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303
99화 최연소 맹주 후보 (1) >
모닥불 위로 가지런히 받쳐진 나무 지지대에 고풍스러운 주전자가 끓고 있다.
주전자에서 그윽한 향이 올라와 코를 간지럽혔다.
-치이이이! 촤악! 촤악!
은발을 흩날리며 정신없이 철 가마를 휘젓는 설백.
그녀는 대나무 통에 들어있는 갖은 향신료를 뿌리며 놀라운 요리 솜씨를 뽐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잡아온 꿩을 대충 털만 벗겨서 구워먹으려 했는데,
그 말을 해놓고는 짐 보따리에서 조리 도구를 꺼내서 요리를 하고 있다.
매콤한 향에 절로 군침이 돌 정도였다.
그녀가 철 가마의 손잡이를 반복할 때마다 꿩 고기에 붉은 윤기가 입혀져 갔다.
-……맛이라는 게 대체 뭘까?
-나도 궁금해지오.
소담검과 남천철검마저 관심을 보일 정도이니 조리 솜씨가 여느 훌륭한 주사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리를 완성한 그녀가 미리 준비해놓은 접시 위로 양념된 꿩 고기를 예쁘게 올려놓았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 좋은 법이다. 하나를 먹더라도 품격을 갖추면 그 맛도 달라지지.”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가서 빨리 먹어보고 싶어질 지경이니 말이다.
그녀가 내게 은수저를 주었다.
짐 보따리 안에 뭐가 이리 잔뜩 들었는지 모르겠다.
“사천식 회과육을 응용해서 만들었다. 두반장과 각종 향료들을 넣었으니 매울 수도 있으니 조금씩 베어 먹어라.”
회과육은 돼지고기를 삶았다가 철가마에 볶는 요리다.
한데 꿩고기로 대신한 회과육이라.
젓가락을 가져가 붉게 달아오른 고기를 집어서 입에 넣었다.
‘!!!’
고기를 넣는 순간 매콤한 향과 함께 달짝지근한 맛이 느껴지며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기분 좋은 매운 맛이었다.
설백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내게 물었다.
“어때?”
“……..맛있다.”
맛있는 걸 없다고 할 순 없지.
이런 나의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설백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이제 자신도 식사를 시작했다.
고기를 먹으며 나는 물었다.
“귀찮은 짓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솜씨가 좋군.”
“오래 살면 모든 것에 흥미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음식을 만드는 것에 취미를 둔 건가?”
“아니. 점점 입맛이 까다로워지니 어느새인가부터 스스로 만족할 만한 맛을 찾으려고 했던 것뿐이다.”
삼백여 년 동안 까다로워진 입맛을 위해 발전한 요리솜씨라.
황궁의 어주사들도 이 정도 솜씨는 아닐 거다.
설백이 내게 물었다.
“검선의 후예 너 역시도 삼백여 년, 아니 나 이상의 세월을 살아왔을 터인데, 입맛에 맞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음……
미안한데 나는 회귀 전을 합쳐도 그녀의 십분지의 일도 못살았다.
이 사실을 굳이 이야기 할 필요는 없기에 입을 다물었다.
고기를 몇 점 먹으니 매운 기가 감돌았다.
이에 호리병을 열어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그때 설백이 말했다.
“이 정도 요리 솜씨면 아내로서 탐나지 않나?”
“풋!”
머금던 물을 뿜고 말았다.
그녀의 얼굴에 뿜었는데, 닿기도 전에 얼어붙어서 눈발처럼 흩날려버렸다.
한기가 내내 그녀의 몸을 보호하고 있다.
-지치지도 않나 보네.
소담검이 혀를 내둘렀다.
이 여자 무한시로 오는 내내 이런 말을 수시로 했다.
마치 자연스레 익숙해지도록 말이다.
-경왕에게 가기 전에 네가 먼저 세뇌되겠다.
후우.
소담검의 말에 동의한다.
그녀가 취한 방식은 여태껏 만났던 여인들과 완전히 다르다.
무조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 것인지를 보이고 있었다.
그게 생각보다 무서울 만큼 자연스럽다.
수하로 거둔 것도 아니었는데, 시중을 들려 하려고 하기에 이런 것은 필요 없다고 누차 이야기 했는데도 어느새 자연스럽게 그녀가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다.
‘후우.’
나는 옅게 한숨을 내쉬고서 대답 없이 고기를 먹었다.
그녀에게 휩쓸리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런 나의 모습에 설백이 피식하고 웃으며 다시 식사를 했다.
내 반응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백혜향 그 불여우보다 더 무서운 여자 같아. 조심해.
-나는 딱히 나쁘지 않다고 보오. 전주인께서 말씀하시길 남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만큼 좋은 배우자도 없다고 하였소.
-네 전주인은 그렇게 여자에 관해서 모르는 게 없을 만큼 박식한데 왜 평생 혼자 산 거냐?
-크흠.
남천철검이 소담검의 일침에 입을 다물었다.
오랜만에 남천검객의 조언을 이야기해주는데 빈 정 상했나 보다.
아무튼 정신 똑바로 차려야 겠다.
이러다 그녀의 술수에 넘어갈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 슬슬 무한시에 가까워지니, 체화만변술로 원래의 얼굴로 변화를 시도했다.
-두드드득! 두드드득!
원래의 얼굴로 돌아가자 설백이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빤히 쳐다보기에 말했다.
“그만 쳐다봐라.”
“그게 네 원래 얼굴?”
“그래.”
그런 나의 대답에 설백이 입 꼬리가 올라갔다.
“왜 웃는 거지?”
“혹 네가 본판이 못생겨서 숨기고 다니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말에 코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나름 어디 가서 못생겼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다.
그때 설백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우리 자식은 딸을 낳아도 예쁘고 아들을 낳아도 예쁘장하게 생겼겠다.”
“쿨럭.”
정말 한 시도 방심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녀의 말에 기침이 절로 나왔다.
내 원래의 얼굴을 보자마자 자식의 얼굴부터 생각하다니 참 대단하다.
일부러 정을 떼기 위해 차갑게 구는데도 이런 말들을 서슴없이 한다.
“적당히 해라.”
“싫은데.”
“입을 봉하는 수가 있다.”
“혈도를 봉하기가 쉽지 않을 걸.”
“뭐?”
“난생 처음으로 네게 혈도가 점해진 이후에 가장 먼저 터득한 게 혈도 변환술이야.”
방비를 했다 이건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무한시에 들어서서도 계속 그러고 다닐 건가?”
이런 나의 말에 그녀가 피식하고 웃더니 품속에서 작은 환단 같은 것을 꺼내서 삼켰다.
그러자 이내 얼마 있지 않아 그녀의 눈처럼 찰랑이던 은발이 점차 검어지기 시작했다.
하긴 방법이 없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은발로 이곳저곳을 누빌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인피면구는 있나?”
“마침 새로운 인피면구를 주문해서 받았던 참이야.”
그녀가 짐 보따리에서 작은 목함을 꺼냈다.
목함을 열자 인피면구가 나왔다.
“금상제는 모르는 얼굴이겠지?”
“새로 만든 얼굴이니까.”
그녀가 인피면구를 들어서 익숙하게 자신의 얼굴에 씌웠다.
원래의 얼굴도 예뻤지만 인피면구로 제작된 얼굴 역시도 만만치 않게 예뻤다.
“튀는 걸 좋아하나 보군.”
“아니. 네게 어울리는 얼굴로 고른 거야.”
“……..”
듣는 즉시 곧바로 답하는데 꼭 한참 고민한 듯한 답변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곧 무한시다. 약조는 지켜라.”
“걱정 마. 절대로 네 곁에서 열 보를 넘어가지 않을 거니까. 원한다면 한 보도 넘기지 않을 수 있어.”
그녀가 기회다 싶어 가까이 붙으려 했다.
이에 나는 손을 내밀고서 다가오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시는 설백을 보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냥 경왕부터 만나러 가.
그러기에는 무림 연맹이 더 촉박해졌다.
조성원이 보낸 개방의 정보원에 의하면 전 무림 맹주인 무한제일검 백향묵도 무림 연맹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렇다는 것은 무림 연맹의 맹주를 선출하는 대회가 곧 시작됨을 의미했다.
설백이 넘긴 정보에 의하면 무림 연맹의 맹주를 선출하는 것을 공표하지 않은 진정한 목적은 북영도성 곽형직을 통해 나를 역추적하기 위함이라고 들었다.
-개방이 없었다면 큰일 날 뻔 했지.
조성원을 개방 방주로 만든 것이 신의 한수였다.
어쨌든 금상제 놈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게 내버려둘 수 없다.
그때까지는 별 수 없이 설백을 곁에 둬야 한다.
-정신 바짝 차려.
네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럴 거다.
“새벽 일찍 출발할 테니 잠시 눈을 붙여둬라.”
“밤 시중이 필요하지 않나?”
설백이 내게 유혹하듯이 혀로 입술을 핥았다.
“………”
이러니 내가 조금도 눈을 붙일 수가 없다.
* * *
이틀 뒤 아침.
무한시 무림 연맹의 성.
오랜만에 오니 전처럼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평소보다도 이렇게 인원이 많은 것은 내일 있을 무림 연맹의 대당주 선출식을 위해서다.
공식적으로는 대당주를 선출한다는 명목 하에 각 문파, 방파들을 초빙한 것 같다.
성 밖의 거리에 들어서자 나는 수많은 이들의 이목에 집중되었다.
원래의 모습으로 왔기 때문에 많은 무림인들이 나를 알아보고서 웅성대고 있었다.
“정작 튀는 건 내가 아닌데.”
설백의 가시 박힌 말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녀의 말대로 내 명성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근 일곱 달이나 자취를 감췄다가 모습을 드러내서 그런지 지나가는 족족 무림인들이 내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심지어 일부러 아는 척 하는 이들도 있었다.
“소 대협 오랜만에 뵙습니다.”
“저 기억하십니까?”
“대당주 선출 때문에 오신 겁니까?”
모른다고 잡아 뗄 수 있지만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일일이 받아줬다.
이곳에서의 나는 정파의 영웅이니까 말이다.
-명성이 높은 것도 좋은 일만은 아니네.
공감한다.
혈교에서는 누구도 내게 함부로 말을 걸지 못하는데, 정파에서의 명성은 곧 인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이 부담될 만큼 몰린다.
그렇게 인파를 헤쳐서 거리를 지나 무림 연맹의 성 입구로 향하던 찰나였다.
누군가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오라버니!”
그곳을 보니 성문 쪽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내 누이 동생인 소영영이었다.
수 년 만에 보는 영영이의 모습에 나는 반가움에 손을 흔들었다.
한데 영영이는 아닌가 보다.
달려오자마자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고 소리쳤다.
“어떻게 연락 한 번 안 할 수가 있어! 이 바보 멍청이 같은 오라버니!”
‘아……’
그래도 사람들이 이렇게 지켜보는데 너무 한 거 아니냐.
오라버니한테 바보 멍청이라니.
그런데 녀석의 붉어진 눈시울을 보니 차마 뭐라고 하지 못하겠다.
정말 많이 걱정했던 모양이었다.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영영이가 그렇게 소리치며 내 가슴에 주먹을 날리려고 했다.
진짜로 때리는 것이 아니라 투정을 부리는 것이었다.
이를 설백이 막아섰다.
“뭐에요? 당신?”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설백의 눈빛이 묘하게 날카로워져 있었다.
아무래도 영영이가 다짜고짜 달려와서 소리를 버럭 지르고 난리법석을 피우니, 누이 동생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비켜서라. 내 누….”
“소 대협!”
설백에게 누이 동생이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누군가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그 외침 소리의 주인공은 봉황당의 당주인 남궁가희였다.
진주언가의 언영인도 있었다.
남궁가희가 다가와 내게 반가운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오랜만이에요. 소 대협. 그렇지 않아도 소 대협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우리 영 매가 얼마나 부리나케 달려가던지 따라잡느라 진땀 뺐어요.”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너스레를 떠는 남궁가희였다.
“언니도 듣자마자 뛰셨으면서 무슨 소리 하시는 거에요. 호호호.”
“어머 얘는 내가 뭘 뛰었다고.”
언영인의 말에 남궁가희가 괜히 민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여전히 성격 좋은 두 여자들이었다.
그러던 차에 설백이 내게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주위에 여자들이 생각보다 많네?”
목소리가 꽤나 싸늘하다.
우연히 나타난 이들이 하나 같이 예쁘다보니 뭔가 오해한 것 같았다.
“한데 지금 무슨 상황이죠?”
눈치가 빠른 남궁가희가 묘하게 대치하고 있는 설백과 영영이를 보며 물었다.
여차하면 영영이의 편을 들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이에 나는 해명했다.
“내 누이 동생이다.”
그 말에 설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누이 동생? 소영영?”
소운휘로서의 신상 정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지 그녀는 이름을 듣자마자 곧장 알아차렸다.
그런 그녀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영영이가 내게 물었다.
“오라버니 이 여자 분은 대체 누구야?”
오랜만에 만난 해후를 방해받았다는 생각에 많이 불쾌했던 것 같다.
이에 설백을 가리키며 나는 대충 생각해뒀던 가짜 신분을 이야기해주려고 했다.
그런데 미처 말을 하기도 전이었다.
설백이 영영이에게 갑자기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쩜 이렇게 예쁜 소저가 있나 했더니, 우리 운휘 오라버니의 누이 동생이었네. 반가워. 아휴 예뻐라.”
말투와 표정이 백팔십도 달라진 그녀였다.
그 얼음장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여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우리 운휘 오라버니?”
영영이가 삐딱한 목소리로 반문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이 마치 이 상황을 해명해보라는 듯 했다.
남궁가희와 언영인마저도 설백과 나를 번갈아보며 설마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갑자기 골이 아파지려고 한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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