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39
18화 발탁식 (1)
해악천의 폭탄 발언에 나 역시도 놀랐다.
설마 이 자리에서 내 검법의 본원을 밝힐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솔직히 해악천의 자존심을 보면 숨길 거라고 여겼는데, 이걸 여기서 밝히다니 대체 무슨 의도일까?
확실한 것은 보통 파장이 아니었다.
“남천검객?”
“그 남천검객?”
술렁이는 단주들.
혈교를 이끌어가는 고수들인 그들조차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15년이 지나도 남천검객의 위명은 여전했다.
그런데 모두가 남천검객이라는 화두로 인해 해악천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단 한 사람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혈수마녀의 문하로 보이는 흰 면사의 여인이었다.
면사의 여인의 시선은 나와 등에 매고 있는 남천철검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뭐지?’
그런데 면사에서 유일하게 드러난 눈가 부분이 이상하게 낯이 익다.
특히 저 둥그런 눈매와 긴 속눈썹은 그때 만났던 붉은 눈동자의 여인과 매우 닮아있었다.
‘설마….’
-뭐가 설마야? 누구길래 그래?
‘……하연 소저, 아니 백련하 같은데?’
-뭐? 쟤가?
소담검마저 놀라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백련하 같다고 이야기 한 면사 여인의 몸매가 호리호리했기 때문이었다.
-잘못 본거 아냐?
소담검이 내 말을 부정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녀는 살집이 두터운 뚱뚱한 몸매였다.
그런데 여섯 달 만에 환골탈태를 한 것 마냥 날씬해져 있었다.
-그럼 쟤 살 뺀 거야?
본인이 맞다면 살을 뺀 거겠지?
그때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가 다급히 시선을 돌렸다.
-맞네. 맞아.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걸 보면 역시 그녀가 맞는 것 같았다.
고개를 먼 산으로 돌리며 나의 시선을 최대한 피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궁금했다.
하선부설초를 복용하고서 저렇게 살이 빠진 것일까?
그때 혈수마녀 한백하가 입을 열었다.
“사존. 그게…..무슨 말씀이시죠? 남천검객이라뇨?”
그녀 역시도 놀랐는지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이렇게 갑자기 밝혔으니, 해악천이 뭐라고 이야기할지 나도 궁금했다.
설마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남천검객을 꺾고서 그 비보를 얻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려는 것인가?
이 늙은이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한데.
“역시 알아보지 못하는군. 하긴 이중에 본좌 이외에 남천검객을 상대했던 자가 있을 리가 있나.”
그 말에 한백하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반응을 보면 해악천의 말이 맞는 모양이다.
“클클.”
입을 다물고 있던 그녀가 나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진위여부를 떠나서 사존의 제자 분이 어째서 남천검객의 검법을 익힌 거죠?”
교묘하게 화제를 비틀었다.
대놓고 해악천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빌미 삼아 묻는 것이었다.
“남천검객은 세를 갖춘 인물이 아닙니다만. 명백히 정파인입니다. 이건 사존께서 해명해주셔야 할 부분입니다.”
마냥 당할 혈수마녀가 아니었다.
남천검객이 정파인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해악천을 몰아붙였다.
그때 해악천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아……’
그것은 성명검법의 비급서였다.
내게서 도로 가져갔었는데, 설마 이 자리에 들고 왔을 줄은 몰랐다.
처음부터 이걸 밝힐 작정이었던가.
“성명검법?”
“남천검객의 검법 비급서다.”
“그걸 어떻게 사존께서?”
한백하가 성명검법의 비급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것은 단주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특히 검을 다루는 단주들은 성명검법의 비급서를 보물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희대의 검객이라 명성을 날리던 남천검객의 검보가 눈앞에 있는데, 보물처럼 여기지 않을 사람은 없을 거다.
“남천검객은 죽었다.”
‘!!!’
남천검객이 죽었다는 말에 모두가 놀라했다.
15년 전부터 행방이 묘연했기 때문에 정사를 떠나서 많은 무림인들이 궁금해 했던 부분이었다.
알 것 같다.
해악천은 자신이 남천검객을 꺾고서 비급서를 얻었다고 말을 하려는 듯 했다.
-이 못된 늙은이가!
남천철검이 분노를 토해냈다.
자신의 전 주인의 명예가 더럽혀지고 있다고 여기는 듯 했다.
나라도 기분이 나쁠 것 같다.
“남천검객이 죽었다고요? 설마 사존께서?”
혈수마녀가 놀란 눈으로 해악천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해악천의 반응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가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흥! 그랬으면 본좌의 오랜 숙원이 이뤄졌겠지만 아니다. 누군가 본좌보다 먼저 손을 썼더군.”
놀랍게도 해악천은 사실을 밝혔다.
그 자신이 죽였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는데, 정말 의외였다.
“누가 남천검객을?”
“허어!”
해악천의 그 말에 모두가 궁금해 했다.
차기 중원 팔대고수로 거론될 만큼 명성을 떨치던 이를 죽였다고 하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해악천은 그들의 반응을 개의치 않고서 말을 이어갔다.
“이 비급서는 남천검객 그 녀석이 남긴 것이다.”
이걸 이런 식으로 세탁하네.
곧 죽어도 훔쳤다는 말을 하진 못하겠지.
혈수마녀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 말씀은 사존께서 남천검객의 유해를 발견하셨다는 겁니까?”
“그렇다.”
“어찌 이런 경하스러운 일이!”
“감축 드립니다. 어르신!”
해악천의 대답에 몇몇 단주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검객들에게 비보라 할 수 있는 남천검객의 비급서를 얻은 것을 축하하는 것이었다.
“감축은 무슨 감축이야!”
그때 해악천이 신경질을 냈다.
그의 비위를 맞추던 단주들이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다물었다.
한 단주가 해명을 하려고 했으나,
“그, 그것이 아니오라…”
“녀석과의 승부를 내지 못하고 다른 놈에게 선수를 빼앗긴 것이 축하받을 일이라는 게야!”
해악천의 노성에 모두가 기가 죽었는지 고개를 숙였다.
회귀 전에는 그렇게나 높아보였던 단주들이 하나 같이 기를 못 펴는 것을 보면 사존은 과연 사존이었다.
“놈과 승부를 내지 못한 것은 본좌의 한이다. 네놈들이 축하할 일이 아니다.”
한바탕 화를 냈던 해악천이 인상을 굳히더니, 성명검법의 검보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 검보는 완성된 검보가 아니다.”
그건 사실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해악천이 그것을 훔쳐간 덕분에 지금의 성명검법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본좌는 녀석과 많이 겨뤘었지. 본좌만큼 녀석을 잘 아는 이도 없을 것이다.”
혈수마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그 말씀은 설마?”
해악천이 입 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좌는 검법에 허점을 보완하여 이 녀석에게 전수했다.”
-탁!
해악천이 내 어깨로 손을 얹었다.
“이 녀석은 본좌와 남천검객의 공동 전인이라 할 수 있다.”
‘하!’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결과적으로 해악천은 죽은 남천검객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후인을 만든 것도 모자라, 호적수인 남천검객의 검법마저도 보완한 인물이 된 것이다.
-…..대단하네. 정말.
소담검마저도 인정했다.
참 어떤 의미로 해악천은 대단했다.
이로써 남천검객의 검법을 알아보는 이가 생기더라도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적어도 혈교 내부에서는 말이다.
그저 괴팍하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해악천은 정말 영악한 노인네였다.
-…….그래도 다행인 것 같다.
화를 낼 거라 여겼던 남천철검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뭐가 다행이라는 거지?
-사실 저 자가 아니었다면 분명 전 주인의 명맥이 끊기게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게다가 저 자는 운휘 너를 남천검객의 후인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듣고 보니 남천철검의 말도 맞았다.
해악천은 비보를 얻었으니, 성명검법이 자신의 검법이라고 공언할 수도 있었다.
한데 그는 공동 전인이라고 내세워 줌으로서 남천검객이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그 여지를 남겨뒀다.
이걸 보면 해악천이 그 동안 남천검객을 어찌 생각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한다.
남천철검은 전 주인이 잊혀지지 않게 된 것을 만족해했다.
* * *
혈수마녀 한백하와 그 문하들, 그리고 각 파벌의 단주들 모두가 육혈곡의 본당으로 갔다.
그것은 신입 무사들에 대한 발탁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가기 전에 혈수마녀 한백하는 내게 전음으로 보냈었다.
[내기는 소 공자가 이겼어요. 오늘 밤 자정 무렵에 그때 보았던 공터에서 만나도록 하죠.]한백하는 깨끗하게 승복했다.
엄밀히 말하면 담예화 역시도 상급 무사의 직위를 취했기 때문에 약조대로 비무를 통해 우위를 다퉈야 하지만,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이미 그녀와 나의 실력 차이는 명백했다.
-뭘 가르쳐줄까?
‘크게 기대는 안 해.’
쓸 만한 재주를 가르쳐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녀 역시도 내기에서 질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 아마 가진 재주들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것을 전수하지 않을까.
그보다도 지금은 백련하가 궁금했다.
그녀는 먼저 가면서 나를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네가 알아본 걸 눈치챈 거 아냐?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
나도 몇 번이나 그녀를 쳐다보았으니 말이다.
“한데…..스승님 본당에는 왜 가는 것입니까?”
본당으로 향하는 와중에 송좌백이 궁금했는지 해악천에게 물었다.
해악천이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지금부터가 관건이다.”
“네?”
“쓸 만한 놈들을 데려와야 하니까. 클클.”
나는 해악천이 왜 이런 말을 하는 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세(勢)를 키울 거라고 했었다.
기존의 혈교인들 같은 경우는 이미 각 파벌에 속해있기 때문에 새로운 인재가 필요했다.
얼마나 많은 인재를 확보하는가가 관건이었다.
-웅성웅성!
본당에 도착하자 시끌벅적했다.
단주들 이외에도 생도들까지도 집합해 있었다.
회귀 전의 기록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
본당 건물 앞마당에 방문을 붙인 것처럼 넓은 목판에 생도들의 명단이 붙어있었다.
명단의 이름들은 상급 무사 후보, 중급 무사 후보, 하급 무사 순으로 분류가 되어 있었다.
회귀 전의 나는 선택권이 없이 곡주가 지정한 곳으로 보직을 받았다.
혈랑대로 말이다.
하급 무사들은 골고루 여기저기 배치가 되었던 반면에 상급, 중급 무사 후보들은 달랐다.
명단 앞에 서있는 단주들이 치열하게 다퉜던 게 기억난다.
그때는 나의 일이 아니라 누가 어디로 보직을 받았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딱 한 사람은 알고 있다.
-누군데?
개방의 첩자인 조성원.
저 녀석은 일혈성의 산하로 들어갔다.
선택권이 있기에 사존 중 한 사람의 세로 들어갈 거라 생각했는데, 모두가 의외라고 여겼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선택이 틀렸네.
‘맞아.’
불과 반 년 만에 정체가 탄로 났다.
심지어 추살령이 내려진지 보름 만에 잡혀서 죽었다.
-결국 죽을 운명이네.
‘그래. 그렇긴 한데.’
저 녀석의 운명을 바꾸면 어떻게 될까?
조성원과 몇몇 첩자들 덕분에 육혈곡과 혈교의 근거지 몇 곳이 들통 나고 말았다.
그런데 만약 조성원이 일혈성 산하가 아니라, 다른 곳에 들어간다면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날지 궁금해졌다.
가령 녀석의 정체를 당장 폭로 한다던가.
“그럼 지금부터 발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패혈 단주 구상웅의 외침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각 파벌에서 온 열 명의 단주들이 명단의 앞에 섰다.
각자가 생각해둔 이들이 있었는지, 이를 확보하기 위해 명단의 이름표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때 해악천이 앞으로 나섰다.
해악천이 나서자 단주들이 일제히 당혹스러워했다.
“어르신?”
“사존께서 어찌?”
그들은 해악천이 발탁식에 참여할 거라 예측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하긴 여태까지 세를 만들지 않았던 해악천이니 그들의 저런 반응은 당연했다.
단주들 중 한 사람이 물었다.
“혹시 어르신께서도 발탁식에 참여하시는지?”
“흥! 밑에 단주가 없으니, 본좌가 직접 골라야 하지 않겠느냐.”
그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발탁식에 설마 사존이 직접 참여할 줄은 몰랐다.
심지어 이곳에 있는 육혈성 혈수마녀조차도 자신의 산하 중에 단주 직을 맡고 있는 자를 대리로 보냈는데 말이다.
“크흠.”
패혈 단주조차 이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는지 난감해했다.
그런 그에게 해악천이 말했다.
“중급 무사부터냐? 아니면 상급 무사부터 하는 게야?”
“…..중급 무사 후보부터입니다.”
“그래? 그럼 잘됐군. 본좌부터 한다. 불만은 없겠지?”
해악천의 그 말에 단주들이 똥이라도 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차마 사존의 앞에서 안 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천하의 기기괴괴 앞에서 단주 급 중에 누가 그럴 배짱이 있겠는가.
“고르면 되지?”
“그, 그렇습니다.”
해악천이 목판의 명단이 걸려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중급 무사 후보들이 있는 명단이었다.
총 37명이었다.
뛰어난 자질을 가진 순으로 위에서 아래로 명단이 정리되어 있었다.
“………”
각 파벌의 단주들이 숨을 죽이고서 해악천의 손가락에 따라 눈동자가 움직였다.
혹여 자신들이 선정해둔 인재를 고를까봐 걱정하는 것이었다.
손가락이 아래쪽으로 향했다.
“후우.”
단주들 몇몇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뒤에 열 명 긋고, 나머지 위에는 본좌가 전부 데려가겠다.”
‘!?’
얼마나 기가 막혔는지, 단주들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해악천을 쳐다보았다.
해악천은 이를 전혀 개의치 않고 할 말을 했다.
“공평하게 딱 열 명 남겨놨으니, 네 녀석들끼리 상의하든 뭘 하든 간에 한 명씩 데려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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