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36
17화 대주 (2)
“주, 주먹이 격세석을 파고들었어.”
“자국만 남은 게 아니잖아.”
조용하던 생도들의 술렁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심지어 대주들조차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담예화를 바라보았던 눈빛이 후학이나 생도가 이 정도까지 성장했다니? 이런 느낌이라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묘한 경계심마저 보이고 있었다.
-경계는 당연하다. 네 내공의 일부를 보인 셈이니까.
남천철검이 내게 말했다.
녀석의 말대로 내 전력의 일부를 보인 셈이었다.
여섯 달 동안 나의 내공은 놀라운 속도로 진보했다.
그것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단연 맥 곳곳에 쌓여 있던 양기와 한기였다.
-저 노인네 도움이 컸지.
해악천은 내게 명륜선공(銘輪選功)과 짝을 이루는 명륜심법을 전수해줬다.
명륜선공과 마찬가지로 체내의 균형을 중시 여기는 불가의 이론이 바탕 된 명륜심법은 진혈금체의 운기법을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지금의 내게는 가장 적합한 심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슥!
어쨌거나 임무를 완수한 나는 돌아와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클클. 아직 멀었다. 이놈아.”
해악천이 나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말과 얼굴이 다르잖아.
말은 저렇게 하면서도 얼굴은 마치 혈수마녀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날린 표정이다.
“……제자 분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군요. 과연 어르신입니다.”
미간에 주름이 가있던 혈수마녀 한백하가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말했다.
감정을 통제하는 것은 기가 막힐 정도로 잘한다.
담예화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서 나와 한백하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쟤는 눈치를 많이 보네.
‘그러게.’
하긴 내기를 모르는 해악천 마저도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성취를 보이라고 할 정도인데, 스승과 나의 내기 사이에 끼어있는 그녀의 입장은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사정을 봐줄 수는 없었다.
“뭐하는 게야. 네 녀석들도 보여줘라.”
해악천의 말에 송좌백이 포권을 취하고서 격세석 앞으로 갔다.
내 귓가로 녀석의 전음이 들려왔다.
[봐라. 내가 어떻게 하는지.]이 녀석은 쓸데없이 내게 열의를 불태우고 있다.
나를 이기는 것이 녀석의 낙인가 보다.
“후우.”
송좌백이 호흡을 가다듬고서 내공을 운용했다.
그러자 녀석의 피부에 살짝 갈색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저렇게 피부색이 변하는 것은 진혈금체를 운기했기 때문이었다.
-작정했는데.
소담검의 말처럼 녀석은 나보다 더 큰 성취를 보이기 위해서 진혈금체까지 운기했다.
진혈금체를 운기했는데도 해악천이 가만히 쳐다보는 것을 보면 그 역시도 송좌백이 어느 정도 성취인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하압!”
기합과 함께 송좌백이 격세석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득! 파팍!
녀석의 주먹이 닿는 순간 작은 돌 조각들이 튀었다.
주먹이 부딪치자 그 부분의 격세석이 부서지면서 파편들이 여기저기 튄 것이었다.
“우오오오!”
“격세석이 부서졌어.”
생도들이 또 다시 감탄했다.
“더 센 거 아냐?”
“파편이 튈 정도였잖아.”
그런 생도들의 목소리를 들은 건지 송좌백이 내게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해악천을 향해 입술을 실룩이며 쳐다보았다.
그 표정이 마치 ‘저 잘했죠?’ 하고 칭찬을 갈구하는 듯 하다.
한데 해악천의 표정은 기대한 것과 달랐다.
“쯧쯧.”
혀를 차고 있었다.
파인 것도 아니고 부서졌는데 저런 표정을 짓는 이유는 간단했다.
진혈금체를 펼치면서 힘이 한 곳에 집중된 것이 아니라 표면에만 타격을 주면서 격세석이 부서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어르신의 제자답군요.”
한백하의 그 말에 해악천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다했으면 안 들어오고 뭘 하는 게야!”
내가 들어도 한백하의 말은 왠지 모르게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다.
해악천이 짜증낼 만 했다.
-쟤 표정 봐라. 안쓰럽누.
기대한 것과 다른 반응에 송좌백이 시무룩한 얼굴로 들어왔다.
해악천의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패혈 단주 구상웅이나 대주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송좌백 역시도 남다르게 보고 있었다.
“가라.”
해악천의 명에 동생인 송우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섯 달 사이에 녀석의 말수는 급격히 줄었다.
원래는 어리숙한 말투를 하거나 형인 송좌백의 말을 따라하곤 했는데, 지금은 과묵하게 변했다.
“제자 분들이 남달라서 굳이 안 봐도 결과를 알겠습니다.”
패혈단주 구상웅이 이제야 해악천의 비위를 맞췄다.
세 명이나 나와서 다른 수련 생도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결과를 보여줬으니,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바로 그때였다.
-쾅!
‘쾅?’
모두의 시선이 격세석으로 향했다.
굉음 소리에 가까워서 쳐다본 것이었는데, 그곳에 송우현이 머리를 박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설마 녀석이 박치기를 할 줄은 몰랐다.
녀석이 머리로 박은 부위가 움푹 파여 들어가 있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쩌저저적!
‘!!!’
이마로 박은 부분을 중심으로 격세석이 반으로 쪼개지고 말았다.
아니 무슨 머리를 금강석으로 만들기라도 했나.
소담검도 혀를 차듯이 말했다.
-…….운휘야. 쟤 진짜 돌대가리인 가봐.
좌중은 조용해져 있었다.
생도들은 하나 같이 입을 벌리고서 할 말을 잃었다.
그것은 패혈 단주나 다른 대주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입만 벌리지 않았다 뿐이지 반으로 갈라진 격세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크하하하하하핫. 그래. 그래. 그 정도는 해줘야지.”
해악천이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이 광소를 내뱉었다.
나는 이때 담예화의 안도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쟤 지금 저 돌 대가리랑 상대 안한다고 안도한 거 맞지?
음…..그런 거 같다.
나라도 격세석을 반으로 쪼갤 만큼 말도 안 되는 괴력을 보인 녀석과 상대하라고 하면 께름칙해질 것 같긴 하다.
‘허참.’
그 동안 정수리로 물구나무를 했던 성과가 여기서 나타나다니.
나도 할 말이 없었다.
머리털을 잃고 괴력을 얻은 셈인가.
이걸 본 송좌백의 반응이 궁금하다.
“하아.”
동생의 활약에 속이 답답했는지 연신 한숨을 내쉬는 송좌백이다.
역시 솔직하네.
이렇게 나를 포함한 쌍둥이 형제, 그리고 담예화의 내공 증명이 끝났다.
당연히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없었다.
오히려 사존과 칠혈성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를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난입이 마무리 되고 상급 무사 직위 시험이 시작되었다.
패혈 단주 구상웅이 단상 위에서 큰소리로 말했다.
“누가 먼저 상급 직위 시험을 치르겠느냐?”
단상 앞으로 허리에 파란 띠를 맨 혈교의 무사가 걸어 나왔다.
파란 띠는 상급 무사를 뜻한다.
상급 무사가 되면 가장 큰 혜택은 체내에 있는 혈고를 제거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인지 생도들의 눈빛이 띠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송좌백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해악천에게 말했다.
“스승님. 제가 먼저…”
“아서라.”
“네?”
해악천은 녀석이 먼저 나서지 못하게 했다.
체면을 따졌던 아까 전을 생각하면 담예화보다 먼저 나서게 할 거라 여겼는데, 의외였다.
그런데 그것은 해악천 만이 아니었다.
단상의 우측 편에 있는 혈수마녀 한백하 역시도 담예화가 먼저 나가겠다고 하는 것을 막는 모습이 보였다.
“잘 봐둬라. 상급 무사, 즉 본교의 일류 고수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말이다.”
의욕이 앞섰던 송좌백이지만 해악천의 뜻에 납득했다.
성격이 괴팍해서 그렇지 스승으로서 재목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뛰어난 축에 속한다.
“혈세! 혈세! 혈혈세!”
상급 생도들 중에 누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혈교의 예법을 취했다.
그리고는 앞으로 걸어 나왔다.
생도가 단상 앞에 있는 상급 무사에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수련 생도 하문찬입니다.”
-척!
“부서정이다.”
상급 무사도 포권을 취하며 간단히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단상 위에 있는 패혈 단주 구상웅이 말했다.
“상급 무사를 상대로 12초식을 버티면 통과다.”
-고작 12초식?
‘고작이 아닐걸.’
상급 무사는 일류고수다.
중급 무사들과는 완전히 격이 다른 무위를 지니고 있다.
그런 상급 무사를 상대로 12초식을 버티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문찬이라는 수련 생도의 긴장된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시작하라.”
구상웅의 말과 함께 거리를 벌린 두 사람이 기수식을 취했다.
선공을 양보하기라도 하듯 부서정이라는 상급 무사가 손짓으로 들어오라는 표시를 냈다.
망설이던 하문찬이 그를 향해 달려갔다.
-탓!
하문찬이 빠르게 달려가 부서정의 머리 쪽으로 발차기를 날렸다.
자세만 보더라도 확실히 상급 수련 생도답게 기본 권각술을 대성했다.
하지만 부서정은 이를 쉽게 피해냈다.
-팍!
부서정이 옆으로 피한 후에 하문찬의 다리를 노렸다.
단번에 끝나게 생겼다.
그러나 하문찬은 그 상태에서 피하지 않고, 부서정에게로 상체를 날려서 얼굴을 향해 팔꿈치를 날렸다.
-타탁!
부서정이 뒤로 세 발자국 물러났다.
덕분에 하문찬은 균형이 무너져서 넘어질 뻔했지만 낙법을 펼쳐서 자세를 잡았다.
“제법이군.”
해악천이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확실히 하문찬은 타고난 싸움꾼이었다.
대련, 싸움, 대결 등에서 중요한 것은 순간적인 판단력인데, 녀석은 그것을 갖췄다.
가르친다면 충분히 일류 고수가 될 자질을 지니고 있었다.
-봐주고 있는 것 같은데.
소담검이 의아해했다.
‘봐주는 거 맞아.’
-어째서?
상급 무사 직위 시험은 상급 무사 후보를 뽑는다고 봐야 했다.
즉 일류 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자를 선출하기 위함이었다.
정말 저 부서정이라는 상급 무사가 작정하고 하문찬을 쓰러뜨리고자 한다면 12초식이 아니라 3초식 내로 가능할 거다.
-파파파팍!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부딪쳤다.
부서정은 다른 무공은 쓰지 않고 오직 권각술로만 붙었다.
그를 상대로 버거워 하면서도 하문찬은 꿋꿋하게 자신이 배웠던 모든 것을 활용해가며 대련에 임했다.
대략 14초식 정도 붙었을 때였다.
“그만!”
패혈 단주 구상웅의 외침에 두 사람은 대련을 멈췄다.
구상웅이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충분하다. 생도 하문찬 통과!”
“와아아아아아아!!!”
통과했다는 말에 수련 생도들이 함성을 질렀다.
처음으로 상급 무사 직위 시험에 통과한 사람이 나왔다.
파란 띠를 손에 쥐게 된 것이다.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감이 잡히느냐?”
해악천이 우리들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송좌백이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충분히 해볼 만 한 것 같습니다. 스승님의 체면에 금이 가게 만들지 않겠습니다.”
녀석의 그 말에 해악천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걸 물은 것 같으냐?”
“네?”
“쯧쯧.”
해악천이 심드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머릿속에서 부서정이라는 상급 무사의 움직임을 상기하고서 답했다.
“대련을 할 때 저 상급 무사는 여력의 삼에서 사할 정도를 아끼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여력이란 내공의 사용.
즉 공력을 얼마나 활용했는지를 말했다.
확신하기는 힘들지만 많아봐야 6성 공력 이상을 사용하지 않은 듯 했다.
하문찬이라는 생도는 얼굴이 땀으로 젖어 있었는데, 부서정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해악천의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리고?”
“움직임 역시도 수련 생도와 다르게 합을 붙을 때, 세 보 이상을 원래 있던 곳에서 발을 떼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보법을 제한한 것 같습니다.”
“클클. 눈은 제대로 달렸구나.”
그 말과 함께 해악천이 송좌백을 쏘아보았다.
송좌백도 그제야 해악천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머쓱해했다.
“네 녀석은….됐다.”
쌍둥이의 동생인 송우현에게도 뭔가를 말하려 했던 해악천이 이를 포기했다.
송우현은 애초에 대련을 쳐다보지도 않고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저 미친 노인네마저 포기하게 만들다니.
‘…..이건 부럽네.’
그러는 사이에 두 번째 지원자가 나왔다.
차례대로 상급 무사들이 교대로 나와 수련 생도들과 대련을 했다.
대련의 양상은 거의 같았다.
상급 무사들은 6성 정도의 여력만으로 수련 생도들을 상대했고, 대부분의 수련 생도들은 힘겹게 그들과 겨뤄서 파란 띠를 획득했다.
앞 전 시험은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다섯 명이 나와서 전부 통과했다.
패혈 단주 구상웅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마지막…흠흠.”
구상웅이 실수를 한 걸 깨닫고 정정했다.
“여섯 번째는 누가 지원하겠나?”
마지막까지 지켜볼 생각인지 담예화 역시도 나서지 않았다.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해악천은 전부 끝날 때까지 지켜보라고 했다.
“수련 생도 조성원입니다.”
수련 생도들 중에 마지막 지원자가 나와 포권을 취하며 스스로를 소개했다.
‘조성원?’
그런데 이 이름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
-알던 애야?
‘분명 들어본 것 같아.’
나라고 전생에 있던 모든 일을 기록한 것처럼 기억하는 게 아니었다.
뚜렷하게 기억에 남을 만한 일들이나 사람들을 기억했다.
한데 분명 저 이름은 뇌리에 있었다.
누구였지?
“시작하라.”
구상웅의 외침과 함께 조성원이라는 수련 생도의 대련이 시작되었다.
이 대련은 유심히 봐야 할 것 같다.
내 기억에 마지막에 대련은 지금까지와 달랐던 걸로 기억한다.
-타타타타탁!
고진창이라는 상급 무사와 조성원이 부딪쳤다.
두 사람이 부딪치자 수련 생도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처음으로 상급 무사가 수련 생도가 연달아 펼치는 권초를 피하기 위해 보법을 펼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호오. 저 녀석 무공을 익힌 적이 있군.”
해악천이 중얼거렸다.
확실히 무공을 익히고 나서 보니, 나 역시도 알 것 같다.
조성원은 혈마권의 기본 보법과 더불어 교묘하게 다른 보법을 번갈아가면서 권초를 펼치는데, 이로 인해 처음으로 상급 무사가 세 보 이상을 걷게 만들었다.
“이놈!”
이에 자존심이 상한 상급 무사 고진창이 스스로의 제한을 풀었다.
보법을 펼치며 훨씬 빨라진 몸놀림으로 조성원을 압박했다.
-타타탁!
그런데도 조성원은 용케 고진창의 권과 발차기를 막아내며, 심지어 반격마저 해냈다.
“오오!”
지켜보는 수련 생도들이 감정이 이입되서 탄성을 질렀다.
확실하게 알 것 같다.
저 녀석은 다른 수련 생도들과 달랐다.
단순히 자질을 가진 정도가 아니라 일류 고수에 현저히 근접했다.
‘아!’
기억났다.
왜 기억이 잘 나지 않던 것인지 알았다.
저 녀석은 반 년 뒤에 죽을 운명이었다.
-죽을 운명이라고? 왜?
소담검의 물음에 나는 조성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저 녀석 개방의 첩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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