도들을 전부 재웠을 거라 생각하나?”
“아!”
녀석은 그제야 내 의도를 알았는지 작게 탄성을 흘렸다.
나는 정요 환의경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이들을 잠재운 것이 아니었다.
써먹어야 할 녀석들이기에 위해를 가하지 않은 것 뿐이다.
그리고 그저 분풀이처럼 생각되겠지만 조성원을 저리 곤죽으로 만든 것도 녀석이 의심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시간이 없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지.”
“본론이라면?”
“잠든 거지 녀석들이 깨기 전에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보가 필요하다. 쓸데없는 부분은 다 쳐내고 본교와 무림 연맹의 상황을 말해라.”
일곱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한다.
송자현 지부가 철수 했으니, 지금 당장에 그것을 알려줄 만한 적임자는 개방의 방주를 맡고 있는 조성원이었다.
이런 나의 명에 녀석이 난처하다는 듯이 말했다.
“본교 내부의 일은 저도 상세히 알지 못합니다.”
그렇겠지.
장강을 기점으로 상당수의 지부가 철수하거나, 무림 연맹에 의해 박살이 났으니 말이다.
직접적으로 그들과 접촉하지 않는 이상 본교에 무슨 일이 있는지에 대해선 정보를 얻기 힘들다.
‘흠.’
사실 이게 의문이었다.
너무 많은 본교의 지부들이 피해를 입었다.
하나 둘 정도라면 모를까 조성원의 말대로 지부가 거의 삼할 가까이 타격을 받았다면 뭔가 정보가 유출된 게 틀림없었다.
물론 조성원은 이에 대해 절대 자신이 아니라고 완강히 해명했다.
‘누가 유출을 한 거지?’
본교에 있는 간자들은 대부분 색출했었다.
그런데 이런 사태가 발발했다는 것은 또 다른 간자가 내부로 침입했던지, 아니면 내부에 정말로 배신자가 생겼을 수도 있다.
일단 이것은 본교로 복귀하면 자세히 알 수 있을 거다.
“네가 알고 있는 것만 이야기 해.”
이런 나의 말에 조성원이 조심스럽게 입술을 뗐다.
“주군……혹시 일존이 죽은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
그 말에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일존이 죽었다니?
일존 파혈검제 단위강.
나를 제외한다면 본교에서 최강이라 불리는 일존이었다.
내가 사라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광서성과 호남성의 경계면에서 팔대고수의 일인인 무당의 태극검제 종선 진인을 견제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충격으로 말문을 잃고 말았다.
그가 내게 했던 말이 머릿속을 울렸다.
내게 힘이 되어주겠다고 했던 일존이었다.
그런 그가 죽었다는 소식은 너무 충격적이었기에 슬픔으로 가슴이 먹먹해졌다.
‘……내 탓이란 말인가?’
사라졌던 일곱 달.
그 사이에 큰 사건이 없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렇게 최악의 사건이 벌어졌을 줄은 몰랐다.
충격과 슬픔 사이로 어느새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으득!
“태극검제인가?”
이런 나의 물음에 조성원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그럼 누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이야?”
“……태극검제 종선 진인도 죽었습니다.”
“뭐?”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대립 중이던 무당파의 태극검제 종선 진인이 일존을 죽였다고 여겼는데, 그도 죽었다니 대체 이게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다.
일곱 달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어처구니가 없어하는 내게 조성원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둘 모두 살흉 절심에게 당했습니다.”
‘!!!’
살흉(殺凶) 절심.
최악의 도살자라 불리는 오대 악인의 일인이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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