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351
3화 그를 찾는 이들 (1) >
충격을 받은 듯 비틀거리는 운휘의 외조부 하성운.
그의 이런 반응에 백혜향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운휘에게 이 정보를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딱히 괘념치 않았었지만, 이것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귓가를 울리는 삼존 서갈마의 전음에 백혜향은 콧방귀를 뀌었다.
“흥!”
설백의 요리 솜씨에 넋이 나가서 하던 조언도 잊고 있던 그가 아니었던가.
이 일만 마무리되면 확실히 대가를 치르게 할 작정이었다.
이런 그녀의 심중을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서갈마가 오한이 든 것 마냥 몸을 파르르 떨었다.
‘어쨌거나 곤란하게 되었군. 얼음 계집.’
살아온 세월이 발목을 잡아버렸다.
며느리가 될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나이이거나 한 두 해만 더 살았어도 꺼려질 판국이다.
한데 그녀는 한 가문의 조상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살아왔다.
과연 진성백이 며느리로 받아들일까?
‘너!’
설백은 자신의 비밀을 폭로한 백혜향에게 크게 분노했다.
당장이라도 빙백신공의 절초를 펼쳐 본때를 보여주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어떻게든 이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저 아버님……”
설백이 조심스럽게 진성백을 불렀다.
장인어른인 하성운을 부축하고 있던 그가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눈빛에는 난처함으로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삼백 살이 넘는다면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난감했다.
잠시 고민하던 진성백이 입을 열었다.
“……노선배.”
‘!?’
“아아.”
설백은 순간 뒷골이 당겨왔다.
시아버지로 모시려는 사람의 입에서 노선배라는 말이 나오니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다.
말문이 막혔었지만 심기일전으로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님…..”
“송구하오만 노선배께서 무슨 의도로 내 아들에게 접근한 건지 알 수 없구려.”
“………”
설백의 표정이 굳어졌다.
한순간에 자신이 마치 순진무구한 아이를 꾀어낸 것처럼 되어버렸다.
그 아이가 현 무림의 정점이라 불리는 사내인데 말이다.
“오해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상공을 좋아합니다.”
“하아……”
진심이 담긴 목소리와 눈빛에 진성백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정말로 좋아한단 말인가?
거짓말은 아닐 지도 모른다.
이렇게까지 자신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걸 보면 말이다.
다만 너무 나이 차가 심했다.
운휘의 외조부인 장인어른 하성운조차 그녀에게 있어서 아이나 다름없었다.
가문의 어른들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배분인데 어찌 며느리로 삼을 수 있단 말인가.
진성백은 여기서 강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여겼다.
“노선배와 우리 아이는 살아온 세월의 차가 너무 크오. 당장에는 좋아하는 마음이 더 클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현실에 부딪치게 될 것이오.”
“아버님!”
“솔직히 말하면 노선배께서 본인을 아버님이라 부르는 것도 굉장히 부담되고 있소.”
냉담하게 끊어내려 하는 진성백.
그런 그의 의도를 읽어낸 설백이 머리를 굴렸다.
뭐라고 설득해야 그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녀가 말했다.
“…….아버님의 말씀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나 누가 언제 죽을지 모를 무림에서 나이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무림인으로서야 그렇겠지만 이건 가족의 일이오.”
“가족?”
“어느 며느리가 시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을 수 있단 말이오?”
“……..”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설득될 판국이었다.
말문이 막힌 그녀에게 진성백이 탄식을 내뱉으며 말했다.
“노선배 부디…..”
“제발 상공과 헤어지라는 말만 하지 말아주세요. 아버님. 그리고 저를 노선배라고 부르지 말았으면 합니다.”
이죽거리는 백혜향의 전음에 설백의 눈동자가 싸늘해졌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처음으로 후회가 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빨리 힘으로 백혜향을 억누를 걸 하고 말이다.
그러나 후회해봐야 늦었다.
‘설득도 안 되는데 어쩌지?’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이 바뀐 진성백과 하성운을 빤히 바라보던 설백은 고민에 빠졌다.
그렇다고 울고 불며 붙잡고 늘어질 수 없지 않은가.
‘아!’
순간 설백은 이거다 싶었다.
자존심이 강한 백혜향과 다르게 설백은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감정 조절에 능숙해졌다.
그녀는 밑바닥부터 감정을 끌어올렸다.
점차 얼굴이 상기되며 눈물이 글썽거리자 백혜향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하는 짓이지?’
명색이 무림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괴물이 설마 이 자리에서 울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런 게 통할 것 같나?
의아해하고 있는데 백혜향의 눈에 진성백의 난처해하는 얼굴이 보였다.
-주르륵!
설백의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이를 떠나서 절세미녀인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아름다움과 연민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만들었다.
감정을 무르익게 만든 그녀가 입을 열었다.
“삼백여 년 전에 상공을 만나서 지금껏 독수공방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분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렸는데……어찌 이렇게…..흑…..”
금방이라도 눈물을 펑펑 쏟아낼 것 같다.
‘하!’
그런 그녀의 모습에 백혜향이 기가 차다는 듯이 속으로 혀를 찼다.
여자는 여자를 안다고 했던가.
여우 짓을 하는 건지 정말로 우는 건지 정도는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저게!’
거짓 울음에 넘어가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안 그래도 그녀의 비밀을 폭로한 마당에 끼어들면 자칫 속 좁아 보이게 된다.
그저 저 눈물에 속지 않기를 바라야 했다.
그런 바람이 무색해지기라도 하듯,
“삼백여 년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진성백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걸렸구나 싶었는지 설백이 더 서럽다는 듯이 눈물을 머금으며 말했다.
“그분을 처음 만난 건……”
회상을 하듯이 짤막하게 운휘와의 만남을 이야기하며 아름답게 포장했다.
그러다보니 마치 운휘가 그녀의 마음을 훔친 후에 삼백여 년이나 사라진 것처럼 되어버렸다.
“허어.”
충격이 컸는지 부축을 받고 있던 하성운조차 그녀의 이야기에 안타까움의 탄식을 흘렸다.
“저는 상공께서 도화선의 도인들의 도움을 받아 과거로 온 건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삼백여 년을 기다렸습니다.”
“흠.”
이런 그녀의 말에 진성백 역시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진성백은 다른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한 사내였다.
그러다보니 방금 전과는 생각이 사뭇 달라졌다.
만약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의 아들을 위해서 그 오랜 세월 동안 외로움을 이겨내며 기다려온 것이 아닌가.
“한데 두 분의 인정조차 받지 못한다면….흑.”
소매로 눈물을 훔치는 설백.
그런 그녀의 모습에 하성운이 물었다.
“노선……아니 소저는 우리 운휘를 기다리느라 그 오랜 세월을 버텨낸 것이오?”
그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오직 상공만이 제 인생의 전부였으니까요.”
“허어…….”
그녀의 진심어린 목소리에 두 사람의 입에서 감격의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어찌 이런 여인이 있단 말인가.
‘이것 참.’
그러다보니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아들과 손주를 위해서 평생을 희생해온 여인에게 매몰차게 나이가 많으니, 혼인을 허락할 수 없다고 거절하는 게 힘들어졌다.
결국 그들은 설백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진성백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 아들이 응당 책임져야 할 일 같구려.”
“아아!”
“…….살아온 세월이 아닌 한 사람의 여인, 아니 며느리로서 대해도 좋겠소?”
그런 그의 말에 설백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환해졌다.
반면 백혜향의 얼굴은 무섭게 일그러졌다.
설마 이런 식으로 감정에 호소해서 이를 극복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가만히 넋 놓고 있다가는 설백이 원하는 대로 될 것이다.
“그럼요. 상공의 부친이시고 외조부님이십니다. 그런 두 분이 며느리로 불러주신다는데 어찌 기쁘지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허허허. 이것 참.”
너무도 좋아하는 그녀의 모습에 하성운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설백은 이 흐름을 타서 위치를 확고하게 해야겠다 여겼는지 곧장 본론을 꺼냈다.
“하면 두 분께선 저를 둘째 며느리로 인정…..”
“아버님!”
그녀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백혜향이 끼어들었다.
“혈교주?”
“저는 며느리로 받아주시지 않을 겁니까?”
이런 그녀의 모습이 혈교주가 아닌 한 사람의 질투하는 여인의 모습으로 보였다.
이에 진성백이 옅은 미소를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원한다는데 아비로서 어찌 거절하겠소.”
애초에 며느리로 받아들이려고 결심했던 그였다.
그때 백혜향이 한 쪽 무릎을 꿇고서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하면 저를 둘째 며느리로 인정해주십쇼.”
“둘째 며느리?”
“부군을 어렸을 적부터 알았고 오랫동안 생사고락을 함께 해왔던 저입니다.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요구하는 그녀였다.
이런 백혜향의 요구에 질세라 설백도 덩달아 같은 예를 취하며 말했다.
“아버님. 자그마치 삼백여 년을 기다렸습니다. 첫째 며느리의 자리를 받아도 부족하지만 이미 사마영 언니께서 먼저 아이를 가졌으니 어찌 첫째를 요구하겠습니까? 저를 둘째 며느리로 인정해주세요.”
“……..”
이런 두 사람의 요구에 진성백은 진땀이 나올 것 같았다.
팔대고수인 빙한여제와 오대악인의 일인인 검혈마녀가 서로 둘째 며느리로 인정해달라고 요청하는 상황이었다.
난감하기는 하성운조차 마찬가지였다.
자칫 하다간 둘째 며느리 자리를 두고서 두 여인들이 싸울 기세다.
‘운휘 이 녀석은 어쩌다 이런…..’
상황을 초래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성운이 사위인 진성백을 슬그머니 쳐다보았다.
눈빛으로 어찌 할 거냐고 물었다.
‘음.’
이에 백혜향과 설백의 시선 또한 진성백에게로 향했다.
눈에 불을 켜고 있는 무서운 두 며느리들을 보고 있자니 차마 결정을 내리기 힘들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진성백이 이내 입을 열었다.
“둘째 며느리는…..”
그녀들이 긴장된 눈빛을 했다.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그런데 결과는 뜻밖이었다.
“아무리 시아버지가 될 사람이라고 해도 본인이 결정할 일은 아닌 것 같소. 이건 운휘 그 아이의 결정에 맡기도록 하겠소.”
“칫.”
“하아…..”
이런 그의 말에 두 여인들이 대놓고 실망을 금치 못했다.
백혜향이 고개를 돌려 전음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으득!
그 말에 백혜향의 한 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설백의 표정 또한 그리 좋진 않았다.
누가 보아도 전음으로 신경전을 벌이는 듯 한 두 여인들을 보며 진성백은 내심 운휘에게 미안해졌다.
‘아들아. 네게 과한 짐을 떠넘겼구나.’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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