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338
108화 마선 (2) >
남천철검의 검신이 내 가슴의 정중앙을 관통해 있었다.
너무 아프다.
검을 빨리 뽑아야 하는데, 물이 전신을 적시니 통증이 더욱 강해져서 꼼짝할 수가 없다.
-운휘야. 네가 뽑기 힘들면 옥형을 써!
소담검의 말이 맞다.
옥형을 써서 녀석이 알아서 빠져나오게 해야 겠다.
손등에 있던 칠성현문의 점들 중 옥형이 푸른 빛으로 일렁였다.
-운휘! 조금 참아라.
남천철검이 들썩거리며 조심스럽게 내 몸에서 빠져나갔다.
녀석이 빠져나갔지만 물에 젖어서 재생이 전처럼 빠르지가 않았다.
물이 약점은 약점인 모양이었다.
비틀거리며 겨우 몸을 일으켜 세우는데 소담검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운휘야! 저길 봐.
녀석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물과 뇌전으로 수증기가 자욱해진 시야 속에서 놈의 형상으로 짐작되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수증기가 조금씩 가시며 보이는 모습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파스스스!
마치 비늘을 벗는 뱀처럼 놈이 새까맣게 탄 몸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뼈가 앙상하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끈적거리고 매끄러운 피부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근육이 점점 부풀어 오르며 단련을 한 몸처럼 바뀌어갔다.
몸이 절반 정도 빠져나왔는데 보고 있을 상황이 아닌 듯 했다.
“쿨럭쿨럭!”
나는 이를 악물고서 통증을 참으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허공에 떠있던 남천철검의 검신에서 붉은 뇌전이 흘러나왔다.
-파치치치칙!
‘뇌벽천둔(雷霹天遁) 제 5초식 천검낙뢰(天劍落雷).’
나는 다급히 놈을 향해 검결지를 뻗었다.
그 순간 검붉은 뇌전으로 둘러싸인 남천철검이 놈을 향해 낙뢰가 되어 쇄도했다.
모든 것을 부술 것만 같은 기세의 천검낙뢰.
그런데 그 낙뢰는 놈에게 닿지 못하고 놈의 머리 위에서 멈춰 섰다.
-우우우웅!
일렁이는 공간에 묶인 것 마냥 남천철검이 움직일 생각을 하질 않았다.
놈의 주변으로 원형의 보이지 않는 막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을 통과할 수가 없었다.
그때 비늘을 완전히 벗은 놈이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어엇?
그러자 남천철검이 이내 튕겨나가 공동의 벽면을 뚫고나가 버렸다.
‘남천!’
녀석이 굉장한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머릿속으로 시야를 공유하고 있는데,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어둠만이 보였다.
-운휘야!
소담검의 외침과 함께 바로 앞으로 누군가의 인영이 보였다.
그것은 방금 전까지 비석 앞에 있던 놈이었다.
비늘을 완전히 탈피하여 멀쩡한 모습이 된 놈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굉장한 장신의 신장을 가지고 있었다.
‘피부가?’
흡사 뱀처럼 윤기가 나고 곳곳에 비늘 같은 것이 붙어 있었다.
두 눈은 새하얀 뱀의 눈을 하고 있었는데, 마주치는 것만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흉흉하면서 불길한 기운이 일렁였다.
그때 고개를 슬쩍 꺾으며 입을 열었다.
“흥미롭군.”
“뭐?”
“많이 옅어졌지만 나의 피를 물려받은 녀석이 순양자 놈에게 가르침을 받다니.”
‘내 피를 물려받아?’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놈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하는데, 놈이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의구심이 드나보군.”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이런 나의 말에 놈이 콧방귀를 뀌더니 뒷짐을 지었다.
그리고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깝군. 수십 세대가 넘게 이어지며 인간의 몸으로 나의 형질을 이렇게까지 물려받은 녀석은 없었다.”
이놈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힘들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 기회를 노려야 겠다.
나는 조심스럽게 검결지로 모든 기운을 집중했다.
기습적으로 놈의 목을…..
-촥!
‘!?’
그 순간 나의 오른팔이 잘려나갔다.
놈이 내게 혀를 차며 말했다.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자꾸나. 아이야.”
그리고는 다시 내 왼팔이 있는 곳을 쳐다보자, 이번에는 왼팔 어깨 쪽이 잘려나갔다.
-촥!
“끄아아아아악!”
두 팔이 잘려나간 고통에 나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운휘야! 도망쳐!
머릿속에 소담검의 목소리가 울렸다.
오른팔이 잘려나갔는데도 칠성현문이 그대로 발현되는 것을 보면, 단순히 손등의 점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그때 놈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두 번 묻지 않겠다.”
“끄으으으.”
“나를 따르라. 그리고 내가 이끄는 군세의 선봉장이 되어 세상을 피로 씻어내라.”
“……뭐?”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의아해하고 있는 차였다.
그때 기감을 자극하는 기운들이 갑자기 느껴졌다.
공동을 채워가는 물속에서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거대한 형상들.
보랏빛 눈동자를 비롯해 각양각색의 수많은 안광들이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었다.
‘요물?’
그것들은 흔히 요물이라 불리는 인외의 존재들이었다.
하나 같이 뱀의 몸을 하고 있었지만 그 얼굴들은 괴물과도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인면자안사(人面紫眼蛇)들도 있었다.
봉림곡의 자소만큼은 아니지만 커다랗고 사나운 기운을 머금었다.
-우우우우우우!
놈들은 마치 왕을 모시기라도 하는 것처럼 놈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여 예를 취하고 있었다.
그 광경에 할 말을 잃을 지경이었다.
놈이 말한 군세는 인외의 존재들인 것 같다.
살면서 여태껏 두 번밖에 보지 못했던 수많은 요물들을 이런 곳에서 보게 되다니,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이놈과 이 요물들이 세상을 빠져나간다면 막을 수 없는 환란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첨벙거리는 물을 향해 진각을 밟았다.
-파치치치칙!
그 순간 내 몸을 타고서 검붉은 뇌전이 고여있는 담수로 흘러갔다.
뇌전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려고 하는데,
-쾅!
놈이 발을 구르자 반경에 있던 물들이 솟구치며 뇌전의 흐름이 끊겨버렸다.
놈이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싸늘하기 그지없다.
-저벅저벅!
가까이 다가온 놈이 내게 손을 뻗자,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몸이 위로 떠올랐다.
마치 멱살을 잡힌 형태가 되어 나의 몸이 놈의 앞으로 끌려갔다.
놈이 내게 말했다.
“더이상 천둔검법은 내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
“…….네놈….대체 누구야?”
이런 나의 물음에 놈이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나를 부르는 호칭은 수없이도 많다. 한 때 인간이 되고자 했던 교룡이였으며, 또 한 때는 중원 모든 검종의 시초라 불리고 했다.”
‘중원 모든 검종의 시초?’
순간 머릿속에서 백무자라는 이름이 스쳐지나갔다.
검선 스승님이 천하제일인이라 불렸다면 백무자는 모든 검종의 시초라 불렸던 이다.
심검이라는 개념을 만든 당사자이기도 했다.
설마하고 있는데 놈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화룡 진인이라 불리며 십선(十仙)의 일인이기도 했고, 타락한 마선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십선?’
비선 노옹이 했던 그 말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우리 십선 중에 한 사람이 남아, 황실의 요구대로 대대손손 그들을 도인들이나 무림인들로부터 보호해주기로 맹약을 맺은 것이네.]도화선을 이끄는 도인은 스승님을 비롯해 여덟이다.
그들을 속세에서 한 때 팔선이라 불렀다고 들었는데, 십선이라 하여 의아하게 여겼었다.
그렇다면 이 자는 도화선의 일인이었단 말인가?
놈이 내게 뒷짐을 지고 있던 손을 가져와 턱을 붙잡고서 말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인간이라는 존재와 얽매이고 싶지 않다. 탐욕스럽고 어리석고, 자신들끼리 서로를 해하는 그런 존재와 나를 엮지 말거라.”
-찌릿찌릿!
놈의 목소리에서 분노와 함께 엄청난 살기가 전신에서 폭사되었다.
그 살기는 여태껏 만났던 어떤 존재들과도 비교하기 힘들 만큼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이 정도 살기라면 평범한 이들은 버티지 못할 만큼 강렬했다.
“네가 스승이라고 받드는 순양자 놈과 선인이라는 작자들은 위선자에 불과한 것들이다. 놈들 역시도 탐욕스러운 인간에 불과하다.”
“……스승님들을 모욕하지 마라.”
이런 나의 말에 놈이 실망스럽다는 듯이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게 네 선택이로군.”
-꽈아아악!
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직까지 뇌기의 순응을 비롯해 진혈금체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턱이 부서져나갈 것 같다.
“그렇다면 평범한 인간으로 죽거라.”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콰콰콰콰쾅!
바로 밑에서 뭔가가 지반을 뚫고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이내 내 턱을 으깨버리려고 하는 놈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소!”
봉림곡에서 나를 구해주었던 인면자안사 자소였다.
그때 햇빛에 노출되어서 죽지 않았나 걱정했는데, 오히려 전보다 몸이 더욱 커진 녀석이었다.
놈을 집어삼킨 녀석이 나를 향해 아는 척을 하듯이 울음 소리를 냈다.
-크르르르르르!
이 녀석이 어떻게 내가 있는 곳을 안 거지?
설마 지금까지 나를 계속 따라다녔을 리는 없을 텐데.
의아해하고 있는 찰나였다.
그때 갑자기 자소가 고통스러운지 포효를 하며 몸을 비틀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자소?”
그러더니 이내 녀석의 몸을 찢고서 놈이 걸어 나왔다.
놈이 몸이 찢어져서 고통스러워하는 자소를 쳐다보다 내가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역시 내 형질을 제대로 물려받았군.”
“네놈!”
“아쉬우니 한 번 더 묻지. 나를 따라서 세상을 피로 정화할 생각이 있느냐?”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는 놈에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미친 놈.”
놈이 코웃음을 치더니 내게 손을 뻗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는 듯이 놈이 손을 뻗자 뜨거운 열기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 머릿속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운휘.
그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남천철검이었다.
너무 멀리 날아가서 어둠으로만 보였었는데, 녀석의 시야가 보였다.
녀석이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며 내게 말했다.
-전주인이 죽고서 오랫동안 방치되면서 이대로 검으로서의 운명을 다하는가 싶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하지만 너로 인해 나는 다시 검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남천?’
-전주인의 복수도 할 수 있었고, 너와 했던 이 모든 시간이 너무도 행복했다.
-팟!
물 속에서 녀석이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내게 손을 뻗고 있는 놈을 향해 쇄도했다.
놈이 같잖다는 듯이 손을 휘저었는데 놀랍게도 남천철검은 날아가지 않고 꿋꿋이 버텨냈다.
놈이 인상을 찡그렸다.
남천철검의 검신이 점차 푸른빛으로 뒤덮이고 있었다.
-파칙!
그 순간 녀석이 일렁이는 공간을 찢고서 놈의 바로 코앞까지 날아갔다.
이런 남천철검을 놈이 붉게 달아오른 손으로 붙잡았다.
-치이이이이!
푸른빛으로 일렁이던 검신이 놈의 손에 닿자 붉게 변해갔다.
머릿속으로 남천철검의 비명이 들려왔다.
나는 다급히 앞으로 가며 녀석에게 소리쳤다.
“멈춰!”
하지만 남천철검은 어떻게 해서든 놈의 찌르려는 의지로 가득했다.
지금 나는 칠성현문의 힘을 제대로 다룰 수 없을 만큼 몸 상태가 엉망이었는데, 대체 이게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내가 전력을 다해도 털 끝 하나 상처조차 주지 못했던 적이었다.
-쩌저저적!
뭔가 갈라지는 소리가 남천철검에게서 났다.
붉게 달아오른 검신에 금이 간 것이다.
-작별….이다. 우……운휘….꼭…살아…..남…..아….
-챙그랑!
녀석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검신이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남처어어어어어언!”
그것을 보고 있는 나는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가슴이 찢겨나가는 것만 같다.
그때 배가 찢겨져 온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워하던 자소가 갑자기 내가 달려들어 입으로 나를 집어삼켰다.
“놓칠 것 같으냐.”
놈이 손을 내밀자, 부러졌던 남천철검의 검신들이 자소를 관통해 이내 내 전신에 박혀버렸다.
-푸푸푸푸푹!
그 통증은 말로 이룰 수 없었지만 내겐 오직 한 가지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남천……’
검심이 파괴되면 검에게도 죽음이 온다고 녀석들이 말했었다.
그 말 그대로 남천철검은 더 이상 살아있지 않았다.
그때 자소의 몸이 들썩거렸다.
-풍덩!
물기가 느껴지는 것을 보면 녀석이 물 속으로 뛰어든 것 같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날카로운 예기가 난자하며 자소와 그 입 속에 있는 나의 전신을 마구잡이로 관통했다.
-푸푸푸푸푹!
“끄으으으!”
그렇지 않아도 물에 젖었는데 전신의 요혈을 관통하니 점차 정신이 혼미해져간다.
갈라진 자소의 입 틈바구니 속으로 물이 차오른다.
양팔이 잘리고 관통당한 가슴과 요혈들의 상처.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는 상태였다.
-부글부글!
자소 역시도 치명상을 입었는지 몸이 점점 물밑으로 내려가는 것 같았다.
녀석과 나는 태호의 깊은 곳까지 가라앉고 있었다.
-운휘야! 정신차려! 운휘야!
소담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하지만 더 이상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렇게 죽는 건가?
회귀 전에도 죽음을 겪었었는데, 그런데도 죽는 것만큼은 무섭고 두려운 것 같다.
아직 살아야 할 이유는 많이 남아있는데……
-운휘야. 죽지마! 죽지 말라고! 네가 죽으면 나는 어떡해?
소담검의 울부짖는 소리가 점차 희미해진다.
회귀 후 나의 마지막 종착지는 고작 태호의 물밑 바닥이었던가.
두렵다. 소담아.
그런 나의 머릿속에 소담검이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정신차려! 죽지마……죽지말라고……네가 이렇게 죽는 걸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지켜보는 나는 어떡하냐고?
앞이 점점 검어지며 의식이 사라져가고 있던 찰나였다.
-안돼에에에에엣!
-우우우웅!
바로 그때 울부짖던 소담검의 검신에서 푸른빛이 뿜어져나왔다.
그러더니 이내 그 빛이 내게로 이어졌다.
* * *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둠으로 뒤덮였던 세상이 환한 빛으로 일렁였다.
‘이게 대체?’
설마 나는 죽은 것인가?
의아해하고 있는 그런 나의 눈앞에 누군가가 소담검을 들고서 앉아 있었다.
신선의 풍모를 가진 그는 다름 아닌,
“스승님!”
검선 스승님이었다.
스승님의 모습은 내가 도화선에서 보았던 것과 달랐다.
오히려 과거 두 번째 검선비록에서 발견했던 그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스승님이 나를 보며 씁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세 번째 비록은 부디 얻지 않기를 바랐으나, 결국 이렇게 이루어지는구나.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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