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317
102화 전 맹주 백향묵의 비밀 (2) >
백향묵의 그 말에 나는 귀를 의심했다.
-이게 뭔 말이래?
내가 하고픈 말이다.
이정겸이 살흉 절심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놀라지 않으려고 해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럴 리가…..’
회귀 전에도 이정겸은 정파를 상징하는 새로운 영웅이었고, 지금도 내 명성에 밀리기는 했으나 여전히 무림 연맹을 대표하는 젊은 후기지수였다.
그런 그가 절심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수차례 이정겸과 마주쳤었지만 그에게서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순한 기운도 그렇고 늘 나른한 말투에 매사에 귀찮아 보이는 듯 했지만 여느 정파인들보다도 올곧았다.
한데 그런 그가 최악의 도살자라 불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거야 모르지. 네가 혈마라는 사실을 정파인들이 알아도 난리가 날 판국인데, 다른 사람이라고 못 속일 것도 없지.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물론 지금의 경지에 이르러서 이정겸과 마주한 적은 없지만, 무쌍성에서 풍영팔류종의 소종주 시험을 치를 당시에 눈을 가렸을 때 금안을 개안한 적이 있다.
살흉 절심은 초인들 중에 그 강함이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자다.
그때 얼핏 이정겸을 보았지만 내공 수위는 초절정의 경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정말?
당연하지 않나.
물론 그 당시 나 역시도 벽을 넘어선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걸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벽을 넘어 초인의 영역에 이르렀다면 온통 빛으로만 보였을 거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맞지 않는 건 활동 시기다.
그가 처음 등장한 것은 정사 대전이 끝나고 고작 3년 정도가 지나서다.
-어라. 그것도 그렇네. 걔 이십 대 아냐?
나도 정확한 나이는 모른다.
그저 이십대 초에서 중반 정도라는 것만 알고 있다.
많이 쳐줘서 스물다섯이라고 가정한다면 17년 전이면 고작 여덟 살에 불과했다.
그런 열 살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귀주성에 나타나 이백여 명에 이르는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고 머리를 잘라 탑을 쌓았다고?
그 후로 벌어졌던 여러 사건들을 떠올려 봐도 말이 되지 않는다.
제창문을 비롯해 여러 문파, 방파의 무림인들까지 학살했었으니 말이다.
“그 말을 내게 믿으라는 건가?”
“사실이오.”
“사실을 떠나서 말이 되지 않는다. 절심이 처음 귀주성에 모습을 드러낸 게 17년 전인데, 이정겸은 고작해야 이십대다.”
“…….그야 당연한 일이오. 그 아이 이전의 절심이니까.”
“이전의?”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의아해하는데 백향묵이 계곡의 커다란 바위에 의자마냥 걸터앉으며 말했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구려.”
* * *
같은 시각.
당주전 청룡당의 가옥.
숙소 안에서 이정겸이 붓으로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붓으로 글씨도 그림도 아닌 무언가를 휘갈기고 있었다.
대체 무얼 하나 싶을 정도로 정신없이 붓을 휘갈기던 이정겸이 턱을 괴고서 먹으로 엉망이 된 서지를 바라보았다.
한데 놀랍게도 서지를 위에서 바라보면 흡사 붓으로 그린 흔적이 마치 검법의 초흔 같다.
그것도 단순한 초흔이라기보다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이정겸이 이를 보고서 흡족한 듯이 피식하고 웃었다.
그러고 있는데 밖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다.
“당주. 잠시 시간이 되십니까?”
“아아. 나가요.”
이정겸은 대답과 함께 서지를 반으로 접어두고서 책상 위의 등불을 끄고서, 숙소 바깥으로 나갔다.
이윽고 얼마 있지 않아 누군가 방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이였다.
이렇게 들어온 복면인은 천천히 방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뒤지던 복면인이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없군.’
혹여나 ‘그것’을 숙소에 숨겨두었을 지도 모른다고 여겼는데, 아무래도 아닌 모양이었다.
‘별 수 없이 데려가야 하나.’
그렇게 여기고 있던 차에 복면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방에 들어오고나서 책상 위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무언가가 신경 쓰였던 차였다.
복면인이 반으로 접혀있는 서지를 펴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본 복면인의 동공이 작게 떨려왔다.
‘……설마 그 대결을 묵으로 표현한 건가?’
자신의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묵으로 정신없이 휘갈긴 이것은 초식의 흔적이 틀림없었다.
복면인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육안으로 거의 보이지 않았을 텐데, 검의 초의를 느꼈단 말인가?’
그 정도 고수들의 대결을 고작 서지 한 장에 붓을 휘갈겨 표현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수많은 무재를 보았지만 이런 자는 처음이다.
자신의 한계 이상으로 뛰어난 눈을 가진 것 같다.
‘그것을 다룰 능력이 된다 이건가.’
-흠칫!
복면인이 서지를 접었다.
누군가 방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발걸음과 기척, 그리고 기감을 자극하는 기운을 고려했을 때 이정겸이 다시 돌아왔다.
‘잘됐군.’
이참에 제압해서 데려가야겠다 여겼다.
당주전에서 소란을 피울 수 없으니 말이다.
복면인이 천장으로 뛰어올라 그림자에 스며들며 기척을 최대한 죽였다.
-저벅저벅! 끼이이익!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온 이정겸.
이정겸이 문을 닫고서 방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왔다.
그 순간 천장의 그림자 속에 숨어있던 복면인이 전광석화처럼 뛰어내리며 그의 혈도를 제압했다.
-타타타탁!
불시의 기습에 당한 이정겸이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그것이 없으면 아직 애송이로군.’
그런 그를 들쳐 맨 복면인이 조용히 방안을 빠져나갔다.
* * *
“정사 대전이 끝나고 무림이 평안기로 접어들 무렵이었소. 그대도 알다시피 귀주성에서 그 사건이 터졌소.”
처음으로 살흉 절심이 모습을 드러낸 사건이다.
귀주성 서북쪽의 마을에 나타나 민간인들을 전부 죽여 그 머리를 잘라 탑을 쌓아 놓았다.
그 후로 섬서성 등 각지에서 그의 말로 이룰 수 없는 악행들이 이뤄졌다.
“그것이 점차 커져가고 심각해짐에 결국 본 맹에서도 관의 요청에 따라 공조하여 사건의 진압에 나서게 되었소이다.”
이건 알고 있다.
관과 무림 연맹이 손을 잡고 5년 간 절심의 행적을 수색했었다.
한데 끝내 아무 것도 찾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잡지 못한 걸로 아는데?”
그런 나의 말에 백향묵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놈을 찾아냈었단 말인가?
“수색을 시작한지 3년 째 되는 해의 어느 무더운 여름날 본 맹은 놈의 흔적을 찾아냈고 그 동안의 위험을 감안하여 노부가 직접 나서게 되었소.”
그간의 희생자만 수천에 이를 정도였다.
수많은 고수들이 나섰지만 놈에게 살해당했고, 그로 인해 놈은 새로운 악인의 칭호마저 얻게 되었다.
그것이 삼대 악인에서 다시 사대 악인의 된 시점이었다.
“한 번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오랫동안 어딘가에서 머물지 않았던 놈이 어떤 마을에서 보름이 넘게 머물고 있었소. 노부는 삼십여 명의 정예 고수들을 이끌고 그곳을 급습했소이다.”
민간인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고 한다.
그곳에 있는 자들 역시도 전부 절심의 손에 살해당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현 무림 사상 최악의 도살자라 불리던 절심을 잡기 위한 대결이 시작되었다.
“거의 반나절 가까이 싸움이 지속되었소.”
적극적으로 싸우려 했으나 백향묵에게도 쉬운 싸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절심의 독문병기인 요검 겁살검 때문이었다.
겁살검에 한 번이라도 베이게 되면 피가 멎지 않아 죽게 된다는 소문은 널리 파다하게 퍼진 상태였다.
“놈은 혈마 이후로 사파인들 중에 가히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완벽한 검법을 구사했소. 더 상대하기 까다로웠던 것은 겁살검의 또 다른 능력 때문이었소.”
“또 다른 능력?”
“그렇소. 그 검은 진기와 같은 기운들을 흩어트리고 흘려보낼 수 있는 기이한 힘을 지니고 있었소.”
아!
그러고 보니 놈과 겨뤘었던 백혜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일존 단위강 역시도 그녀와 같은 말을 했었다.
그때는 단순히 놈의 검술 실력이 극에 이르렀다고 여겼는데, 겁살검의 능력이었던가.
만약 그게 사실이면 겁살검은 상대하기 매우 까다롭다고 할 수 있었다.
“결국 노부를 제외한 모두가 당했지만, 싸우면 싸울수록 그 자의 상태가 점점 나빠져 갔고 종국에는 빈틈을 보여 제압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소.”
“아……”
그럼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다르지 않은가.
살흉 절심이 백향묵의 손에 끝내 제압되었으니 말이다.
백향묵이 탄식을 흘리며 말했다.
“…….놈을 제압하고서 그때 그 검을 없애든지 관에서 요청한대로 넘겼어야 했소. 후회를해봐야 늦었지만 천추의 한이오.”
“그 말은 설마…..”
“그 자와 겨루며 노부에게 탐욕이 피어났소. 노부보다도 공력이 한 수 아래인 자가 검술 실력과 요검의 능력만으로 반나절이 넘게 압도했던 것에 말이오.”
그가 아니더라도 누구나가 욕심이 났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의 무공을 폐한 후에 겁살검과 함께 관에 넘기려 했던 백향묵은 이내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한 번 생겨난 탐욕은 쉽사리 가라앉힐 수 없었다.
이 겁살검이 관의 손에 넘어가면 더 위험할 거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절심을 그 자리에서 참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관과 본 맹에는 숨겼소. 어차피 희대의 살인마를 죽였으니 더는 문제가 없을 거라 여겼고 이 정도 욕심을 부릴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켰소이다.”
“그렇군.”
여기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라고 해도 그런 대단한 검을 포기하지 않았을 거다.
적어도 검객들이라면 모두가 그렇지 않을까?
“그렇게 절심 그 자의 시신을 처리한 후에 떠나려다 문득 그 자가 죽기 전에 남겼던 말이 떠올랐소.”
“남긴 말?”
백향묵이 놈을 죽이기 전이었다.
[전부 그대가 저지른 살행에 대한 업보라고 생각하게.]그 말과 함께 검으로 목을 베려하자, 놈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상관없다. 다시 없을 사상 최고의 몸을 찾았으니까.]이 말에 의문을 가졌던 백향묵은 죽은 자들의 마을을 둘러보았다고 한다.
한데 놀랍게도 멀지 않은 한 폐가에 있는 소년을 발견했다고 했다.
“노부의 기감이라면 그 정도 거리에서 무공조차 익히지 않은 열 살배기 소년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소. 한데 돌아다니다 우연히 찾아낸 것이오.”
그 소년은 백향묵 그를 상대로 기척을 죽이고 숨어있었다.
심지어 보통 사람들이라면 가지고 있을 최소한의 기운마저 숨긴 채 말이다.
처음에는 무공을 익힌 것인가 의문을 가졌었다고 한다.
“한데 그게 아니더이다. 그 아이는 그 마을 태생으로 태어나서 무공조차 한 번 익히지 않은 아이였소.”
“그런데 그대를 속였다고?”
“노부도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소이다. 하나 그 아이를 살피면서 깨닫게 되었소.”
“무엇을 말이지?”
“무(武)를 위해 태어난 존재가 세상에 있음을 말이오.”
“무를 위해?”
백향묵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노부가 여태껏 보아왔던 어떤 무재, 아니 천재라 불리는 자들이나 극도로 뛰어난 신체를 가진 자도 그 아이와 비견할 수 없었소이다.”
대체 어느 정도로 타고났기에 백향묵이 이렇게 떠올린 것만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것일까?
“그 아이는 기(氣)의 감응력을 타고났소.”
백향묵이 소년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맥으로 진기를 흘려보냈다고 한다.
한데 소년의 체내로 들어간 진기가 그의 통제를 벗어났다고 한다.
게다가 마치 처음부터 소년 자신의 진기였던 것처럼 체외로 방출시키는 것을 보고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했다.
‘…….말도 안 돼.’
나 역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내공을 배우지 않은 자가 타인의 기를 통제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벽을 넘어서서야 내 자신의 기를 겨우 통제할 수 있게 되었는데 말이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전무후무한 재능이라 할 수 있었다.
“고민할 것도 없었소. 노부는 그 아이를 거둬야겠다고 결심했소이다.”
그런 그의 말에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설마 그 아이가 이정겸인가?”
“…….그렇소.”
그런 백향묵의 답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살흉 절심을 죽인 날에 거둬들인 아이가 이정겸이었다니.
“그 아이는 본시 죽은 농부의 셋째 아들로 아삼이라 불렸으나, 노부가 그 아이를 거둬들이며 그 이름을 붙였소.”
이정겸(李正謙).
그가 원래 태어난 집에 자두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두나무 이를 성으로 주고 뛰어난 무재를 지녔으나 바르고 겸손해지라는 의미에서 정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이렇게 그 아이를 거둔 노부는 관에 절심을 놓쳤다는 보고를 마친 후에 도문으로 향했소이다.”
그것은 도문에서 부적을 얻기 위해서였다.
“검 때문인가?”
“그렇소. 겁살검의 검심이 강한 것은 둘째치고 요기가 너무 강했소이다.”
정사 대전이 끝나고 혈마검을 얻어 봉한 경험이 있기에 백향묵은 요검의 요기를 억누르기 위해 도가의 힘이 실린 부적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무림 연맹에도 말하지 않고 얻은 검이기에 혹여 요기가 퍼져나가 사람들을 홀린다면 큰문제가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데 그때 문제가 터졌소.”
도가의 도인이 부적을 붙이다 겁살검의 요성에 홀리고 만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겁살검에 홀린 도가의 도인이 그 검을 다름 아닌 이정겸에게 넘긴 것이었다.
“하!”
안 봐도 뒷일은 뻔했다.
“겁살검의 요기에 사로잡힌 정겸 그 아이는 보이는 대로 도인들을 학살했소. 다행히 노부가 이를 빨리 발견해서 그 아이에게서 검을 빼앗았소. 다만…..”
그때 백향묵은 처음으로 심각성을 깨달았다.
무공을 배우지 않은 이정겸이었지만 겁살검의 요성에 사로잡히자 상당한 고수가 되었다고 한다.
“노부는 그때 처음으로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꼈소.”
요성에 사로잡힌 이정겸은 마치 자신이 살흉 절심이라도 된 듯이 말을 해댔다.
심지어 살흉 절심이 보여줬던 검법을 고스란히 펼칠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육신이 따라주지 않고 공력이 현저하게 부족했기에 빠르게 제압할 수 있었다.
“그것으로 끝이라고 여겼었소. 하나 그것은 시작이었소.”
감응력이 타인과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이정겸은 겁살검의 요성에 완전히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했다.
마치 한 사람의 몸 안에 두 인격이 있는 것처럼 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바뀌었다.
이정겸 본인은 원래대로 돌아오면 그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으나, 바뀔 때마다 겁살검을 노렸고, 이에 백향묵은 며칠 간의 고민 끝에 결심을 하게 되었다.
“노부는 겁살검을 포기하기로 하였소.”
살흉 절심이라는 존재가 겁살검의 요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겁살검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은 백향묵은 검을 어떤 누구의 손에 들어갈 수 없도록 숨겨놓았다고 했다.
“없앨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
“기이하게도 대장간에 맡겨서 녹여보려 했으나 검은 녹지 않았소. 심지어 부러지지도 않더이다.”
이런 연유로 백향묵은 검을 부적을 덕지덕지 붙인 철함에 넣어 무공을 익힌 고수들조차 쉽게 들어가기 힘든 오지에 숨겼다고 한다.
그리고 백향묵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무당파였다.
“도문인 무당파에는 신묘한 무공들이 많이 있소이다. 그 중 양의신공(兩儀神功)이라는 무공이 마음을 통제하고 둘로 나눌 수 있다고 들었던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이었소.”
“마음을 둘로?”
그런 기이한 신공이 존재했구나.
무공의 세계는 참으로 넓은 것 같다.
“양의신공에 통탈한 종선 진인이라면 정겸이 사로잡혔던 요성을 쫓아내고 다시 바로 잡아줄 거라 믿었소이다. 하여 그에게 정겸을 맡기게 된 것이오.”
아아……
그래서 이정겸이 공동 제자가 되었던 것이었구나.
그저 정파의 새로운 영웅을 만들기 위해 그런 것이라 여겼는데, 이런 사정이 있었을 줄은 처음 알게 되었다.
“원래는 요성을 극복하기만 하면 그 아이를 데려올 작정이었소. 하나 겁살검의 요성이 어찌나 지독한지 쉽게 해결되지 않았소이다.”
게다가 다른 무공에는 무서울 정도의 습득력을 보인 반면 양의신공만큼은 전혀 대성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이정겸은 주기적으로 무당파로 가서 종선 진인으로 하여금 양의신공의 진기를 직접 주입받아야만 했다.
이렇게 몇 년이 흐르며 이정겸은 요성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더는 그 포악하고 살의에 사로잡혀있던 인격은 나타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을 때 당혹스러운 소식을 접했소.”
“…….절심이 다시 나타났지.”
“그렇소이다.”
절심이 한 때 사 년 가량 자취를 감췄던 적이 있다.
지금 백향묵에게 들어보니 그 기간이 어렴풋이 겹치는 것 같다.
백향묵이 긴 숨을 내쉬며 말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노부는 겁살검을 숨겨둔 곳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검이 없어졌음을 확인하였소.”
이에 나는 물었다.
“이정겸도 검의 위치를 알고 있나?”
“요성에 빠진 그 아이가 겁살검을 원하는데, 어찌 그것을 알려주겠소이까? 게다가 그때 정겸은 무당파의 암운동에 들어간 상태였소.”
무당파에는 암운동(暗雲洞)이라는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동굴이 있다.
무당파의 후기지수들은 그곳에 들어가 108일 간 벽곡단을 먹고 자며, 완전한 어둠에 익숙해지는 수련을 한다.
“……그것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검을 발견했다고 여겼겠군.”
“그대의 짐작이 맞소.”
사태가 심각하다고 여긴 백향묵은 이 새로운 절심을 잡기 위해 천라지망을 비롯해 무림 연맹의 힘을 동원했으나, 번번이 그를 놓치고 말았다.
마치 그들의 동선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빠져나가는 유유함마저 보였다.
“그로 인해 노부는 초조해졌소.”
“새로이 나타난 절심이 그대의 앞에 나타날까 말이냐?”
“……그렇소.”
그 말에 나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래서 혈천대라공을 익힌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이것을 묻고 싶었던 참이다.
이런 나의 말에 백향묵이 부끄럽다는 듯이 말했다.
“…….유일한 대안은 그것뿐이었소.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진기를 흩어뜨리는 겁살검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검 자체에 진기를 응축할 수 있는 혈천대라공의 묘리뿐이었소.”
“하!”
이제야 백향묵이 어째서 혈천대라공을 익혔는지 밝혀졌다.
자신의 보검이 혈천대라공의 기운에 견딜 수 있게 만들려 했던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차마 정도의 대명사인 그가 혈마검을 다룰 수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흠….그런데 백혜향도 공격의 대부분을 흘렸다고 했던 것 같은데.’
분명 백향묵이 고심했던대로라면 혈천대라공의 묘리가 실린 혈검은 통했을텐데 말이다.
문득 그게 마음에 걸린다.
그때 백향묵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위험부담을 떠안고 혈천대라공을 익혔던 것도 무의미해졌소.”
“무엇을 말이지?”
“그가 죽고 나서야 진실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오.”
‘아!’
그 말에 나는 백향묵이 무슨 의미로 이런 말을 했는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바로 태극검제 종선 진인의 죽음이었다.
사실 이정겸이 살흉 절심이라고 했을 때, 나는 그것에 가장 의문을 품었었다.
어째서 회귀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살흉 절심이 종선 진인의 목숨을 노렸는지 말이다.
-설마?
맞다.
양의신공으로 요성에 사로잡힌 인격을 억누르던 종선 진인을 죽일 기회를 노린 것이다.
이때까지는 백향묵 또한 그 인격이 살아있었음을 눈치채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종선 진인이 살해당했으니 확신했을 거다.
겁살검을 가져간 자는 다름 아닌 이정겸일 거라고 말이다.
-뚝뚝!
백향묵이 피가 흘러내릴 만큼 주먹에 힘을 주고서 말을 이어갔다.
“요성에 사로잡힌 그 인격은 여전히 살아있었고, 그것은 다시 힘을 기르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요.”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다.
그는 요성이라 표현했지만 그것은 분명 겁살검에 담겨있던 한(恨)인 백(魄)일 것이다.
그 백이 지금까지 자중하고서 기회를 노렸다니 무서울 정도다.
나는 백향묵에게 말했다.
“하면 지금 이정겸은 매우 위험한 상태가 아닌가?”
양의신공으로 백에 사로잡혀있던 인격을 눌러줬던 종선 진인이 죽었다.
그렇다면 점차 그 인격의 주도권이 바뀔 지도 몰랐다.
백향묵이 내게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여 그들과 거래를 했던 것이오.”
“그들이 뭘 거래한 거지?”
“노부가 눈치 챈 것처럼 그들 역시도 그 아이를 발견했던 모양이오. 노부에게 말하더이다. 제자가 살흉 절심인 것을 알고 있느냐고 말이오.”
최악의 도살자라 불리는 살흉 절심.
그 정체가 이정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 파장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정파의 상징이었던 전 맹주 백향묵과 태극검제 종선 진인의 공동제자이니 말이다.
“그들은 노부에게 제안했소. 겁살검만 넘긴다면 자신들이 요성에 사로잡힌 그 인격도 없앨 수 있다고 말이오.”
‘설마…..’
그 말에 나는 문득 환마독을 떠올렸다.
혹시 그것으로 이정겸을 조정하려고 들지 않았을까?
겁살검과 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백에 사로잡혀 있을 정도로 강하다면, 그 방법 이외에는 없었다.
이를 입 밖으로 내지 않았기에 백향묵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나 이제 그들과의 거래는 물 건너갔소.”
“포기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검선의 후예 그대의 말대로 노부와 그 아이의 명예를 위해 무림에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없지 않소이까.”
그래도 마지막에 와서는 정의를 택한 것인가.
이런 것을 보면 그도 옳고 그름으로 많은 갈등을 했던 것 같다.
백향묵이 힘겨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이제 유일한 방법은 그 아이를 죽이는 것뿐이오. 노부가 부른 업이지만 차마 노부의 손으로 제자를 죽이긴 어렵구려.”
그는 이미 결심을 한 모양이다.
대놓고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이것은 내게 제자를 죽여 달라는 말과도 같았다.
만약에 요성의 사로잡힌 인격이 튀어나오더라도 이를 유일하게 감당할 수 있는 자가 나뿐이라고 여긴 듯하다.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보다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만약 이정겸을 무사히 요성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있다면, 내게 무엇을 해줄 수 있지?”
‘!?’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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