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327
105화 황궁 (1) >
호북성 북쪽 조양.
절벽으로 둘러싸여 숨겨진 한 가옥.
아직도 한참 열기로 가득한 대장간으로 긴 눈썹에 수더분한 인상을 가지고 있는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나타나자 대장간 주변에 그림자처럼 숨어있던 복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병장기를 빼들었던 그들이 중년인을 알아보고서 이를 거둬들였다.
복면인 중 한 사람이 그에게 예를 갖췄다.
“오셨습니까?”
이런 복면인에게 중년인이 물었다.
“그 분은?”
“며칠 동안 자리를 비우신다고 하셨습니다.”
“자리를 비운다?”
중년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닷새 정도만 지나면 요검이 완성될 터인데 자리를 비운다는 게 의아했다.
한참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복면인이 그에게 물었다.
“검은 회수하셨습니까?”
“여기 있다.”
이 물음에 중년인이 등에 차고 있던 가죽 검집에 싸여져 있던 검을 넘겼다.
애초에 회수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었다.
이 검은 원래부터 자신이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분께서 매우 기뻐하실 겁니다.”
검을 공손히 받아든 복면인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중년인이 물었다.
“보고드릴 게 있는데,그분께서 어디로 가셨는지 알 수 있나?”
“송구하오나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흠.”
역시였다.
아무리 심복이더라도 완전히 믿지 않는 그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알아내지 못할 것도 없었다.
중년인이 복면인들 중에 누군가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그 자가 아무렇지 않은 듯이 전음을 보내왔다.
중년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지금 황궁에서 만사신의의 추적을 맡고 있는 몽주는 자신의 사람이었다.
그가 자신에게 아무 소식을 알리지 않았는데 만사신의의 행방을 찾은 것이라면 금상제에게 자신이 알지 못하는 다른 정보원이 있음을 의미했다.
‘끝까지 나를 신뢰하지 않는군.’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이제 머지않았다.
그때가 오면 그와의 결별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 * *
광서성 령산.
혈교의 근거지의 본단.
본단에 있는 교주 전용 지하 연무장에서 세 고수들이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격세석보다 더 단단하고 웬만한 내공이 담긴 공격마저도 견딘다고 알려진 청옥석으로 만들어진 연무장이 엉망이 될 만큼 격렬한 대결이었다.
-파파파파팍! 쾅!
세 절세고수들은 서로를 견제해가며 싸우는데 누구 하나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한 눈에도 불리한 자가 있었으니, 바로 일존 단위강이었다.
벽을 넘은 고수였으나 익숙하지 않은 왼팔로만 상대해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다른 두 고수들에 비하면 현저히 불리하다 할 수 있었다.
-촤촤촤촥!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검은 날카롭고 신묘하기 그지없었다.
조금도 밀리지 않기에 그를 향해 검초를 펼치는 백혜향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어째 팔을 잃기 전보다 더 강해진 것 같군. 일존.”
“허허허, 부교주만 하겠습니까?”
벽을 넘어서 이제는 안정화 된 백혜향의 무위에 일존 단위강이 흡족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 역시도 유년기 시절부터 백혜향을 지켜봐왔었다.
‘전 교주께서도 대견해하실 거다.’
여자의 몸으로 이렇게 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고작 이십대의 나이로 벽을 넘어섰으니 뿌듯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본교의 홍복일세. 안그렇나? 삼존.”
일존 단위강의 그 말에 거구의 삼존 기기괴괴 해악천이 호탕하게 웃으며 답했다.
“껄껄걸. 뛰어난 교주에 뛰어난 부교주까지 있으니 본교가 머지않아 정파를 정복할 수 있겠군.”
지금 혈교의 전력은 이십여 년 전을 능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당시에도 두 명이나 되는 초인이 있었기에 전성기라 했었는데, 지금은 그때와 비교하기도 힘들었다.
벌써 이 자리에만 세 명의 초인이 자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세 명이 힘을 합쳐도 교주 한 사람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잡담들은 적당히 하고 두 사람 모두 덤벼.”
백혜향이 두 존자들을 도발했다.
그들이 웃음기를 머금고 다시 신형을 날리려던 찰나였다.
밖에서 연무장의 입구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쿵쿵!
이내 누군가가 청옥석 입구의 벽을 밀어내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다름 아닌 이존 서갈마였다.
서갈마가 나타나자 해악천이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서 형도 함께 하겠나?”
이런 그의 말에 서갈마가 미간을 찡그렸다.
마음 같아서야 그러고 싶지만 이미 이 안에서의 대결은 자신의 선을 한참 넘어섰다.
괜히 섣불리 이들의 훈련에 참여했다가 부상을 입을지도 몰랐다.
“됐소이다. 그보다 부교주. 급히 전보가 날아들었습니다.”
“전보?”
의아해하는 백혜향에게 서갈마가 품속에서 서찰을 꺼내며 다가왔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그녀가 물었다.
“벌써 운휘에게서 답신이 날아온 건가?”
“아닙니다. 그 소식은 아마 오늘 내일 내로 교주께 당도할 겁니다.”
“하면 대체 무슨 전보지?”
그런 그녀의 물음에 서갈마가 서찰을 넘기며 말했다.
“이걸 어찌 말씀드려야 할지…..”
뭔가 난감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그에게 해악천이 물었다.
“무림 연맹 녀석들이 무슨 짓이라도 저지른 것인가?”
“그게 아니오.”
“한데 뭘 망설이는 게요?”
“그게……교주께서 무림 연맹의 맹주로 취임했다고 하오.”
‘!!!’
그 말에 세 사람이 어리둥절해했다.
순간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분명 교주 소운휘는 금상제를 잡기 위해 무림 연맹으로 향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터무니없는 소식이란 말인가.
“그게 무슨 소리지?”
백혜향이 고운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이에 서갈마가 자신이 보고받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어떻게 자신들의 교주가 무림 연맹의 맹주로 취임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이를 들은 해악천이 박장대소를 금치 못했다.
“크하하하하핫! 아니 뭐 하러 무림 연맹까지 그 금상제인가 뭔가 하는 놈을 잡으러 가냐 했더니 이 녀석이, 아니 교주께서는 다 계획이 있었구만.”
정말 골 때리는 소식이었다.
자신의 제자일 때도 그랬지만 예측불허였다.
소검선이라는 신분으로 이런 짓을 벌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더 재미있는 것은,
“본교의 교주가 무림 연맹의 맹주라니. 클클.”
무림 역사를 통틀어 이런 일이 있을까 싶을 만큼 이 소식은 해악천을 아주 즐겁게 만들었다.
과묵하고 감정 표현이 없는 일존 단위강조차 혀를 내둘렀다.
“교주께선 참으로 대담하시오.”
만약 들켰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짐작조차 가지 않을 만큼 배짱이 대담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무위를 알고있기에 딱히 걱정이 되거나 하진 않았다.
“이렇게 되면 본교가 무림 연맹까지 먹은 것이나 다름 없구만. 교주께서 맹주이니 말이네. 클클클, 안그렇습니까? 부교주.”
이런 해악천의 말에 백혜향이 입 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내가 선택한 남자답네.”
지극히 그녀다운 칭찬이었다.
오만하게 말하면서도 이 소식에 흡족한 모양이었다.
그런 백혜향에게 서갈마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부교주…….한데 말입니다.”
“또 뭐지?”
어떤 흥미로운 소식을 이어서 전달하려나 싶어 백혜향이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지금 교주께서는 정파에서 천하제일검이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정파?”
웃고 있던 백혜향의 입 꼬리가 한순간에 비틀렸다.
* * *
이틀 후,
-돌아가는 상황이 진짜 재밌네.
“후우.”
키득거리는 소담검의 목소리에 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무림 연맹의 전 맹주란 작자가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다니.
내 의도와는 달라지고 말았다.
-명성이 하늘로 치솟았는데.
골이 아파온다.
제대로 떠넘긴 셈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부러 소검선으로서의 나를 천하제일 고수로 격상시켜놓았다.
정파에 손해 볼 짓을 절대 안하는 인간이다.
-아 맞네. 정파 소검선의 신분이 천하제일이게 만든 거네.
그렇겠지.
그래야 정파 무림의 입지가 더 강해질 테니 말이다.
일부러 떠넘기면서 나름 머리를 굴렸다.
-혈교 쪽에서는 엄청 싫어하겠네.
그럴 것 같다.
아마도 백혜향은 대체 무슨 짓거리냐고 따질지도 모른다.
혈마라는 신분으로 천하제일의 칭호를 얻은 것도 아니고 소검선으로서 이런 칭호를 들었으니 말이다.
나중에 또 연기를 해서 이 관계를 역전시켜야 할지도 모르겠다.
-뭐 그래도 목적은 달성했잖아. 크 첩자의 신분에서 맹주라니.
녀석의 말대로 나는 전 무림 맹주 백향묵이 싸움을 포기하면서 만장일치로 맹주로 부임했다.
취임식 같은 것은 따로 없었다.
이미 대당주 선출 겸 무림 대회로 모여든 수많은 정파인들 앞에서 장로단에서 내가 무림 연맹의 신임 맹주가 되었음을 공식 선포했다.
그때 완전 난리가 났었다.
역대 최연소 무림 연맹의 맹주가 탄생했다고 말이다.
관람석에 있던 수만 명에 이르는 무림인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내 이름을 외치는 광경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다만 소운휘가 아닌 진운휘라 불렸다면 더 좋았을 텐데.
-언젠가는 전부 드러낼 거지?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그럴 때가 오지 않을까?
어쨌거나 지금은 먼저 해결할 일이 있다.
원래는 무림 연맹에 있던 금상제의 간자들을 전부 잡아들여 그들을 통해 그를 끌어들일만한 정보를 흘려보내려고 했었다.
하지만 더 시급한 일이 생겨버렸다.
그것은 드디어 사라졌던 만사신의의 행방이 드러난 것이다.
이를 알린 것은 송좌백이었다.
녀석의 말에 의하면 나에게 이 소식을 전달하는 것과 별개로 이미 본교에서도 황궁 쪽에 사람을 파견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변수가 있었다.
백혜향과 본교를 믿고 맡기려 했는데, 만사신의의 행방이 황궁에 있던 간자들이 알아낸 것이 아니라 그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드러난 것이었다.
설백은 금상제나 뇌장 둘 중 한 사람이 직접 움직일 거라 예견했다.
내 예상에도 그럴 것 같다.
이미 무쌍성, 혈교, 무림 연맹 등에서 벌이려던 모든 계획들이 실패했고, 심지어 내가 그의 정체를 노출시키면서 그 존재가 드러난 금상제였다.
어떻게든 만사신의를 필히 수중에 넣으려고 할 것이다.
-먼저 빼돌리는 게 관건이네.
그래야지.
그렇지 않으면 백련하와 서복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수가 없다.
얼려 있던 서복을 다시 부활시켜서 놈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내려고 했는데, 전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심지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머리를 부숴서 회복시켜보았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만사신의의 도움이 필요했다.
-설백이 있어서 다행이네.
그래.
설백이 서복의 머리가 녹지 못하게 한기로 계속 얼리고 있다.
하지만 상시 계속 붙어서 그렇게 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 전에 만사신의를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눈앞의 으리으리한 황궁 성벽을 바라보았다.
사방이 횃불로 밝혀 놓았는데 무림 연맹, 무쌍성과는 비교도 안 될만큼 장관이었다.
‘오랜만이네.’
회귀 전에 무림 연맹의 사찰단에 끼어서 황제 폐하를 알현하기 위해 딱 한 번 이 궁궐 안으로 들어갔던 적이 있다.
정작 황제를 만나지 못하고 외궁(外宮)에 잠시 머물다 돌아가야 했지만, 다행히 그때의 기억이 있어서 황도까지는 축지법으로 올 수 있었다.
만사신의가 황제의 주치의가 되어서 그를 치료하고 있다고 하니, 황제가 기거하고 있는 궁전에 아마 있을 것이다.
‘일단 외궁 안으로 들어가서 근위병이나 누군가로 분장한 후에….’
궁전으로 잠입해 만사신의를 확보해서 축지법으로 곧바로 탈출할 것이다.
축지법 덕분에 쉽게 성공할 것 같다.
-그래도 조심해. 혈교의 간자들 중에도 외궁에서 내궁 안으로 침입에 성공한 자가 없다고 했잖아.
그게 의외이긴 하다.
어쩌면 그 소문으로 들은 황궁의 숨겨진 힘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제 안으로 들어가 봐야겠다.
-우우웅!
일단 외궁 접견실로…..
-파앙!
“흐헛!”
그 순간 공간으로 빨려 들어갔던 몸이 밖으로 튕겨나갔다.
이게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그때 기억했던 것을 토대로 공간을 접었는데, 오히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튕겨지고 말았다.
-왜 그래?
나도 모르겠다.
다시 한 번 시도해봐야겠다.
혹시 외궁 접견실이 없던 시절일 수도 있으니 다른 곳으로 말이다.
-우우웅! 파앙!
“큭!”
또 다시 공간을 접자 몸이 역으로 튕겨져 나갔다.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배척하면서 공간을 접는 것 자체를 방해했다.
두 번 더 시도해보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별 수 없나.’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여러 번 변장을 해가면서 직접 안으로 침입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일단은 성벽을 뛰어넘어 외궁으로 들어가야 겠다.
그렇게 오르려던 찰나였다.
‘응?’
성문의 대문으로 횃불로 이루어진 한 무리의 행렬이 보였다.
고급스러운 마차가 가운데에 있었는데, 그 앞에 금군으로 보이는 자들이 황실의 깃발과 함께 또 다른 깃발 하나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경(景)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깃발이었다.
‘호오.’
* * *
마차 안.
황자들이 입는 관복을 입은 경왕과 종4품 위무사(衛撫使)들이 입는 무관의 복장을 하고있는 한 어여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연생이라 불리던 기생이었다.
원래는 경왕을 암중에서 보호하기 위해 훈련받은 기생에 불과했으나, 잠이 들었다가 깨어난 사이에 위무사가 된 그녀였다.
입술을 질끈 깨물며 불안해하는 연생에게 경왕이 말했다.
“불안해 하지 말거라.”
“하오나 전하 신은…..”
“괜찮다. 어차피 영왕이나 다른 황자들은 네 소문을 무서워하는 것이지 실제 무위를 무서워하는 게 아니다.”
한 번도 황궁 내로는 들어가본 적이 없는 연생이었다.
괜히 경왕을 보호하는 위무사의 신분으로 들어갔다가 혹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지 않을까 싶어 우려하는 것이었다.
“전하. 괜히 들통나면 전하도 그렇지만 신은 황실을 능멸하였다고…..”
“허어. 괜찮대도. 어차피 황궁 안에서는 어떤 누구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우웅!
마차 안의 공간이 일렁거리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닛?”
“전하!”
녹색 경장을 입은 한 여인의 모습에 연생이 비검을 빼들다 말고 넋이 나가버렸다.
‘!?’
그것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 여인이 자신과 완전히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 당신…..”
-타타탁!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그녀는 혈도가 점해져 기절하고 말았다.
이 광경을 보고도 경왕은 놀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화색이 밝아져서 말했다.
“연생아!”
“그 동안 강녕하셨습니까? 전하.”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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