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41
18화 발탁식 (3)
나는 해악천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하긴 아무리 자존심이 세도 스스로를 띄우는 것은 체면에 어긋날 거다.
명색이 사존이 아닌가.
한데 단주들 사이에서 언변을 하라는 것 역시도 부담감이 컸다.
‘한두 명도 아니고….’
여섯 명 전부를 끌어들이라니.
이번에 주어진 상황은 참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힘들 것 같아?
‘쉽겠어?’
선택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변수였다.
이미 여섯 명의 상급 무사 후보생들을 보면 벌써부터 여러 단주들과 눈빛을 교환하고 있었다.
-설레는 남녀의 첫 만남 같네.
…….가끔 소담검 이 녀석은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무튼 저 녀석들을 무슨 수로 설득해야 하나.
-금칠해달라잖아.
‘금칠?’
-잘 포장해봐. 네가 저 입장이면 어떤 말에 넘어갈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내가 녀석들이라면?
소담검의 말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확실히 접근성이 높아보였다.
내게 선택권이 있다면 과연 무엇에 끌릴까?
고민하고 있는데, 해악천이 목판 앞에서 물러나며 말했다.
“상급 무사 후보생에 관한 발탁은 본좌의 제자에게 맡기도록 하마.”
해악천의 말에 단주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괴팍한 그가 또 막무가내로 나올까봐 걱정했었던 모양이다.
단주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너 정도는 가뿐하다는 것 같은데.
그래.
그런 눈빛에 가까웠다.
이들에게 갓 대주 직을 통과한 나는 애송이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런 감정들이 뚜렷하게 느껴지니까 오기가 생긴다.
제대로 뒤통수를 치고 싶어지네.
“그럼 누구부터 하시겠습니까?”
패혈단주 구상웅의 물음에 단주들 중 한 사람이 말했다.
“그래도 선후배라는 것이 있는데, 경력 차로 하는 게 좋지 않겠소이까?”
그 말에 다른 단주들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차 단주의 말이 일리가 있소.”
“연설의 순서로 다툴 필요야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죠.”
“그럼 송 단주님이 먼저 하셔야 겠군요?”
이걸 보면 이들이나 해악천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경력 차나 직위 순으로 한다면 나는 맨 마지막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애초에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뭐 하는 게야?]해악천이 내게 전음으로 다그쳤다.
왜 순서가 마지막이 되도록 가만히 있느냐는 압박이었다.
그런데 나의 생각은 달랐다.
어차피 곧바로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첫 번째를 하나 두 번째를 하나 크게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들어보고 거기에 맞추는 편이 낫다고 여겨졌다.
그렇다고 단주들에게 ‘스승님이 지켜보고 있으니,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마지막도 나쁘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그런 나의 전음에 해악천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경고했다.
[한 놈이라도 빠트리면 각오하거라.]……아아.
역시 이 미친 노인네의 기준을 맞추는 건 정말 힘들다.
그러는 사이에 단주들 중에 가장 신장이 작은 체구에 턱이 살짝 튀어나온 중년인이 첫 번째로 나섰다.
“반갑다. 본교를 이끌어갈 새로운 인재들이여.”
시작이 좋았다.
선택권이 저쪽에 있다 보니, 강압적이기보다는 후보생들을 존중하는 말투로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긴 하다.
“나는 삼존이신 혈사왕 구제양 어르신을 모시고 있는 오독 단주 송필충이라고 한다.”
혈사왕 구제양.
사존들 중에 독수에 가장 능한 자라 들었다.
수천 마리의 독사를 기르는 독특한 취미 때문에 기기괴괴라 불리는 해악천과는 다른 의미로 사람들이 가까이 가기를 꺼린다고 알고 있었다.
“구제양 어르신께서는…….”
단주 송필충이 구제양에 관한 금칠을 시작했다.
그가 과거 정파의 유명한 누군가와의 대결에서 이겼는 것부터 혈교의 사존으로서 이뤘던 업적들을 나열해나갔다.
회귀 전에 들었던 것을 다시 들으니, 잊고 있던 기억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거의 비슷다고 느껴지는 걸 보면 미리 준비해뒀던 모양이다.
“…..정도다. 그리고 구제양 어르신께서는 인재를 아끼시기에….”
송필충이 말을 하다 말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더니 바닥을 향해 손바닥을 그대로 내리쳤다.
-팡!
그러자 흙으로 되어 있던 바닥이 손바닥 형태로 검게 물들며 타들어갔다.
그 모습에 상급 무사 후보생들과 이를 지켜보던 생도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또또 저러는 구만.”
단주들은 오히려 혀를 찼다.
속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굳이 입으로 내뱉었다는 것은 후보생들이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 듯 했다.
송필충이 보여준 것은 독수(毒手)였다.
-촥!
검게 타들어가던 바닥을 향해 송필충이 흰 가루 같은 것을 뿌렸다.
그러자 그 부분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독을 해독시킨 것이었다.
“보았느냐? 이것은 구제양 어르신께서 전수해주신 독수이다. 어르신께서는 산하의 수하들을 아끼시기에 자신의 독문 독수마저도 전수해주신다. 이걸 염두하길 바란다.”
이런 송필충의 방법은 효과가 있었다.
독문 독수를 전수한다는 말에 여섯 명 중 두 명이 관심을 보였다.
회귀 전에는 저기 있는 생도들처럼 뒤에서 보았기에 몰랐는데, 앞에서 보니까 후보생들의 표정만 봐도 그것이 티가 났다.
송필충이 만족스러워하며 연설을 끝냈다.
-잘 하네. 미리 준비한 것처럼 말하는데.
한 것처럼이 아니라 했다.
그렇지 않고서 저렇게 비슷하게 말할 리가 없었다.
두 번째로 나선 사람은 해악천에게 아갈머리가 찢길 뻔 한 단주 학정겸이었다.
“반갑다. 본인은 이존이신 난마도제 서갈마 어르신을 모시고 있는 파정 단주 학정겸이라고 한다.”
진행 방식은 거의 같았다.
학정겸 역시도 이존 서갈마에 관한 유명한 일화들과 산하로 들어오면 어떤 이점이 있는가에 대해 연설을 했다.
“합!”
-파파파파팍!
송필충과 다르게 자신의 무공을 보여주며, 들어오게 된다면 손수 지도를 해주겠다는 약조마저 던졌다.
그러나 여섯 명 중에 단 한 명만이 관심을 보였다.
학정겸의 무공 지도보다 삼존 구제양의 독문 독수라는 떡에 더 혹했나 보다.
“칫.”
그걸 알았는지 학정겸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목판 앞으로 돌아왔다.
나름 절정의 고수인데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순차적으로 아홉 명의 단주들이 연설을 마쳤다.
‘흠.’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렇게 연설을 하면서 한 번쯤은 혹했을 만도 한데, 유일하게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후보생이 있었다.
그는 개방의 첩자인 조성원이었다.
그 때문이었는지 단주들 역시도 그를 의식하고 있었다.
-인기가 제일 많네.
‘그렇겠지.’
조성원은 다른 후보생들과는 격이 다른 무위를 지녔다.
누가 봐도 일류에 근접해 있었고, 조금만 가르치면 충분히 일류, 그리고 나아가서는 절정의 고수가 될 지도 모를 인재였다.
당연히 모든 단주들의 관심이 녀석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저벅저벅!
드디어 마지막 단주가 나왔다.
‘일혈성 측인가.’
유일하게 나오지 않은 게 일혈성 측이었다.
의외로 단주들 중에서 경력이 가장 낮은 자는 일혈성 측의 단주였다.
그런데 일혈성 산하의 단주가 나오자,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조성원의 눈동자가 그를 따라 움직였다.
‘뭐지?’
크게 드러내지 않았지만 분명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혈성 측의 단주는 긴 장발에 장검의 검집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풍기는 분위기는 다른 단주들보다도 고수의 느낌이 물씬 났다.
“본인은 일혈성이신 뇌혈검 장룡님의 산하에 있는 백혈 단주 나심형이라고 한다.”
약간은 쉰 듯한 갈라진 목소리가 잘 어울렸다.
듣기 거슬리기 보다는 무게감을 더해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여섯 후보생들도 그것에 매료되었는지 나심형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장룡님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그런데 나심형은 다른 단주들과 다르게 서두를 파격적으로 나갔다.
모시는 주군을 설명하지 않는다라,
“어차피 앞서 선배들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본교의 사존, 칠혈성 분들은 모두가 존경받아 마땅하신 분들이다. 그러니 나 역시 하나하나 열거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묘하게 빨려 들어가는데.
소담검의 말처럼 나 역시도 그의 화술에 귀가 간지러웠다.
오히려 더 흥미를 가지게 만들었다.
나심형이 여섯 후보들을 천천히 훑어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이것만큼은 이야기해줄 수 있다. 일혈성이신 장룡님을 위시한 우리들은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개봉에서 싸워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개봉이라는 말에 조성원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왜 개봉이라는 말에 저런 반응을 보인….아!
알 것 같았다.
-뭔데?
‘개봉은 개방의 근거지야.’
개봉은 황도만큼이나 가장 발달한 도시였다.
그런 개봉에는 수많은 정도 문파들이 밀집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개방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개방은 중원 전역으로 퍼져서 활동하는데, 그들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개방 방주가 개봉에 있었다.
‘그래서였구나.’
왜 일혈성의 밑으로 갔는지 의아해했었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다.
개봉이 개방의 중심부라면, 그들과 접선하기도 편할뿐더러 여차할 경우에는 일혈성 측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회귀 전에는 어차피 조성원이 추살되었기에 가볍게 넘겼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진정한 무인이라면 최전선에서 선봉에 서서 싸우는 것이야말로 가장 영광스러운 일일 것이다. 본 대주가 하고 싶은 말은 여기까지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연설을 끝냈다.
가장 짧으면서도 인상 깊은 연설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치 전쟁터로 나가는 비장한 장수처럼 전의를 끌어내는 연설에 조성원 이외 두 명의 후보생들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딱 그대로네.’
회귀 전의 기억이 맞다면 세 명이나 일혈성의 산하로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라도 끌렸을 것 같다.
-앞에가 너무 센데.
별 수 있는가.
뭐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 해볼 수밖에 없었다.
일혈성 산하의 단주인 나심형이 들어오자, 단주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드디어 내 차례였다.
-척!
나는 그들에게 포권을 취하고서 후보생들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런 나의 귓가로 해악천의 전음이 들려왔다.
[한 녀석도 놓치면 안 되니까. 잘 해라.]목소리가 꽤 무거워진 걸 보면 해악천도 앞서 했던 나심형을 의식한 듯 했다.
우려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그에게 전음을 보냈다.
[스승님. 하나만 부탁드려도 됩니까?] [뭐?]나는 해악천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내 말에 해악천이 인상을 쓰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역효과 나는 거 아냐?
소담검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나 역시도 이게 통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육혈성 측과 마찬가지로 유일하게 당사자를 앞에 두고 있으니, 그 이점을 잘 활용해야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할 건데?
‘앞에서 안 쓴 전략으로 가야지.’
후보생들의 표정을 보면 이미 마음을 굳혔다.
그런 그들을 움직이려면 같은 방식으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차별화를 둬야 했다.
-척!
후보생들에게 우선 포권을 취했다.
그리고서 입술을 뗐다.
“반갑다. 나는 너희들과 같은 기수의 생도로 들어왔던 대주 소운휘라고 한다.”
같은 생도로 들어왔다는 말에 단주들과 눈빛 교환을 하고 있던 후보생들이 작게 관심을 보였다.
이건 아무래도 아까 전 대주 직위 시험에 영향인 듯 했다.
하지만 이걸로는 택도 없었다.
그들의 관심을 확연하게 끌어야 한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나는 사존 기기괴괴 해악천 어르신의 제자다. 어찌보면 너희들보다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그 말에 오히려 뒤쪽에 있는 생도들이 더 반응했다.
명백히 질투와 시기심이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서 말을 이어갔다.
“나는 분명 행운아다. 하지만 같은 생도로 들어온 만큼 나만큼이나 너희들의 마음을 아는 사람도 없을 거라 생각한다.”
말을 길게 잇게 되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한 박자 쉬면서 여섯 생도들과 차례대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앞서 나심형 단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나 역시 스승님에 대한 일화를 이야기하거나 띄우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특별히 띄워줄만한 일화가 없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거의 악명에 가까운 일화들뿐이다.
하지만 내 말이 조금씩 먹혀들어 가는지 두 명의 후보생들이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니. 오히려 증명되었다고 생각한다.”
“증명?”
앞쪽에서 지켜보던 해악천이 인상을 찡그렸다.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아서 불만스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애써 이를 무시하고 말을 계속 해나갔다.
“너희들과 마찬가지로 생도로 들어왔던 저 둘을 보아라.”
내 말에 모두의 시선이 송좌백과 송우현 쌍둥이들에게로 향했다.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다가 자신에게 관심이 쏠리자 송좌백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심지어 저들도 대주가 되었다. 고작 1년 만에 말이다.”
-웅성웅성!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생도들이 더 술렁였다.
-좋은데.
그래. 이쪽에는 객관적인 지표가 있었다.
고작 일 년 만에 세 명의 일류고수를 만들었다는 객관적 지표 말이다.
그런데 뒤쪽에서 단주 한 명이 여섯 후보생들이 들을 수 있을만한 정도의 크기로 소리를 냈다.
“그건 사존께서 직접 가르쳐서 그런 거잖아.”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방해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길게 하진 못했다.
해악천이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제자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희들도 아까 들어서 알지도 모르겠지만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
내 말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그건 우리가 스승님과 내 동문인 쌍둥이들을 포함해 총 네 명뿐이란 거다.”
그 말에 여섯 후보생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뒤에서 콧방귀 소리까지 들려왔다.
그래. 아마 세력이 작은 게 뭐가 자랑이라고 그런 소리를 하나 싶을 거다.
그런 그들의 비웃음을 뒤로 하고 나는 말했다.
“지금은 소수로 시작하지만 머지않아 스승님의 밑으로 많은 교인들이 들어오게 될 거다. 그때는 너희들이 개파 문파의 공신처럼 창단의 중심이 될 수 있다.”
‘!?’
그 말을 하자 뒤에서 들리던 비웃음 소리가 수그러들었다.
그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을 거다.
여섯 후보생들 역시도 어떤 의미로 이 말을 했는가 알아들었는지, 눈동자들이 흔들렸다.
이제 승부수를 던질 차례다.
“다른 분들도 훌륭하지만 어디로 들어가든지 너희는 당연히 말단부터 시작하게 될 거다.”
내 말에 뒤쪽에서 큰 호흡소리들이 들려왔다.
뭔가 끼어들고 싶은데, 그러질 못해서 답답한 모양이었다.
해악천이 앞에서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그건 절대로 부정할 수 없을 거다.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용의 꼬리가 되어 시작할 테냐? 아니면 용의 머리 부근부터 시작할 테냐?”
-크.
소담검이 신음성을 흘렸다.
내가 던졌지만 제대로 승부수인 것 같다.
이 말이 먹혔는지 단주들과 눈빛 교환을 하던 후보생들이 나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해악천을 향해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말했다.
“보다시피 인원도 적어서 가족 같은 분위기다.”
그 말에 후보생들이 저도 모르게 뒤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곳에 해악천이 덩치가 산만한 쌍둥이들과 어깨동무를 하고서 씨익하고 웃고 있었다.
쌍둥이들이 힘겹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색하지만 이걸로 됐다.
이런 내게 소담검이 키득거리며 중얼거렸다.
-사기꾼이 다 됐는데. 가족 같은 게 아니라 가 좆같은 분위기겠지.
대충 넘어가라.
그럼 들어오면 지옥이라고 말하리?
* * *
그렇게 각 단주들의 연설이 끝나고 드디어 상급 무사 후보생들의 선택의 시간이 왔다.
마지막으로 한 내 연설이 불만이었는지, 몇몇 단주들이 굉장히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눈치 보여도 어쩌겠는가.
쟤들을 전부 데려오지 않으면 각오하라는데.
패혈 단주 구상웅이 외쳤다.
“자. 그럼 후보생들은 결정했으면 보직을 받을 산하를 선택해라. 가장 먼저 수련 생도 이규.”
“충!”
자리에서 일어난 이규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일렬로 서있는 단주들이 기대감이 넘치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는 지켜보는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저벅저벅!
이규가 한가운데로 걸어왔다.
그리고 좌측으로 향했다.
그러자 우측 편에 있던 단주들이 짜증이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좌측 편에 있던 단주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이규가 옆으로 한 발자국씩 걸어갔다.
한 명씩 스칠 때마다 그 앞에 있던 단주들의 표정이 우측 편에 있던 단주들과 똑같이 변해갔다.
그리고 일혈성 산하의 단주 나심형의 앞 쪽에 도달했다.
이규가 그 앞에서 머뭇거렸다.
나심형의 입 꼬리 슬며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안 통했나 본데.
소담검이 아쉬운 듯이 말하는데, 갑자기 이규가 거기서 발을 뗐다.
그리고 내 앞에 와서는 한 쪽 무릎을 꿇고서 포권을 취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소 대주. 사존 어르신의 산하로 보직을 받고 싶습니다.”
단주 나심형의 올라갔던 입 꼬리가 슬그머니 밑으로 내려갔다.
“크하하하하하핫! 좋아. 좋아.”
해악천이 광소를 터뜨리며 좋아했다.
시작이 좋았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시작부터 후보생이 다른 단주의 앞으로 갔다면 저 미친 늙은이가 얼마나 닦달하겠는가.
첫 번째가 끝나자 패혈 단주 구상웅이 두 번째를 호명했다.
“후보생 하문찬!”
“충!”
하문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성큼성큼 곧바로 발을 내딛었다.
그러다 하문찬이 잠시 멈춰섰다.
이상해서 옆을 힐끔 쳐다보았는데, 몇몇 단주들의 목청 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급했네. 급했어.
불안했는지 전음을 보내고 있는 듯 했다.
잠시 멈춰 섰던 하문찬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하문찬이 멈춘 곳은,
“소 대주. 저도 사존 어르신의 산하로 보직을 받고 싶습니다!”
바로 내 앞이었다.
하문찬의 우렁찬 소리에 해악천이 흡족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놈 마음에 드는 구나! 크하하하하핫.”
반면 나는 살짝 얼떨떨했다.
나름 연설을 성공적으로 해냈지만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둘이나 연달아서 내 앞으로 오니, 뭔가 기분이 오묘했다.
-으득! 그런 내 옆쪽에서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참 미안해해야 하는 건가.
그들의 반응이 어찌 되었든 패혈 단주 구상웅이 세 번째 후보생을 불렀다.
“다음은 후보생 조성원!”
조성원이라는 말에 단주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세 번째로 지목되었지만 사실상 이 한 명이 나머지 다섯 명을 제칠 수 있을 만큼 모두가 노리는 인재였다.
-근데 독이 든 황주(皇酒) 아냐?
소담검의 말이 맞았다.
첩자인 저 녀석은 먹으면 목에 걸리는 가시였다.
그걸 모르기에 단주들은 손에 넣지 못해서 안달이 나있었다.
단주들이 조용했다.
-파르르!
이번에는 누구 할 것 없이 그들의 목청이 떨렸다.
심지어 내 옆에 있는 일혈성 산하의 단주인 나심형도 마찬가지였다.
이 한 명을 얻음으로서 반전을 꾀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놈은 절대 놓치면 안 된다!]그런 내 귓가로 해악천의 전음이 들려왔다.
녀석이 상급 무사 작위 시험에서 대련을 할 때 그렇게 마음에 든다고 하더니, 얻고 싶어 안달이 났다.
‘흠.’
나는 녀석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가시가 많은 생선을 내버려 두느냐? 아니면 취하느냐?
그때 조성원이 발걸음을 뗐다.
단주들의 시선이 그의 발걸음에 집중되었다.
-저벅저벅!
하지만 이내 단주들의 얼굴은 실망감으로 물들어갔다.
조성원의 발걸음은 곧장 한 사람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단주 나심형이었다.
-목적에 충실하네.
첩자인 녀석이 내가 한 말에 넘어갈 리가 만무했다.
조성원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이번만큼은 확신했는지 나심형의 눈꼬리가 그믐달로 바뀌어갔다.
앞으로 세 걸음만 더 다가오면 나심형의 앞이었다.
그때 내가 조성원에게 전음을 보냈다.
[어이. 거지.]-움찔!
그 순간 녀석의 발걸음이 멈춰졌다.
여태까지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조성원이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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