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301
98화 무림 연맹으로 (3) >
이 여자 뭔가 오해한 것 같다.
내가 자신을 원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에 나는 설백에게 이것에 대한 착각하지 말라고 쏘아붙이려 했는데,
-꼭 그런 식으로 해명할 필요 있나? 인간. 네놈이 가장 잘하는 짓을 하면 되지 않느냐?
혈마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내가 가장 잘하는 짓이라니?
-어차피 정보를 내뱉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 않나?
그야 그렇지.
-그럼 적당히 장단에 맞춰주고 정보만 내뱉게 하고 처리하면 되지 않나?
그런 혈마검의 말에 나는 속으로 신음을 흘렸다.
적당히 장단에 맞춰주는 것은 눈앞의 설백이 원하는 식으로 맞춰주라는 건데.
‘흠.’
그녀를 빤히 쳐다보던 나는 마음을 정했다.
설백은 금상제의 세 심복 중 하나였다.
만약 그녀가 놈의 소재나 목표에 대해 확실하게 입을 연다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성과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놈으로 인해 지금까지 수많은 희생을 치렀다.
이제 그 악연의 고리를 끊어야 했다.
‘…….미안하지만 이쪽도 수단과 방법을 가릴 처지는 아니니까.’
감정을 이용해서라도 알아내야 한다.
나는 기대감에 찬 얼굴로 바라보는 설백에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 내가 원할 거라 여기는 거지?”
곧바로 원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보다 여지를 준 것이다.
그런 나의 물음에 설백이 진지하게 답했다.
“나와 접촉했던 자들 중에 누구도 내게 닿기만 하면 견디질 못했어. 강 랑조차도 말이야.”
그 연인이었던 천인장을 말하는 건가.
설백이 그때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했었다.
천음지체의 몸을 가져 그녀와 살갗이 닿는 자들은 하나 같이 고통스러워했다고 말이다.
설마 지금까지도 누구와 제대로 된 연을 맺지 못했던 건가?
의문이 생겼다.
그때 그녀가 살짝 홍조가 띤 얼굴로 말했다.
“그 대단한 무공을 지닌 그분조차 내게 손 한 번 대지 못했지만 너는 달랐어. 처음 느껴보는 그 감각을 삼백여 년이 지나도 잊을 수가 없었어.”
순간 닭살이 돋을 만큼 소름이 났다.
삼백여 년 동안이면 감정적으로 변하기 마련이었다.
수많은 일들을 겪고 하다보면 감정이 희석될 터인데, 지금까지도 잊지 않았다는 게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대단하군.
혈마검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런데 이것도 그렇지만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었다.
이건 직접 물어봐야 겠다.
“설백 그대가 모시는 주인은 평생 나를 원망했을 터인데?”
-그렇군.
그 당시에야 기절해 있어서 금상제가 수모를 당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지만, 그때 있었던 사실을 들었고 금상제의 원망을 곁에서 지켜보았다면 이런 감정을 가질 수 없다.
자그마치 삼백 년이 아니던가.
어쩌면 그녀가 일부러 나를 속이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이런 나의 말이 설백이 정색을 하더니 말했다.
“그분이 원망하는 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거지?”
‘!?’
이건 대체 무슨 논지지?
오히려 내가 이해가 가지 않으려 한다.
“……그대의 주군인데 상관없다는 건가?”
그 말에 설백이 내게 눈웃음을 지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내가 왜 그분의 곁에서 독수공방으로 삼백 년을 지킨 줄 알아?”
“모른다.”
그걸 알면 점쟁이를 했겠지.
이런 나의 말에 설백이 자신의 목에 겨냥하고 있는 검을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항복할 테니 이 검을 치워줘.”
나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건 힘들 것 같군. 이미 네 몸의 상처들은 회복되었다. 도망칠 시도는 하게 내버려두지 않아.”
“도망? 내가 왜?”
“왜?”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 넌 모를 거야. 처녀인 내가 근 삼백 년을 독수공방으로 왜 지냈을 것 같아? 그분의 곁에 있으면 분명 검선의 후예 너와 만날 수 있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야.”
설백의 이 말에 순간 골이 아파왔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금상제의 곁에서 일해왔던 것이 나와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고 여겨서라는 것이 아닌가.
그걸 삼백 년이나 해왔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쯤 되면 새로운 사람을 찾는 것이 더욱 빨랐을 텐데 말이다.
더군다나 내 진짜 얼굴도 몰랐을 텐데, 이렇게 말을 하니 오히려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같아 믿음이 가지 않는다.
“…….미안한데 신뢰할 수 없군.”
“신뢰라……”
그 말에 그녀가 뭔가를 결심했다는 듯이 이윽고 말했다.
“좋아. 그럼 그분의 곁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두겠어.”
“뭐?”
너무 선뜻 말해서 내색조차 하기 힘들었다.
자그마치 삼백 년을 모셔왔던 주군의 곁에서 일을 하던 것을 그만두겠다는 말을 너무 쉽게 던진다.
나는 검 끝에 예기를 일으키며 말했다.
“그걸 내가 믿을 거라 생각하나?”
“어차피 그분의 곁에서 일했던 것은 북해빙궁의 재건을 위해서였어.”
“북해빙궁의 재건?”
그러고 보니 현 무림에는 북해빙궁이 존재하지 않는다.
북해빙궁 출신인 그녀가 이렇게 눈앞에 있는데, 어째서 재건을 이야기하는 거지?
그런 의문을 풀어주기라도 하듯 그녀가 말했다.
“나는 마지막 북해빙궁의 생존자야. 내가 재건하지 않으면 북해빙궁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거야.”
“…….이해가 가지 않는군. 그럼 여태 왜 재건하지 않은 거지? 금상제가 가진 여력이라면 한 문파를 재건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텐데.”
“설가의 피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재건이라 할 수 없어.”
설가의 피라.
혈교처럼 혈연을 중심으로 한 건가.
하긴 도가 계열이 아니고는 대부분의 방파나 세가들이 그렇게 이어져 내려왔다.
“그 정도로 재건이 중요했다면 음기를 포기하고서 자식을 낳으면 되지 않나?”
체내에 저 엄청난 음기만 포기하면 가능한 일이라 본다.
한데 그녀는 그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설백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본 궁의 빙백신공은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오며 고조부의 대에 와서는 후손들 전부가 선천적인 천음지체로 태어나게 되었어.”
“그럼 천음지체끼리 연을 맺으면 되지 않나?”
“……그게 본 궁을 멸망하게 된 계기야.”
“계기?”
“아무리 빙백신공을 익힌다고 해도 남자는 양기가 강한 체질인데, 타고난 음기를 지니고 태어나게 되니 이를 버틸 수 있을 리가 만무하지.”
“하면 음기를 버티지 못하고 전부 죽었다는 건가?”
“그래. 빙궁에 태어나는 남자들은 하나 같이 오 년을 버티질 못했어. 전부 천음지체에 먹혀서 죽었어. 그러다보니 후손을 자연스럽게 끊길 수밖에 없었고, 종국에는 나 혼자만이 남게 되었어.”
그녀의 말대로라면 북해빙궁은 비극을 맞이한 거라 할 수 있었다.
무공으로 비롯해 완성된 음기의 신체가 자신들의 맥을 끊었으니 말이다.
혀를 내두르고 있는 내게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
“그나마 강랑이 타고난 체질 때문인지 내게 조금이나마 버틸 수 있었는데, 기껏해야 잠깐에 불과했지.”
“곁에 수많은 고수들이 있었을 텐데?”
가령 벽을 넘은 고수들이라면 보통 사람들보다 강한 양기를 가졌을 거다.
그런 나의 물음에 그녀가 콧방귀를 뀌고서 말했다.
“손 끝만 닿으면 전부 죽는데 뭘 어쩌라는 거야?”
“쿨럭.”
순간 입에 물이 있었다면 뿜었을 거다.
방금 그 한 마디로 그녀가 얼마나 이런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고 있었는지가 느껴졌다.
결국 그녀 나름대로 여러 방면으로 관계를 맺기 위해 수많은 남자들과 접촉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는 거다.
-불쌍한 인간 계집이로군. 그냥 거둬들여라.
……뭘 거둬들이라는 거야.
그런 연민의 감정으로 누군가를 거두지 않는다.
그리고 삼백 년이 넘게 살아왔다면 거의 조상 뻘이지 않나.
-저 얼굴과 저 몸이 조상 뻘로 보이나.
금상지체의 시술을 받은 그녀는 노화가 멈췄다.
그래서 겉보기만 본다면 고작해야 이십대 중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검에 베여서 드러난 살결만 봐도 탄력이 넘친다.
아름다웠지만 그것만으로 누군가를 거둬들인다면 옛적에 수많은 여자들을 거둬들였을 거다.
-어차피 너도 그 금상지체인가 뭔가 하는 시술을 받았으니 불로장생은 아니더라도 오래 살 게 뻔 할 텐데, 나이가 상관 있나?
‘………’
이 녀석 갑자기 통찰력이 높아졌다.
그런 것까지 생각하다니.
-뭐 아무튼 결정은 인간 네가 하는 거고 그럼 어쩔 거냐?
원래 계획대로 할 거다.
그녀 나름의 사정을 가지고 있다지만, 금상제의 소재를 알아내는 것이 더 우선이었다.
다행인 점은 그녀가 나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이는 것이다.
단번에 금상제의 곁을 떠날 거라고 하는 것을 보면 잘만 구슬리면 충분히 입을 열 수 있을 것 같다.
“정말로 금상제의 곁을 떠날 거라면 그 말에 대해 신뢰가 필요하다.”
“신뢰?”
“그래. 금상제에 관한 소재를 말해라.”
그런 나의 말에 설백이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더니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내게 말했다.
“나를 너무 바보로 아는 거 아냐?”
“……..”
“내가 그 동안 얼마나 많은 남자들을 봐왔을 거라 생각해?”
그걸 내가 어찌 아나.
대답을 하지 않자 그녀가 말했다.
“남자란 족속들은 자신이 갖고 싶은 것에 대한 욕망을 채우면 무엇이든 쉽게 버리더라고.”
순간 속으로 뜨끔했다.
정보만 얻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이를 눈치챈 것 같다.
일단은 내색하지 않고 답했다.
“너무 일반화시키는군.”
“일반화가 아니더라도 나 역시 보장이 필요해.”
아무래도 이 여자를 너무 쉽게 본 것 같다.
감정을 이용하려 들었는데, 어느 정도 이성과 통찰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니면 향화열락궁의 주사련의 심결로 다시 한 번 그녀의 호감을 더 자극해볼까?
그때 그녀가 말했다.
“삼백 년을 수발을 들었던 분을 버리는 일인데, 적어도 나도 원하는 것을 얻어야 공평하지 않을까?”
………젠장.
원하는 것이 너무 극명하다.
홍조가 띤 얼굴로 혀를 날름거리는데 난감하기 그지없다.
-인간 네놈 주위에는 이런 여자들만 꼬이는 게 신기하군.
내가 하고픈 말이다.
전생에 무슨 죄라도 지은 걸까?
금상제에 관한 정보를 얻자고 그녀가 원하는 것을 먼저 들어줄 순 없었다.
나는 냉정하게 말했다.
“정보가 먼저다.”
“검선의 후예 당신이 관심을 가질 만한 정보들은 충분히 많아. 가령 혈교에서 그토록 찾고 있는 만사신의의 소재라던가.”
“만사신의!”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관심을 보이고 말았다.
하지만 순간 이성을 되찾았다.
머릿속이 팽팽 돌아갔다.
만사신의의 소재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금상제가 그의 소재를 알고 있다면 환마독을 해독할 수 있고 방해가 될 만사신의를 그냥 내버려둘 리가 만무했다.
“만사신의의 소재보다 환마독의 해독방법을 알려주면 끝날 일이다.”
“환마독의 해독제는 없어.”
“뭐?”
“애초에 그분께서 혈주에게 해독할 수 없는 독을 부탁한 것이었고, 자그마치 이십 년에 걸쳐서 완성한 독이야.”
해독제가 없는 독이라니.
그럴 리가 없다.
음양의 이치를 조 스승님께 배운 나는 알고 있다.
세상 모든 것에는 상극이란 게 존재하고 균형이란 게 존재한다.
설백이 웃으며 말했다.
“혈주가 살아 있었다면 그가 해독제를 만들 수 있었겠지. 하나 이제 그는 세상에 없으니 해독제를 만들 수 있는 자는 만사신의뿐이잖아.”
이쪽의 약점을 찌르고 들어온다.
하지만 허점이 없지 않다.
“만사신의의 소재를 안다고 말한 건 금상제 또한 아직 소재를 아는 것이지 그를 손에 넣지 못했다는 것일 텐데.”
이런 나의 말에 설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부정하지 않았다.
“맞아.”
“그럼 둘 중 하나겠군. 그 소재에 관한 정보가 확실하지 않다든지 혹은 금상제나 그 조직조차 손을 대기 힘든 곳에 만사신의가 있든지.”
이 말에 설백이 혀를 내둘렀다.
“무위만큼이나 머리가 영민하네. 검선의 후예 당신의 씨가 더욱 갖고 싶어졌어.”
“……..”
무섭다. 무서워.
“내가 여자일 수도 있는데 그런 말이 나오나?”
이런 나의 말에 설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여자인가 이런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스스로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어. 그때 이 손으로 직접 당신의…..”
“크흠.”
이 여자도 백혜향처럼 정말 말하는데 스스럼이 없다.
어쨌거나 이 여자는 금상제의 소재 이외에도 만사신의의 소재까지 알고 있다.
알아낼 정보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서 마냥 대답을 하지 않는다고 처리하기도 아까웠다.
헛기침에 설백이 나를 흘겨보며 말했다.
“거짓말쟁이. 나를 떠보다니.”
저러면서도 꽤 안도하는 눈치다.
그러다 설백이 내게 말했다.
“당신 나를 정말 믿지 못하는군.”
“사정은 이해가 가지만 삼백여 년의 충성이 이렇게 쉽게 깨지리라 보지 않거든.”
그런 나의 말에 설백이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러다 이내 다시 입술을 뗐다.
“정말 손해를 보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로군.”
잘 아네.
나에 대해 꽤나 빨리 파악했다.
“좋아. 그럼 당신의 신뢰를 얻는 게 좋겠네.”
“어떻게 신뢰를 얻을 거지?”
이런 나의 물음에 그녀가 숨을 들이키더니 입을 열었다.
“만사신의는 지금 개봉의 황궁 어딘가에 있고, 뇌장이 영왕을 움직여 그 소재를 찾고 있어. 그리고 혈주가 죽으면서 대계를 위한 환마독이 부족해지면서 그것을 만들 대체자를 찾기 위해 사천당가의 부가주 당우중을 노리고 있어.”
갑자기 그녀가 굉장한 정보들을 술술 내뱉었다.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무림 연맹의 총군사 방덕현은 그분의 수족이라 할 수 있는 뇌주야. 그 이외에도 무림 연맹 내에는 그분의 사람들이 괘 많이 있어. 원한다면 그 명단도 줄 수 있어.”
“하……”
“그분은 지금 차기 무림 연맹주로 전 맹주 무한제일검 백묵향을 복귀시키려고 하고 있어.”
이 정도까진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정보들을 전부 가르쳐주다니.
이런 기밀들을 발설한 설백이 유혹이라도 하듯 혀로 자신의 목을 겨냥하고 있는 검신을 슬쩍 핥으며 말했다.
“이 정도면 신뢰하기에 충분하지 않아?”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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