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336
107화 개양(開陽) (3) >
불과 세 시진 전,
처음으로 높은 경지의 도에 이른 자는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만 별개로 축지(縮地)를 시켜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최대 속도로 움직였지만 아슬아슬하게 놈을 놓치고 말았다.
-우우웅!
공간 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간 금상제.
놈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이렇게 허무하게 날리는 것일까?
그 순간 비선 노옹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그로인해 놓쳐서 노기가 치솟으려 하는데, 비선 노옹의 눈빛이 원래의 정기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노사?”
“미안하네. 옥새의 맹약에 사로잡혔었네. 그게 자네의 발목을 잡을 줄이야.”
“……..이미 늦었습니다.”
그런 나의 말에 비선 노옹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늦지 않았네.”
“네?”
“놈이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네.”
“그게 무슨?”
“땅을 접는 축지는 그 흔적이 남기 마련일세.”
그 말과 함께 비선 노옹이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그러자 공간이 일렁이며 그 틈으로 누군가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아!”
비선 노옹이 내게 결의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반드시 놈을 잡게.”
이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비선 노옹이 접은 공간 속으로 몸을 날렸다.
일렁이는 공간을 통과하는 순간 희미했던 누군가의 모습이 선명해졌다.
부서져 말라비틀어진 나무의 기둥에 기대서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는 금상제가 보였다.
-파칙! 파칙!
놈의 전신은 상처투성이었고, 상처부위에서 검붉은 뇌전이 불꽃을 튀기며 회복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금상제가 내 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천천히 일그러지는 놈의 미간.
끝까지 쫓아오는 나에게 기가 질리나 보다.
“하아…..하아…..네놈은 정녕….”
나는 남천철검을 꽉 쥐고서 놈에게 다가갔다.
우리의 악연에 특별히 나눌 대화가 있던가.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죽인다.
그때 놈이 내게 다가오지 말라는 듯이 손바닥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네놈만 없었다면…..짐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그런 나의 말에 분하기로도 했는지 금상제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삼백 년 간의 모든 것이 이번 대결 한 번으로 허송세월이 되었을 테니, 심경이 처참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놈이 나를 노려보다 다시 입을 열엇다.
“…….왜 이렇게까지 짐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냐?”
“그걸 몰라서 묻나?”
“뭐?”
“나는 분명 네놈에게 경고했다. 황제로서 하늘이 내린 소임대로 백성을 잘 다스리라고 말이다. 한데 그 경고를 무시한 건 네놈이다.”
금상제에게는 기회가 있었다.
놈이 만약 그때 야욕을 접고서 성군이 되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다.
하지만 놈은 끝까지 자신의 야욕을 위해서 그리고 나에 대한 복수심으로 자신의 인생의 대부분을 낭비했다.
-으득!
물론 말로서 스스로의 과오를 뉘우칠 놈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삼백 년 동안이나 배후에 숨어서 이런 짓거리를 했겠는가.
나는 놈을 향해 검을 겨냥했다.
“이게 네가 죽어야 할 이유 중 하나다.”
“……..?”
이런 나의 말에 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놈은 나에게 첫 스승이나 다름없는 남천검객을 죽인 원수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마지막은 남천철검을 사용하는 것이다.
나를 노려보던 놈이 하늘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짐이 그렇게도 못마땅하다는 것이냐?”
그러던 놈이 이내 갑자기 검결지를 쥐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목을 향해 갖다대며 내게 말했다.
“검선의 후예 네놈의 손에 죽지 않는다. 짐의 죽음은 네놈의 경고도 아니고 하늘이 내린 천벌도 아니다. 그저 짐 스스로 선택하는 길이다.”
-촥!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신의 목을 예기로 베어버렸다.
한 번에 깔끔하게 베여나가며 잘린 놈의 목이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푸슈슈슈슉!
잘린 단면에서 피가 솟구치며 스스로의 몸을 뒤덮었다.
어지간히 자존심이 강한 놈이다.
그런 말까지 하며 스스로 자결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미안하네. 남천. 네 손으로 남천검객의 복수를 하게 해주려고 했는데.’
이런 나의 말에 남천철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아니다. 운휘. 너와 함께 싸우지 않았나. 나는 만족한다. 아니 전주인께서도 이제 편히 눈을 감으셨을 거다.
‘그럴까?’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남천검객은 내 마음 속의 스승님이다.
금상제의 죽음으로 그분이 구천에서 편히 떠나실 수 있다면 나로서도 기쁘기 그지없을 것이다.
-이제 모두 끝난 건가?
녀석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독한 악연이라 할 수 있는 놈은 죽었지만 진짜 원흉은 아직이다.
놈을 뒤에서 움직이면서 흉계를 꾸민 뇌장이 살아있다.
게다가 놈이 남은 요검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아아. 그렇군. 한데 그 자는 무슨 수로 잡을 수 있나? 네 손에 금상제가 죽었으니 더욱 경계해서 모습을 감추지 않겠나?
아마도 그렇겠지.
내게 부상까지 당했었으니 더욱 그럴 것이다.
놈을 끌어내거나 내가 다가가야 하는데, 무슨 수가 필요하다.
-그 자경정이란 자의 기억에선 단서가 없나?
없어.
놈의 기억에는 유실된 부분이 너무 많았다.
백이 좀 더 멀쩡했다면 그 기억을 유심히 살필 수도 있었을 텐데…..아!
-왜 그러나?
나는 죽은 금상제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막 목숨을 잃은 그의 육신에는 아직 원혼이 가득한 백(魄)이 남아있을 거다.
그는 지은 업보도 많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니, 그 백을 흡수하였다고 해도 내게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다.
* * *
-우우웅!
혹시나 했는데 예상이 들어맞았다.
금상제가 옥새를 부수면서 어떤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황궁 내로 축지법이 가능했다.
아마도 황궁 전체에 내공이나 축지를 쓸 수 없도록 조치가 되어있던 진(陣)의 축이 부서지면서 그런 것 같다.
금상제의 백을 흡수하면서 놈의 기억을 보게 된 나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가장 충격인 것은 놈이 모조 요검까지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서둘러 그곳으로 향할까 했지만 만사신의의 일을 마무리해야 하기에 잠깐 황궁에 들린 것이었다.
“와아아아아아!!!”
“황궁제일검 연생 위무사가 돌아왔다!”
축지법으로 대전 앞에 나타나기 무섭게 함성이 터져나왔다.
수많은 금의위들과 환관들이 나를 보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는데, 순간 얼떨떨했다.
‘황궁제일검?’
이 칭호는 또 뭐야?
하지만 곧 이유를 알 것 같다.
황제를 부축하고서 나를 향해 웃고 있는 경왕 때문이었다.
‘그럼 그렇지.’
이들이 왜 그러나 싶었다.
경왕의 곁에는 비선 노옹을 비롯하여 만사신의와 그의 수양딸, 그리고 황후 등이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자 비선 노옹이 탄성을 내뱉으며 말했다.
“성공했군.”
내 손에 들려 있는 금상제의 수급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육신은 불태웠는데, 일단 놈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수급(머리)을 들고 온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자네에게 노부가 큰 빚을 졌네.”
비선 노옹이 진심으로 내게 감사를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아니었다면 그는 맹약 때문에 금상제의 손에 휘둘릴 뻔 했다.
그때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하아….하아…..비선 노옹과 경왕에게 모든 사실을 전해들었노라. 짐도 네게 빚을 졌구나.”
“폐하!”
그는 다름 아닌 당대 황제였다.
초췌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환마독에 중독되었을 때와 달리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눈에 생기가?’
설마 하는 생각에 만사신의를 쳐다보았다.
그런 나의 의문을 풀어주기라도 하듯 경왕이 말했다.
“만사신의가 협박을 받기는 했으나, 다행히 폐하가 언제든지 독에 풀려날 수 있도록 암중에 조치를 취했다고 하더구나.”
“독에 풀려나도록? 하면 독을 분석한 겁니까?”
이런 나의 물음에 만사신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독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를 분석하기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았네.”
아아 과연 최고의 의원이라 불리는 자답다.
금상제의 협박을 받아 독을 살피기까지 기껏해야 며칠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런데 벌써 그런 원리까지 분석했다니.
이 정도 뛰어난 의술이라면 충분히 환마독의 해독제를 제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보다 연 위무사라 하였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만사신의가 포권을 취했다.
그러더니 자신의 수양딸의 손을 꽉 붙잡고서 내게 말했다.
“그대가 아니었다면 내 딸도 그렇고 나 역시도 위태로웠을 거요. 진심으로 그대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었소.”
이거 본의 아니게 그의 환심을 산 것 같다.
내 정체를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지만 굳이 말할 상황은 아니다.
그러니 이렇게 연생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만사신의가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자신의 각패였다.
“다른 큰 보답을 하기는 힘들겠지만, 의원인 만큼 혹 부탁할 일이 있으면…..”
부탁할 일이 바로 있다.
급하기에 나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본론을 말했다.
“하면 폐하를 중독시킨 독의 해독제 제조가 가능합니까?”
“……..그 독이라면 어떤 약재나 독이 조합되었는지, 분석만 된다면 언제든지 해독제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네.”
“아아! 하면 해독제의 제조법을 주십쇼.”
“정말 그거면 되겠나?”
만사신의가 의아하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이에 나는 그에게 전음을 보냈다.
나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외조부께서 내게 주신 만사신의의 사형 조제의 각패였다.
이를 넘기자 만사신의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제 외조부께서 이 각패의 주인분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였는데, 그분이 돌아가시면서 외조부께 이것을 전해달라고 맡겼다고 합니다.]
이런 나의 전음에 만사신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반응을 보면 사형에 대한 정이 매우 깊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그의 말에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향아. 네 친 아비가 이렇게 돌아왔구나.”
‘!?’
만사신의의 수양딸이 조제의 각패를 받아들더니, 붉게 상기되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냥 수양딸이 아니라 자신의 사형의 딸을 거둬들인 것이었다니.
참으로 놀랍다.
만사신의가 내게 매인 목소리로 말했다.
“고작 각패로 갚을 만한 은혜가 아닌 것 같네. 연 위무사.”
그 말과 함께 그가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내주었다.
그것은 내게 주었던 나무 각패가 아니라 옥을 깎아 만든 신분패였다.
이를 넘겨준 만사신의가 말했다.
“만약 자네나 자네 외조부가 이것을 보인다면 내 언제든지 찾아가겠네.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진료를 보겠네.”
“아!”
한 번이 아니라 언제든지 도와주겠다고?
그것은 거의 전속 주치의가 되어주겠다는 말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워낙 자신의 신념이 뚜렷하여 이렇게까지 보답할 줄은 몰랐다.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속으로 좋아하고 있는데, 경왕이 내게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짐도 그렇고 너도 원하는 바를 얻은 셈이니, 모든 것이 잘 풀렸구나. 하하하핫.”
자신도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이번 일로 황제에게 태자로 인정받은 모양이다.
하긴 그러니 저렇게 흡족해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말대로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직입니다.”
“아직? 그게 무슨 소리냐?”
의아해하는 경왕과 모두에게 나는 금상제의 수급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이 자의 배후에 또 다른 자가 있습니다.”
“또 다른 자? 하면 아직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지 않느냐?”
불안해하는 그에게 나는 말했다.
“그래서 지금 당장 그 자를 잡으러 가려는 것입니다.”
-탁!
그 말과 함께 나는 금상제의 머리에 화기를 일으켰다.
그러자 불꽃이 일어나며 혀를 길게 내밀고 있던 놈의 머리가 불타올랐다.
-화르르륵!
이참에 놈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인지 확실히 알아내야겠다.
* * *
다시 시점은 현재로 돌아온다.
초나라 평왕의 릉에 숨겨져 있는 석실 앞의 공동.
-꽉!
“컥!”
나는 당혹스러워하는 뇌장의 목을 붙잡고서 세게 움켜잡으며 말했다.
“마선이라는 자는 대체 누구지?”
이런 나의 물음에 놈이 몸을 격하게 비틀며 반항을 하려고 했다.
한데 내공에서 내가 더욱 우위였기에 그런 게 통할 리가 없었다.
나는 놈의 가슴에 손을 쑤셔 넣었다.
-푹!
“억!”
그리고 놈의 심장을 움켜쥐고서 뇌전을 일으켰다.
-파치치칙!
“끄아아아아악!”
그 고통이 어찌나 심했는지 놈이 얼굴을 괴상하게 일그러뜨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 뇌전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 열화와 같이 뜨거운 곳에 갇혀 있던 자가 마선인가?”
‘!!!’
그 물음에 고통스러워하던 놈의 두 눈이 더욱 커졌다.
역시 자경적의 기억 속에 보았던 그 뱀의 눈을 가진 존재가 놈이 말한 마선이 맞는 것 같다.
대체 그 자가 누구이기에 그 지옥과도 같은 곳에서 영보필법에 의해 봉인되어 있던 걸까?
나는 놈의 심장에 더욱 힘을 가하며 이것을 물으려고 했다.
“자경정을 움직였던 것도 도화선에서 영보필법을 얻어내기 위해……”
-꽉!
바로 그 순간이었다.
심장을 쥐고 있는 손을 뭔가가 물었다.
금강불괴에 가깝기에 손에 상처가 날 리는 없었으나,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대체 뭐지?’
나는 다급히 내 손을 물은 무언가를 전광석화처럼 잡아서, 뇌장의 가슴 속에서 손을 빼냈다.
-팍!
-쉭쉭!
‘!?’
그 순간 나는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내 손을 물었던 것은 다름 아닌 뱀이었다.
그것도 설원을 담은 것처럼 새하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이건?’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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