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9
15화 각패 (1)
완전히 자란 하선부설초.
그것은 만사신의의 손에 들려 있는 덜 자란 것과 확연하게 달랐다.
은은하게 빛나는 녹색 구슬들만 봐도 이게 진짜 영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참으로 공교롭군. 비슷한 시기에 두 사람이나 영초를 찾다니…..자네의 꽃잎 안에는 구슬이 몇 개 있는가?”
만사신의가 내게 물었다.
“일곱 개입니다.”
대답을 들은 만사신의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된 하선부설초라고 인증한 셈이었다.
“크하하하하하핫! 과연 본좌의 제자답구나.”
해악천이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광소를 뱉으며 나를 칭찬했다.
혈수마녀 한백하를 쳐다보면서 저러는 것은 그녀를 조롱하기 위함일 것이다.
-엄청 좋아하는데.
‘자존심이 센 노인네니까.’
한백하는 그저 미간을 찌푸린 채로 하염없이 영초를 쳐다볼 뿐이었다.
의외로 나를 원망하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뭔가 아쉬워하는 느낌은 무엇일까?
“하……”
옆에서 들려오는 탄식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았다.
하연 소저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영초와 나를 번갈아보고 있었다.
왜 이걸 이야기 하지 않았냐는 얼굴이었다.
당연한 거 아닌가.
거래는 애초에 우리 둘이서 영초를 찾기로 했었다.
한데 그걸 스승인 혈수마녀에게 맡겼다.
거래의 대가로 신묘한 경신법을 가르쳐준 그녀는 신뢰하지만 혈수마녀를 믿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럼 우리 확인해볼 게 있었죠? 소저.”
내 말에 그녀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해악천에게 다가가 물었다.
“스승님. 한 가지 여쭤 봐도 괜찮겠습니까?”
“크하하하핫. 암암. 뭔들 대답 못해주겠느냐.”
기쁨에 도취된 해악천이 흔쾌히 허했다.
“혹시 육혈성이 스승님께 각패를 주신다고 하셨습니까?”
“각패?”
당사자를 앞에 두고 직접적으로 거론하기 힘들었기에 나는 만사신의 쪽을 눈짓으로 살짝 가리켰다.
이를 알아들은 해악천이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각패를 줘? 하! 제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각패는 꿈도 꾸지 말라고 엄포를 늘어놓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쯧쯧.”
“제가 어찌 엄포까지 했습니까?”
해악천의 그 말에 한백하가 미간을 찡그리며 반문했다.
“흥! 그럼 각패를 준다고 했느냐?”
“그건…..”
그녀가 뒷말을 잇지 못했다.
대충 분위기를 보면 해악천이 약간 과장되게 이야기 했지만,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각패를 주지 않겠다고 한 게 확실해 보였다.
결론은 났다.
나는 뒤를 돌아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하연 소저에게 쳐다보며 눈짓을 보냈다.
‘제 말이 맞지요? 소저.’
내 묵언의 의사를 읽은 그녀가 잔뜩 굳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에서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 보였다.
어쩌겠는가.
내기는 내기인데.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에게 하는 내 말에 해악천을 비롯한 혈수마녀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에는 그녀와 나의 또 다른 내기가 있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
.
.
[네? 스승님을 믿지 못하겠다고요?] [사문의 존장을 신뢰할 수 없다고 말씀드려서 송구스럽지만, 저는 육혈성께서 각패를 주실지 확신이 가지 않습니다.] [그건……스승님께서 확실히 약조하셨어요.] [만약 제 스승님께서 육혈성의 부탁을 거절하면요?] [그렇다고 해도 각패를 주실 거에요. 그건 제가 공자께 확답드릴 수 있어요.] [글쎄요.] [후우, 공자님은 전생에 크게 사기라도 당하고 죽으셨나요? 제 말이 그렇게 신뢰하기 힘든가요?]전생이라는 말에 조금 당황했었다.
[경신법도 가르쳐드렸는데, 믿지 못하겠나요?] [……소저는 신뢰합니다. 다만 반대로 생각해보죠. 저희 스승님께서 제게 했던 말을 번복한다고 한다면 저로서도 별 수 없이 사문의 존장을 따를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네 스승이 말을 바꾸면 너도 따라야 하지 않느냐는 의미였다.
막말로 제자인 그녀는 윗사람인 혈수마녀가 까라고 하면 까야할 처지다.
해악천에게 각패를 조건으로 뭔가를 요구할 정도라면,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각패를 주지 않을 확률이 더 높았다.
[아닐 걸요. 제 스승님은 약조를 지키실 거에요.] [확신하십니까?] [당연하죠. 감히 누……구라도 스승을 의심할 제자가 어딨겠어요?]혈수마녀 한백하가 제자를 잘 키웠다.
이 정도로 신뢰가 두텁다니.
[그럼 내기할까요?] [……내기요?] [어차피 소저의 스승님께서 하선부설초를 가져갔으니, 우리 둘이 찾았다고 하는 건 물 건너가지 않았습니까?] [그, 그야 그렇죠. 그건 정말 죄송하게…] [아닙니다. 소저 입장에서야 한 번 습격당했으니, 당연히 안전을 위해서 맡겼겠죠. 그렇죠?] [맞아요! 그런데 그건 아까도 그렇다고 말씀드렸는데……] [어찌 되었든 저희가 애초에 거래했던 것과는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한데.] [저는 두 개의 각패를 얻을 기회를 잃었으니, 그에 상응하는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그녀가 나를 흘겨보았다.
[공자님…..가만 보면 도둑놈 심보네요.] [도둑놈이라뇨. 그저 제 밥그릇을 챙기는 겁니다.] [칫. 그 잔머리라면 어디 가서 굶어죽진 않겠네요.] [칭찬 감사합니다.] [……칭찬 아니거든요. 그래서 뭘 내기하시겠다고요?]투덜대면서 미끼를 물었다.
[간단합니다. 소저는 육혈성을 믿으시면 되고, 저는 제 판단을 믿겠습니다.] [그 판단을 너무 과신하시는데요. 그러다 큰 코 다칠 걸요.] [그럼 제가 내기에서 지는 거죠.] [내기의 대가는요?] [만약 제 판단이 맞다면 적어도 신의 어르신의 각패에 준하거나 그 이상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이!….도…]또 도둑놈 심보라고 하려고?
소저와 다르게 나는 원래 혈교 출신도 아니라 하루하루가 빡세거든.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잡아야하는 처지라고.
[후우, 그래서 신의 어르신의 각패에 준하는 게 뭔데요?] [육혈곡에서도 그렇고 육혈성께서도 지극정성으로 귀인 분을 모시는 것 같더군요.] […….그렇죠.] [그 정도로 높으신 분이라면 그 분의 각패가 탐나는군요.] [하!]그녀의 반응은 이해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혈교 교주의 손녀의 각패를 달라고 한 셈이니까.
나도 참 간이 붓긴 했다.
하지만 어차피 하연 소저에게 있어서 난 그 귀인이 누군지 모르는 입장이라 상관없었다.
내가 부탁한다고 들어줄 인간은 아니지만.
말은 해볼 수 있는 거니까. 흠흠.
[그것뿐이면 제가 손해 아닌가요? 말만 거드는 게 뭐가 어렵다고요.] [제 스승님을 모르시는군요. 괜히 기기괴괴라는 별호가 있는 게 아닙니다.] [네?] [저는 사문에 입문한 날부터 절벽에 거꾸로 두 시진이 넘게 밧줄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런 분을 설득한다는 건 저한테 굉장한 용기입니다.] [저런……]그녀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괴팍한 노인네를 안다면 당연히 이런 반응이 나오지.
하지만 쉽게 넘어가진 않았다.
[그래도 제가 손해인건 변함이 없네요. 공자님. 저를 너무 물로 보시는 거 아니에요?] [쩝. 그럼 별 수 없군요.] [말장난으로 속이지 마시고, 진짜로 저를 설득할 만한 대가를 제시하세요.] [그럼 저도 육혈성께서 얻으신 신의 어르신의 각패를 포기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구색이 맞지 않습니까?] [각패를…..포기하신다고요? 그럼 단전 치료는요?]과감한 제안에 그녀가 흔들렸다.
당연하겠지.
무인의 인생을 포기한다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어떡하겠습니까. 저도 상응하는 대가를 내어드려야 하니까요. 어쨌든 이 정도 조건이면 충분히 내기가 성립되지 않습니까?]미안하오. 소저.
어차피 혈수마녀는 각패를 얻지 못하오.
[흠…….]고민하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내기해요. 단 각패를 포기하는 건, 그 정도 대가를 줄 각오가 되어있다는 걸로 대체할게요.] [네?] [저도 경신법까지 가르쳐드렸는데, 공자님이 단전 치료도 못하고 무인으로 빛을 보지 못하는 건 마음에 걸릴 것 같거든요.] [정말 괜찮습니까? 저야 감사하지만……] [대신 목숨을 걸고 사존을 설득해주셔야 할 거에요.] [알겠습니다.] [어휴. 이렇게 서로 손해 보는 내기를 왜 하는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또 절벽에 매달려도 제 탓은 하지 마세요.]그녀의 표정을 보면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기를 받아들였겠지만.
.
.
이게 객당에 도착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
덕분에 신의의 각패를 더해서 교주님 손녀의 각패를 얻게 생겼다.
좋은 내기였다.
[믿는 바가 있으셨군요.]내 귓가로 하연 소저의 전음이 들려왔다.
진짜 영초를 숨기고 있던 것을 꼬집는 그녀였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혈수마녀가 진짜 영초를 가지고 있었다면 고생은 우리가 하고 최종 승자는 그녀가 되지 않았겠는가.
전음으로 그건 미안하다고 답해주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나는 전음을 어떻게 하는지 배우지 못했다.
-가르쳐줄까?
소담검이 내게 말했지만 그걸 당장 배워서 써먹기에는 늦다.
나는 그저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어차피 진짜 미안해야 할 사람은 하연 소저와의 약조를 어긴 혈수마녀니까.
[휴…..좋아요. 내기는 내기니까요. 귀인의 각패는 어떻게든 받아서 드릴게요.]그녀는 깨끗하게 승복했다.
이런 걸 보면 그녀는 보통 사람들보다 그릇이 컸다.
여태껏 만나봤던 소위 명문가의 자제들이나 명성 높은 스승을 둔 전인들의 대부분은 자신들의 이익에 어긋나는 짓은 하지 않았다.
약조를 어기는 일도 수두룩했다.
한데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예전과 다르게 내게 사존이라는 뒷배가 있기 때문일까?
어쨌든 깔끔해서 마음에 든다.
-휙!
그렇게 전음을 하고난 그녀가 매서운 눈빛으로 혈수마녀를 노려보았다.
그래도 스승인데 저렇게 노려보면 나중에 혼나는 거 아냐?
아무리 실망해도 티를 내면,
‘엇?’
그때 혈수마녀 한백하의 오른손이 붉게 물들었다.
독문무공인 혈수옥을 운용한 것 같았다.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게야!”
해악천이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노성을 질렀다.
그 순간 예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팍!
‘!?’
한백하가 피처럼 붉게 물든 수도로 자신의 왼손 검지와 중지를 쳐냈다.
혈수옥의 위력이 강했던지라 그녀의 두 손가락이 도(刀)로 벤 것 마냥 잘려나갔다.
객당 앞 돌바닥으로 피가 뚝뚝 떨어졌다.
“하!”
해악천조차 갑작스러운 사태에 영문을 몰라 했다.
그때 한백하가 인상을 찡그린 채, 피가 나는 손으로 포권을 취하며 해악천에게 말했다.
“육혈성 한백하가 사존께 사죄드립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