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306
99화 최연소 맹주 후보 (4) >
호위로 보이는 중년인의 죽음에 당혹스러워하던 총군사 방덕현.
놈이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감시를 해왔는데 이런 식으로 접근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겠지.
체화만변술 만큼 상대의 허를 찌르기 좋은 수법도 없다.
한데 계속 곤욕스러워할 것 같던 놈의 얼굴이 금방 다시 평정을 찾았다.
그만큼 연륜을 갖추고 있다는 건가?
놈이 굳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인피면구일리는 없고……설마 역용술(易容術)인가?”
역용술은 안면 근육을 강제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의 일종이다.
하지만 체화만변술에 비하면 정교함도 그렇고 허점도 많고 그리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수법도 아니다.
해악천 스승님이 익힌 축골공과 비슷한 원리라고 보면 된다.
“놀랍군. 그 정도로 정교하게 타인의 얼굴을 따라하는 역용술은 본 적이 없건만.”
“꽤 담담하군.”
“놀랄 게 있겠나? 이미 조직에서의 노부의 호칭을 알고 있다는 것은 자네의 정체가 확실해졌음인데.”
그런 그에게 나는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내 정체가 무엇이지?”
“소검선 소운휘, 아니 검선의 후예.”
눈치가 없진 않다.
하긴 이 정도 통찰력은 가져야 무림 연맹의 총군사이자 금상제의 자문을 맡을 수 있었던 거겠지.
“잘 아는군. 그럼 내가 왜 왔는지도 알겠지?”
그런 나의 말에 총군사 방덕현이 피식 하고 웃었다.
이 상황에서 여유를 부리다니 대담한 걸까 아니면 자포자기라도 한 걸까?
“웃음이 나오나 보지?”
“노부가 상정하지 못한 변수 때문에 웃었네.”
내가 타인의 모습으로 변장할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라도 알아차리기 힘들다.
적이 된 자들은 하나 같이 죽였으니 말이다.
유일하게 살아있는 자라고 해봐야 설백뿐이다.
나는 총군사 방덕현에게 말했다.
“긴 얘기는 하지 않겠다. 어차피 네놈들이 얼마나 금상제를 잘 따르는지는 알고 있으니말이야.”
“노부가 그분의 모든 것을 알려주기라도 바라나보구려.”
“맞아.”
“그럼 그대가 예측한대로 노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잘 아시겠구려.”
“그러시겠지.”
그 말과 함께 나는 총군사 방덕현에게로 다가갔다.
어차피 입을 열지 않겠다면 굳이 길게 끌 이유가 없다.
시간도 없고 말이다.
그러자 놈이 내게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노부를 죽이는 것은 검선의 후예 자네의 자유다만 뒷감당은 할 수 있겠나?”
“뒷감당?”
놈이 내게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노부는 머리 하나로 이 험난한 무림을 살아왔고 긴 세월을 버텨왔네. 한데 이런 돌발적인 변수를 조금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 같나?”
“스스로에 대한 과신이 심하군.”
“노부를 죽이고 노부를 대신한다고 들키지 않을 것 같나? 노부는 언제든 인피면구나 역용술을 이용한 혼란 정도는 대비해왔네. 설사 노부를 흉내 낸다고 해도 자네는 절대 노부를 대신할 수 없어.”
뭔가 이런 사태를 대비하여 자신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암호를 준비한 것 같다.
군사는 군사라 이건가.
나름 머리를 굴려서 대책을 세워놓은 듯 했다.
총군사 방덕현이 주변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아, 혹 방법을 바꿔서 노부를 죽이고 조용히 나갈 생각이라면 그 역시 포기하길 권하지. 노부가 왜 집무실에 책상과 탁자만 뒀을 거라 생각하나?”
놈의 말대로 군사의 집무실치고는 서적이나 책장 하나 없이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어떤 물건 하나 숨겨놓기 힘들도록 말이다.
놈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노부는 경계심이 강해 일각에 한 번씩 조직의 무인들이 집무실로 정찰을 오도록 조치를 취해놨지. 죽은 이들을 무슨 수로 숨길 텐가?”
놈의 얼굴이 득의양양해졌다.
나를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뜨렸다고 확신한 모양이다.
어떤 식으로든 내가 자신의 파놓은 대책을 벗어날 수 없다고 여겼는지 놈이 한결 여유롭게 탁자 위에 있는 찻잔을 들어 마시며 말했다.
“후루룩. 기대만 못하군.”
“기대?”
“노부의 책략에서 번번이 벗어나 나름 기대했었네. 그 친구만큼 노부를 지략으로 즐겁게해줄 자가 나타났다고 말이네. 한데 실망스럽군.”
놈이 혀를 차며 말을 이어갔다.
“나름 기대했었는데 스스로의 무와 머리를 과신했어. 머리를 칠 생각이었다면 자네는 노부의 허점을 찾아 끝으로 몰아넣었어야 했어. 이런 식으로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르다니 노부가 자네를 높이 평가했군.”
“………”
“하긴 직접 키웠던 제갈원명 그 친구처럼 노부를 즐겁게 해줄 자를 찾는 일은 쉽지 않지.”
그 말과 함께 놈이 다리를 슬쩍 움직이려 했다.
이에 나는 피식 웃으며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놈이 몸을 움직일 수 없었는지 부들부들 떨며 인상을 찡그렸다.
왼손으로 책상을 향해 옆으로 손을 휘젓자, 허공섭물에 의해 책상이 옆으로 끌리며 그 밑에 누를 수 있는 발판 같은 것이 보였다.
“누를 기회를 엿보느라 고생이 많군.”
“…….이걸 누르지 않아도 변하는 것은 없네.”
-똑똑!
그때 누군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왔군.”
이에 방덕현은 자신의 말대로 되지 않았냐는 듯이 비릿하게 웃으며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진기로 놈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기에 쉽사리 입이 열릴 리가 만무했다.
나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딱!
놈이 그 행동을 의아하게 여겼다.
그러자 이내 문이 열리며 집무실로 군사전의 복장을 한 무사가 들어왔다.
한데 안에 들어온 그 자는 아무렇지 않게 일어선 채 꼼짝하지 못하고 있는 총군사 방덕현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북영도성 측은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없습니다.”
‘!?’
이를 본 방덕현이 눈이 커져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놈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과 상관없이 군사전의 무사는 여러 정보들을 보고하더니, 방에 벌어진 상황은 전혀 보이지도 않는지,
“충!”
이라는 작은 외침과 함께 포권을 취하며 집무실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하는 총군사 방덕현에게 말했다.
“꽤 재밌는 짓거리를 했네? 무림 연맹의 회의에서 그런 방식으로 나를 떨어뜨리려고 했나?”
그런 나의 말에 놈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네놈 대체 무슨 짓을 한 게야?”
무슨 짓을 하긴 정요 환의경으로 원하는 것을 보도록 했을 뿐이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놈의 모습을 말이다.
나야 무슨 암호를 쓰든 알 수 없어도 무사는 자신이 보던 것을 보았기에 문제없이 나갔다.
“설마 술법인가?”
그런 놈의 물음에 나는 아무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냥 품 속에서 복주머니를 꺼냈다.
의아하게 쳐다보는 놈에게서 개의치 않고서 나는 죽어있는 시신들에게로 다가갔다.
“똑똑한 것들은 항상 자신의 잣대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더군.”
그 말과 함께 나는 죽은 시신을 집어서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작은 복주머니 속에 시신이 쑤욱하고 들어가는 것을 보며 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닛?”
사람의 몸이 이 작은 주머니에 넣어지는 광경을 보는데 놀라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이어서 목이 부러져 죽은 호위를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놈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이제 시신은 해결됐네?”
그런 나의 말에 놈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시신을 은폐할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이, 이게 대체?”
“시신은 됐고 그러면.”
나는 주머니 속에 손을 쑤욱하고 집어넣어 무언가를 빼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련검이었다.
“검?”
시신을 집어넣은 것도 모자라서 검까지 튀어나오니 신기하겠지.
밖으로 나온 사련검이 내게 조잘거리며 말했다.
-흐으응. 왜 이제 빼 준 거야? 이 안은 너무 갑갑해.
많이 답답했었나 보다.
한동안은 괜찮을 거야.
이제 네게 해야 할 일이 생겼거든.
나는 사련검을 들고서 꼼짝하지 못하고 있는 총군사 방덕현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놈에게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까 그 말 돌려주지. 꽤 실망스럽군.”
“뭐?”
“스승이라고 해서 나름 기대했는데 제자인 제갈원명보다 못해서 안타깝네. 적어도 그 자는 죽기 전까지 나를 꽤 번거롭게 만들었었는데 말이야.”
‘!?’
그런 나의 말에 놈의 눈이 커졌다
내가 제갈원명을 죽인 사실을 몰랐을 테니 놀라는 게 당연하다.
“…..하!”
기가 찬 모양이다.
지금껏 이들은 혈교에서 혈마검을 탈취하기 위해 제갈원명을 죽였다고 그 동안 알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바로 앞까지 다가가자 놈이 내게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네놈 진정 검선의 후예가 맞느냐?”
“왜 아닌 것 같나?”
내가 무슨 정파의 정의를 위해서 움직이기라도 한다고 여겼나 보지.
기대에 어긋나서 미안하지만 나는 나를 위해서 움직여.
나는 놈을 향해 손을 뻗었다.
“대체 뭘 하려는 것이냐?”
“이런 일.”
-타타타탁!
나는 놈의 혈도를 점해서 입을 열지 못하도록 한 후에 머리를 움켜진 뒤 뇌기(雷氣)를 흘려 보냈다.
-파치치치칙!
“끄그그그그그급.”
감전된 놈이 신음성과 함께 온몸에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이내 침을 질질 흘리며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뇌의 일부를 뇌기로 완전히 태워버렸는데 완전히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슥슥!
머리 안으로 진기를 흘려보내 놈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재생이나 회복의 징조는 보이지 않는다.
설백의 말대로 놈은 금상지체의 시술을 받지 않은 게 확실해 보였다.
그런 녀석의 손에 사련검을 쥐어줬다.
그러자,
“흐으응, 늙은 몸은 싫은데.”
총군사 방덕현이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내게 투정을 부렸다.
그 몸으로는 그렇게 배배 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좀 징그럽다.
* * *
오후 미정시 무렵.
무림 연맹의 본단 대회의실로 각 파의 장로들이 모두 집결했다.
지금까지 기밀로 붙여졌던 내일 있을 맹주 선출을 위한 회의를 위해서 말이다.
대부분의 장로들이 자리에 착석하고 부맹주 열왕패도 진균까지 나타나 자리에 앉았는데, 아직까지 총군사 방덕현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는 칼같이 정각에 나타나던 위인이 늦으니 모두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왜 늦는 거지?’
‘이 자리에서 발의를 하기로 한 분이…..’
사전에 손발을 맞춰놓은 장로들이 속으로 우려를 표했다.
그가 나서서 발의를 하지 않는다면 장로들 중에 누군가가 나서서 이를 발의할 수밖에 없는데, 그리 되면 부맹주 진균의 노골적인 반감을 사게 될 거다.
그렇게 일 각이 지났다.
그 동안 아직 총군사가 나타나지 않자 부맹주 진균이 심기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왜 총군사는 아직 오지 않는 겐가?”
그런 그의 물음에 이군사 사마중현이 손짓을 해 사람을 불렀다.
“당장 군사전으로 가서 총군사를 모시고…..”
바로 그때였다.
-끼이이이이익!!
대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평소와 달리 꽤 묵중해 보이는 지팡이를 끌고서 총군사 방덕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맹주 진균이 왜 이렇게 늦었냐고 다그치려다 이내 인상을 찡그렸다.
왜냐하면 방덕현의 뒤로 따라 들어오는 인물 때문이었다.
“소검선?”
“소검선이 어찌?”
그는 다름 아닌 소검선 소운휘였다.
장로 이상 급의 무림 연맹의 인사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대회의에 총군사 방덕현이 그를 대동하고서 나타나자 대부분이 의아한 기색을 보였다.
‘어째서 저 둘이 함께?’
이것은 총군사 방덕현과 함께 하기로 했던 장로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저 둘은 함께 움직일 자들이 아니지 않는가.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설마 계획에 변동이라도 생긴 건가?’
이 회의의 목적 역시도 소검선 소운휘를 맹주 선출 후보에서 배제하기 위함이었다.
그때 이군사 사마중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말했다.
“총군사. 늦으셨군요. 한데 이 자리는 중차대한 회의 자리입니다. 장로단과 군사부 이외에는 출입이 불허하다는 걸 아시는 줄 아오만.”
그런 그의 말에 총군사 방덕현이 입을 열었다.
“늦어서 모두에게 송구하다는 말씀부터 드리오. 그리고 노부는 이번 회의에 중차대한 문제가 생겼기에 소검선을 함께 청한 것이오.”
“중차대한 문제라니 그게 무엇이오?”
그 물음에 소운휘가 장로들에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이런 자리에 허락도 없이 함부로 들어와 부맹주를 비롯한 여러 장로님들께 민폐를 끼쳐드린 것에 먼저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런 그의 말에 무당파 신임 장문인인 종오 진인이 입을 열었다.
“원시천존. 원시천존. 무슨 중차대한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법도는 엄연히 지켜지라고 만들어졌소. 소검선께서는 일단 나가있도록 하시오.”
“송구하나 그렇게는 못할 것 같습니다.”
“뭐요?”
이에 장로들의 표정이 무섭게 굳어져갔다.
특히 부맹주 진균은 심기가 불편함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말했다.
“소 형제. 자네와 친분이 있다고 하나 이 자리는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네. 당장 나가지 않는다면…..”
“우선 이것부터 봐주시죠.”
그런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운휘가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천으로 감싸고 있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펴자 장침 같은 것이 모습을 드러났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환마독을 바른 장침입니다.”
“환마독?”
반문하는 부맹주 진균에게 소운휘가 다소곳하게 지팡이를 짚고 있는 총군사 방덕현을 가리키며 안타깝다는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총군사 방덕현 노사께서는 지금껏 이 환마독에 당해서 조종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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