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49
22화 누가 승자인가 (1)
해악천의 폭탄과도 같은 말에 유일하게 무덤덤한 이는 한 사람뿐이었다.
쌍둥이 동생인 송우현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는 하는 건지, 눈만 멀뚱멀뚱 뜨고서 정면을 쳐다볼 뿐이었다.
순간 놀라서 해악천을 쳐다보던 난마도제 서갈마가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해 형.”
“말한 그대로다. 떡잎 하나를 보면 그 줄기를 알 수 있다고 네놈의 행실 좋지 못한 제자 놈들에 비하면, 아가씨의 배필로 본좌의 제자들이 훨씬 낫지 않느냐.”
아…….
제발 아니길 바랐다.
그러나 역시 이 미친 노인네는 어디로 튈지 모를 인간이었다.
기기괴괴라는 별호가 이만큼 어울리는 사람이 어디 있던가.
“……해 형의 제자들이 본인의 제자들보다 낫다 이 말씀이오?”
“당연한 소리.”
“제자들에 대한 과신이 크구려.”
서갈마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분위기가 오묘해졌다.
더 이상 해악천에게 휘말리지 않으려는 모양이었다.
“흥! 과신으로 보이느냐.”
대체 이 노인네가 왜 이렇게 강하게 나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중단전을 개방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도 일류에 불과했고, 쌍둥이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서갈마의 제자들은 오랫동안 무공을 사사받아 일류의 벽을 넘어섰다.
-쟤들 표정 봐라.
기가 죽어있던 고은재부터 그 사형인 호금원까지도 우리를 쳐다보면서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해악천이 없었다면 대놓고 비웃었을 지도 몰랐다.
서갈마가 고개를 돌려 해악천을 노려보며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간단하겠구려.”
-척!
서갈마가 대나무 발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아가씨와 육혈성이 공증을 서주십쇼. 이 자리에서 제 제자들과 해 형의 제자들 중에 누가 배필로 어울릴지 겨뤄보면 될 것 같습니다.”
사달이 날 것 같았는데 기어코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갔다.
무림인이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는 방법은 결국 무(武)였다.
“그리 제자들을 과신하셨으니, 해 형도 반대하지 않겠지요?”
서갈마가 판을 제대로 깔았다.
여기서 해악천이 거절하면 물러나는 격이 된다.
“좋다! 못할 것이 무에 있겠느냐.”
역시나 거절하지 않았다.
하긴 운을 띄운 당사자가 거절할 리가 있나.
“화통하시구려.”
“하나 모름지기 대결이라 해도 공평해야 하지 않겠느냐.”
“공평?”
의아해하는 그에게 해악천이 우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본좌의 제자들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무공을 배운지 고작 1년에 불과하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오? 그런 것까지 일일이 감안했을 거면 애초에 멍석을 깔지 말았어야 할 것 아니오.”
“간단한 방법이 있지 않느냐.”
“간단한 방법?”
“내공을 닫고서 초식만을 겨루는 것이다. 클클.”
역시 해악천도 나름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도 문제가 있었다.
내공을 닫는다고 해도 일류 고수와 그 벽을 넘어선 절정의 고수의 실력 차가 없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절정을 구분 짓는 것은 단순히 내공이 아니라 깨달음의 유무였다.
“내공을 닫고 겨뤄? 하하하하하하핫.”
이번에는 서갈마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비웃음이 담긴 눈빛으로 해악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공이 아닌 초식으로 겨뤄도 더 장시간 연마를 한 자신의 제자들이 유리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저런 태도를 보이는 거다.
“왜 자신 없느냐?”
해악천이 그런 그를 자극했다.
이에 서갈마가 피식하고 웃으며 답했다.
“후회하지 않겠소? 내공의 차가 무의미하다는 것 정도는 해 형이 더 잘 알 터인데?”
“상관없다.”
“참으로 오만하시구려.”
그 말과 함께 서갈마가 시선을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제자 분이 남천검객의 검법을 전승했다고 해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는 거면 오산이라고 말해주리다. 상승검법일수록 초식의 운기가 이어져야 그 위력을 낼 수 있는 법.”
그런 그의 말에 해악천이 눈썹이 꿈틀거렸다.
설마 정곡을 찔린 것일까?
하지만 이내 해악천이 특유의 웃음을 내며 팔짱까지 끼고서 말했다.
“그건 네 제자 놈도 마찬가지이지 않느냐.”
“후후. 그리 생각하시오?”
서갈마의 태도를 보면 믿는 바가 있어보였다.
그렇다면 그의 도법은 운기가 아니더라도 외공만으로도 충분한 위력을 낼 수 있을 확률이 높았다.
저렇게 기다란 장도를 쓰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지 몰랐다.
“좋소. 해 형의 제안을 받겠소. 하면 본인도 한 가지 제안을 해도 되겠소?”
“제안?”
“본인은 이 대결의 여흥을 돋우려고 하오.”
서갈마는 순순히 손해를 볼 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원하는 바를 얻은 해악천이기에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좋다.”
“대결은 진검 승부로 하십시다.”
“그야 당연한….”
“그냥 단순한 진검 승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오.”
“뭐?”
“대결을 하다 어느 한 쪽이 팔이 잘리든 다리가 잘리든, 혹은 목숨을 잃어도 개의치 않겠다는 양자 간의 약조를 합시다.”
‘!!!’
서갈마의 제안은 말 그대로 생사의 대결을 뜻했다.
-약았네.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서갈마의 이 수는 두 가지 노림수가 있었다.
하나는 생사의 대결을 운운하면서 해악천이 알아서 이 대결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는 뭔데?
‘……이 자리에서 날 병신으로 만들거나 죽이겠다는 거지.’
향후 해악천의 한 팔이 될 수 있는 나를 사전에 제거하겠다는 소리다.
남천검객의 진전을 이은 나는 그만큼 가시일 수도 있었다.
한 번에 일거양득을 취하겠다는 계책이다.
“크흠.”
해악천도 그의 속셈을 읽었는지, 잠시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상대가 강하게 나오니 생각이 깊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참 진퇴양난일 것이다.
그때 해악천의 전음 소리가 들려왔다.
[흥. 서갈마 저 놈이 잔머리를 굴렸구나.]……..바보가 아닌 이상 당연히 자신들이 유리하도록 판을 치겠지요.
이제 해악천의 선택에 달렸다.
과연 제자를 사지로 보낼 것인가.
누가 봐도 이 승부는 일류에 불과한 내가 불리했다.
[감춰둔 실력을 발휘해라.]‘!!!’
그런 그의 전음에 나는 순간 심장이 덜컥했다.
설마 해악천은 내가 중단전과 그 실력을 숨긴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그랬다면 굳이 내공을 닫고서 대결을 펼치는 제안을 하지 않았을 터인데.
아니.
정말 이 노인네가 중단전의 존재를 눈치챈 건가?
그러나 다음 이어지는 말에 나는 속으로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네 녀석은 내공이 받쳐주지 않아서 그렇지. 깨달음은 이미 일류의 벽을 돌파했다. 네놈과 손을 얼마나 섞었는데 그걸 모를 성 싶으냐.] […….] [네놈의 검초에 남겨진 여지만 봐도 알 수 있다.]다행이면서도 놀랍다.
중단전의 선천진기는 모르고 있었다.
다만 그는 나와의 수많은 대련을 통해서 일류의 벽을 넘어섰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중단전을 눈치 채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너무 과신했다.
노친네가 달라 보인다.
여태껏 그것을 모른 척 했다는 말인가.
[……송구합니다.] [영악한 녀석 같으니. 송구할 것 없다. 네놈과 손을 그리 섞지 않았다면 본좌 역시도 눈치 채지 못할 뻔했으니까.]이런 식으로 들키다니.
실력을 감추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듯 하다.
이를 더 나무랄 줄 알았는데, 해악천이 뜻밖의 말을 했다.
[무조건 이길 각오로 임해라. 다만…..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면 발을 빼도 좋다.] [네?] [패배를 인정해도 좋다는 말이다.]해악천의 전음에 나는 정말로 놀랐다.
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 노친네가 안 된다 싶으면 패배를 인정해도 좋다고 했다.
그 말은 내가 다치거나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이 노친네……’
평소의 거친 태도만 보면 언제든 버릴 것만 같았다.
한데 지금 전음을 보면 나를 진정으로 제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막무가내로 여겼는데 정말 의외의 모습이었다.
[흥! 쓸데없이 오해하지 말거라. 고작 1년 배운 걸로 네놈이 완벽하게 저놈을 이길 거라고 생각지 않기에 그러는 것이다.]‘……..’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이 괴팍한 노인네가 나를 걱정하다니.
참 모를 일이었다.
-슥!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해악천에게 포권을 취하며 육성으로 말했다.
“기대에 부응토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해악천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반면 서갈마는 그런 나의 모습에 혀를 찼다.
“쯧쯧, 제자를 사지로 모는 구려.”
“흥! 네놈이야말로 제자 놈이 성하길 간절히 바라거라.”
그런 그를 해악천이 성난 목소리로 다그쳤다.
그리고는 탁자의 모서리를 잡고서 강하게 밀어냈다.
-끼이이이이이!
심후한 그의 공력에 의해 탁자가 방 끝까지 밀려났다.
그 덕분에 방안에 대결을 할 만한 공간이 생겨났다.
“길게 끌 것 있겠느냐. 당장 시작하자.”
그때 이를 지켜보고 있던 혈수마녀 한백하가 나섰다.
“멈추십쇼. 아가씨께서는 이존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심중을 밝히시지 않으셨는데, 이렇게 멋대로….”
그녀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좋아요.]방 안이 백련하의 육합전성으로 울려 퍼졌다.
아무 말이 없어서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는데, 그녀의 입으로 직접 받아들일 줄은 몰랐다.
“아가씨!”
혈수마녀 한백하가 당혹스러워했다.
반면 서갈마는 그녀의 마음이 바뀌기라도 할까봐, 얼른 포권을 취하며 감격스럽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의를 위한 아가씨의 결정에 진정으로…..”
[하지만 저도 조건이 있어요.]그런 그녀의 말에 기뻐하던 서갈마가 인상을 찡그렸다.
역시나 백련하 같이 똑똑한 여자가 자신의 목숨만 구제하는 이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조건이라 하심은?”
[명색이 제 배필을 정한다고 하셨으니, 제 조건에 부합해야 하지 않겠나요?]그녀의 말에 서갈마가 말없이 대나무발을 쳐다보았다.
혹시나 그녀가 무모한 조건을 걸까봐 우려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내 이를 받아들였다.
“말씀하십시오.”
[제 배필이라면 당연히 저보다 그 역량이 뛰어나야 하지 않겠어요? 저도 같은 조건으로 대결을 하도록 하겠습니다.]“넷? 아가씨께서 대결을 말입니까?”
그녀의 참전 선언.
이건 전혀 상정하지 못했는지 서갈마의 표정이 묘해졌다.
나의 실력은 알려졌지만 그녀의 무위에 대해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인 듯 했다.
“크하하하하하핫. 과연 맞는 말씀입니다. 아가씨의 배필이 되려면 당연히 그 정도 역량을 갖춰야지요.”
해악천이 그녀를 거들었다.
이에 망설이던 서갈마가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고민은 했지만 제자의 역량을 신뢰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한데 만약 제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어찌하실 겁니까?]“네? 그게 무슨…..”
[저를 이기지 못한다면 어찌하겠냐고 묻는 겁니다. 제 의사와 상관없이 대의를 위해 희생하라고 하셨는데, 설마 제가 이겨도 서숙의 의견을 따르길 바라는 건가요?]“그 말씀은……아가씨께서 이기시면 원하는 것을 들어달라는 겁니까?”
[맞아요.]서갈마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가 무엇을 요구할지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들어맞았다.
[제가 이긴다면 해숙과 서숙께서는 이 자리에서 저를 지지하겠다는 약조와 함께 충성맹세를 해주셔야겠어요.]덩달아 걸려버린 해악천의 눈이 동그래졌다.
처음에는 자존심 대결로 시작된 것이 어느새 판이 굉장히 커져버렸다.
이 대결로 많은 것이 걸려버린 것이다.
-똑똑하네.
소담검의 말에 동의한다.
그 와중에 자신의 이(利)를 챙기는 걸보면 그녀도 만만치 않았다.
하긴 여기서 두 존자에게 끌려 다니기만 한다면 교주의 재목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교주를 꿈꾸는 여자답게 호걸이었다.
-과연 미친 노친네가 어떻게 나올까?
‘답은 정해졌어.’
-응?
애초에 배필을 정하는 일에 끼어든 것은 해악천의 심중이 백련하에게 쏠려있음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를 방관했을 것이다.
-슥!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해악천이 대나무발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클클, 아가씨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뜻을 정했다면 굳이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기면 제자와 그녀를 맺어주면서 안위를 보장할 수 있게 되고, 지게 된다면 두 존자가 그녀를 지지하게 된다.
불리하던 세력의 판도에 변화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서숙은 받아들일 수 없나요?]그런 그녀의 물음에 난처해하던 서갈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물러나게 되면 무자로서의 체면이 무너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통성을 이은 백련하를 살리고자 하는 명분을 잃게 됨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로서도 승부수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슥!
서갈마가 포권을 취하며 답했다.
“아가씨의 뜻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불안하게 지켜보던 혈수마녀 한백하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그렇게 많은 것이 달려 있는 대결이 성사되었다.
그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서갈마의 앞으로 걸어갔다.
나의 행동에 서갈마를 비롯한 모두가 의아해하며 쳐다보았다.
-슥!
나는 서갈마에게 포권을 취하며 공손히 말했다.
“공정한 대결을 위해서 이존 어르신께서 점혈술로 제 내공을 닫아주십시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서갈마의 표정이 묘해졌다.
목숨이 걸린 대결인데도 당당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모양이다.
서갈마가 말없이 내 단전이 있는 부위로 손바닥을 얹었다.
그의 손에서 뜨거운 기운이 체내로 들어왔다.
-뭐하는 거야?
‘확인하는 거겠지.’
나의 태도에 혹시나 실력을 숨겼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내공을 확인한 그의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일류가 맞다고 확신한 듯 했다.
“해 형의 제자 분은 본인이 점혈토록 하겠소. 공정함을 위해 내 제자의 점혈은 해 형에게 맡기도록 하겠소.”
“좋다.”
이를 받아들인 해악천이 서갈마의 제자인 호금원을 점혈 했다.
이로써 양측 모두가 내공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내공적인 면에서는 공정하게 된 것이다.
“모두 벽 끝으로 물러서시지요.”
대결의 진행은 공증인이나 다름없는 혈수마녀 한백하가 맡았다.
벽 쪽으로 물러서는 송좌백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평소의 녀석이었다면 나서지 못해서 안달이 났겠지만, 이 대결이 생사마저 걸려있음을 알기에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야! 안 된다 싶으면 도중에라도 포기해. 병신 같이 죽지 말고.]녀석이 내게 전음을 보냈다.
일 년 동안 붙어 지냈다고 정이라도 들은 것일까?
저 녀석한테서 이런 말까지 듣다니.
[절정의 고수인데 아무렴 노친네가 졌다고 죽이기야 하겠어.]나는 그런 녀석을 향해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런 내 모습에 송좌백이 혀를 찼다.
“대결에 임하는 두 사람은 간격을 벌리세요.”
혈수마녀 한백하의 지시에 나와 호금원이 거리를 벌렸다.
그러는 사이에 호금원이 내게 넌지시 말했다.
“지금이라도 포기한다면 몸이 성할 수 있을 걸세. 아직 자네는 앞날이 창창하네.”
포기하기를 권유했다.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면 이미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굳이 들리게 말하는 것은 백련하에게 자신이 상대를 배려했음을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진심은 당연히 나를 보기 좋게 꺾는 것일 거다.
-슥!
나는 녀석에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후회 없이 겨루고 싶습니다.”
그런 내 말에 호금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예고를 하듯이 말했다.
“목숨은 거두지 않겠네. 하지만 팔 하나 정도는 각오해야 할 걸세.”
서갈마가 내 팔을 자르라고 말했나 보다.
아마도 노리는 것은 검객으로서의 생명일 테니, 오른팔일 테지.
“저도 목숨은 거두지 않겠습니다.”
그런 내 말에 호금원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고작 일류에 불과한 내가 건방지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이 거슬렸나 보다.
하지만 애써 태연한 척 한다.
“과연 사존 어르신의 제자다운 호기로군.”
그리고는 장도의 도병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나 역시도 남천철검의 검병을 잡았다.
혈수마녀 한백하의 신호가 떨어지면 대결이 시작된다.
나는 녀석의 눈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노려보는 것이 심기를 건드렸는지, 녀석의 눈동자에 진득한 살기가 묻어났다.
한백하가 손을 들어올렸다.
“개(開)!”
한백하가 대결을 시작하라고 외쳤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호금원의 눈이 흐리멍텅해지며 갑자기 녀석이 몸을 비틀거렸다.
-챙!
번개처럼 검을 뽑은 나는 앞으로 신형을 날렸다.
“뭐하는 게야!”
놀란 서갈마가 자신도 모르게 대결 중에 소리쳤다.
그 덕분에 호금원이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리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촥!
도병을 잡고 있던 녀석의 오른팔 팔꿈치가 잘려나갔다.
바닥에 떨어져 꿈틀거리는 자신의 팔을 본 녀석이 그제야 고통을 느꼈는지, 잘린 단면을 붙잡고서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슥!
나는 녀석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녀석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목숨은 거두지 않았습니다.”
‘!!!’
누구도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방 안이 정적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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