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46
20화 혈수마녀의 재주 (2)
혈수마녀 한백하가 나를 쳐다보며 입을 살짝 벌리고서 눈을 깜빡거렸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놀라하는 표정은 처음 본다.
그런 그녀를 보고서야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설마……환의안의 두 번째 단계?’
한백하는 내게 전음으로 말했었다.
환의안의 두 번째 단계는 상대를 자신이 의도한대로 행동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이 맞다면 나는 두 번째 단계를 행한 것이다.
-…….자식. 남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소담검의 말에 나는 강하게 부정했다.
-뭘 그렇게 부정해. 다 이해해. 혈기왕성한 남자가 뭐 여자의 나신도 보고 싶고 그런 거 아니겠어?
그런 식으로 몰아가지 마라.
이 상황에서 그러는 게 이상하지 않나.
나는 그저 비웃는 담예화를 보면서 두 번째 단계가 가능하다면 망신을 줄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저랬다고?
……..홀라당 벗고 덩실덩실 춤을 추면 웃기겠다고 생각했다.
거의 찰나에 스쳐지나가듯이 생각했을 뿐이었다.
-네네. 그러시겠죠.
미치겠다.
이 녀석만 그러는 게 아니라 백련하도 나를 싸늘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명백히 실망에 가까운 눈빛이었다.
환의안의 두 번째 단계를 모른다고 해도 담예화가 옷을 벗으려 했던 것의 원인은 누가 봐도 나였다.
“공자.”
그때 혈수마녀 한백하가 입을 열었다.
상황이 워낙 그랬던 지라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겁이 났다.
하지만 그녀는 담예화가 옷을 벗을 뻔 한 것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히려 다른 것에 관심이 가있었다.
“방금 어떻게 한 거죠?”
“……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다뇨? 방금 전에 공자가 한 것은 분명….”
그녀가 입을 다물더니, 전음으로 이어갔다.
[그건 환의안의 두 번째 단계가 틀림없어요. 대체 어떻게 한 거죠?]한백하의 눈동자에 어린 호기심.
그걸 보면 두 번째 단계에 대한 실마리를 얻고 싶어하는 듯 했다.
그런데 나 역시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녀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어떻게든 이 방법을 알고 싶은 모양이다.
하긴 이걸 알게 된다면 그녀는 상대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수법을 손에 넣게 되는 것이었다.
-뭐라고 하길래 그러는 거야?
전음을 들을 수 없기에 소담검이 내게 물었다.
‘두 번째 단계를 했던 방법을 알려 달래.’
-방법을? 흐음…..알려주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소담검의 그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눈앞에서 보았는데 이걸 어찌 숨기는가.
게다가 지금 그녀를 보면 여차하면 손이라도 쓸 기세였다.
결국 나는 짐작 가는 것을 알려주었다.
[환의안을 행할 때 잡념처럼 그리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예화가 옷을 벗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가요?] [그런 것이 아니라….]그녀는 내 해명을 듣지 않고서 담예화를 불렀다.
“예화.”
옷고름이 풀린 것을 황급히 여민 그녀가 빨개진 얼굴로 답했다.
“스, 스승님.”
“내 눈을 보아라.”
두 번 씩이나 환의안에 당한 담예화는 더 이상 눈을 쳐다보고 싶지 않아보였다.
하지만 스승의 명에 거역할 수 없기에 마지못해 눈을 쳐다보았다.
과연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쳐다보며 가만히 서있었다.
“…….”
한참을 그러고 있었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혈수마녀 한백하가 미간을 찡그렸다.
생각했던 대로 환의안의 두 번째 단계가 되지 않는 듯 했다.
“공자.”
그녀가 나를 불렀다.
“네. 육혈성.”
“공자가 해봐요.”
한백하가 담예화를 손으로 가리켰다.
내 예상이 맞나보다.
그런 그녀의 말에 담예화가 두 팔로 자신의 몸을 감싸더니, 껄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 또한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런데 제 옷이 그렇게….”
“그만.”
따지고 드려는 그녀를 한백하가 제지시켰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환의안의 두 번째 단계 밖에 없는 듯 했다.
꺼려하는 것을 억지로 시켰다.
“공자의 눈을 쳐다봐라.”
“하, 하지만 스승님….”
“어서!”
담예화는 스승의 말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사문의 위계질서가 철저했다.
그녀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흘겨보았다.
-제대로 미움 받았네.
‘…..그러게.’
이미 벌어진 일을 어떻게 하겠는가.
당장에는 그녀의 기분을 풀 수 있는 방법이 없기에 나는 해명하기를 포기했다.
[담예화가 앉았다가 일어서게 해봐요.]한백하가 내게 지시했다.
“후우.”
이에 나는 담예화와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서 환의안의 요결을 외우며 안력을 끌어올렸다.
한백하가 눈을 떼지 않고서 나와 담예화를 번갈아가면서 쳐다보았다.
나는 아까 전과 마찬가지로 요결을 외우면서 머릿속으로 담예화가 앉았다가 일어서는 것을 떠올렸다.
‘……..’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오랫동안 안력을 집중해서 그런지 두 눈이 아파왔다.
“육혈성…..아무래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공자. 일부러 하지 않은 건 아니겠죠?”
한백하가 의심스럽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보고 믿지 못하나.
그래서 나는 얼굴을 보여줬다.
눈이 많이 따가워서 눈물까지 맺히려고 하는 것을 확인한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고민에 빠졌는지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소담검이 내게 물었다.
-오. 속인 거야? 역시 머리가 좋은….
‘아니야.’
-속인 게 아니라고?
속였으면 내 눈이 이렇게 따가울 리가 있나.
정말로 요결을 외웠다.
나 역시도 확인하고픈 마음이 있어서 담예화에게 환의안을 걸어보려고 했으나, 전혀 걸려들지 않았다.
“흐음.”
한참 동안 혼자서 심각해하고 있던 혈수마녀 한백하가 담예화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이 눈을 마주치자 담예화가 움찔거리다, 이내 비틀거리며 쓰러지려고 했다.
“헉!”
-탁!
그러나 이번에는 누가 잡아주지 않아도 자의로 깨어났다.
‘아.’
이걸 보면 환의안의 첫 번째 단계인 암약 역시도 자주 걸리게 되면 내성이 생기는 것 같았다. 좋은 걸 알았다.
반면 한백하가 확인하려고 했던 것은 이게 아닌 듯 했다.
환의안에 다시 걸리는지를 확인하려 했던 것 같다.
“……정말인가 보군요.”
“제가 어찌 육혈성께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그녀가 나를 쳐다보면서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공자의 말을 믿도록 하죠. 약조도 지켰고 밤이 늦었으니 이제 그만 들어가도록….아.”
급하게 돌아가려 하던 한백하가 뭔가 떠올랐는지 백련하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백련하가 나를 흘겨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걸 보면 그녀 또한 내게 볼 일이 있던 모양이었다.
-제대로 찍혔나 보다.
그렇게 말하면 찝찝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이것 때문에 마음이 바뀔 리야 있겠는가.
명색이 혈교주 후보인데 말이다.
그러나 먼저 떠나가며 들려오는 한 마디의 전음성에 나는 발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호색한.]……젠장.
* * *
실수 덕분에 백련하와 담예화에게 제대로 찍혀버렸다.
담예화가 화를 내는 것은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지만, 백련하는 차기 혈교주 후보라 밉보이기 싫었는데 운이 없었다.
그런 나를 소담검이 위로했다.
-나중에 오해를 풀 기회가 있지 않겠어. 기운 내.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게 문제지.
그때까지 그녀에게 나는 호색한이지 않은가.
어쨌든 이미 벌어진 일을 후회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급하게 돌아간 걸까?
소담검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본당으로 돌아간 혈수마녀 한백하를 말하는 것이었다.
정말 밤이 늦은 것치고는 경공까지 펼쳐가며 급하게 본당으로 돌아간 그녀였다.
‘실마리가 생겼으니까.’
-실마리? 혹시 그 환의안인가 하는 거 말이야?
‘그래.’
눈앞에서 우연이라고 하나 두 번째 단계가 걸리는 것을 보았다.
머릿속에 오직 그것을 구현하고픈 마음 밖에 없었을 거다.
그래서 급하게 돌아갔으리라.
-드르르!
내 생각은 그랬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바닥에 송좌백과 송우현이 누워있었다.
객당 방의 숫자가 제한되어 있다보니, 우리 셋이 한 방을 쓰기로 했다.
한동안 동굴 바닥에서 자던 것이 적응되었는지 쌍둥이들은 바닥에서 자기로 했고, 하나뿐인 침상은 내 몫이 되었다.
-왔나? 운휘.
남천철검이 나를 반겼다.
재주를 배울 때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서 방에 두고 갔었다.
-볼 일은 끝났나?
‘그래.’
둘이 깰까봐 나는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왔다.
바닥에 누워있는 녀석들을 가로질러 침상에 앉아서 허리춤에 차고 있던 소담검을 풀어서 침상 언저리에 올려놓았다.
그때였다.
-부스슥!
누워있던 송좌백이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녀석이 반쯤 감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딜 그렇게 갔다 온 거냐?”
이것부터 묻는 걸 보면 중간에 내가 사라져서 궁금했던 모양이다.
녀석에게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별일 아냐?”
“…..별일이 아닌데 이 꼭두새벽에 나갔다 온 거냐?”
귀찮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뭐라고 둘러대지.
꼭 들어야겠다며 저리 쳐다보는데…..아!
문득 나는 녀석을 상대로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환의안?
그래.
담예화에게 시험했을 때는 되지 않았었다.
혹시 모르지 않나.
녀석을 상대로 시험해보면 어째서 안 된 것인지 알 수 있을 지도 몰랐다.
나는 환의안의 요결을 외우며 안력에 집중했다.
“지금 뭐하는 거냐? 어디 갔다 온 거냐고 묻는데 왜 그딴 식으로 노려보는 거냐?”
녀석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목소리로 따졌다.
안력에 집중한다고 눈을 부릅떠서 그런지 노려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확실히 연마가 필요했다.
적응되지 않아서 그런지 시간이 걸렸다.
“야!”
녀석이 화가 났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일어나려고 하던 송좌백의 눈동자가 멍해지더니, 녀석이 다시 자리에 앉아서 옆에 누워 있는 쌍둥이 동생 송우현을 쳐다보았다.
송우현을 쳐다보던 송좌백이 녀석의 매끄러운 머리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짝!
차진 소리와 함께 송우현이 눈을 떴다.
송우현이 무섭게 번뜩이는 눈으로 송좌백을 노려보았다.
그때 송좌백이 다급히 녀석의 머리에서 손바닥을 떼면서 당혹스러워하며 말했다.
“내, 내가 왜 네 머리에….”
그 순간 송우현이 벌떡 일어나 송좌백의 이마에 박치기를 했다.
-쿵!
“억!”
송좌백이 짧은 비명과 함께 쓰러지고 말았다.
기절했는지 누워 있던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서는 숨소리만 들려왔다.
박치기로 쌍둥이 형을 잠재운 송우현이 다시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푸하하하하하핫!
그 광경을 본 소담검이 폭소를 했다.
반면 나는 그렇지 않았다.
방금 그걸로 알 수 있었다.
‘……되잖아?’
우연이라 생각했던 환의안의 두 번째 단계를 또 다시 성공했다.
* * *
사흘 동안 나는 환의안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후보생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을 상대로 연습 삼아 시험해 보았기 때문이었다.
환의안의 첫 번째 단계는 혈수마녀가 알려준 것과 거의 비슷했다.
하지만 두 번째 단계는 상당히 달랐다.
발견한 것을 정리한다면 이렇다.
첫째. 환의안에 걸리게 되면 사람마다 일부 차이는 있었지만 최소 다섯을 셀 정도의 시간 동안 내가 원했던 대로 움직였다.
이걸 보면 담예화도 옷을 벗다 도중에 멈췄을 확률이 높았다.
둘째. 한 번 걸린 대상자는 연달아서 환의안에 걸리지 않는다.
송좌백을 상대로 다음날 환의안을 걸어본 결과 걸렸었다. 한데 이어서 시도하자 녀석은 어젯밤부터 시비를 건다며 내게 화를 냈다.
혹시 하는 마음에 다른 후보생들에게 시험해봤으나 마찬가지였다.
그걸 보면 재차 환의안을 거는 것에는 시간차가 필요한 듯 했다.
셋째. 환의안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를 움직이는 것은 가능하나, 상대가 알고 있던 기억이나 정보를 캐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가 의도한 행동은 했지만 그 이상의 자발적인 무언가를 꺼낼 수는 없었다.
이게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었다.
넷째. 정신력이 굉장히 강하거나, 혹은 나 이상의 고수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호송 단주 장문웅을 상대로 시험해봤으나, 괜히 그를 자극하는 효과만 낳았다.
덕분에 눈을 부릅뜨지 않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 가장 중요한 다섯 째였다.
환의안의 첫 번째 단계와 달리 두 번째 단계는 선천진기를 소모했다.
한두 번까지는 그리 많은 소모가 없어서 몰랐는데, 계속 사용하자 성명신공으로 무공을 펼쳤을 때처럼 상당한 선천진기를 소모했다.
-그래서 혈수마녀인가 걔는 첫 번째 단계만 할 수 있었던 거 아냐?
‘그럴 수도 있어.’
소담검의 말처럼 혈수마녀 한백하는 이십여 년 동안이나 환의안을 써왔지만 아무런 발전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익히자마자 두 번째 단계를 쓸 수 있었다.
이걸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환의안의 암시를 강하게 만드는 방법은 분명 선천진기와 관련이 있었다.
-오. 그럼 선천진기가 강해지면 그 세 번째 단계도 가능할까?
‘모르겠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세 번째 단계인 환각도 가능할까 시험해봤지만 전혀 되지 않았다.
아직은 선천진기가 부족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이 추측이 맞다면 소담검의 말처럼 세 번째 단계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캬. 그래도 이 정도면 엄청 쓸 만한 걸 배웠는데. 그 마녀가 알면 배 아파하겠는데.
혈수마녀 한백하는 환의안이 크게 효용성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알려줬다.
하지만 이를 어쩌나.
그녀는 내게 그 자신조차 완벽히 익힐 수 없는 굉장한 재주를 선물해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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