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35
17화 대주 (1)
육혈곡에서 광장(廣場)이라고 불리는 큰 터가 있다.
이곳은 육혈곡 내의 모든 훈련장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평소에는 절대로 가득 찰 일이 없는 곳이지만 지금은 생도들과 혈교의 무사들로 붐비고 있었다.
“똑바로 서라!”
“충!”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들리는 군기가 바짝 든 외침.
1년 간의 훈련 끝에 훈련 생도들은 혈교의 무사들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우측부터 상의의 등쪽에 상(上)이라 적힌 상급 수련 생도.
가운데에는 중(中)이라 적힌 중급 수련 생도.
마지막 좌측에는 하(下)라고 적힌 수련 생도들이 오열을 갖춰서 서있었다.
“좋군.”
단상 위에 서있는 육혈곡의 총책임자인 패혈 단주 구상웅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수련 생도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쪽에는 패혈 단주 산하의 다섯 대주들이 있었다.
그들 중 세 명이나 새로운 얼굴로 바뀌었다.
한 명은 행방불명, 그리고 두 명은 귀인을 습격했다는 죄로 처형되었다.
“지금부터 직위 시험에 관한 설명을 하겠다.”
구상웅이 내공을 실은 목소리로 수련 생도들에게 직위 시험에 관한 설명을 시작했다.
직위 시험은 이러했다.
모든 수련 생도들은 그동안 배운 혈교의 기본 권각술인 혈마권(血魔拳)을 연무한다.
그리고 합공 진법인 육진(六陣), 십이진(十二陣) 삼십육진(三十六陣)을 본다.
이 과정을 수행하게 되면 하급 무사의 직위를 받을 수 있다.
“하급 무사를 통과한 자들 중에서 각 대주들에게 보고 받은 인원은 중급 무사 직위 시험을 치른다.”
중급 무사 직위 시험.
중급 무사는 이류 무사, 즉 내공을 활용하는 시험이다.
하급 무사들 대다수는 무림에서 삼류라고 불리는 수준이었는데, 그들의 상당수는 내공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거나, 익혔더라도 고작 1~2년 정도밖에 쌓지 못했다.
반면 중급 무사로 인정받으려면 적어도 10년에 이르는 내공을 쌓았다는 것을 인증해야 한다.
이를 확인할 가장 쉬운 방법이 격세석이다.
격세석은 내공을 실어야만 흔적을 남길 수 있을 만큼 단단한 돌이었다.
“돌에 흔적을 남기는 것은 기본이다.”
그리고 혈교의 중급 무사들과 대련을 하게 된다.
이들과 30초식 이상을 겨뤄서 버틸 수 있게 된다면 중급 무사의 직위를 받는다.
-우드득!
단상 앞쪽에 있는 중급 무사들이 몸을 풀면서 대기 중이었다.
그들 역시도 이런 과정을 겪고서 중급 무사가 되었다.
하급 무사들과 달리 중급 무사가 되면 보직을 배정 받은 곳에서 1년간의 추가 훈련을 통해 혈교의 기본 권각술의 상위 무공과 활과 기마술(騎馬術)을 배우게 된다.
“와아아아아아!”
구상웅의 설명에 수련 생도들이 함성을 질렀다.
물론 함성을 지른 이들은 중급 무사를 노리는 생도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상급 무사다. 이번 상급 수련 생도들 중에서 상급 무사의 직위 시험을 보는 자들은…..호오. 총 여섯 명이군.”
구상웅이 제법이라는 듯이 대주들 중에 한 명을 쳐다보았다.
짙은 눈썹에 유엽도를 차고 있는 그는 상급 수련 생도들을 담당하고 있는 대주였다.
“나쁘지 않군.”
대주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중원 곳곳에 육혈곡과 같은 신입 혈교 무사들을 양성하는 장소가 세 곳이 더 있는데, 여섯 명이나 되는 상급 무사 후보라면 괜찮은 성과였다.
‘잘 키운 일류 고수는 혼자서 훈련된 병정 수십 명도 너끈히 상대할 수 있지.’
이런 일류 고수를 양성하는 것은 혈교가 아니라 어떠한 문파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여섯 명의 후보자가 나온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보통은 한곳에서 세네 명 정도 나올까 말까였다.
“누구지?”
구상웅의 물음에 상급 수련 생도들 중에 다섯 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련 생도 이규!”
“수련 생도 하문찬!”
“수련 생도 조성원!”
“수련 생도…..”
차례대로 외치는 그들을 보면서 구상웅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뒤편을 바라보았다.
수련 생도들의 뒤쪽에 관람을 하듯이 지켜보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저들은 사존과 칠혈성들이 보낸 단주들로 이번 수련 생도들 중에 쓸 만한 자들을 발탁하기 위해서 온 이들이었다.
대개는 중급 무사 이상의 직위를 부여받은 자들은 저들에게 발탁되곤 한다.
‘치열하게 다투겠군.’
상급 무사를 발탁하는 것은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각 간부들은 많은 일류 고수를 보유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저들을 섭외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상급 무사들의 혜택이기도 하다.
중급, 하급 무사들과 달리 상급 무사들은 자신의 보직을 선택할 수 있다.
그래야 발탁자들 간의 싸움이 벌어지지 않기도 하다.
‘어느 쪽에서 괜찮은 녀석들을 확보할 수 있을까?’
대주 시절에도 지켜봤지만 이 발탁식이 가장 재미있는 순간이었다.
보통은 각 파벌을 존중한다고 최대 두 명 이상을 발탁하지 않는데, 간혹 욕심을 부리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이때가 각 파벌의 알력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자 그럼 직위 시험을 시작하겠다!”
구상웅의 외침과 함께 수련 생도들의 직위 시험이 시작되었다.
반 시진에 걸쳐서 혈마권과 진법의 연무가 끝났다.
백여섯 명의 수련 생도들 중에서 하급 수련 생도로 확정된 이들은 쉰일곱 명이었다.
하급 수련 생도들 중에 단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하급 무사로 확정되었다.
“자 그럼. 중급 무사 직위 시험을 시작하겠다.”
중급 무사 직위 시험을 치르는 자들은 총 마흔아홉 명이었다.
격세석에 흔적을 남기는 시험에서 여덟 명이 탈락했다.
그들은 하급 무사로 떨어졌다.
“쯧쯧.”
혀를 차는 패혈 단주 구상웅을 보면서 중급 무사들을 담당했던 대주 해옥선의 속이 들끓었다.
다행히 다른 중급 수련 생도들은 흔적을 남기는데 성공했다.
상급 수련 생도들은 애초에 내공 자체가 달랐기 때문에 격세석에 보기 좋게 흔적들을 남겨 뒤에서 지켜보는 각 파벌의 단주들의 관심을 끌었다.
“중급 무사들은 나와라.”
-우르르르!
다음 진행된 것은 남은 마흔한 명의 대련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중급 무사와의 대련에서 30초식을 버틴 자들은 총 서른일곱 명이었다.
탈락한 네 명은 하급 무사로 떨어졌다.
“기회를 주십쇼!”
“단주님!”
애원을 해도 소용없었다.
격세석에 흔적을 남겼다고 해서 봐주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직위 시험은 철저하게 진행되었다.
“확정자가 서른일곱이라 나쁘지 않군.”
이류 수준의 중급 무사가 서른일곱 명으로 확정되었다.
이들은 일 년 간의 훈련을 받게 되면 완연한 중급 무사로 거듭날 것이다.
“이제 상급 무사 직위 시험만 남은 건가.”
진행되기까지 두 시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직위 시험이 벌써 정오를 향해가고 있었다.
이런 기세라면 점심 전에 직위 시험이 완료될 분위기였다.
“자. 그럼 상급 무사 직위 시험을 시작….”
시험의 시작을 알리려던 구상웅의 시선이 어딘가로 향했다.
그것은 대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육혈당의 본당 쪽에서 한 무리의 인원이 오고 있었는데, 그들은 육혈성 혈수마녀 한백하와 그 문하의 제자들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구상웅은 뭔가 일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단주. 저쪽에….”
해옥선의 가르키는 곳을 구상웅이 쳐다보았다.
육혈당 본당의 반대편 쪽에서 또 다른 이들이 오는 것이 보였다.
‘하……’
호피로 만든 옷을 입은 거구의 야인이 보였다.
그는 사존 기기괴괴 해악천이었다.
멀리서 봐도 그라는 것 정도는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그 뒤에는 해악천 만큼은 아니지만 보통 성인들보다 머리 하나 만큼은 더 큰 송좌백, 송우현 쌍둥이와 소운휘가 따르고 있었다.
* * *
-주목 제대로 받았는데.
‘그렇네.’
제대로 튀어버린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등장하니 모두의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수련 생도들부터 광장 내에 있는 모든 혈교의 무사들이 우리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얘는 되게 좋아하는데.
내 옆에 있는 송좌백은 이런 관심을 즐기기라도 하듯이 입 꼬리가 헤벌쭉 올라가 있었다.
반면 동생인 송우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갔다.
해악천이 짜증스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망할 계집이 똑같은 짓거리를 하는군.”
해악천의 시선은 본당 쪽에서 오고 있는 혈수마녀와 그 무리로 향하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심기가 불편한 이유는 간단했다.
혈수마녀 한백하가 그와 같은 방식을 취했기 때문이었다.
[앞에 중하급 직위 시험은 생략하고 들어간다.] [네?] [아무리 그래도 네놈들은 본좌의 제자다. 중하급 시험부터 일일이 치르게 할 만큼 허투루 가르치지 않았다.]이곳으로 오기 전에 해악천이 한 말이었다.
자존심이 있었는지 하급, 중급 무사 시험은 생략하자고 한 그였다.
그런데 혈수마녀 한백하도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상급 무사 시험이 시작되려고 하자, 제자로 거둔 담예화를 데리고 온 것을 보면 말이다.
“본좌의 얼굴에 먹칠하면 각오해라.”
해악천이 괜히 그 신경질을 우리들에게 풀었다.
일 년이나 이런 모습을 봐왔기 때문에 익숙해져 있었다.
-얘는 아닌가 본데.
헤벌쭉 거리던 송좌백의 표정이 굳어졌다.
충분히 이해한다.
같이 훈련받으면서 살아있는 게 용할 정도로 두드려 맞는 모습을 한 달에 한 번 꼴로 본 것 같다.
진혈금체를 위한 추궁과혈이라고 했는데, 말이 추궁과혈이지 무차별 주먹찜질이었다.
-그때 기억나지 않아?
‘뭐?’
-진혈금체 운기법 가르쳐준 거 들켰을 때?
‘아아.’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들켰었다.
몰랐는데 진혈금체를 운기하게 되면 피부로 열상 현상이라는 것이 남았는데, 붉게 물든 피부를 보고서 해악천이 눈치 채고 말았다.
그 덕분에 나와 녀석은 두드려 맞은 것도 모자라 근 반나절을 절벽에 매달려 있어야 했다.
그때의 기억이 뿌리까지 각인되었는지, 송좌백 녀석은 절대로 해악천이 하는 말을 어기지 않았다.
-너도 마찬가지였으면서 뭘.
그럼 겁을 안 먹게 생겼냐.
무공과 수련에 관해서 해악천의 가르침은 지옥을 연상케 했다.
검술에 대한 조언 정도만 해줄 거라고 여겼는데, 거의 반나절 가까이를 쌍둥이들과 외공 연마를 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사람을 굴려댔다.
-덕분에 강인한 근육을 얻게 되었지.
인정한다.
쌍둥이 녀석들만큼은 아니지만 내 근육 역시도 돌멩이처럼 단단해졌다.
소담검과 대화하는 사이에 우리는 단상 앞에 도착했다.
“혈세! 혈세! 혈혈세!”
단상 위에 있던 패혈 단주 구상웅과 다섯 대주들이 내려와 해악천에게 예를 취했다.
그리고 다음 서열인 혈수마녀 한백하에게 목례를 했다.
한백하 역시도 해악천에게 포권을 하며 인사했다.
“사존을 뵙습니다.”
양측 사이에서 구상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두 분께서 어쩐 일로 직위 시험을 하는 현장까지 오셨는지…..”
“클클, 왜 왔겠느냐.”
“네?”
“제자 녀석들을 직위 시험에 치르게 하러 왔느니라.”
해악천이 큼지막한 손으로 우리를 소개하듯이 가리켰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구 단주.”
한백하가 자신의 옆에 있는 담예화를 앞에 세웠다.
여섯 달 만에 봤는데 그녀는 그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좀 더 성숙해졌고 그때는 쑥스러움이 많은 소녀와 같았다면 지금은 눈빛에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다.
“가지가지 하는군.”
해악천이 한백하를 보면서 혀를 찼다.
그것을 여유롭게 넘긴 한백하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패혈 단주 구상웅에게 말했다.
“조금 늦었지만 다행히 막 상급 무사 직위 시험을 진행하려는 것 같으니, 이 아이도 함께 진행할 수 있겠죠?”
“……상급 무사 직위 시험을 말입니까?”
“네.”
그런 그녀의 말에 구상웅이 난처함을 금치 못했다.
도중에 난입해서 상급 무사 직위 시험부터 치르게 해달라고 하니,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나 역시도 처음부터 시험을 치르게 할 줄 알았다.
이런걸 보면 뒷배가 중요하다는 말이 실감 되었다.
“되는 거야? 안 되는 거야?”
머뭇거리는 구상웅에게 해악천이 윽박을 하다시피 몰아붙였다.
이에 난처해하던 구상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르신과 육혈성의 제자 분이라면 당연히 중하급 직위 시험 정도는 가볍게 통과하실 수 있을 겁니다.”
“클클, 당연한 소리를 하는 구나.”
해악천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그에게 구상웅이 목소리를 낮추고서 말했다.
“한데 어르신. 지금 이 자리에는 수련 생도들뿐만 아니라, 다른 어르신들과 칠혈성 소속의 단주들 또한 발탁을 위해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뭐야?”
구상웅의 눈짓으로 가리킨 곳을 쳐다보니, 광장의 끝 편에 열 명의 사내들이 서있었다.
저들이 사존과 칠혈성 소속의 단주들인 듯 했다.
해악천이 쳐다보자 그들이 화들짝 놀라서 동시에 포권을 취하며 예를 갖췄다.
“혈세! 혈세! 혈혈세!”
단주 급들 정도 되니까 멀리서 외치는 대로 또렷하게 들렸다.
멀리서 긴가민가하다가 이제 알아차린 듯 했다.
“저 녀석들이 어쨌다는 게냐?”
그런 걸 신경 쓸 해악천이 아니었다.
심드렁한 그의 반응에 구상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보는 눈이 많으니, 제자 분들이 기본적인 자격을 갖췄다는 것 정도는 인증하시는 것이 어떠신지?”
“뭐야?”
해악천이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화를 내려고 하자, 한백하가 끼어들었다.
“어르신. 구 단주의 말도 일리는 있습니다. 그는 육혈곡의 곡주로서 본교의 율법대로 일을 처리하고자 하는 것이니, 일단 그의 말을 전부 들어보는 게 어떨까요?”
“흥. 사돈 남 말하는 격이로군.”
해악천이 혀를 찼다.
“그래서 뭘 어떻게 인증하라는 게냐?”
해악천의 물음에 구상웅이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중급 무사 직위 시험 때 썼던 격세석이 세워져 있었다.
“상급 무사 직위 시험을 치를 자격이 있다는 것을 제자 분들께서 증명한다면 절차를 다소 생략하더라도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겁니다.”
말인 즉 최소한의 내공이라도 증명하라는 소리였다.
그런 그의 말에 혈수마녀 한백하의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별로 어려울 것도 없다는 듯 했다.
“구 단주의 체면을 봐서라도 이 정도는 해야 할 것 같군요. 예화야.”
“네. 스승님.”
한백하가 고개 짓으로 격세석을 가리켰다.
스승의 뜻을 알아차린 그녀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격세석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호흡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러자 담예화의 두 손이 옅지만 붉게 물들어갔다.
‘혈옥수.’
고작 여섯 달 밖에 익히지 않았는데 성취가 보통이 아니었다.
듣기로 혈옥수는 익히면 익힐수록 그 색이 진해진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혈수마녀가 담예화를 제자로 받았는지 알 것 같다.
“합!”
그녀가 짧은 기합과 함께 격세석을 두 손바닥으로 쳤다.
-쩌저저적!
담예화의 혈옥수가 닿은 부분에 선명한 손바닥 자국과 함께 격세석에 금이 갔다.
“우오오!”
이를 지켜보고 있는 수련 생도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격세석의 흔적들을 보면 여태껏 저 정도의 성취를 보인 자는 아무도 없었다.
대주들 역시도 꽤 놀란 눈치였다.
담예화가 다시 이곳으로 걸어와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부끄럽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혈수마녀 한백하가 흡족한 얼굴로 담예화를 한 번 바라보고는 패혈 단주 구상웅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이 정도면 증명이 됐나요? 구 단주.”
“충분합니다. 정말 자질이 뛰어난 제자 분을 두었습니다. 육혈성. 고작 여섯 달 만에 이렇게 이런 성취를 이루다니요.”
구상웅 역시도 놀랐는지 담예화를 칭찬했다.
한백하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해악천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흥!”
해악천이 콧방귀를 뀌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전음이 내 귓가를 울렸다.
[본좌의 체면에 금이 가게 하면 각오해라.]아……
체면에 금이 안 가게 하려면 어떡해야 할까?
적어도 담예화보다는 더한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말인가.
“안 나가고 뭐하는 게야!”
해악천의 재촉에 나는 포권을 취하고서 격세석 앞으로 걸어갔다.
담예화의 손바닥 자국이 아직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회귀 전에는 중급 무사 직위 시험조차 치르지 못해서 어느 정도 공력을 사용해야 이 정도 이상의 성취를 보일지 감이 오지 않는다.
-내공으로 할 거지?
‘그래.’
어차피 선천진기는 비장의 무기였다.
지금은 내공만으로 성취를 보여야 한다.
나는 천천히 주먹을 움켜쥐고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
그리고 공력을 끌어올렸다.
괜히 힘을 아끼다가 격세석에 충격도 못줄 수도 있으니까.
‘팔성으로.’
“합!”
격세석을 향해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팔성의 공력이라면 과연 얼마만큼 격세석에 충격을 줄 수 있을까?
-콰드득!
그 순간 내 주먹이 격세석을 파고들었다.
‘엇?’
격세석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엄청 단단하거나 하지 않았다.
이렇게나 파고들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거의 주먹의 반이 들어갔다.
뭔가 조용해진 느낌에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았다.
‘!!!’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혈수마녀 한백하의 미간에 주름이 가있었다.
반면 해악천의 입 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기준점에 잘 맞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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