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322
104화 천하제일의 칭호 (2) >
“정파만 없애고 일통하는 것보단 낫지 않나?”
‘!!!’
어떻게 받아들여도 광오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나의 말에 백향묵과 이정겸 두 사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들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정파가 어찌 되든 상관없다.
애초에 회귀 전 정파인들의 손에 죽었던 나다.
게다가 나의 친부나 외조부는 무쌍성 출신이었고, 나 역시도 혈교를 책임지고 있는 마당에 굳이 정파에 미련 가질 이유도 없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정파를 남겨두려는 것뿐이다.
-영영이 때문이지?
그래.
영영이만 아니었다면 차라리 정파를 멸하는 게 지금으로선 더 쉬운 일이었다.
다만 영영이가 형산파에 적을 두고 있었고, 본인도 봉황당의 부당주로서 정파에 뜻을 가졌기에 이렇게 원만하게 접근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 아이를 위해서 금상제의 손아귀가 아닌 내 산하에 정파를 두려는 거다.
백향묵이 무거워진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무림 연맹, 아니 정파 무림이 그리 가볍게 무너질 것 같소.”
“전성기 때의 정파가 아님은 전 맹주로서 확실하게 느낄 텐데.”
“……..”
그런 나의 말에 백향묵이 입을 다물었다.
전 총군사인 제갈원명의 사망을 기점으로 이미 무림 연맹은 전과 달라졌다.
그것은 전 맹주인 그가 더욱 피부로 와 닿을 것이다.
나는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정 믿지 못하겠다면 시험해 봐도 좋다. 단 그 대가는 어떤 식으로든 치르게 되겠지.”
이 말에 과연 부정할 수 있을까?
이미 눈앞에서 산을 저리 만든 것을 확인한 그들 사제다.
나 혼자서도 마음 먹는다면 정파 무림 연맹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거기다 만약 혈교와 무쌍성까지 동시에 움직인다면,
-생각하기조차 싫을걸.
그렇겠지.
예전에 혈교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엔 정파가 몰락하게 될 것이다.
백향묵이 쉽게 입술을 떼지 못하자 이정겸이 내게 말했다.
“설사 그렇게 맹주가 된다고 해도 만약 정파인들이 진실을 알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도 그들이 소 형을 따를 것 같나요?”
그 말에 나는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들이 진실을 알 수 없게 해야지.”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이 형과 이 형의 스승인 전 맹주가 도와준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지.”
이정겸이 미간을 찡그렸다.
내가 말한거지만 뭔가 굉장한 악당처럼 이야기하는 기분이다.
이에 백향묵이 심기 불편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노부와 이 아이가 그대를 도울 것 같소?”
“어떤 것이라도 들어주기로 한 약조를 어길 건가?”
“하!”
그 말에 백향묵이 혀를 내둘렀다.
내가 이를 빌미 삼을 거라 여기지 못했나 보다.
이정겸은 이 사실을 몰랐는지, 인상을 찡그리며 자신의 스승인 백향묵을 쳐다보았다.
“그게 사실입니까?”
백향묵이 탄식이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선택지가 없었다. 그때는 그것만이 너와 무림 연맹을 구하는 길이라 여겼다.”
그 말에 이정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자신이 스승인 백향묵의 발목을 붙잡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정겸이 입술을 질끈 깨물다 내게 말했다.
“제가 소 형을 잘못 알았군요. 이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런 면?”
“다른 사람의 약점을 빌미로….”
“흥!”
그런 그의 말에 나는 콧방귀를 뀌며 그들 사제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착각들이 심하군.”
“네?”
“그런 말은 소위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그게 무슨…..”
-고오오오오!
“헛?”
내게서 치솟은 강렬한 살기에 이정겸이 놀라서 기수식을 취했다.
그것은 백향묵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정의라는 명목 하에 얼마나 수많은 자들을 그대의 손으로 죽였나? 백향묵.”
그 말에 백향묵이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혈교를 고립시키려고 관에서 벼슬을 했을 만큼 올곧고 죄 없는 무쌍성의 비월영종을 세 치 혀로 멸하게 만든 게 너희 정파다.”
그 말에 백향묵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려왔다.
정사 대전이 펼쳐질 무렵의 일이기에 이정겸은 모르는 일이었다.
정파의 이분법으로 희생된 이들은 한 둘이 아니다.
“그건…..”
백향묵의 얼굴을 본 이정겸도 표정이 굳어졌다.
그의 반응에서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일 거다.
“이런 식으로 무림 연맹은 아니 정파는 사파를 몰아내겠다는 명분하에 수도 없이 많은 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그런 작자들이 함부로 정의를 운운할 수 있나?”
“…….”
“그리고 백향묵 그대 또한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겁살검을 숨겼고, 제자인 이정겸이 겁살검의 요성에 사로잡혀 수많은 이들을 죽인 것조차 은폐했다.”
내가 말을 하면 할수록 그들 사제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갔다.
그들의 숨기고 싶어하는 치부를 가차 없이 찔러대니, 심적으로 고통스러울 거다.
나는 이정겸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정겸. 요성에 사로잡혔다고 해서 그대가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인 사실이 사라지나?”
“저는…….”
“정파의 논지대로라면 내가 네놈들을 죽여도 할 말은 없겠군.”
그 말과 함께 나는 전신의 기운을 드러냈다.
태풍과도 같은 풍압이 일어나며 숲이 흔들거리며 주변이 들썩였다.
‘!!!’
두 사제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들을 죽이는 것은 손쉬운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알 거다.
압박감이 심할 텐데 이정겸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저지른 짓이 없어질 거라 여긴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원한다면 이 모든 걸 밝히고 사죄의 의미로 이 목숨을 바칠 수 있습니다.”
그런 그의 말에 나는 한 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가식이나 거짓으로 보기엔 이정겸의 눈빛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한데 어째서 그러지 않았지?”
“저를 흉내 내며 사람들을 살해한 자를 찾지 못했었고 스승님을 죽인 원수를 갚지 않았는데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
의외였다.
스승의 원수와 사람들을 학살하는 또 다른 살흉 절심을 죽일 때까지 억지로 버텨왔던 것이었나.
어쩐지 그가 매사에 의욕이 없던 것이 이해가 간다.
애초에 그것을 이룬다면 목숨을 끊을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백향묵 또한 이런 제자의 본심을 처음 알았는지 눈시울이 붉어져있었다.
스스로 이런 상황이 부끄러운가 보다.
그가 내게 말했다.
“어찌 제자에게만 책임을 지라고 하겠소. 노부도 목숨으로 책임을 질 것이오.”
그래도 본질은 정파라 이건가.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기운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말했다.
“그렇겐 둘 순 없지.”
“뭐요?”
“그대들은 책임을 져줘야겠다.”
“책임?”
백향묵이 반문하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대들의 목숨이 그 많은 죽음과 죄를 대신할 만큼의 값어치가 있다고 보는가?”
“……..”
“내가 만들 무림은 더 이상 정사에 얽매여 서로를 죽이고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말에 두 사제의 표정이 묘해졌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나 보다.
잠시 말문이 막혔던 백향묵이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대체 그대의 진짜 목적이 무엇이오?”
이에 나는 짧게 답했다.
“공존.”
“공존?”
“지금의 체계가 이어지면 된다.”
“……..”
“무인의 본질은 무를 통해 수양을 쌓고 경쟁을 통해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다. 그것을 명분삼아 서로를 해치고 자신들의 욕망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무(武)라는 것은 본질이 그러하다.
끊임없는 수양과 무위를 갈고 닦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권력과 야망을 위한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
이런 나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백향묵은 꽤나 충격을 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힘으로 모든 것을 굴복시킨다고 쳐도 내가 사라지고 세대가 바뀌면 어차피 또 다른 피의 복수와 전쟁으로 이어지겠지.”
“설마 그대는……”
“나는 이 어리석은 고리를 끊고자 한다.”
지금의 체계가 유지되어 서로를 견제하고 발전시키면 된다.
어느 한 쪽을 멸하고자 하는 식은 한계가 있다.
“………”
백향묵이라면 내 진의를 더욱 잘 알 것이다.
정파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그 쇠락을 지켜보는 입장이었으니 말이다.
내 말이 와 닿았는지 뭔가 고민하던 얼굴을 하고 있던 백향묵이 입을 열었다.
“노부가 검선의 후예 그대의 진의를 잘못 알았던 것 같소.”
“스승님?”
“그의 말이 맞다. 결국 무가 수단이 되어 서로를 해하고 권력을 잡게 된다면 그것은 피를 부르는 고리의 순환이 될게다.”
“아아…….”
“그리고 지금처럼 서로를 해하다 약해진 무림을 멸하려는 자들 역시도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다.”
괜히 무림 맹주였던 게 아닌 모양이다.
그리 많은 말을 하지 않았는데 통찰력이 깊다.
이번 일로 벌어진 일들을 몸소 겪었으니 금상제와 같은 자들이 언제든지 등장할 수 있음을 충분히 깨달았을 거다.
“노부가 어찌 책임을 지면 좋겠소?”
“무림이 서로 균형을 이루어 발전해가며 공존하도록 만들게 중심을 잡아라.”
“……..정말 그리 하면 되오?”
“내가 두 말 할 것 같나?”
이런 나를 빤히 쳐다보던 백향묵이 내게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그리고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의 뜻에 부족하나마 이 노부도 거들게 허락해주시오.”
“그리 하라고 했을 텐데.”
이 말에 백향묵이 뭔가 속박에 풀린 사람처럼 숨을 깊게 내쉬며 제자 이정겸을 바라보았다.
이정겸이 떨리는 눈으로 스승인 백향묵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다 말했다.
“제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요?”
“죽는 걸로 그 정도 값어치는 없다고 했을 텐데.”
“하지만 기억하지 못해도 제 손에는 수많은 이들의 피가…..”
“그렇게 죽고 싶다면 당장에 죽여줄 수 있다. 하지만 나라면 그 죄를 갚기 위해서라도 네가 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할 거다.
“아아아……”
이런 나의 말에 이정겸이 뭔가 감격에 겨운 듯이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이내 스승인 백향묵과 마찬가지로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저 또한 스승님과 마찬가지로 소 형을 돕게 해주십쇼.”
이에 나는 흔쾌히 허락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소담검이 말했다.
-이야. 어떻게 그런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도 나한테까지 말하지 않은 거야? 섭섭해지게.
섭섭하기는 뭐가 섭섭해.
소위 정파인이란 것들은 이런 식으로 다뤄줘야 한다.
-뭐?
정말 내가 무림의 공존이니 평화니 그런 거창한 뜻을 가진 것 같아?
그 정도로 큰 뜻은 애초에 없다.
그럴 거였다면 혈교가 아니라 정파인으로서 개혁을 하려 들었겠지.
-하!
전 맹주인 백향묵이나 이정겸 같이 올곧은 자들은 힘을 가하려고 하면 오히려 부러지면 부러졌지 절대 따르지 않는다.
협박이나 거래보다는 이들을 납득시키는 게 중요하다.
봐라. 이 결과를.
세 치 혀에 감화된 그들이 너처럼 내가 무림을 위해 거창한 뜻이 있는 줄 알고 나를 돕겠다고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는가.
-진짜 너란 녀석은…..
소담검이 혀를 내둘렀다.
어쨌거나 내 모든 정체를 알고도 내 편에 서게 만들지 않았나.
그것도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말이다.
이 정도면 굉장한 성과지.
-그래서 이들은 어디에 써먹으려고?
백향묵은 관록이 있으니 무림 연맹의 부맹주로 써먹어야지.
이정겸은 가만히 둬도 알아서 대당주가 되어서 정파의 후기지수들을 이끌게 될 거다.
그렇게 되면 백혜향처럼 이들도 내 산하에서 무림 연맹을 잘 운영해 나가겠지.
-와……잔머리 하나만큼은 진짜 최곤데.
계책이라고 해라.
이 정도면 잔머리의 영역은 넘어섰으니.
어쨌든 이제 이들을 내 산하로 거둬들였으니 본래의 목적대로 해야 겠다.
나는 이정겸을 불렀다.
“이 형. 이리 오시오. 요성을 제거해주겠소.”
그런 나의 말에 이정겸이 기대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없앨 수 있겠습니까?”
“없앨 수 없다면 어찌 이야기 했겠소.”
완전히 백에 지배당했다면 모를까.
지금이라면 내가 그것을 흡수만 하면 딱히 영향을 받을 일은 없어 보인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겁살검의 백에 사로잡혀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던 이정겸이다.
나는 다가오는 이정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천권을 일으켰다.
-우우우웅!
오른손등에 있던 북두칠성의 점들 중 네 번째가 푸른 빛으로 일렁였다.
이정겸의 혼에 접근하자 역시 단번에 그것을 발견했다.
놈의 백(魄)이었다.
원한 가득한 백이 나의 존재를 느꼈는지 움츠려들며 피하려 들었다.
이에 나는 천권의 힘을 더욱 끌어올렸다.
그러자 놈의 백이 안간 힘을 쓰며 버티다 이내 이정겸에게서 빠져나왔다.
-슈우우우우!
“이게 요성?”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오는 검게 피어오르는 이자랑이 같은 것에 이정겸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그 스승인 백향묵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빠져나온 검은 기운이 이내 내 손등에 있는 천권의 점으로 빨려 들어왔다.
백이 들어오는 순간 번개를 맞은 것처럼 찌릿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스르르르!
그렇게 백에 실려 있던 기억이 머릿속으로 환상처럼 이어지는데,
[너 같은 놈은 그냥 죽이는 게 답이란 거.] [잠깐…..]-촥!
내가 누군가를 검으로 베는 환상이었다.
그걸 보는 순간 나는 이 백이 누구인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자경정?’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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