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345
1화 소영영 이야기 (2) >
협박 아닌 협박이 되어버린 나의 말에 황급히 나가버린 세양가의 가주.
그 덕분에 당혹스러워 하던 양 부인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인 게야?”
하!
그건 내가 하고픈 말이다.
나는 싸늘해진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낯이 두꺼워도 양 부인 당신처럼 되긴 힘든 것 같군요.”
“뭐야?”
“오라버니를 그리 천대해놓고도 오라버니의 명성을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 뻔뻔하기 짝이 없군요.”
촌철살인에 가까운 나의 일침에 양 부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접객실의 바깥에서 기다리는 행렬이나 남궁가희 언니만 없었어도 벌써 옛적에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찻잔을 쥔 손을 파르르 떨던 그녀가 겨우 입술을 뗐다.
“누가 그 아이의 명성을 이용했다는 게야? 그게 키워준 부모에게 할 소리….”
“키워줘? 하! 지금 누구더러 키워줬다는 거예요? 주화입마를 입도록 독을 먹여서 단전 파훼되도록 만든 게 키워준 건가요? 아님 가문의 밖으로 내친 것이….”
“너!”
양 부인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밖에 있는 손님들이 들을 까봐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녀가 내 옆에 있는 남궁가희 언니를 쳐다보며 해명하듯이 말했다.
“딸아이가 섭섭한 마음에 없던 사실마저 이야기하며 토로하는 것 같은데, 어느 귀한 집의 따님인지 모르겠지만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오해할 것도 없어요. 이미 언니도 알고 있으니까요.”
“섭섭한 게 있으면 이 어미에게 따로 이야기해다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손님들이 있는 곳에서 이런 식으로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란다.”
거짓말?
정말 양심도 없는 여자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자신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 사실을 대놓고 거짓으로 몰아가다니 말이다.
잘됐다.
안 그래도 연을 끊으려고 했는데 이 참에 확실하게 끝내야 겠다.
“아아 제 말이 거짓말이라고요? 그럼 더 이상 해독약은 필요없나 보죠?”
“해독약?”
“오라버니에게 사실을 전부 밝히고서 스스로 독까지 복용했다고 들었는데?”
이런 나의 말에 양 부인이 입 꼬리를 올리더니 말했다.
“독이라니? 대체 무슨 독을 말하는 것이냐?”
시치미를 떼는 그녀의 말에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해독약을 구한 모양이다.
하긴 독에 당한지 그리 오래 되었는데, 나름 호남성에서 형산파와 더불어 최고의 규모를 자랑하는 익양소가의 대마님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리가 없었다.
한데 내가 누구 동생일 것 같아?
“아아. 해독약의 비법이라도 알아내신 것 같네요. 그런데 오라버니가 말하던데 어설프게 제조한 해독약을 먹게 되면 시간이 흐를수록 발목 부분부터 피부가 조금씩 누렇게 변색되면서 살이 썩는다고 하더군요.”
그런 나의 말에 양 부인이 순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밑으로 내렸다.
그리고는 순간 아차 싶었는지 고개를 들어올렸다.
이에 나는 혀를 차며 말했다.
“독에 중독된 적도 없는 사람이 제 말을 의식해서 발목 쪽을 쳐다볼 리가 없겠죠?”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시미치 떼도 소용없어요. 그리고 당신이 이렇게 오라버니의 명성을 이용하는 사실을 오라버니가 알게 된다면 가만둘 것 같아요?”
그 말에 양 부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확실히 오라버니가 두렵긴 두렵나 보다.
그런 작자가 오라버니 명성을 이용해서 자신의 사익을 채우려고 들다니.
나는 아무 말을 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경고했다.
“다시는 오라버니의 명성으로 뭔가를 해볼 생각하지 마세요. 계속 그런다면 오라버니가 아니라 제가 용서하지 않을 거니까요.”
“뭐?”
양 부인이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음 같아서는 저 가증스러운 얼굴에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지만 나는 정도 무림 연맹의 봉황당의 부당주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는 자를 때릴 순 없다.
그러니 할 말이라도 다 해야겠다.
“그리고 저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당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에요. 앞으로 당신 멋대로 제 혼사를 정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세요.”
“네가 감히!”
“뭐가 감히라는 거죠? 제가 못할 말이라도 했나요?”
“첩의 소생을 기껏 먹여주고 키워줬…..”
-짝!
“악!”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뺨을 날렸다.
정파의 뭐고 간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뺨을 맞은 양 부인이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그녀 역시도 더 이상 접객실 바깥이나 나와 같이 온 남궁가희 언니를 개의치 않고 소리쳤다.
“이런 천한…..”
-짝!
나는 그녀의 반대쪽 뺨을 날렸다.
뺨이 우측으로 돌아간 그녀에게 다가가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양 부인.”
“너! 너!”
“당신이 뭔가 간과하고 있는게 있는데, 아직도 우리 어머니가 소가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던 시종 출신인 줄 아나 보죠?”
이런 나의 말에 양 부인의 말문이 막혔다.
오라버니만 신경 쓴다고 나도 한 배에서 낳은 자식이라는 것을 잊었나보다.
어머니는 무쌍성 성주의 아내였고 비월영종의 종주인 외조부의 하나뿐인 딸이다.
내 신분은 고작 지방에서 조금 명성을 떨치는 호족에 불과한 조곡양가 출신의 그녀가 폄하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다.
나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안 그래도 외조부와 무쌍성의 성주님께서 벼르고 있는데, 계속 이런 식으로 명분을 준다면이야 나야 좋은 일이죠. 계속 이렇게만 살아주세요.”
“무…무쌍성…..”
이 말에 양 부인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몸을 파르르 떨었다.
잔뜩 위축된 그녀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한결 풀렸다.
“언니 가요.”
나는 현실을 깨닫고서 얼어버린 그녀를 내버려두고서 밖으로 나갔다.
뒤따라온 남궁가희 언니가 내게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 영 매한테 이런 면이 있는 줄 처음 알았는데.”
“보기 흉했죠?”
“아니. 완전 속 시원하던데.”
“정말요? 전 언니한테 콩가루 집안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부끄러웠는 걸요.”
“뭐가 콩가루야. 영 매한테는 세상에서 제일 멋진 오라버니와 무림을 주름잡는 새 언니들이 있잖아.”
이렇게 말해주니 언니가 너무 고마웠다.
기분이 좋아져서 그녀에게 말했다.
“언니가 새 언니여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 나의 말에 남궁가희 언니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으음…..사양할게. 네 새 언니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어.”
솔직한 그녀였다.
나라고 해도 경쟁자들이 그런 괴물들이라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어쨌거나 그 여자에게 경고를 했으니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본인의 자유다.
후환이 두렵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럼 이제 가주를 뵈러 갈거야?”
“그 전에 짐부터 가지러 가야 할 것 같아요.”
데려온 표국 사람들에게 짐을 먼저 맡겨서 무쌍성으로 보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가주를 뵙고 곧장 소가를 떠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 *
손양 표국에 어머니의 베틀과 짐을 맡기고 필요없는 물건들을 처분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부리나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같이 정리를 도와주고 있던 남궁가희 언니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누군데 저렇게 무섭게 오는 거야?”
그녀의 말대로 다가오는 자는 아주 죽일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익양 소가의 둘째인 소장윤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인데 반가운 게 아니라 역할 정도로 속에서 짜증이 올라왔다.
전각을 넘어온 소장윤이 내게 소리쳤다.
“소영영!”
“하아.”
절로 한숨이 나온다.
저리 골이 잔뜩 나서 온 걸 보니, 내가 작약당에 갔던 일 때문인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 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어머니한테 뭐라고 지껄였기에 네가 들렸다가 나간 후로 또 쓰러진 것이냐?”
쓰러졌다고?
어지간히 심신이 미약한가 보다.
하긴 예전부터도 화가 나면 끙끙 앓는 사람이기는 했다.
그런데 녀석만 온 게 아니었다.
전각을 넘어서 또 한 사람의 청년이 오고 있었는데, 그는 소가의 장남인 소영현이었다.
소영현도 나를 보자마자 불쾌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님께 뭐라고 한 것이냐?”
그 역시도 내게 이걸 따지러 왔다.
이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들 형제들에게 말했다.
“나중에 양 부인이 깨거든 직접 물어보세요.”
이런 나의 말에 장남 소영현이 한쪽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차남 소장윤은 처음부터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기에 내 말에 곧장 화를 냈다.
“이년이 운휘 그놈을 믿고 방자하기 짝이 없구나! 지금 이곳에는 그놈이 없다는 걸….”
“그만.”
그런 소장윤을 소영현이 만류했다.
그래도 형이랍시고 어느 정도 상황 판단이 가는가 싶었는데, 그의 시선이 남궁가희 언니에게로 향해 있었다.
소영현이 언니에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혹시 봉황당의 당주이신 남궁가희 소저가 아니십니까?”
언니도 가볍게 포권을 취하며 답했다.
“네. 남궁가희입니다.”
“남궁세가?”
소장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 곁에 있는 언니가 무림 연맹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오대세가 출신인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반면 소영현은 그래도 무림 연맹에 왔던 적이 있어서 언니를 알아보았다.
“이렇게 삼봉 중 백도화(白桃華)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의 부드러운 말투를 들으니 알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접선하던 모용세가나 제갈세가 쪽 모두 잘 안될 걸로 알고 있다.
그런 와중에 정도 무림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미녀에 최고의 명문 무가의 영애인 언니를 보니 눈이 돌아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아. 네.”
그는 언니의 관심대상이 아니었다.
내게서 이 두 형제가 얼마나 어릴 적부터 못된 짓거리를 해왔는지 들었는데, 관심이 가겠는가.
그녀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냉랭함에 소영현이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눈치가 없진 않나 보다.
이에 나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약이 올랐는지 인상이 무섭게 일그러지던 소영현이 이내 내게 뭔가를 말하려고 했다.
“너 대체 남궁 소저에게 어떤 식으로 거짓 유언비어….”
“하! 거짓? 양 부인도 그렇지만 당신들도 염치가 없기는 마찬가지군요.”
“양 부인? 당신들?”
“그럼 뭐라 부를까요? 너희들이라고 할까요?”
“…….제 오라버니들을 그런 식으로 함부로 부르다니, 네 사문인 형산파와 무림 연맹에서 이런 네 모습을 본다면 어찌 생각할지…..”
“그쪽에서 어찌 생각할지 당신이 무슨 상관인데요.”
“이년이!”
다소 체면을 차리는 소영현과 달리 화를 참지 못한 차남 소장윤이 결국 내게 손을 뻗었다.
어릴 적에는 나와 오라버니에게 걸핏하면 손찌검을 했던 그였다.
그런데 그가 하나 착각하는 게 있다.
“흥!”
-파파팍!
가문의 무공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머저리인 그가 형산여협의 수제자이고 무림 연맹의 여자 후기지수들 중에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내 상대가 될 리가 만무했다.
순식간에 녀석의 손을 피한 나는 형산파의 금나수 수법으로 손목을 잡고서 단번에 뒤로 꺾어버리고 말았다.
“끄악! 놔, 놔라!”
“어디서 이년, 저년이야. 그리고 오라버니가 아니더라도 너 따위 제압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일 것 같아?”
착각은 자유다.
그 동안 네가 무서워서 참았던 것 같아.
어렸을 때는 오라버니를 위해서 참았던 거고 커서는 네놈들이 양 부인이나 외가를 등에 업고서 함부로 해대니 참은 것뿐이다.
“놔! 놓으라고!”
“왜 안 놓으면 외가댁에 이르기라도 할 거야?”
“끄으 이 망할 계집이….”
“그만!”
동생인 소장윤이 고통스러워하자 소영현이 내게 소리쳤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더욱 힘을 가했다.
조금만 더 비틀면 손목뿐만이 아니라 팔꿈치도 부러질 것이다.
“정말 손을 쓰게 만드는 구나!”
소영현이 내게 신형을 날리려 했다.
그때 사자후와 같은 커다란 외침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그만!!!”
모두가 화들짝 놀라서 그곳을 바라보았다.
전각 앞으로 뒷짐을 지고서 가신들과 함께 서있는 가주 소익헌이 보였다.
‘더 강해진 건가?’
나는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목소리에 실린 정기만 보더라도 가주의 내공이 전보다 강해졌다.
오라버니와 거래해서 소동패검의 모든 검식을 전수받았다고 하더니, 이런 기세라면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걸지도 몰랐다.
“이게 무슨 소란이느냐?”
“아, 아버지…..”
소장윤이 쪽이 팔렸는지 얼굴을 붉히며 그를 불렀다.
가주마저 나타나자 인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지 언니도 황급히 포권을 취했다.
“무림 연맹 봉황당의 당주 남궁가희가 익양소가의 가주를 뵙습니다.”
“남궁세가?”
남궁세가라는 말에 가주의 표정이 바뀌었다.
확실히 오대 세가의 명성이 대단하기는 한 것 같다.
내가 봐왔던 가주는 오대세가나 구파일방 정도의 명성을 가진 대문파, 명문 정파의 사람들이 아니면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인정을 안한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남궁세가의 영애께서 이곳에 방문하다니 반갑구려.”
가주가 가볍게 포권을 취하고서 다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당장 네 오라버니를 놓아주거라. 남궁세가의 영애가 보는 앞에서 이게 무슨 짓이느냐?”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물어봐야 하지 않나요? 그리고 언제부터 이 사람이 제 오라버니가 되었죠? 운휘 오라버니나 저한테는 소가의 도련님이 아니었던가요?”
처음으로 내 감정을 솔직히 드러냈다.
이에 가주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졌다.
“……투정이 지나치구나. 남매 간에도 엄연히 위아래가 있는 법인데 어찌 이리 함부로 구는 것이냐?”
지켜보는 객들이 많다고 체면을 차리는 가주였다.
하지만 여기서 끝낼 거라면 시작도 하지 않았죠.
-팍!
“큭!”
나는 거칠게 소장윤의 꺾었던 팔을 놓아주며 가주에게 포권을 취하며 인사했다.
“직접 찾아뵈려고 했는데 이렇게 직접 별채까지 왕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날이 잔뜩 서있는 내 목소리에 가주가 말했다.
“불만이 가득하구나.”
“네. 가득하지요. 언제부터 오라버니나 저를 자식으로 인정했다고, 오라버니의 명성을 이용해서 주변 상단과 무가들에게서 공물들을 취하게 된 거죠?”
“그건…..”
나의 물음에 가주의 말문이 막혔다.
반응을 보아하니 양 부인이 오라버니의 명성을 이용한 것을 알면서도 용인한 것 같다.
또 가문을 위해서라는 자신만의 명분을 내세우며 납득했겠지.
나는 가주에게 곧장 본론을 꺼냈다.
“직접 찾아뵈려 했는데, 이렇게 오셨으니 말씀드릴게요. 저도 운휘 오라버니처럼 오늘부로 익양소가와 연을 끊으려고 합니다.”
“뭐?”
이런 나의 말에 가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설마 내가 가문과 연을 끊겠다고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나 보다.
잠시 말문이 막혔던 가주가 노기를 겨우 가라앉히며 입술을 뗐다.
“…….너는 내 딸이다.”
“오라버니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딸로서 살아본 기억은 없는걸요.”
“어찌 그런 소리를……”
“양 부인의 눈치를 본다고 오라버니나 제게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건네본 적이 있었나요?”
“그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더욱 냉담해지셨죠.”
부정할 수 없는지 가주가 차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어째서 이런 남자를 좋아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품속에 있던 익양소가의 가문 패를 넘기며 말했다.
“그럼 가주께서도 동의하신 걸로 알겠….”
“동의할 수 없다!”
“네?”
“너는 네 어미와 나를 이어주는 유일한 흔적이다. 그것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런 가주의 말에 나는 기가 찼다.
처음부터 양 부인이나 이들 형제들 앞에서도 그리 말했으면 되지 않았나?
이들 외가의 눈치를 본다고 한 번도 따뜻한 말조차 꺼내지 않았던 자가 이제 와서 새삼 아버지라고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미 끝났어요.”
-쿵!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주가 진각을 밟았다.
바닥이 갈라지며 깊게 패였다.
“정 부녀의 연을 끊고 싶다면 무림인답게 이 애비를 힘으로 이겨보거라. 그렇다면 연을 끊는 것을 인정해주마.”
“하! 좀 억지 같은데요.”
“부모와 자식은 천륜이라 했거늘. 너 역시도 억지로 그 천륜을 거스르려고 하니, 이게 무엇이 억지라는 것이냐?”
어지간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붙들려고 하다니 말이다.
차라리 설득하는 것만도 못하다.
그럼에도 가주는 결연에 찬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네 어미가 내 부인이라는 것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이 애비를 힘으로 꺾을 자신이 없다면 그런 식으로 가문에 먹칠을 하는 것을 그만….”
바로 그때였다.
“누가 부인이라는 게야!”
어딘가에서 쩌렁쩌렁한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백발이 성성한 흰 수염의 노인이 노기가 서린 얼굴로 서있었다.
“외조부!”
노인은 다름 아닌 외조부 하성운이었다.
무쌍성 비월영종의 종주이자 한때 비월검객으로 명성을 떨쳤던 그였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외조부를 보는 순간 나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부리나케 뛰어갔다.
“외조부!”
“어이쿠 욘석.”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던 외조부가 인자한 얼굴로 바뀌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떻게 오신 거예요?”
“우리 영영이의 얼굴도 보고 겸사겸사 익양 소가와의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왔지.”
“아!”
어쩐지 공교로웠다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외조부께선 몸을 정양하고 무공을 회복하기 위해서 참아왔지만 그동안 벼뤄왔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외조부라니?”
가주가 당혹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여태껏 어머니의 아버지, 즉 외조부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모양이다.
잠시 어쩔 줄 몰라 하던 가주가 외조부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정말 하령의 부친이십니까?”
그런 그의 말에 외조부가 다시 노기에 서린 얼굴로 다그쳤다.
“어디서 감히 내 딸 아이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겐가!”
“어르신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저는 하령의 남편….”
-고오오오오!
그 순간 어디선가 휘몰아치는 거대한 기운에 가주가 말을 하던 것을 멈췄다.
그리고 외조부의 뒤편에 죽립을 쓰고 있던 자를 바라보았다.
그에게서 몰아치는 기운은 그야말로 폭풍과도 같았다.
‘아!’
나는 그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하지만 장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기가 질렸는지 창백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죽립인이 쓰고 있던 죽립을 벗으며 입을 열었다.
“소 가주. 그대에겐 하령의 남편을 운운할 자격이 없소.”
그는 바로 무정풍신 진성백이었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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