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339
108화 마선 (3) >
-스르르르르!
어떠한 존재가 허리까지 차있는 공동의 물을 가로질러 걸어왔다.
하반신은 뱀의 몸을 가졌지만 상반신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는 괴이한 존재였다.
네 개의 노란 안광을 가진 존재가 전신이 뱀과 같은 매끄러운 비늘로 뒤덮인 사내에게로 다가와 말했다.
“스승이시여. 배려해주신 덕에 새롭게 다시 태어났나이다.”
“더러운 인간의 몸보다 어울리는구나.”
“스승님의 선견지명 덕분입니다. 제 혼(魂)을 미리 옮겨두고 백(魄)만을 육신에 남겨두길 잘한 것 같습니다.”
반사반인(半蛇半人)의 존재가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그가 스승이라 부른 사내는 여전히 뒷짐을 진 상태로 진운휘와 그를 집어삼킨 인면자안사가 빠진 물구멍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구멍으로 점점 빠르게 공동으로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설마 놈이 살아 있는 겁니까?”
그 정도 부상에 살아있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스승이 직접 손을 쓰지 않았는가.
그런 반인반사의 존재의 물음에 사내가 말했다.
“녀석의 불완전한 불로불사는 오행 중에 금(金)이 강해서 벌어진 현상이다. 수(水)에 한없이 취약한 그 몸으로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데 어찌?”
“아깝구나.”
“네?”
“수백 년을 뛰어넘어 나의 형질에 가깝게 태어난 녀석을 이렇게 죽이게 되다니 말이야.”
그것이 사내가 그곳을 바라보던 이유였다.
수많은 후손들이 태어난 것을 뱀의 눈으로 지켜보았다.
자신과 같은 분노를 머금고 세상을 피로 씻어내려는 자들부터 학사가 되려는 자까지 각양각색의 재능을 가진 자들이 태어났다.
그러나 용(龍)으로서의 자질을 개방한 자는 처음이다.
‘순양자.’
놈의 손에 타지 않았다면 자신의 것이 될 수 있었다.
그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하지만 이내 미련을 털어냈는지 고개를 들어서 반인반사의 존재에게 말했다.
“때가 되었다.”
“아아아!”
“지금의 중심이 어디지?”
“머지않은 곳에 소위 정의를 운운하는 위선자들이 모여 만든 무림 연맹이 있습니다.”
“무림 연맹?”
강소성에서 서남쪽 안휘성을 지나 호북성.
정파의 성지인 무한에 무림 연맹이 자리하고 있다.
사내가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더럽고 탐욕으로 가득 한 인간놈들에게 숨쉬고 있는 그 삶이 그릇되었음을 알려줄 때다.”
“오직 그 말씀만을 기다렸습니다.”
-우우우우웅!
사내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가 떠오르자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인외의 요물들이 그에게로 집중했다.
사내가 소리 높여 그들에게 외쳤다.
“본 마선이 인외의 존재들에게 명하노라. 피로 세상을 씻어라. 인간의 씨를 말려서 세상을 깨끗이 정화하라. 그리하여 마도의 업을 쌓아라!”
-크워어어어어어!
-오오오오오오오!
스스로를 마선이라 칭한 존재의 명에 인외의 요물들이 포효를 내질렀다.
흉흉하고 사악한 그들의 포효는 세상을 향한 피의 출사표였다.
* * *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찬란한 빛으로 환한 세상.
내가 죽어서 오게 된 내세가 아닌 건가.
‘스승님 이곳은?’
-네 심상 속이다.
심상?
아아 그래서 스승님께서 저런 모습이었던가.
‘어찌 스승님이……’
-나는 늘 곁에 있었다.
‘곁에 있었다니 그게 무슨…..아!’
스승님의 손에 쥐어져 있는 소담검을 보자 나는 문득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남천…….’
남천철검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소담검과 마찬가지로 나와 동고동락했던 녀석이다.
내게 스승이면서 조언자와 같던 녀석이 이렇게 부서져 죽음을 맞이할 거라고는 여태껏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 슬픔은 차마 말로 이룰 수가 없었다.
녀석이 전주인을 언급하며 진지하게 말하던 그것이 이렇게 그리워질 줄이야.
-네 슬픔이 느껴지는구나.
‘남천철검이 부서졌습니다.’
-만물의 모든 것은 쇠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어떤 식으로든 이별은 다가온단다.
‘…….하나 이렇게는 아닙니다!’
적어도 녀석과 이렇게 헤어지고 싶진 않았다.
남천검객이라는 대협객과 함께 했던 검이자, 나와 오랫동안 함께 해준 동료이자 벗으로서 녀석의 죽음을 용서할 수 없었다.
-으득!
이가 갈린다.
남천철검을 그렇게 만든 그 존재에게 말이다.
나는 스승님을 바라보며 물었다.
‘대체 놈은 누구입니까? 어째서 도화선에 있을 적에 제게 놈에 대해서 한 번도 말씀해주시지 않은 것입니까?’
-하아…….
분노가 섞인 나의 말에 스승님께서 탄식을 흘렸다.
그러더니 이내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찬란한 빛으로 가득한 세상에 먹칠한 붓이 한 폭의 그림을 그리듯이 무언가가 허공에서 그려졌다.
그 모습은 놈과 닮아 있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그 눈빛에 정기가 넘치고 있었다.
-한때 백무자라 불렸던 그는 나보다 일찍 정양 진인에게 거둬졌다.
팔선의 수장인 정양 진인.
그는 모든 도인들의 스승이라 불리는 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놈은 스스로를 인간이 되고 싶은 교룡이라 하였다가 중원 검종의 시초인 백무자라고 하였다.
그저 생각을 했을 뿐인데 심상이라 그런지 스승님께서 곧바로 답변하셨다.
-그는 교룡이기 이전에 누구보다 뛰어난 무인이기도 했다.
‘그런 존재가 어째서……’
-그렇기에 정양 진인께서 거둬들인 것이었다. 그 강함이 엇나가지 않고 올바르게 쓰이도록 위해서.
올바르게라……
내가 볼 때 그 존재는 제대로 타락했다.
괜히 마선이라 부르는 게 아니었다.
-결국 그릇된 길로 갔으나, 그는 원래 누구보다 정의감에 차있고 맑은 영혼을 지녔던 자다.
‘그런 존재가 세상을 피로 씻으려 합니까?’
-…….
스승님은 나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휘젓자 불에 타고 있는 한 가옥과 죽어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곳에 놈이 누군가를 껴안고서 울부짖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게 뭡니까?’
-화룡 진인은 도인으로 입적하기 전에 속세에서 인간으로서 자신의 일가를 이뤘다. 저곳은 그가 세운 검문(劍門)이다.
‘…….저곳이 그곳이라면 어찌?’
-송곳은 자루에서 튀어나올 수밖에 없지. 그는 무인으로서 명성을 날리게 되면서 수많은 이들과 원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 자들이 저리 만든 것입니까?’
-그래.
저래서 인간에 대한 원망을 하게 되었던가.
한데 그것 치고는 원망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그 범위가 커졌다.
자신의 일가를 저리 만든 이들에게만 복수를 하면 되지 않는가.
나의 의문에 스승님이 답했다.
-도인으로 입적하기 전에 정양 진인께서는 삼청에 대고 맹세를 받는다.
‘맹세라면?’
-속세에 대한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말이다.
‘……..’
-불가에서도 그리하겠지만 등선을 하고자 하는 도인들은 속세와의 연을 끊고 오욕칠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눈앞에서 모든 혈육들이 죽음을 맞이했는데 그것을 참아내야 한다는 건가.
놈이 왜 어긋나기 시작했는지 알 것 같다.
-정양 진인께서는 그의 분노를 다스리게 하려고 했다. 하나 우리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게 무엇입니까?’
그가 인외의 존재임을 말이다.
스승님이 손을 휘젓자 울부짖고 있는 놈의 변화가 보였다.
머리카락이 피처럼 붉어지며 점차 눈이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예의 섬뜩한 뱀의 눈을 하고 있었다.
-도를 갈고 닦아 한없이 인간에 가까워졌다고 한들, 그의 본성은 애초에 뱀에서 비롯된 이무기이자 교룡이다.
‘참지 못한 겁니까?’
-잠재되어 있던 스스로의 마성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어찌 되었습니까?’
스승님이 다시 한 번 손을 휘젓자 놈의 몸이 부풀어 오르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이내 설화나 신화 속에서 볼 법한 모습이 되어갔다.
그것은 용(龍)이라 불린 존재였다.
사슴과도 같은 뿔, 검은 비늘에 흰 뱀의 눈.
그리고 등의 깃이 붉게 타오르는 그 모습.
그것은 성스러운 영물이 아닌 타락한 요물인 교룡(蛟龍) 그 자체였다.
-그의 분노는 수많은 죄 없는 이들마저 죽음으로 내몰았다.
‘아!’
순간 머릿속에 스승님에 관한 일화가 떠올랐다.
마를 물리친다는 대도천둔검법으로 사악한 교룡을 물리쳤다는 전설적인 그 일화가 말이다.
‘하면 스승님의 손으로 물리친 것입니까?’
-그를 상대했으나 물리칠 순 없었다. 설사 타락하여 마(魔)를 택했다고 한들 노부에게는 사형이자 스승과도 같던 이였다.
‘스승?’
-……노부의 천둔검법은 화룡 진인에게서 비롯되었다.
‘네?’
그 말에 나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천둔검법은 스승님께서 창안한 검법이 아니란 말인가?
이런 의구심을 풀어주기라도 하듯 스승님이 말했다.
-노부에게 자신의 뿔로 법구 천둔을 만들어준 것이 바로 화룡 진인이었다. 그리고 대도천둔검법을 완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
‘그럼 그에겐 천둔검법이 통하지 않는 겁니까?’
-타락했다고 하나 그는 용이다. 천둥번개의 조화를 다루고 불을 내뿜는 영물에게 그 자신의 힘이 쉬이 통할 리가 없지.
이제야 의문이 풀린다.
그 엄청난 위력을 지닌 대도천둔검법이 통하지 않았던 비밀이 말이다.
아무리 물에 젖어 치명상을 당했다고 하나 산마저 무너뜨릴 수 있는 위력을 가진 것이 바로 대도천둔검법의 뇌벽천둔이었다.
그런데 놈은 그것을 맞고도 견딜 수 있었다.
‘그럼 어떻게 놈을 물리치신 겁니까?’
-어떤 힘이든 그 극(極)에 이르면 상성마저 초월하는 법.
‘그게 무슨?’
-어둠을 빛이 뒤덮는다고 해도 빛 또한 어둠에 뒤덮이는 이치다.
‘아…….’
-하나 극성에 이른 천둔으로 그를 억눌렀다고 해도 힘의 근원인 그를 어찌 완벽히 해할 수 있겠느냐? 결국 정양 진인께서 법구 영보필법으로 그를 봉하게 되었다.
전설로 내려온 일화에 이런 내막이 있었을 줄이야.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놈은 그 봉인에서 풀려났고 심지어 서복이 숨겨놓았던 불로불사의 비약으로 다시 원래의 힘을 되찾았다.
아니 어쩌면 더욱 강해졌을지도 모른다.
‘……..결국 놈은 부활했습니다.’
-그래. 노부가 읽은 천기가 잘못되기를 바랐다.
‘이 사태를 예견하신 겁니까?’
-천기라는 것이 어찌 만사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겠느냐? 다가올 혈겁이 어쩌면 이것과 관계가 있을 지도 모른다고 짐작하게 된 것이다.
그 말과 함께 스승님께서 내게 소담검을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정신이 혼미해져갈 때 울부짖는 소담검이 푸른빛에 둘러싸였던 것이 기억났다.
‘소담이 어찌?’
-마지막으로 노부의 백(魄)을 담은 비록을 어디에 둬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다 네가 그 겁란과 정면으로 맞부딪치게 될 것을 천기로 읽게 되었다.
‘그 말씀은…..’
-그래. 처음부터 줄곧 네 곁을 지켜온 소담검이 노부의 백을 가지고 있었다.
‘!!!’
그 말에 뭔가 소름이 돋는다.
처음부터 가까이에 마지막 검선비록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조차 그것을 알지 못했던 나였다.
심지어 소담검도 자신에게 그런 비밀이 숨겨져 있었는지 인지조차 못했던 것 같다.
-네가 천둔의 원류라 할 수 있는 그와 부딪치지 않았다면 이렇게 심상 속에서 노부를 다시 만날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
이 모든 게 스승님의 안배였다니.
놀랍다 못해 말문이 막힌다.
한데 문득 나는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떠올랐다.
심상 속에 있다고 하나, 나는 지금 심각한 부상을 입고 태호의 수중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이런 내가 살아날 수 있을까?
-살아날 수 있고 없고는 지금부터 너 자신에게 전적으로 달려 있다.
‘제 자신에게 달렸다니 그게 무슨?’
-우우웅!
의아해하는데 스승님의 손에 한없이 빛나는 백색의 검이 생겨났다.
그것은 평범한 검(劍)이 아니었다.
영롱한 빛을 내뿜는 검을 들어올리며 스승님께서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부의 마지막 심득을 네게 전수하겠다.
* * *
그것은 고작 사흘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강소성 남부에 있던 수많은 무림의 문파, 방파, 그리고 수십이 넘는 크고 작은 마을에 있던 사람들이 어두운 밤 사이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어림잡아 죽은 이만 하더라도 사만 여 명에 달할 만큼 최악의 사태였다.
그리고 그 의문의 몰살은 계속해서 진행 중이었고, 빠르게 남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그 소식은 빠르게 무림 연맹의 본단으로 향해졌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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