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328
105화 황궁 (2) >
호남성의 율랑현 익양소가.
요 근래 조용하기 짝이 없었던 익양소가가 시끌벅적하기 그지없었다.
근 몇 달 동안 화병으로 앓아누웠던 작양당의 주인인 가주 소익헌의 본처 양 부인이 큰 잔치를 열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에 병을 얻어서 한동안 의원이 치료해도 낫지 않았던 그녀였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보다 날아갈 듯 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꼴 보기 싫었던 소운휘 놈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다시 나타날까 우려했지만 일곱 달씩이나 행방불명된 것을 보면 그럴 일은 추호도 없으리라 확신했다.
‘앓던 이가 빠지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구나.’
덕분에 그 동안 후기지수로서 무림 연맹의 진출을 포기했던 장남 소영현이 이번 무림 연맹에서 개최하는 대당주 선출식에도 상경하기에 누구보다 기쁘기 짝이 없었다.
“양 부인 경하드립니다.”
“어머 송 가주 부인 오셨나요?”
그녀를 축하해주는 풍채 좋은 중년의 부인은 조항 송가의 가모였다.
“잔치를 열었는데 당연히 와야지요.”
잔치에 참석한 이들은 호남성에서 유력한 지방 호족들과 무가 사람들이었다.
그들 역시도 그 동안 양 부인이 무엇 때문에 화병을 얻었는지 잘 알기에 이렇게 축하해주러 온 것이었다.
“듣자하니 아드님들께서 모용세가의 소가주가 이끄는 황룡당에 들어간다지요?”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모용세가에 투자를 했던가.
그 덕에 무림 연맹에 입성하는 것과 동시에 장남 소영현이 황룡당의 당원으로 들어가기로 약조 받았다.
오대세가와 연도 맺고 출세길이 열렸으니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호호호. 좋은 날이니 많이들 자시어요.”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객당에 미리 잠자리를 준비하라 일렀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이런 그녀와 마찬가지로 이 잔치를 즐기는 이가 있었으니, 익양소가의 차남인 소장윤이었다.
그 역시도 그때의 사건 이후로 소운휘를 두려워했었다.
그래서 가문 내에 박혀서 그 좋아하는 술도 마다한 채 두문불출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조금도 없어졌다.
“하하핫. 많이들 드시게. 내 머지않아 무림 연맹에 가게 되면 얼굴 보기 힘들 테니 말이네.”
“이거 앞으로를 대비해서 많이 마셔야 겠습니다.”
“오늘은 코가 비뚤어지게 마시게나.”
소장윤이 잔을 들자 젊은 후기지수들이 따라서 잔을 들며 환호했다.
그렇게 모두가 기뻐할 때 유일하게 무거운 얼굴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이가 있으니, 익양소가의 가주 소익헌이었다.
소운휘가 승승장구하는 소식을 들을 때만하더라도 자신의 친아들들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현실이 침통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막상 앓던 이와 같던 소운휘가 행방불명되고 아들들에게 기회가 주어졌는데, 기분이 좋기는커녕 오히려 무겁기만 했다.
사랑했던 하 부인에게 미안한 마음에서였다.
“자네 아버님만 기분이 언짢아보이시는군.”
“흥. 내버려두게.”
양 부인과 그 소생들은 가주 소익헌을 원망했다.
본처와 그 소생들이 한낱 첩의 소생에 불과한 소운휘에게 그런 수모를 당했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때부터 정이 떨어졌다.
‘두고 보시죠. 그 천한 잡놈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터이니.’
그때가 되면 가주 소익헌이 두고두고 후회하리라 여겼다.
그렇게 한참 잔치가 이어지고 있는데, 소가의 대문지기가 급히 달려오며 소리쳤다.
“가주님. 현령께서 당도하셨습니다.”
“오오. 현령께서 오셨나? 빨리 안으로 뫼시어라.”
대답한 것은 가주 소익헌이 아닌 양 부인이었다.
“알겠습니다!”
‘와주셨구나.’
양 부인은 표시내지 않았지만 매우 기뻤다.
한 현의 현령이 잔치에 참석해주는 것은 가문에 면을 세우는 일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초대장을 보냈지만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었는데, 덕분에 체면이 제대로 살았다.
얼마 있지 않아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후원으로 율랑현의 현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현의 현령이 잔치에 참석해주는 것은 가문에 면을 세우는 일이었다.
가주인 소익헌을 비롯해 양 부인, 소장윤까지 그를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현령 나으리.”
“소 가주. 지난 구정 이후로 오랜만이오.”
현령이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그런 그에게 양 부인이 가장 상석자리를 가리키며 공손히 말했다.
“호호호, 현령께서 이렇게 자리를 빛내주시다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어서 자리로 가시지요.”
이에 현령이 두 손을 모아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먼저 축하부터 드려야겠소이다. 가주, 그리고 부인.”
그 말에 양 부인이 속으로 의아해했다.
왜냐하면 무림인들이야 사정을 알기에 축하할 일이었지만, 현령에게 있어서 자신의 아들이 무림 연맹에 입성하는 것은 그리 큰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훌륭한 아들을 두어서 기분이 좋으시겠소.”
그런 현령의 말에 양 부인은 속으로 기분이 좋아했다.
현령이 이렇게까지 축하해주는 걸 보면 익양소가와 우호적인 연을 계속 맺고 싶다는 걸로 들렸다.
그런데 뒤에서 이어지는 말에 그녀는 말문이 막히고 만다.
“우리 율랑현에서 최연소 무림 연맹의 맹주가 탄생했으니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닐 수가 있겠소이까.”
‘!?’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웅성웅성!
잔치 자리가 술렁였다.
최연소 무림 연맹의 맹주라니 이것은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양 부인이 당혹스러워하며 말했다.
“현령 나으리 뭔가 잘못 알고 계신게 아닌지?”
“아직 모르고 계셨소이까? 아드님께서 무림 연맹의 맹주가 된 걸 말이오?”
“네에?”
소장윤이 술김에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며 반문했다.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자신의 형인 소영현이 무림 연맹으로 상경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맹주가 된단 말인가?
“우, 우리 영현이가 맹주라니…..”
“아아. 뭔가 착오가 있으신 것 같소이다.”
“착오라뇨?”
“우리 율랑현의 자랑인 익양소가의 삼남 소검선 소운휘가 무림 맹주가 되었단 말이오.”
‘!!!’
순식간에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근 일곱 달 동안이나 행방불명된 소운휘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무림 연맹의 맹주가 되었다니 누구도 믿기 힘들었다.
“소, 소운휘?”
가슴이 철렁한 양 부인이 손발을 떨며 그 이름을 되물었다.
“하하하, 그렇소이다. 우리 율랑현에서 정도 무림 연맹의 맹주이자 천하제일검이 탄생하다니, 참으로 기쁘기 그지없소이다.”
‘말도 안 돼!’
호탕하게 웃는 현령을 보며 소장윤이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분명 죽었을 거라 여겼던 녀석이 갑자기 무림 연맹의 맹주는 무엇이고, 천하제일검이라는 이 엄청난 칭호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기뻐하는 현령의 태도를 보면 절대 거짓이 아닌 것 같다.
‘소운휘 대체 네놈은……자, 잠깐만….그럼 소영현 그 인간은 어찌 되는 거야?’
자신의 형이 무림 연맹으로 상경하지 않았던가.
당황해서 어머니인 양 부인을 쳐다보았는데,
“아아아.”
창백해진 양 부인이 이내 바닥에 털썩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어머니! 어머니!”
그들이 어째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는 현령이기에 가주에게 웃으며 말했다.
“가주 부인께서 많이 놀라셨나 보오. 하하하. 본인의 일이라도 그랬을 것이오.”
“…….”
이런 현령의 말에 가주 소익헌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 역시도 충격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가 맹주라니?’
사라졌던 소운휘가 다시 나타나더니 무림 연맹의 맹주가 되다니 황당하기마저 했다.
정파 무림 역사상 이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건이었다.
쓰러진 양 부인과 소장윤을 보며 그는 탄식을 내뱉었다.
“하아…..”
‘하령…..그대가 주는 벌이오?’
다른 누구도 아닌 소운휘가 맹주가 되었다면, 자신의 친아들들인 영현과 장윤의 무림인으로서의 출세길은 평생 막힌 셈이나 다름없었다.
이 모든 것이 하령의 마지막 부탁대로 소운휘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업보일지도 몰랐다.
* * *
경왕의 어전마차 안.
“대체 방금 전에 다시 보여준 그것은 대체 무슨 수법이느냐? 어찌 닫혀있는 마차의 문조차 열지 않고 들어올 수 있단 말이냐?”
경왕이 감탄을 하며 내게 물었다.
이에 나는 진짜 연생이에게서 벗겨내 갈아입은 위무사 관복의 매무새를 다듬으며 답했다.
“그저 하찮은 재주에 불과합니다.”
그 말에 경왕이 혀를 차며 내게 말했다.
“그게 어찌 하찮은 재주란 말이냐? 다가오는 기척도 없이 그리 갑자기 나타나면 누구라도 암살당할 수 있는 위험한 수법으로 보이건만.”
놀라는 것과 별개로 역시 통찰력이 깊었다.
그 와중에 축지법이 얼마나 위험한 재주인지 인지하는 걸 보면 말이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이 재주를 익히려면 자그마치 수백 년간 도를 닦아야 가능합니다.”
‘!?’
이런 나의 말에 경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그럼….대체?”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고 묻고 싶은가보다.
이에 나는 빙그레 웃어주었다.
오해를 해서 나를 더 어렵게 생각해준다면이야 더욱 원하는 바였다.
그나저나 기생들이 입을 법한 속이 훤히 잘 보이는 얇은 경장에서 위무사의 관복을 입으니 그나마 한결 나았다.
치마가 아니라 바지였으니 말이다.
-잠시 멈춰주십시오.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궁전 대문의 검문소를 지키는 수문장들이 마차를 멈추게 한 모양이다.
경왕을 호위하는 장수가 신분패를 보이는 절차가 끝나면, 외궁 내로 들어갈 수 있을 거다.
“평소보다 궁 밖의 분위기가 삼엄하군요.”
밤인데도 병사들의 숫자도 전에 보았을 때보다 훨씬 많았다.
분명 송좌백을 통해 들었던 대로라면 오히려 대연제국이 기뻐해야 할 일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전시나 다름없으니 경계를 철저히 서는 것이다.”
“전시?”
“병중이시던 폐하께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모자라, 모든 황자들에게 신속히 환궁하라고 암명을 내리셨다.”
아……그런 명을 내렸던가?
간자를 통해 알게 된 것은 경왕이 말한 전자였다.
병중이던 황제가 전보다 많이 쾌차해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외부에서 초빙했던 만사신의의 공로라며 큰 상을 내리겠다고 대신들 앞에서 공표하면서 그의 행방을 알게 된 것이었다.
“연생이 너는 폐하의 소집 명령을 어찌 생각하느냐?”
그런 그의 물음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내 말했다.
“후계를 정하기 위해서인 것 같군요.”
그런 나의 말에 경왕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역시 영리하구나.”
“오랜 병상 생활을 하셨음에도 태자를 정하지 않으셨으니까요.”
황제는 긴 병중에도 불구하고 태자를 책봉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훗날 경왕이 대군을 일으켜 모든 정권을 차지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역사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원래 당대 황제는 만사신의의 치료를 받은 적도 없거니와, 후계 책봉도 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이때 황궁에 있던 진왕이 옥새를 차지하고서 영왕과 대립했고, 밖에 있던 경왕이 북방 방위군과 더불어 오호도독부의 두 군을 몰고서 황도로 진격해온다.
-훨씬 빨라진 거네.
그래.
역시 내 행동 하나하나가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어차피 진왕이야 그때의 사건 후로 견제할 필요가 없을 만큼 잔뜩 겁에 질려 있었지만, 경왕에게 있어서 당장에 위험한 적수는 황태후와 영왕일 것이다.
-그 둘도 경왕을 어떻게든 몰아내려하겠네.
아마도 그럴 거다.
사실 암명으로 황자들을 소집한 게 아니라면 태자 책봉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 보면 그것만이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하나 정말로 부황께서 부른 것인지 아니면 암중의 속셈인지 알 길은 없다.”
경왕의 입에서 내가 예측한 것과 같은 말이 나왔다.
그 역시도 어느 정도 상황을 예견한 모양이다.
그러니 허장성세라고는 하나 위무사인 연생까지 대동한 것일 테지.
“함정이실 수도 있다고 판단하셨군요.”
“그래. 오늘 긴장의 끈을 풀면 짐의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
경왕의 목소리가 사뭇 진지해졌다.
하긴 황궁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를 상황이니 긴장하는 것도 당연했다.
나는 그런 경왕에게 말했다.
“하나 이렇게 담담하게 황명에 따르시는 것은 대안책이 있으시기에 그런 것이 아니옵니까?”
그처럼 영리한 자가 자신의 호신책조차 없이 사지로 향할 리가 없었다.
이 말에 경왕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정답이다. 이래서 짐이 너를 인재로서도 탐내는 것이다.”
“그 마음 고이 접어두소서.”
“후후. 조금도 틈을 주지 않는구나. 아무튼 내궁에서 짐을 호위할 사람도 있고, 네가 이렇게 제때 와주었으니 다행이라 할 수 있구나.”
경왕이 한결 안심이 된다며 내게 말했다.
말은 그리하면서도 평소와 달리 눈빛이 다른 것을 보면 여전히 임전태세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성문이 열리며 마차가 안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외궁 내로 진입하자 경왕이 내게 물었다.
“한데 너는 어쩐 일로 짐을 찾은 것이더냐? 설마 짐이 보고 싶어 찾아왔을 리는 만무할 테고.”
“만사신의가 필요합니다.”
그 말에 경왕이 놀란 목소리로 답했다.
“뭐? 만사신의? 그 자는 지금 폐하의 주치의를 맡고 있지 않느냐?”
“네.”
사실 그래서 거의 강제로 빼내다시피 할 작정이었다.
경왕이 과연 여기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황제이기 전에 부친이었으니 말이다.
“반드시 그를 데려가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런 나의 말에 경왕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짐만큼이나 위험한 짓을 하려하는 구나.”
‘짐만큼이나 위험한 짓?’
나는 경왕의 눈을 쳐다보았다.
지금 그가 한 말을 보면 그저 자신을 보호하는데서 그치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혹 피를 보시려는 겁니까?”
그 물음에 경왕이 비스듬하게 턱을 궤고 앉으며 아무렇지 않게 내게 말했다.
“저쪽에서 피를 보려한다면 먼저 손을 써야 하지 않겠느냐?”
하!
이게 경왕의 본질인 건가.
역사적으로 거사를 도모하여 성공했기에 혁명으로 남았으나, 그게 아니었다면 반역이라 불릴 만한 일을 도모한 자다운 패기였다.
‘그러고 보니 놈이 영왕을 움직인다고 했었나.’
설백이 말하길 금상제가 초나라 평왕의 릉에서 벌어졌던 사건 후로 진왕을 포기하고서, 영왕과 접촉 중이라 들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놈이나 뇌장은 영왕과 함께 할 확률이 지극히 높았다.
놈들 역시도 만사신의를 노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참 공교로운 상황이었다.
“짐을 도와다오. 그렇다면 만사신의를 무사히 네 손에 쥐어주도록 하마. 이 정도면 거래가 될 만하지 않느냐?”
경왕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자신의 요구사항을 말했다.
내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 확신하나 보다.
이에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거절하겠습니다.”
경왕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째서냐?”
“전하께서 주고 안 주고와 상관없이 만사신의는 얼마든지 데려갈 수 있습니다.”
‘!?’
끝
ⓒ 한중월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