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355
3화 그를 찾는 이들 (完) (삽화) >
-참 많이 컸어. 우리 운휘.
소담검 녀석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너와 처음 대화를 나눴을 때만 하더라도 늘 하루하루가 위태로웠지.
지금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떠올려보면 언제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순간들 투성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검선 스승님과 무(武)로는 같은 영역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 말도 안 돼.”
“무원공을 대성한 대사형이…..”
“어찌 이리 허무하게!”
경악하고 있는 모산파의 도사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이 도사 노인이 저들의 대사형인가.
확실히 강하기는 했지만 여태껏 상대해왔던 적들이나 내가 알고 있는 자들에 비하면 그리 강한 것도 아니다.
-설백 선에서도 정리되겠네.
이야.
너도 제법 눈썰미가 좋아졌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네 옆에서 괴물 같은 것들을 얼마나 많이 봐왔는데 그 정도도 모를까.
소담검의 말대로다.
죽은 이 모산파의 절세고수는 빙한여제라 불리게 된 설백보다 한수 아래다.
어쨌거나 남은 자들도 처리해 보실까나.
내가 발걸음을 옮기자 경악하고 있던 그들이 도주를 시도하려들었다.
-딱!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그러자 경공을 펼치려 했던 그들이 뭔가에 붙잡힌 것처럼 멈춰 섰다.
“아닛?”
“이런 술법까지?”
그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내가 저들에게 펼친 것은 철수련의 사술이었다.
물론 저들 정도의 고수들이라면 내공으로 사술을 풀 수 있겠지만 이 짧은 찰나만으로 나는 이들을 죽일 수 있다.
-촥!
“컥!”
순식간에 그들의 뒤로 나타난 나는 모산파의 도사들 중 한 사람의 목을 베었다.
이들의 한쪽 눈이 금안인 것은 불완전한 불로불사의 시술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목을 베어야 단번에 죽는다.
“이노오오옴!”
모산파의 도사 중 한 사람이 절규와 함께 내 목을 향해 비수를 찔렀다.
이에 검지를 튕겨서 비수를 부서뜨렸다.
“이, 이런?”
“차라리 살려달라고 하지 그랬어.”
나는 부서진 파편을 탄지신통으로 날려 놈의 미간을 꿰뚫어버렸다.
-팡! 푹!
“억!”
미간이 뚫린 도사가 비틀거렸다.
역시 불완전한 불로불사라고 하더라도 재생력만큼은 기가 막히다.
이 정도로는 죽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뭐 상관없다.
베면 그만이니까.
검결지로 예기를 일으키려는 순간이었다.
-슉!
앞머리 쪽만 검은 도인이 기습적으로 내 옆구리를 연검으로 노렸다.
이에 손을 슬쩍 미는 시늉을 하자, 반탄력과 함께 도인의 몸이 튕겨나가 이내 석벽에 박혀버리고 말았다.
-쾅!
“끄헉!”
벽에 박힌 도인의 입에서 피가 한 움큼 흘러나왔다.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놈이 나를 괴물처럼 쳐다보았다.
“……기어코 우리를 막는구나.”
“막아?”
뭔가 착각하는 것 같다.
나는 곧장 놈에게 본론을 말했다.
“그딴 건 관심 없고 이곳에서 자생한다는 서목한철은 어딨지?”
‘!?’
이런 나의 물음에 놈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고작 그걸 구하러 이곳까지 왔다는 것이냐?”
“뭐 다른 볼일이라도 있을 줄 알았나?”
유일한 모산파의 생존자들을 만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에 불과했다.
물론 이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불행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차라리 문파를 재건하는 정도 선으로만 일을 꾸몄다면 나도 딱히 이들을 제지하거나 하진 않았겠지만 너무 큰 꿈을 꿨다.
중원 전체를 흡혈 괴물들로 채워놓겠다니.
“말해. 살리고 싶다면 서목한철은 어딨지?”
“…….네놈이 모든 것을 망쳤는데 본도가 그것을 말하리라 생각….”
-둥둥!
그때 놈의 눈앞에 미간이 재생한 도인이 허공에 떠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공이 이미 초월의 경지에 이른 나는 손을 조금도 대지 않고도 이렇게 할 수 있다.
-콰드드드드!
“크케케켁!”
허공에 떠있던 도인의 목이 꺾여버리더니 이내 뽑혀져나가고 말았다.
“이렇게 되고 싶진 않겠지?”
잔인한 광경에 놈이 망연자실한 눈이 되었다.
그러다 이윽고 놈이 정신 차렸는지 내게 증오한다는 듯이 소리쳤다.
“이노오옴! 네놈은 절대로 서목한철이 있는 곳을…..”
“아아. 거기였나.”
“뭐?”
“여기서 북동쪽으로 오 리 정도 떨어진 지하 공동 창고에 서목한철을 모아뒀었나.”
그런 나의 말에 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이 말하지도 않았는데 알아낸 것에 놀랐나 보다.
“대, 대체 그걸 어떻게?”
그런 놈을 보며 나는 비웃음을 흘렸다.
“아아, 그대에게 한 말처럼 들렸나? 한데 아니야.”
나의 시선을 놈이 바닥에 떨어뜨린 연검으로 향하고 있었다.
먼저 죽인 도인처럼 주인을 잔인하게 죽인다는 협박에 연검이 서목한철이 있는 곳을 곧장 불어버렸다.
갸륵한 녀석의 연검이 약조대로 주인을 지켜달라고 한다.
약조대로 지금 당장에는 살려줄 생각이다.
제약이 있겠지만 말이다.
-푹!
“끄악!”
놈의 단전을 단번에 파괴한 나는 한기를 일으켜 도인의 몸을 얼려버렸다.
그리고 품속에 있던 무엇이든 들어가는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웅웅웅!
연검이 화들짝 놀라서 항의를 했다.
곱게 풀어주면 후환이 될 텐데 그냥 놓아줄 수야 있나.
서복에게 데려가 녀석의 몸에 금제를 가해 풀어줄 생각이다.
***
무엇이든 들어가는 주머니가 꽉 찰 만큼 서목한철을 챙겼다.
-너도 참 어지간하다.
이에 소담검이 혀를 내둘렀다.
만약의 상황이라는 것에도 대비를 해야 하지 않겠나.
대장장이의 말에 의하면 부러졌던 검을 완전히 살려내는 일은 쉽지 않다고 했다.
지금 나는 지푸파기라도 붙잡는 심경이다.
-남천 그 녀석이 네가 이렇게 온갖 애를 쓰는 걸 알면 참 좋아할 거야.
좋아하지만 말고 돌아왔으면 좋겠다.
녀석을 이대로 보내기에는 내 마음이 아프니까.
어쨌거나 서목한철도 챙겼겠다 이제 돌아가야겠다.
귀찮게 돌아갈 없이 축지법으로 단번에 무쌍성으로 가면 된다.
그렇게 축지법을 펼치려는 순간이었다.
‘응?’
공동 밖에서 기운이 느껴졌다.
-살아남은 자가 있는 거야?
그럴 리가.
모산파의 도사들은 전부 죽였다.
기감에 잡혔던 모든 존재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처리하지 않았던가.
후환을 남기는 것은 딱 질색이니 말이다.
한데 밖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평범한 수준을 넘어섰다.
‘절세고수야.’
-강해?
이 정도면 모산파의 도사들 중에 가장 강했던 그 대사형이라는 자와 거의 비슷하거나 그보다 조금 더 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윽고 나는 머릿속을 울리는 검들의 소리에 입 꼬리를 올렸다.
-우우우웅!
공간을 접어서 공동 밖으로 나갔다.
공동 밖으로 나가니 경공을 펼치고 있는 두 인영이 보였다.
한 사람은 바로 낭왕 혁천만이었고, 또 다른 한 명은 십오 세에서 십육 세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바로 앞쪽에서 공간이 일렁이며 나타난 내 모습에 그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제?”
나는 웃으며 그에게 포권을 취했다.
“사형. 오랜만에 뵙습니다.”
낭왕 혁천만은 남천검객이 인정한 단 한 명의 제자다.
그렇기에 그는 내게 정말로 사형이나 다름없었다.
한데 인요 전쟁 때 왜 코빼기도 보이지 싶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겠다.
-왜?
그 당시에도 초인의 벽을 넘어서기 직전의 그였다.
그런데 이제는 확실하게 넘어섰다.
혼자서 무공을 익혀 이런 경지에 이르다니 정말 감탄이 나올 만큼 대단하다.
천재라는 칭호에 가장 어울리는 자다.
“스, 스승님 이분이 사숙이십니까?”
소년이 나를 보더니 흥분을 하며 말했다.
마치 동경의 대상을 보는 것처럼 눈을 반짝인다.
사형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사숙이다.”
그러자 소년이 내게 포권을 취하고서 정중하게 예를 갖춰 인사했다.
“제자 무진경이 천하제일검이신 사숙을 뵙습니다.”
입술을 실룩거리며 좋아하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어디서 이렇게 붙임성이 좋은 아이를 구한 거지?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서 사형을 쳐다보니 자신도 안다는 듯이 괜히 어깨를 으쓱해보이는 사형이었다.
제자에 대한 자부심이 보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제자의 재능이 보통이 아닌 듯 했다.
벌써 초절정의 경지를 엿보고 있었다.
‘또 다른 천재인가?’
한데 특이한 건 사형이 쌍검술의 달인인데, 제자인 무진경은 허리춤에 검과 도를 착용하고 있었다.
의아해하자 사형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왼손으로는 검법, 오른손으로는 도법을 펼쳐 연계하는 무공을 만들겠다더군.”
“좌검우도?”
“새파란 애송이의 치기지.”
자연스럽게 경지에 이르게 되면 상반된 무공도 어느 정도 선에서 펼치는 게 가능하다.
완전히 동시에 펼치는 것은 나라고 해도 힘들겠지만 말이다.
이 나이에 이런 발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뛰어난 무재를 지닌 듯 하다.
“치기라…..좋은 제자를 찾았군요.”
이런 나의 말에 사형의 제자가 뛸 듯이 기뻐했다.
“천하제일검의 칭찬을 받다니!”
그런 녀석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사형이 뒤쪽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한데 저기 있던 그 괴인들을 사제가 그리 한 건가?”
“아? 보셨습니까?”
긍정을 의미하는 되물음에 사형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니 꽤 놀란 모양이다.
하긴 그 많은 수의 괴인들의 머리가 날아가 죽은 것을 보고서 놀라지 않을 이가 어디있겠는가?
“한데 사형께서는 어찌 이곳까지 오신 겁니까?”
근 일 년 가까이 자취를 감췄던 그였다.
한데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걸 보면 무공 수련은 끝이 난 것 같다.
그때 사형의 제자인 무진경이 내게 말했다.
“스승님께서 사백이 천하제일검이라 불릴 만한지 시험해보신….웁!”
녀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형이 그 입을 틀어막았다.
적잖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저를 시험하신다니 무슨?”
이런 나의 물음에 사형이 당혹스러워하며 해명하듯이 말했다.
“흠흠. 제자 녀석이 내가 괜히 너스레를 떤 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모양이군. 농담으로 한 말이니 개의치 말게나.”
“아아, 그렇습니까?”
이렇게 말은 했지만 왜 나를 찾아왔는지 알겠다.
사형 정도로 투쟁심이 높은 검객이 사제인 내가 천하제일검이라는 칭호를 받았다는데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비무를 청하러 온 것 같은데 생각이 바뀐 모양이다.
하긴 그 정도 경지에 이른 자라면 그 시체들과 흔적을 봤으면 내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짐작은 했을 것이다.
제자가 보는 앞이니 여기서 더 거론할 필요는 없겠지.
-흠칫!
그러던 찰나에 어디선가 익숙한 기운들이 이곳으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사형도 이를 느꼈는지 내게 다급히 말했다.
“사제. 그렇지 않아도 자네에게 알려줄 게 있었네. 제수씨들이 오고 있네.”
“……..네.”
알고 있습니다.
사형보다 기감이 더 민감하니까요.
이들 두 여자가 동시에 나타난 걸 보니 안 봐도 무슨 볼 일인지 뻔하다.
머리가 지끈거리려고 한다.
그냥 동등하게 하면 될 텐데 끝까지 서열을 고집하고 있다.
“괴로운가?”
“부러워 보이십니까?”
“……..복에 겨웠다 여겼는데, 제수씨들이 죽일 듯이 싸우는 것을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듯 하더군.”
“제 심경을 이해하셨군요.”
“그래서 이 사형은 웬만하면 한 사람만 만나려고 하네.”
“진리를 깨달으셨군요. 그게 가장 속 편합니다.”
나는 그 진리를 참 늦게 깨달았다.
그녀들의 기운이 점점 가까워져가기에 나는 황급히 사형에게 포권을 취했다.
“사형. 송구한데 저는 바빠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뭐? 제수씨들은 어쩌고?”
“절 보지 못했다고 말씀해주십쇼.”
‘!?’
황당해하는 사형을 두고서 나는 축지법으로 이내 도망쳤다.
천하제일검의 칭호를 얻었고 누구보다 강하다고 자부하지만 이 싸움만큼은 나도 감당이 안 된다.
* * *
그렇게 일 년이 흘렀다.
나는 작은 요람에 누워있는 아기를 보며 한 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아기의 올망졸망한 눈, 코, 입을 볼 때마다 괜히 기분이 좋다.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울까?
-여아인데 어떻게 된 게 너랑 더 닮았냐?
-전주인께서 말씀하시길 첫 딸은 아버지를 닮는다고 했다.
-…….네 전주인은 혼인도 안했고 애도 안 낳았는데 대체 그건 어찌 안 다냐?
-크흠.
오랜만에 듣는 소담검과 남천철검의 투닥거림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때는 이런 녀석들의 대화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미처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이런 소소한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라는 것을 말이다.
“남편.”
그때 뒤에서 사마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사마영이 볼이 부풀어져서 내게 말했다.
“나를 볼 때도 그렇게 꿀 떨어지는 눈으로 보면 참 좋을 텐데. 에휴.”
사마영의 그 말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도 충분히 그렇게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딸한테 더 그런다고 괜히 질투하는 모습을 보이는 그녀다.
그런 사마영을 꼭 안아주며 말했다.
“알겠어. 꿀 떨어지는 눈으로 보도록 해볼게.”
이런 나의 말에 사마영이 심통 난 목소리로 말했다.
“흥. 말이라도 못하면 몰라.”
-운휘야. 말은 이렇게 하면서 얼굴은 헤벌쭉 웃고 있다.
좋은 정보 고마워.
참 가정에 충실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이것마저도 지금은 늘 감사하고 행복하게 여기고 있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주인님, 주모님. 다른 주모님들께서 오셨습니다.”
이를 알린 것은 다름 아닌 철수련이었다.
오대악인의 일인인 그녀는 충성을 맹세한 이후로 사마영의 곁에서 충실한 호위무사 겸 유모 노릇을 하고 있었다.
아기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지 그녀는 생각보다 우리 령아를 잘 돌보았다.
그때 방안으로 백혜향과 설백이 들어왔다.
그런 그녀들에게 사마영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제 누가 둘째가 될지 셋째가 될지 정했나요?”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들의 이 서열 싸움이 자그마치 일 년이 넘게 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두 여인들이 각자가 혈교의 교주이면서 북해빙궁의 궁주가 아니었다면 더 격렬하게 싸워댔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두 여인들의 표정이 묘하다.
사마영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설마 아직도 못 정했나요?”
‘진짠가?’
이번만큼은 확실히 결판을 낸다고 두 사람 모두가 호언장담을 했다.
그런데도 승부를 내지 못했다면 참 어지간하다.
그때 백혜향이 입을 열었다.
“흥. 그래서 방식을 바꿨다.”
“방식을 바꿨다뇨?”
사마영의 반문에 백혜향과 설백이 나를 동시에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네 둘째 아이를 먼저 가지는 쪽이 언니가 되는 걸로 말이야.”
‘!?’
순간 사마영과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설백도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말했다.
“나도 동의했어. 언제까지 이걸 다툰다고 독수공방으로 지낼 순 없잖아.”
“사마영, 아니 우리 첫째 으은니도 동의하지?”
백헤향의 물음에 사마영이 배를 붙잡고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실컷 싸우다가 내린 이 결론에 웃음이 나오나 보다.
어찌 보면 그 동안 서열 다툼을 한다고 서로 견제하느라 합방도 하지 못했는데, 둘 다 이제 그건 아니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한참을 웃어대던 사마영이 눈시울을 닦으며 말했다.
“두 분이 그러겠다면 그래야죠. 좋아요. 두 분 중에 먼저 회임하는 쪽이 언니가 되면 되겠네요.”
“동의한 거지?”
“네에. 남편도 동의하죠?”
나야 마누라님들 사이에서 무슨 발언권이 있겠나.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백혜향이 혀를 날름거리며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오늘부터 밤이 화끈할 거야.”
“누가 오늘을 네게 양보한다고 했지?”
설백이 그 말을 부정했다.
그리고는 내게 팔짱을 끼고서 홍조가 띤 얼굴로 말했다.
“우리 서방님은 오늘 나와 뜨거운 밤을 보낼 예정이거든.”
“하! 누구 마음대로?”
“누구는 누구야.”
점점 분위기가 살벌해지고 있다.
내 몸을 반으로 쪼갤 수도 없는 노릇이고 미치겠다.
누가 먼저 나와 합방을 할지 말싸움을 하는데 이러다 우리 령아가 깰까봐 두렵다.
그때 이들의 대화에 누군가 끼어들었다.
“주모. 혹시 저도 주인님의 아이를 가지면 둘째가 될 수 있나요?”
‘!?’
갑자기 끼어든 자는 다름 아닌 철수련이었다.
그녀의 말에 모두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철수련의 시선은 설백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근 일 년 가까이 그녀를 볼 때마다 이를 갈면서 주모라고 불렀던 그녀였다.
한데 이제는 참전과도 같은 선언을 한 것이다.
“뭐가 어쩌고 저째?”
결국 백혜향이 분노를 터뜨리고 말았다.
그건 설백이나 사마영 또한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방 안이 그녀들의 기세 싸움으로 소란스러워졌다.
-너 어떡하냐?
소담검의 걱정어린 물음에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등으로 짚었다.
아무래도 이 전쟁은 한동안 오래갈 듯 하다.
나는 다급히 요람에 누워있는 우리 령아를 끌어안았다.
“령아야. 무서운 엄마들이 싸워서 시끄럽지? 아빠랑 도망가자.”
그리고 축지법을 펼쳤다.
“또!”
일렁이는 공간 속으로 사라지려는 나의 귓가로 네 여인들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