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318
103화 진짜 (1) >
“만약 이정겸을 무사히 요성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있다면 내게 무엇을 해줄 수 있지?”
‘!?’
이런 나의 질문에 백향묵이 인상을 쓰며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하는 말이 쉽게 와 닿지 않나보다.
그렇게 나를 빤히 쳐다보던 백향묵이 말했다.
“…….정녕 그 아이에게서 요성을 없애줄 수 있단 말이오?”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겁살검의 백(魄)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라면 염(念)을 통제할 수 있는 천권(天權)의 힘으로 원래대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정겸에게 씌여진 백을 흡수하면 될 테니 말이다.
“그들도 내게 같은 말을 했소이다.”
“그 방법보다는 훨씬 안전하다고 자부하지.”
적어도 환마독보다는 나을 거다.
환마독으로는 요성에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조종을 당하는 것일 테니.
고민에 빠진 듯이 나를 바라보는 백향묵.
그가 이내 입을 열었다.
“검선의 후예 그대가 지금까지 보여준 여러 신묘한 것들을 보면 빈말은 아닐 거라 믿소.”
“하면 어떻게 할 테지?”
“정말 그 아이에게서 요성을 없애줄 수 있다면 도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무엇이든 들어주겠소.”
“그런 식의 대답은 애매모호한데.”
도리라는 것도 결국 사람이 정하기 나름 아닌가.
이런 나의 말에 백향묵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표정을 보아하니,
-이 인간이 정말 검선의 후예가 맞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소담검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뭐 대충 비슷한 것 같다.
한데 검선의 후예라고 해도 나는 정식으로 도가에 입적한 것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
잠시 고민하던 백향묵이 이내 내게 말했다.
“좋소. 하면 무차별적으로 정파인들을 살육하라는 그런 것이 아니라면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하리다.”
내가 황룡당의 당주인 모용수와 후기지수들을 죽인 것을 돌려서 꼬집은 것이다.
어지간히 그 일에 대해서는 심기가 불편했던 것 같다.
그런 그의 말에 나는 이를 꼬집었다.
“나야 놈들의 협박에 대응하기 위해서 그랬다지만, 제자 분이 지금까지 학살한 자는 셀 수 없이 많을 터인데.”
이 말에 백향묵의 말문이 막혔다.
약점도 많으신 분이 말로 내게서 이겨들다니 우습다.
결국 백향묵은 내게 원하는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약조를 해야만 했다.
“옳은 선택이다.”
“…….제자를 치료할 수 있다면 스승으로서 무엇이든 감내할 수 있소.”
내가 의원도 아니고 치료라는 개념은…..아!?
순간 나의 머릿속에 뭔가가 스쳐지나갔다.
그것은 바로 만사신의였다.
다른 의문은 어느 정도 풀었었는데, 유일하게 만사신의가 어째서 살흉 절심의 각패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살흉 절심이 여태껏 부상을 당하거나 그럴 만한 일이 있던가.
처음 겁살검을 가졌던 주인도 그렇고 이정겸도 뭔가 연관이 될 만 한 게 없었다.
“왜 그러는 것이오?”
내가 말없이 인상을 쓰자 의아했는지 백향묵이 물었다.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나는,
했던 백향묵의 말을 떠올렸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피어났다.
그의 말대로 이 모든 것이 요성에 사로잡힌 인격이 저지른 짓이라고 하자.
백향묵은 이정겸이 인격이 바뀌었을 때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것도 아주 잠깐 잠깐이면 모르겠는데, 그 동안 이렇게나 수많은 살육을 저지르고 심지어 자신의 또 다른 스승을 살해하는 만행마저 저질렀다.
그 기억나지 않던 공백에 대해 조금도 의심을 품지 않는다고?
나는 백향묵에게 물었다.
“이정겸이 혹시 스스로에 대해 의문을 품거나 하는 물음을 한 적이 있나?”
“그게 무슨 말이오?”
그런 나의 질문에 백향묵이 의아해하다가 이내 얼굴이 굳어졌다.
그도 내가 물은 의도를 파악했나보다.
“예전에 만났던 만사신의가 살흉 절심의 각패를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특별한 의문을 품지 않았었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 말에 백향묵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나는 이를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해나갔다.
“만약 이정겸이 만사신의를 찾아가 양의신공이 통하지 않게 해달라거나 어떠한 조치를 취한 거라면?”
백향묵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아이가 줄곧 요성에 사로잡힌 인격에 지배당하고 있었단 말이오?”
* * *
같은 시각.
한 복면인이 누군가를 어깨에 들러 업고서 숲을 가로지르고 있다.
빠른 속도로 달리던 복면인은 인적이 드문 곳에서 멈춰 섰다.
멈춰선 복면인은 기감으로 주위를 살피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신하자, 어깨에 들러 업고 있던 누군가를 내려놓았다.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청룡당의 당주이자 무한제일검 백향묵의 제자인 이정겸이었다.
복면인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뭔가 끈적한 액체가 발라진 장침들이었다.
‘시작해보실까.’
이정겸을 바로 앉힌 복면인이 장침을 들어 그의 머리 혈자리에 꽂으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탁!
복면인의 손목을 누군가 움켜잡았다.
그는 바로 이정겸 그 본인이었다.
복면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네놈……어떻게 혈도를 점한 것을 풀었지?”
-꽈아아악!
그런 그의 물음에 이정겸이 말없이 손목을 꺾으려 들었다.
“건방진!”
이에 복면인이 그의 등으로 일장을 날렸다.
손목을 꺾으려고 했던 이정겸이 손바닥으로 바닥을 밀쳐내며 일 장 가까이 뛰어올랐다.
그렇게 뛰어오른 이정겸이 몸을 회전하며 복면인의 머리로 발차기를 날렸다.
-파팍!
그러나 복면인은 그런 그의 발차기를 가볍게 막아내고 오히려 반격마저 했다.
수십의 잔영을 만들어내는 복면인의 현란한 장초.
그런 장초를 이정겸이 보법을 펼치며 뒤로 거리를 벌렸다.
‘이놈 봐라. 검이 없이도 이 정도 무위를 보인다고?’
기감으로 느끼는 이정겸의 무위는 초절정의 경지에 이르렀으나, 자신이라면 굳이 제압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데 자신의 초식들을 전부 막아내고 피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복면인의 신형이 순식간에 이정겸의 앞으로 파고들었다.
그렇게 파고든 복면인의 일장이 전광석화처럼 정확하게 이정겸의 안면을 노렸다.
이 정도의 쾌속함이람면 절대로 피할 수 없다고 여겼다.
한데 장초가 닿기도 전에 이정겸이 살짝 고개를 뒤로 젖히며 아슬아슬하게 이를 피해냈다.
‘이놈?’
마치 그 공격이 닿으려던 것을 알았듯이 말이다.
날카롭게 자신을 응시하는 저 싸늘한 표정을 보는 순간 복면인은 왠지 모르게 닭살이 돋았다.
뭔가 모를 불안감에 복면인이 보법으로 거리를 벌렸다.
‘이놈 설마…….’
의구심을 가지려던 찰나에 이정겸의 신형이 그를 향해 쇄도해왔다.
* * *
같은 결론에 도달한 백향묵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백향묵은 정신적으로 꽤나 충격을 받았는지 비틀거리기마저 했다.
그런 그에게 나는 위로라도 하듯이 말했다.
“확실하진 않다.”
“그게 무슨 소리요?”
“만사신의가 얻은 살흉 절심의 각패가 꼭 이정겸에게서 얻은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으니까.”
정확한 진실을 아는 자는 오직 만사신의뿐이었다.
그가 각패를 얻은 시점에 따라 죽은 일대 절심일지 이대 절심일지가 판가름 난다.
하나 굳이 이걸 확인할 필요도 없기는 했다.
“그리고 어차피 계속해서 그 인격에 사로잡혀 있던 거라고 해도 달라질 게 없다. 그 요성을 제거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테니.”
이런 나의 말에 충격을 받아서 굳어져 있던 백향묵이 말했다.
“정말 그게 가능하겠소?”
“요성을 제거한다면.”
백(魄)만 흡수한다면 원래대로 돌아올 거다.
단지 걱정되는 것은 너무 오랫동안 백에 침범당해 있어서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상황을 지켜봐야 알 수 있다.
나를 바라보던 백향묵이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를 믿겠소.”
믿음에 보답하지 못한다면 크게 실망하겠다.
그러다 백향묵이 인상을 찡그리며 내게 말했다.
“아!”
“왜 그러지?”
“아무래도 서둘러야 할 것 같소. 노부가 죽었다고 생각한 그들이 계획을 바꿔, 서둘러 정겸이를 노릴 수도 있소.”
“그렇군.”
그 말에 일리가 있었다.
이에 나는 다시 품속에서 무엇이든 들어가는 주머니를 꺼내 손을 집어넣었다.
내가 꺼낸 것은 바로 남천철검이었다.
언제 봐도 신기하다는 듯이 백향묵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시 무림 연맹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소검선으로서 복귀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남천.’
-알겠다.
남천철검이 어검비행을 할 수 있게 떠올라서 검면을 보였다.
이에 나는 검의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백향묵에게 말했다.
“서둘러야 하니 먼저 가겠다.”
“알겠소이다.”
그의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남천철검을 타고 날아올랐다.
경공으로 가는 것보다 훨씬 서둘러야 하니 말이다.
백향묵 정도의 절세고수라면 어검비행 정도는 아니더라도 머지않아 따라올 수 있을 거다.
-슉!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나는 굉장한 속도로 날아갔다.
불과 일 각 채 되지 않아, 먼 곳에서 무림 연맹의 성과 주변의 마을들이 아주 조그맣게 보였다.
산맥을 무시하고 일직선으로 날아가니 당연한 일이었다.
금방 도착하겠구나 싶었는데 순간 나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남천. 멈춰.’
-왜 그러나?
남천철검의 내 명에 날아가던 것을 멈췄다.
나는 고개를 내려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소름끼칠 정도로 날카로운 기운이 대놓고 내게 살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곳을 바라보니 사람으로 보이는 작은 인영이 보였다.
‘나를 알아차렸어.’
밑에 있는 저 작은 인영은 꽤 높은 고도를 날아가고 있던 내게 마치 자신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인 것처럼 일부러 기운을 드러냈다.
그 기운이 어지간한 경우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는데, 이 정도라면 초인의 벽을 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강하다.
그런 자가 적대감에 가까운 기운을 쏘아 보내는데 지나칠 수가 없다.
‘내려가야겠어.’
-알겠다.
남천철검을 타고 나는 인영이 있는 곳을 향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그 자리에서 바로 뛰어내렸다.
팔짱을 끼고서 바위 같은 것에 앉아 있는 인영.
구름에 가려졌던 달빛이 드러나며 그 얼굴이 모습을 보였다.
“이정겸.”
놈은 다름 아닌 이정겸이었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태껏 어떻게 숨겼는지 의구심이 들만큼 놈에게서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심지어 평소의 나른하고 매사에 귀찮아 보이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날카롭고 예리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말했다.
“잘도 스스로를 숨겨왔군.”
그런 나의 말에 이정겸이 코웃음을 쳤다.
내가 알고 있던 놈이 맞을 만큼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다 떠나서 지금만큼은 확실하게 겁살검의 백(魄)에 사로잡혀 있는 인격인 것 같다.
이정겸이 내게 말했다.
“이목을 피하기 위해 성 밖으로 나가주다니 참으로 고맙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얘기하는걸.”
“기다렸지. 계속 내버려두는 심경을 너는 모를 거다.”
“계속 내버려둬?”
이런 나의 말에 놈이 피식하고 웃더니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때가 무르익었고 네 쓰임새가 다했으니, 이제 죽여주마.”
-팟!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놈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찰나에 나의 앞으로 당도했다.
놈이 엄청난 속도로 내 미간을 향해 검결지를 뻗었다.
흡사 공기가 찢겨나가며 모든 것을 관통할 기세다.
그러나,
-콱!
그런 놈의 검결지가 코앞에서 멈췄다.
내가 놈의 손목을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파아아아앙!
잡기는 잡았는데 검결지에 실려 있던 공력이 어찌나 강했는지, 우리 두 사람의 주변으로 강렬한 풍압이 일어나며 주변의 나무가 꺾이고 휘청거렸다.
-뿌드드득! 쿵! 쿵!
‘이런 엄청난 공력을 숨기는 게 가능한 일인가?’
믿기지가 않았다.
공력만 놓고 본다면 초인의 벽을 넘어선 백향묵보다도 우위였다.
대체 무슨 방법으로 내공을 숨긴 거지?
기의 감응력이 높다고 해도 이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때였다.
‘아니?’
녀석의 손을 잡고 있는 공력이 흩어져갔다.
공력이 약해지니 손목을 잡혀있던 녀석의 검결지가 이를 뿌리치고서 미간을 찌르려했다.
이에 나는 그것을 왼손으로 쳐내며 뒤로 다섯 보 가량 신형을 물렸다.
‘겁살검의 능력이 아니었나?’
지금 녀석은 검을 들고 있지 않았다.
검을 가지고 있지 않는데, 어떻게 공력을 흩어지게 한 거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놈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고작 이 정도라면 실망이 큰데.”
“아주 의기양양하네.”
“본 실력을 다해. 안 그러면 조금만 방심해도 금방 죽게 될 테니까.”
-고오오오오!
녀석에게서 엄청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렇게 피부로 와 닿을 만큼 유형화된 살기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순식간에 녀석이 다시 내게 뻗어와 검초를 펼쳤다.
검결지에 실려있는 날카로운 예기 때문에 검이 없어도 흡사 보검으로 검초를 펼치는 것만같다.
-촤촤촤촤촤!
공기를 찢으며 압박해오는 절세검초.
과연 백향묵에게 들었던 것처럼 빈틈이 없는 완벽한 검초였다.
이에 나는 풍영보를 펼쳤다.
-스륵!
신형이 안개처럼 흩어지며 어느새 나는 녀석의 뒤를 점했다.
내가 뒤에 나타난 것을 곧바로 알아차린 놈이 순식간에 몸을 회전하며 변초를 펼쳤다.
그것보다 나의 검결지가 더욱 빨랐다.
-슉!
미간을 찌르면 죽게 될 테니, 가슴을 노렸다.
“흥!”
이정겸이 빠르게 왼손으로 내가 했던 것처럼 손목을 움켜잡았다.
그러자 검결지에 실려있던 공력이 흩어지려고 했다.
놈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접촉하는 게 독이 된다는 사실은 방금 전에 알았을 텐데.”
“그럼 이것도 흘려봐.”
“뭐?”
놈의 반문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검결지를 쥐고 있던 손으로 주먹을 쥐고서, 진각을 밟으며 앞으로 뻗었다.
놈이 권에 실린 공력을 흘려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놈의 인상이 급격히 일그러져갔다.
“이런….”
손목이 붙들린 채 나의 권이 녀석의 가슴을 강타했다.
-쾅! 콰콰콰콰콰콰쾅!
그 순간 놈의 신형이 포탄처럼 튕겨나가며, 뒤에 있던 나무들을 전부 부러뜨리며 날아갔다.
어찌나 멀리 날아가는지 굵은 고목나무 같은 것이 거의 수십 그루 가까이 부러져 쓰러졌다.
소담검이 놀라서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한 거야?
어떻게 하긴 뭘 어떡해.
적당히 안하고 전력으로 친건데.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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