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337
108화 마선 (1) >
‘이건?’
설원처럼 새하얀 눈을 가진 뱀.
그 뱀을 보는 순간 나는 온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멀쩡한 사람의 몸속에 뱀이 있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보다 나는 이 뱀을 과거에 본 적이 있다.
아니 정확히는 회귀 전에 보았었다.
똑똑히 기억난다.
검선비록이 숨겨진 신강 천산의 지하 밀탑의 방에서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진 그 뱀을 말이다.
내 손에 잡혀 있는 이놈은 그때 보았던 그 뱀과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쉭쉭!
보통 뱀이라면 손에 붙잡혔을 때 빠져나가려고 안달을 쓸 거다.
한데 이 뱀은 기이하게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것도 눈을 마주하듯이 말이다.
그때 목이 잡혀 있는 뇌장이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웃음 소리를 냈다.
“크흐흐.”
“……..이 뱀은 뭐지?”
이런 나의 물음에 놈이 동문서답처럼 답했다.
“스승님께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신다.”
“헛소리 하지 말고 답해!”
-꽉!
“컥!”
나는 움켜잡고 있는 손에 더욱 힘을 가했다.
놈이 금방이라도 질식할 것처럼 얼굴에 핏줄이 곤두섰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가에 미소가 거둬지지 않고 있었다.
놈이 핏줄이 터진 두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힘겹게 말했다.
“이….이제….곧이다…..스…..승님….께….서…..일어나시…..게….되면…..네….놈도….끝….이….다.”
“그럴 일은 없을 거라 했을 텐데.”
놈이 비릿하게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늦었어.”
대체 이런 확신은 어디에서 나오는 거지?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좋아.”
아무래도 직접 입을 열게 하는 것보다 놈을 죽여서 백(魄)을 흡수해야겠다.
이렇게 알아내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나는 공력을 끌어올렸다.
그때였다.
-두드드드득!
‘이게?’
손에 잡혀있던 뱀이 갑자기 머리를 뒤틀었다.
꽉 잡혀있어서 움직일 수 없을 텐데, 제 뼈를 뒤틀어가면서 말이다.
그러더니 뱀과 뇌장이 눈을 마주하듯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콰직!
손에 잡혀 있던 뇌장의 머리가 터져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어찌할 틈이 없었다.
게다가 놈의 머리가 터지면서 그 핏방울들이 암기라도 되는 것 마냥 날카롭게 쇄도해왔는데, 나는 다급히 몸을 뒤로 날리며 진기로 막아냈다.
-파파파파팍!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뇌장의 몸통 역시도 뒤이어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터져버리고 말았다.
방금 전에 머리가 터진 것과는 그 위력이 차원이 달랐다.
-콰콰콰콰콰콰콰콰쾅!
뇌장의 피가 닿는 곳마다 공동의 벽이 뚫리고 부식되며 모든 것을 파괴해나갔다.
그로 인해 무덤이 부서지며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쿠르르르르!
그 찰나의 틈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우우웅!
나는 축지법을 사용해 평왕의 릉 밖으로 빠져나왔다.
밖으로 빠져나오자 릉의 한 가운데가 함몰되다시피 무너져내리는 것이 보였다.
“아니?”
“르, 릉이 무너지려 한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릉을 지키던 관군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젠장.’
-우우웅!
나는 다시 한 번 축지법으로 장소를 옮겼다.
평왕의 릉에서 한참 떨어진 어두운 숲.
그곳에서 나는 가볍게 숨을 돌렸다.
지쳤다기보다는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다.
나는 왼손으로 붙잡고 있던 그 뱀을 쳐다보았다.
머리 쪽을 뒤트는 바람에 뼈가 완전히 돌아간 뱀은 축 늘어져서 죽어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가 바뀌어있었다.
‘눈이?’
뱀의 눈이 더 이상 흰색이 아니었다.
갈색 빛이 감돌게 바뀌었다.
나는 죽은 뱀을 바닥에 내팽개치고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주술인가?’
그럴 확률이 높아보였다.
어쩌면 놈이 스승이라 칭했던 그 마선(魔仙)이라는 존재가 벌인 일일지도 몰랐다.
나 역시도 사련검을 통해 사람을 조종하는 게 가능하다.
그런 것을 염두한다면 이 뱀 역시도 그에 일환일 수도 있었다.
‘잠깐만 그렇다면…..’
[스승님께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신다.]그 말은…..
“젠장!”
이러고 있을 틈이 없다.
당장 석실의 지도가 가리키고 있던 그곳으로 향해야 한다.
만약 정말로 그 마선이라는 존재가 뱀의 눈을 통해 모든 것을 지켜봤다면 놈 역시도 그 위치를 알고 있다.
* * *
강소성 태호(太湖).
중원에서 세 번째로 넓은 담수호 내에는 몇몇 섬이 자리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원두저(黿頭渚)라는 작은 섬이다.
이 섬은 흡사 커다란 거북이가 호수 위로 머리를 내미는 것 같다고 하여 원두저라고 불린다.
나는 지금 그곳을 향해 남천철검을 타고서 어검비행술로 가고 있다.
한 번도 온 적이 없었고, 나의 축지법에는 거리에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저기 보이네. 나무숲 이외에는 별다른 것도 없어 보이는데?
소담검의 말에 나 역시 동의한다.
뭔가를 숨긴 것치고는 섬이 저리 작은데 정말 이곳이 맞는 걸까?
석실의 바닥의 지도는 분명 이곳을 가리켰다.
‘일단 가보면 알겠지.’
섬에 내린 나는 숨겨진 무언가가 있는지 이 작은 섬을 샅샅이 뒤졌다.
경관이라 할 만큼 주변 경치가 워낙 좋기는 하지만, 이곳에 무언가를 숨길 만한 특별한 장소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곳에 나룻배를 정박할 수 있는 곳마저 있는걸 보면 정말 여기가 맞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불로불사를 이룰 수 있는 비밀이 사람의 손에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있잖아. 혹시 섬에 지하로 들어가는 굴 같은 게 있는 거 아냐?
굴?
샅샅이 살폈지만 그런 곳은 없었다.
있었다면 진즉에 발에 닿자마자 알았을 거다.
분명 지도가 향한 곳은 이 섬이 틀림없는데 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
의아해하고 있던 찰나였다.
-쿠르르르!
섬의 지반이 미묘하게 떨려왔다.
나무부터 수풀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흔들림 속에서 들리는 울려 퍼지는 소리.
나는 그것에 집중했다.
-팟!
그리고 그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어디로 가는 거야?
있어봐.
분명 울려 퍼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동굴 안에서 나면 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지듯이 말이다.
이윽고 나는 커다란 나무들이 갈래처럼 서로를 묶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별다른 것이 없어서 지나쳤는데, 그 갈래 사이로 작은 틈 같은 공간이 보였다.
아이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틈이었다.
-설마 저기?
내 귀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저기서 그 울림이 들렸어.
시간이 촉박하니 나는 망설이지 않고 곧장 커다란 나무를 베어냈다.
-촥! 끼이이이이이! 쿵!
나무가 쓰러지자 이내 그 틈이 훨씬 커졌다.
그리고 틈 사이로 바닥으로 향하는 구멍이 하나 있었는데, 흡사 무저갱을 보는 것처럼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이곳이 틀림없는 것 같다.
-슉!
일단 안으로 뛰어내렸다.
생각보다 정말 깊은지 계속에서 몸이 추락하고 있었다.
-뭔가 으스스하네?
빛 한 점 보이지 않아서 더 그런 것 같다.
선천진기를 두 눈에 집중하니 절벽처럼 둘러싸인 주변이 보였다.
그때 남천철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운휘 바닥이 보인다.
녀석의 말대로 웬 구멍과 함께 바닥이 보였다.
한데 저 구멍 속에서 녹색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낙하하는 속도를 진기로 줄이며 구멍이 있는 곳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슉!
구멍을 통과하는 순간 동굴 천장이 종유석으로 가득하고 야광주가 사방을 밝히고 있는 커다란 공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의 한 가운데에 커다란 비석 같은 것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앞으로 전신이 금빛 글씨가 새겨진 쇠사슬로 봉해진 한 존재가 서있었다.
-저 자야?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다행히 아직 저 상태인 것을 보면 늦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겠지.
-파치치칙! 슈우우우!
나는 곧바로 혈마화를 비롯해 뇌기의 순응과 진혈금체를 펼쳤다.
붉은 뇌전이 전신을 감싸며 야광주로 밝혀졌던 동굴이 붉은 빛으로 환해졌다.
뇌벽천둔을 쓰면 동굴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으니, 내가 가진 무공 중에서 최고라 불릴 만한 것 중 하나인 성명검법의 비기인 신로 성명검법의 마지막 7초식 십이천경검(十二天景劍)을 써야겠다.
-촤촤촤촤촤촥!
낙하하는 속도와 더불어 붉은 뇌전을 머금은 절세검초가 펼쳐졌다.
열두 검식이 교묘하게 합을 이루며 빈틈이 없이 화려한 궤적을 그리며 비석 앞에 서있는존재에게로 쇄도했다.
-까득! 까득!
놈을 향해 쇄도하는데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단숨에 놈의 처리해야만 한다.
놈이 고개를 위로 들어올렸다.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뱀의 눈이 보였다.
그 눈빛이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것처럼 소름끼쳤지만 오직 하나에만 집중했다.
‘놈을 벤다!’
그때 뼈만 앙상하게 남은 놈의 손이 움직였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말이다.
나는 그 손과 더불어 전신을 십이천경검으로 베어버리려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차앙!
놈의 손이 붉은 뇌전으로 뒤덮인 남천철검을 붙잡았다.
‘!?’
검에 실린 검력에는 여러 힘이 중첩되어 있었기에 함부로 잡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놈의 손에 검신이 붙잡혔다.
-콰르르르르르! 쩌저저저저적!
놈이 서있던 바닥에 균열이 일어나며 이내 바닥이 갈라지고 밑으로 십여 장이 넘게 함몰되었다.
이 정도의 위력인데도 검을 잡은 놈의 손은 조금도 미동이 없었다.
나는 검을 놓게 하기 위해 놈의 머리를 향해 각법을 펼쳤다.
그런데 이내 놈이 손을 가볍게 움직이자,
-우우웅!
커다란 파동이 허공에서 생겨나더니, 나는 남천철검을 놓친 것도 모자라 그 힘에 의해 튕겨나가고 말았다.
-운휘이이이이이!
포탄처럼 날아간 나는 이내 공동 벽에 처박히고 말았다.
-콰아아앙!
“커억!”
거의 다섯 장이 넘게 박힌 것 같다.
뒤에서 축축한 물기가 느껴졌다.
등의 뼈가 으스러진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지만 이를 참아내고서 겨우 몸을 움직였다.
-푸슈슈슈슈!
박혀있던 곳에서 몸을 일으키자 뒤에서 물이 터져 나왔다.
태호의 섬 지하 깊숙이 자리했던 곳이라 그런지 이 공동의 사방이 태호의 담수로 둘러싸여진 것 같다.
박혔던 곳에서 빠져나온 나는 비석 앞에 있는 놈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안 괜찮다.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다.
마도 각성까지는 펼치지 않았지만 전력으로 놈을 공격했는데 도리어 타격을 받았다.
이런 괴물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어떻게 할 거야?
어떡하긴.
이렇게 된 이상 공동이 무너져 내리는 것 따윈 개의치 않는다.
뇌벽천둔의 모든 절초를 발휘해서라도 놈을 죽여야겠다.
저런 존재가 불로불사로 부활하여 세상 밖으로 나간다면 누구도 놈을 막지 못할 것이다.
-고오오오오오!
나는 이 상태에서 마도각성마저 끌어냈다.
뇌전이 검붉은 빛으로 변하며 역량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팟! 파치치치칙!
신형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놈을 향해 검결지를 뻗었다.
그러자 검은 뇌전이 일직선으로 놈을 향해 쇄도했다.
그 속도는 절세고수들조차 육안으로 파악하기 힘들 만큼 빨랐기에 뇌전은 순식간에 놈의 가슴을 관통했다.
-파파파파팍!
-통했어!
알고 있어.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나는 바닥을 향해 검결지를 뻗었다.
-파치치치칙! 콰콰콰콰콰쾅!
그 순간 바닥에서 검붉은 뇌전이 솟구치며 역으로 번개가 치는 형상을 만들어냈다.
대도천둔검법 뇌벽천둔(雷霹天遁) 제 3초 역천광뢰(逆天光雷)였다.
-파치치치치칙!
가슴을 관통당한 놈이 역으로 솟구치는 검붉은 뇌전에 갇혀 그 형상이 흐릿하게 보였다.
-쿠르르르르!
때마침 갈라진 바닥으로 담수가 솟구치며 올라왔다.
역천광뢰의 뇌전으로 인해 바닥의 지반이 갈라지면서 그런 것 같다.
물이 차오르면서 바닥 전체가 검붉은 뇌전으로 불꽃이 튀었다.
-쿠르르르! 쿵! 쿵!
천장에 닿은 뇌전에 의해 공동의 천장에 있던 종유석들이 밑으로 마구 떨어졌다.
이 안은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난 것 같다.
검붉은 뇌전 속에서 놈의 신형이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나는 끝까지 이를 멈추지 않았다.
-물이 엄청 빨리 차오르고 있어.
소담검의 말대로 물이 벌써 무릎까지 차올랐다.
얼마 있지 않아 허벅지를 넘을 것 같다.
하지만 놈이 확실하게 소멸해야 이를 멈출 수 있다.
어차피 이곳이 붕괴된다고 해도 나는 축지법으로 빠져나가면 그만이었다.
-투득!
완전히 전력으로 다하니 확실히 몸의 과부하가 심했다.
핏줄이 전부 터질 것만 같은 느낌이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슉! 푹!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몸을 비틀거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첨벙!
물이 튀며 온몸을 적셨다.
-우, 운휘!
남천철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녀석의 검신이 내 가슴의 정중앙을 관통해 있었다.
끝
ⓒ 한중월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