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33
16화 직위 시험 (2)
여섯 달 뒤에 있을 직위 시험은 모든 수련 생도들이 참여한다.
회귀 전, 전생에서 나는 하급 수련 생도로서 1년 간의 훈련을 마치고 직위 시험을 치렀다.
하급 수련 생도 중에서 내공조차 없는 삼류 무사였던 나는 당연하게도 하급 무사로 직위가 결정되었었다.
정말 간혹 하급 수련 생도 중에서 중급 무사가 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희박했다.
“까짓 거 대주가 되면 되지.”
“되지?”
말이 좀 짧다. 좌백아.
주의를 주자 녀석이 분통이 터졌는지 이를 악물고서 말했다.
“되지요.”
한 자 한 자 곱씹듯이 내뱉었다.
속으로 궁시렁 대고 있는 것이 얼굴에 훤히 보였다.
이 녀석의 반응을 보면 계속 놀려주고 싶다.
나를 사형 대우해주는 것이 녀석에게는 크나큰 곤욕일 것이다.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대주의 직위는 상급 무사 즉, 일류고수가 되어야만 가능하다.
이것도 최소한의 조건에 불과했다.
송좌백이 입술을 실룩거리면서 내게 말했다.
“쉽다는 게 아니라, 어차피 우리는 스승님이 계신데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지…..않습니까?”
“형….말이 맞다.”
쌍둥이들의 말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아무래도 이 녀석들은 혈교에 입교하자마자 해악천에게 납치당하다시피 끌려와서 그런지, 이곳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듯 했다.
-왜 이 녀석 말도 맞는 거 아냐? 뒷배는 이럴 때 써먹는 거지.
소담검도 녀석들의 말에 동의했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다.
혈교가 예전과 같은 성세를 유지하고 안정적이라면 높은 사람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혈교는 재건의 단계에 있다.
전보다 더 세력을 강성하게 키워야 하는 입장이기에 인사(人事)에서 만큼은 철저하게 실력과 공적을 중요시한다.
-요는 실력이 없으면 대주는 꿈도 못 꾼다는 소리겠네.
‘개망신만 당하는 거지.’
오히려 사존의 제자라는 기대치 때문에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되냐는 불명예만 얻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해악천이 미쳐 날뛰겠지.
안 봐도 그림이다.
“모르는 소리. 스승님, 아니 사존의 제자로 대우는 받는 것과 이건 별개의 문제야. 괜히 뒷배만 믿고 까불다가 망신당할 걸.”
“그걸 네….후우, 아니 그걸 사형이 어떻게 압니까?”
나야 당연히 겪어봤으니까 알지.
두 번째 인생이다.
“흠흠, 내가 아니라 스승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물론 아니다.
해악천은 대주의 직위를 얻으라는 임무를 줬을 뿐이다.
그 뒤에 붙인 말을 해줘야 녀석이 정신 차릴 듯 싶다.
“아 깜빡할 뻔 했는데. 여섯 달 뒤에 대주직을 받지 못한다면 각오하라고도 하셨다. 그게 무슨 말인지는 알지?”
각오라는 말에 송좌백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까지 해악천을 겪어봤으니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야!”
“어어?”
“좆되기 싫으면 일어나!”
효과가 끝내주네.
동기부여가 됐는지 곧장 훈련에 들어가는 쌍둥이다.
녀석들에게 전달 사항도 전했으니, 나도 본격적으로 훈련에 임해야겠다.
내게도 대주직은 전생에서는 언감생심 꿈조차 꾸지 못했던 벽이었다.
* * *
나는 남천검객의 유골이 있던 동굴로 왔다.
지금은 동굴에 유골이 없다.
그래도 한때를 풍미했던 고수이자, 내게는 검술의 스승과도 같은 인물이었기에 유골을 그냥 방치해둘 수가 없었다.
해악천의 눈치를 본다고 이곳보다 더 높은 산봉우리에 무덤을 만들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유골을 이장시켜서 양지 바른 곳에 묻고서 제대로 비석을 세울 계획이었다.
-그런데 운휘야. 그 미친 노인네는 어딜 급하게 간 걸까?
‘글쎄다.’
내게 쌍둥이에게도 대주가 되라는 이야기를 전달하라고 했던 해악천은 어딘가에 다녀올 것이라며 급히 떠났다.
보름 안에 다녀온다고 했는데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해악천의 급한 성정을 미루어 짐작하건데 아마 세(勢)를 키우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추진력 하나는 끝내줄 정도로 빠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던 기기괴괴 해악천은 어떠한 세력도 만들지 않았다.
-네가 알고 있는 건 뭔데?
나라고 해서 해악천의 인생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확실히 알려진 정보는 있었다.
해악천은 윗선에서 원하는 방향과 달리 독자적으로 활동을 하다가, 중원팔대고수 중 한 사람인 열왕패도 진균에게 오른팔을 잃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것이 6년 후의 일이다.
-그럼 달라질 수도 있겠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지금만 하더라도 이미 많은 것이 달라졌다.
원래 나는 여전히 하급 수련 생도여야 했는데, 이렇게 해악천의 제자가 되었고 어쩌다 보니, 혈교주의 혈육과도 작게나마 연을 맺었다.
‘……달라지고 있구나.’
그걸 되새겨보니 확실히 달라지고 있었다.
행동 하나하나의 변화가 원래 알고 있던 미래마저 변화시켰다.
생각해보면 내가 해악천의 제자가 되지 않았다면 그가 하연 소저와 만나, 마음을 바꾸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영향을 주고 있어.’
지금은 작게 주변의 변화였지만 이것이 앞으로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다.
더 큰 변화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이런 변수마저도 상정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야 내가 알고 있는 미래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지금 당장은 해악천의 그늘 아래에서 내 힘을 키워야 한다.’
어쩌면 지금이 기회일 수도 있었다.
도망치지 못하고 붙잡혀 있던 것이 제자로까지 이어졌다.
해악천이 세력을 새로이 만든다면 그의 제자로 있는 편이 내게는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확실히 대주가 되어야 했다.
“후우.”
드디어 고대하던 순간이 왔다.
나는 가부좌를 틀고서 운기를 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어렸을 적부터 익혔던 익양소가의 기본 운기법인 소현심법을 운기해 보려고 한다.
그런 내게 남천철검이 말했다.
-조심해라 운휘. 선천진기와 부딪칠 수도 있다.
시작부터 너무 겁주지 말라고.
걱정해서 하는 소리인 줄은 알지만 너무 겁을 주면 운기하기가 무섭잖아.
나는 천천히 호흡을 들이 내쉬며 소현심법을 운기했다.
뱃속 아래의 정(精)에 집중했다.
그런데 쉽게 느껴지지 않았다.
‘힘드네.’
오랜만에 하니까 감각이 예전 같지가 않다.
게다가 최근에는 선천진기에 익숙해져서 운기의 감각이 달랐다.
그래도 단전에 집중했다.
일각 정도가 지났을까?
마음속이 고요해지며 서서히 뱃속 아래 부근이 따뜻해져왔다.
단전이 반응한 것이다.
‘느껴져.’
순간 너무 기쁜 나머지 집중이 풀릴 뻔했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이번에는 단전에 있는 기운을 운기하여 소주천(小周天)을 도전했다.
여기서 부터가 중요했다.
소주천을 하게 된다면 단전의 기운이 가슴의 중단전을 필연적으로 지나게 된다.
-긴장하지 말고 해라.
조금이라도 두 기운이 양립하지 않는다면 도중에 멈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화입마를 입을 수도 있었다.
천천히 기운을 소주천하여 움직였다.
‘조심….조심….’
단전에 있는 미약한 기운이 조금씩 위로 올라가 가슴 정중앙으로 향했다.
긴장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떨렸다.
제발 돼라. 제발!
-스르르!
‘아!’
-왜 그래?
-기운이 부딪친 것이냐?
소담검과 남천철검이 동시에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그들의 물음에 내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단전의 내공이 가슴의 정중앙, 즉 중단전이 있는 위치를 지나쳤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부딪치거나 기운이 역류한다거나 하는 현상은 전혀 없었다.
한 번의 소주천을 마친 나는 운기를 멈췄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핫!”
운기를 멈추자마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웃지만 말고 말해. 성공한 거야?
소담검의 물음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오오!
이 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하나였다.
나는 다른 무인들과 다르게 두 개의 정(精)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최초일지는 모르겠지만 중단전과 하단전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은 남천검객조차 이루지 못한 일이었다.
-하아…….
가장 불안해했던 남천철검은 안도의 탄성을 흘렸다.
오늘은 참 운이 좋은 날이다.
회귀 전에 풀리지 않던 인생이 이제야 조금씩 풀려가는 느낌이었다.
‘오랜만이다. 단전.’
집나갔던 녀석이 돌아왔다.
* * *
그렇게 사흘의 시간이 지났다.
사흘 동안 운기를 하면서 나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선천진기와 내공은 다행히 양립할 수 있었지만, 그 둘을 동시에 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내공을 쓰면서 선천진기를 혼용할 수가 없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된다면 두 기운을 가지고 있으나, 따로 가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두 기운을 동시에 같이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공이 소진되었을 경우에 선천진기라는 패가 남게 되니 말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숨겨둔 한 수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두 번째는 소현심법 말고 다른 심법이 필요했다.
‘부족해.’
익양소가의 기본심법답게 소현심법도 나쁘진 않았지만, 하루종일 운기를 해도 맥 곳곳에 쌓여 있다는 양기와 한기를 흡수할 수가 없었다.
이래서는 선천진기에 비해서 내공의 성장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으로서 제일 필요한 것은 맥에 쌓여 있는 기운을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심법이 필요했다.
-미친 늙은이의 심법을 배우는 건 어때?
‘뭐?’
-그 늙은이의 진혈금체인가 하는 게 몸속의 피를 더 빨리 순환시킨다며?
하. 이 녀석 봐라.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애초에 맥이라는 것은 피와 기가 흐르는 경로였다.
만약 해악천의 심법이 피를 빠르게 순환시키면서 내공을 효과적으로 운기할 수 있는 역할을 해준다면 맥 곳곳에 쌓여있는 양기와 한기를 흡수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똑똑한데?’
-히히히. 맞지? 맞지?
소담검이 신나서 말했다.
이 녀석은 가끔 보면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을 기가 막히게 떠올리곤 한다.
확실히 가능성은 있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은 해악천이 진혈금체는 쌍둥이들처럼 특수한 신체가 아니면 익히기 힘들다고 했었다.
제자긴 하더라도 가르쳐줄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
가르쳐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내게 해가 된다고 판단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물어봐서 나쁠 건 없잖아. 아니면 네 맥에 기운들이 쌓여 있는 걸 알려주면….
‘그건 아냐. 아직은 숨기는 게 나아.’
해악천이 전보다는 다르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좀 더 그와의 관계가 친밀해지지 않는 이상 숨기는 편이 나았다.
-아니면 쌍둥이들에게 물어보는 것은 어떻나?
남천철검이 넌지시 의견을 건넸다.
-오호. 그렇네. 걔들은 배웠을 거 아냐?
쌍둥이들은 정식으로 제자가 되고나서 제대로 된 신공과 진혈금체의 운기법을 전수받은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걔들도 생각이라는 걸 할 텐데, 가르쳐줄려나.
-야. 걔 은근히 순진하잖아. 밑밥을 슥 던져봐.
‘무슨 밑밥?’
-너한테 사형이라고 깍듯이 대하는 거 죽을 만큼 싫어하던데. 그걸로 한 번 던져봐. 혹시 모르잖아. 물지?
흠 그게 되려나?
뭐 녀석의 말대로 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어차피 해악천이 돌아오려면 아직 한참 남았고, 그 기간 동안 내공 수련을 무의미하게 보내기는 아까우니까.
다음날 이른 아침 송좌백을 깨웠다.
그리고 넌지시 진혈금체의 운기법을 알려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물론 녀석의 입에서는 당연히 거절이 튀어나왔다.
“당연히 안 되….지요. 아무튼 스승님이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잘 거라는 듯이 누워버렸다.
하긴 쉽게 알려 줄 리가 없지.
될지는 모르겠다만 소담검의 말대로 한 번 밑밥을 던져봐야 겠다.
“에휴. 하긴 그렇지? 단전은 회복되었는데 스승님이 언제 돌아올지 몰라서 미리 물어본 거 였는데. 같은 동문지간이라 아무는 아니더라도 좀 그렇긴 하지? 이참에 사제한테 진혈금체의 운기법을 배우게 되면 동문처럼 지내려고 했는데…..쩝 어쩔 수 없지.”
-능청스럽네.
‘이 정도는 해줘야 넘어가지.
그런데 별로 확신은 없다.
너무 단순한 수법이라 안 넘어갈 것 같다.
그래도 녀석도 생각이란걸….응?
녀석의 표정이 묘하다.
뭐야? 설마 고작 이 정도 밑밥에 흔들리는 거냐?
누워서 머뭇거리던 녀석이 곁눈질로 나를 쳐다보며, 슬그머니 한 마디 내뱉었다.
“동문?”
-아이고. 미끼를 물어 부렸네.
소담검이 키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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