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50
22화 누가 승자인가 (2)
정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크하하하하하핫!”
해악천의 광소 때문이었다.
어찌나 기뻐하는지 웃음소리에 그것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최악의 경우 패배까지 상정했었는데, 예상을 깨뜨리고 쉽게 승리해서인 듯 했다.
-와! 어떻게 그걸 쓸 생각을 한 거야?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소담검과 남천철검 역시도 놀라워했다.
나 역시도 반신반의 했었다.
여차할 경우에는 선천진기를 조금씩 섞어서 싸워볼까도 고려했지만, 어쩌면 내공이 닫혀 있다면 환의안이 통할 지도 모른다는 도박이 성공했다.
생각보다 호금원의 정신력이 강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적당히 끝낼 줄 알았는데 팔까지 자르고 대담한데.
‘녀석도 내 팔을 노렸으니까.’
사실 찰나에 꽤 고민했었다.
양자 간에 생사의 대결로 합의를 했다고 해도 상대는 이존 서갈마의 제자였다.
괜히 그를 죽였다가 긁어 부스럼을 만들기 싫었다.
팔을 자르는 것은 그리 선호하는 방법이 아니었지만, 목숨을 거두지 않고서 단 한수에 상대를 굴복시킬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단전을 노린다면 더 효과적인 거 아냐?
‘……..그건 죽이는 거나 다름없지.’
나는 단전이 파훼된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무인으로서의 죽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무공을 가르친 스승 서갈마가 보는 앞에서 만약 호금원의 단전을 노렸다면 녀석을 건드린 게 아니라, 그를 모욕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린다.
어지간한 원수지간이 아니라면, 죽이면 죽였지 단전을 노리는 것은 피하는 게 낫다.
-하긴. 그 말도 맞네.
-운휘의 판단이 옳다.
어찌되었든 승부는 났다.
녀석이 좌수를 연마한 것이 아니라면 승산이 없었다.
아니다. 애초에 여기서 움직여봐야 목에 구멍만 날 터이니 끝이었다.
호금원의 얼굴이 창백했다.
잘린 팔의 출혈이 심해서다.
-슥!
나는 검 끝을 녀석의 목에 더 들이밀며 물었다.
“패배를 인정하십니까?”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호금원.
녀석은 졌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다.
그때 서갈마가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려 했다.
-탓!
이를 해악천이 가로막았다.
“아직 네놈의 제자가 패배를 선언하지 않았다.”
서갈마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해악천!”
“승부에 끼어들 참이라면 본좌를 상대해야 할 거다.”
해악천이 언제라도 손을 쓸 수 있도록 기수식을 취했다.
어지간한 적들 앞에서는 자세를 잡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저러는 걸 보면 서갈마가 보통 적수는 아닌 듯 하다.
서갈마가 노기에 차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게 어찌 대결이란 말인가! 해악천 네놈의 제자는 사술을 쓰지 않았느냐!”
더 이상 그는 격식을 차리지 않았다.
시작하자마자 환의안에 당한 것 때문에 납득할 수 없는 모양이다.
“사파인이 사술을 쓰는게 뭐가 어쨌다는 것이냐? 설마 생사가 달린 대결에서 구차하게 변명을 할 참이더냐?”
역시 말로는 절대 밀리지 않는 해악천이었다.
다만 그것이 서갈마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리고 말았다.
“변명? 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갈마가 일장을 날렸다.
해악천이 빠르게 권을 내뻗었다.
-팡! 콰드드득!
두 사람의 장과 권이 부딪치는 순간 그들이 밟고 있는 방안의 목판이 갈라지며 위로 튀어 올라왔다.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들이었다.
그저 부딪친 것만으로 지지하던 나무 바닥이 저리 갈라지다니.
“크하하하하핫! 좋구나. 오랜만에 한바탕 해보자꾸나.”
일합을 부딪치고 나자 전의가 올랐는지 해악천이 기세 좋게 외쳤다.
서갈마 또한 지지 않고 소리쳤다.
“흥! 좋다. 어디 끝장을 보자꾸나! 은재!”
“넵!”
-팍!
그의 외침에 벽구석에 있던 고은재가 들고 있던 서갈마의 보도를 던졌다.
이를 멋지게 낚아챈 서갈마가 도를 뽑으려고 했다.
그때 두 사람의 사이로 누군가 난입했다.
“응?”
“혈수마녀!”
이 대결의 공증을 맡고 있는 혈수마녀 한백하였다.
“멈추십쇼. 두 분. 어찌 이러십니까?”
중재를 하려는 그녀에게 서갈마가 화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육혈성. 이 대결은 무효요. 녀석은 정정당당히 겨루지 않았소.”
“무엇이 말입니까?”
서갈마가 고개를 돌려 나를 노려보았다.
그 눈매가 얼마나 매서운지 눈빛만으로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가슴 속에서 뜨거운 선천진기가 올라오면서 떨리는 것을 가라앉혀 주었다.
서갈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알겠구나! 네놈들 사제가 수작을 부린 것이다. 내공을 닫고서 겨루자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건만.”
“흥! 존자라는 칭호를 가진 녀석이 승패를 납득하지 않는 것이 구차하기 짝이 없구나. 누가 수작을 부려?”
“무슨 술법을 부렸는지 모르겠으나, 네 제자 놈은 내공을 쓸 수 있는 게 틀림없다.”
서갈마는 내가 내공을 쓸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런 그의 말에 혈수마녀 한백하가 말했다.
“이존께서 직접 점혈술로 내공을 닫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술법을 부렸다고 하지 않았소. 그렇지 않고서야 저 비겁한 녀석이 어찌 사술을 펼칠 수 있단 말이오?”
혹시나 선천진기를 눈치 챘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환의안을 보고서 내공을 썼다고 추측한 것 같다.
이에 한백하가 고개를 저었다.
“소 공자를 탓하고 싶다면 저를 나무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소 공자가 쓴 환의안은 제가 가르친 겁니다.”
뜻밖에도 혈수마녀가 나를 변호해주었다.
여차하면 내가 직접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그렇다면 내버려둬도 될 것 같았다.
그런 그녀의 변호에 서갈마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녀석의 사술, 아니 수법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고 했더니, 혈수마녀 그대의 환의안이었단 말이오?”
역시 혈수마녀의 환의안은 혈교에서도 그 명성이 높았다.
해악천뿐만이 아니라 서갈마조차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사술이라 하다 수법으로 말을 바꾼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더욱 내공을 썼는지….”
“환의안은 내공을 사용하는 수법이 아닙니다.”
그녀의 말에 서갈마가 인상을 찡그리며 의아해했다.
“환의안은 도가의 선술에서 비롯된 것이라 내공의 유무와 상관없이 시전자의 기백과 정신력만 갖추고 있으면 펼칠 수 있습니다.”
한백하가 나를 대신해서 해명을 해주었다.
한데 그녀의 말은 일부 틀렸다.
환의안의 첫 번째 단계 암약은 말 그대로 기초에 불과하기에 극히 적은 선천진기를 요하기에 타고난 원기만으로도 누구나가 펼치는 것이 가능하다.
어찌 되었든 그녀 덕분에 원만한 해명이 이뤄졌다.
“제 가르침이 대결에 영향을 주어서 심히 유감입니다. 이존.”
그녀가 포권을 취하며 사죄했다.
-으득!
서갈마가 이를 갈며 나를 쳐다보았다.
한백하의 해명 덕분에 대결을 무효라고 우길 수 있는 명분을 잃게 된 것이다.
사술이라고 계속 우긴다면 혈수마녀의 재주를 비하하는 꼴이 된다.
“하아…..”
분을 못 이기고 씩씩거리던 서갈마가 이를 겨우 가라앉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이 대결은 내 제자가 졌소.”
그렇게 말한 서갈마가 황급히 호금원에게 다가와 점혈술로 팔을 지혈시켰다.
지혈 외에도 통증을 완화시키는 점혈 덕분에 한결 편해졌는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던 녀석의 얼굴이 펴졌다.
제자를 지혈시킨 서갈마가 망연자실한 눈으로 바닥에 떨어진 호금원의 잘린 팔을 쳐다보았다.
-왜 미안해져?
‘그럴 리야.’
녀석의 팔을 자르지 않았다면 내 팔이 잘렸다.
이것저것 감안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저 서갈마의 심정을 헤아릴 뿐이었다.
아마도 착잡할 것이다. 자신의 입으로 팔다리가 잘려도, 목숨을 잃어도 양자 간에 탓하지 말자고 했으니 더욱 그럴 거다.
잘린 팔을 쳐다보던 서갈마가 입을 열었다.
“아가씨의 지혜에 탄복했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예측해두고 계셨군요.”
모두가 그의 말에 의아해했다.
하지만 이윽고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해 형에 이어서 제 지지를 받기 위해 이런 기지까지 발휘하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과연 그분의 피를 이으셨군요.”
-저 늙은이. 오해한 거 맞지?
아무래도 그런 듯 했다.
내가 환의안을 익힌 것 때문에 해악천이 이미 그녀의 산하로 들어갔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
나는 혈수마녀 한백하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입가에 작게 옅은 미소가 띠고 있었다.
‘하!’
-왜 그래?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어쩐지 그녀가 나서서 나를 변호해주는 것이 이상하다고 여겼었다.
물론 공증인으로서 공정한 대결을 위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이것은 그녀의 술책이었다.
해악천의 제자인 내가 그녀의 재주를 배웠다는 것을 알림으로써 그가 백련하를 지지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풍기려고 했던 것이다.
그 와중에 이 상황을 이용하다니.
-영악한 년일세.
해악천, 서갈마, 백련하.
그저 이 세 사람의 머리싸움이라 여겼었다.
한데 혈수마녀 한백하라는 의외의 복병이 숨어있던 셈이었다.
그 복병은 백련하를 위해선 뭐든지 한다.
-미친 노인네가 너무 조용한데?
소담검의 말에 해악천을 쳐다보았다.
그가 인상을 쓰면서 혈수마녀 한백하를 쳐다보고 있었다.
평소의 그라면 화를 버럭 내면서 그게 아니라고 할 법도 한데,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왜 저러는 거야?
‘……그냥 넘어가려는 것 같다.’
-응?
해악천은 이미 마음을 정했다.
백련하를 지지하기로 말이다.
그렇기에 한백하의 계책을 알아차렸지만 모르는 척 해주는 것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서갈마가 여기서 굴복해서 백련하를 지지해주기로 한다면 굳이 다음 대결을 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크흠.”
-타타타타탁!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해악천 역시도 더 이상 대결은 없을 거라 여겼는지, 조용히 내게 다가와 서갈마가 걸어놓았던 내공을 닫는 점혈을 풀어주었다.
그때 대나무 발을 바라보고 있던 여인들 중 한 사람이 몸을 돌렸다.
그러더니 얼굴을 가리고 있던 흰 면사를 벗었다.
-우와……쟤 그 뚱뚱이 맞아?
소담검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이 방안에 있는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살이 빠지면 예뻐질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갸름하고 자그마한 얼굴에 둥근 눈을 살짝 가린 긴 속눈썹.
작고 야무진 분홍빛 입술은 앵두를 연상케 할 만큼 아름다웠다.
-꿀꺽!
소리가 커서 쳐다보니까 송좌백이 침까지 삼켜가며 넋을 놓고 있었다.
이는 서갈마의 둘째 제자인 고은재도 마찬가지였다.
호색한 성격답게 눈이 탐욕으로 빛났다.
나 역시도 외모에 많이 놀랐지만 그것은 잠시였고, 그녀에게서 그 피처럼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정말 닮았다.’
살이 빠지고 나니까 확실히 더욱 닮아보였다.
그때 넋을 놓고 있던 서갈마가 한쪽 무릎을 꿇고서 예를 갖추더니 말했다.
“아아아. 소문을 들었지만 정말로 나으셨군요. 감축 드립니다. 아가씨.”
역시 그녀가 누군지 바로 알아보았다.
이걸 보면 여태껏 대나무 발을 향해 말을 했었지만 면사의 여인들 중에 진짜 백련하가 있음을 눈치 채고 있었던 것 같다.
“역시 서숙은 저를 알아보시는군요.”
“어찌 제가 모르겠습니까? 옛 모습 그대로이십니다.”
-어디서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저런 거짓말을.
소담검이 혀를 찼다.
너무 그러지 마라.
어렸을 때는 그런 병에 걸리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나.
서갈마에게 웃어보인 그녀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와 어딘가로 몸을 숙였다.
“아가씨?”
그녀가 손을 뻗은 것은 잘린 호금원의 오른팔이었다.
백련하의 손이 붉게 물들며 하얀 김이 흘러나오더니, 이내 잘린 팔에 하얗게 서리 같은 것이 올라왔다.
그것을 그녀가 들어서 뭔가와 함께 서갈마에게 주었다.
“이것은?”
놀랍게도 그녀가 서갈마에게 준 것은 각패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았다.
“신의 어르신께서 제게 주신 각패에요. 마침 다행히 만사신의께서 제 마지막 치료를 위해 그저께 본당에 오셨어요.”
“어찌 이 귀한 것을?”
“호 공자의 팔을 치료하는데 쓰이길 바라요.”
“아…..”
서갈마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나 역시도 내심 감탄이 나왔다.
그녀가 그 사이 어떻게 신의의 각패를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귀한 것을 이렇게 절묘한 순간에 쓸 줄은 몰랐다.
수제자가 팔이 잘려 망연자실해 하는 순간에 저것을 아낌없이 썼다.
-팍!
그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
감격한 서갈마가 그녀에게 절까지 올렸다.
“아가씨의 은혜에 깊은 탄복을 했습니다. 어찌 이 은혜를 갚는단 말입니까? 어서 인사드리지 못하겠느냐!”
그의 일갈에 팔이 잘린 호금원이 불편한 몸으로 무릎을 꿇고서 허리를 숙이려 했다.
이를 그녀가 만류하며 일으켜 세웠다.
“괜찮아요. 이걸로 서숙의 제자 분께서 본교를 위해 다시 웅심을 다질 수 있다면 어찌 아깝겠어요.”
그녀의 이런 호의는 효과적으로 먹혀들었다.
그것이 의도된 것이라 해도 그녀는 귀한 보물을 선뜻 베풀었다.
은혜를 입은 서갈마가 보일 수 있는 보은의 답변은 정해져 있었다.
-쿵!
서갈마가 바닥에 이마를 찍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이존 서갈마. 주군의 피를 이으신 백련하 아가씨를 새로운 주군으로 모시려 합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를 받아주십시오.”
그 모습에 백련하가 활짝 웃었다.
혈수마녀 한백하의 기지를 잘 받은 덕분에 이존 서갈마의 충성을 얻게 되었다.
-최후의 승자는 살이 빠진 백련하네.
‘글쎄.’
-응?
흐뭇하게 이를 바라보던 해악천이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으려고 했다.
분위기에 편승해 그녀에게 충성 맹세를 하려는 모양이다.
그때 내가 이를 제지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스승님.”
해악천이 인상을 찡그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뭐하는 짓이느냐?”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뭐?”
그런 내 말에 해악천뿐만이 아니라 혈수마녀 한백하, 심지어 백련하 또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았다.
해악천이 내게 전음으로 뭐라고 하려 했지만 먼저 선수쳤다.
[스승님. 부디 이 일은 제게 맡겨주십쇼.] [……..]해악천이 도통 속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백련하의 앞으로 다가가 포권으로 예를 취했다.
-팍!
“혈세! 혈세! 혈혈세! 사존의 제자 소운휘가 아가씨께 대결을 청합니다.”
‘!!!’
모두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심지어 백련하 역시도 당혹스러웠는지 고운 미간을 찡그렸다.
당연하겠지.
자연스럽게 이를 넘어가려고 했을 테니 말이다.
귓가로 백련하의 전음이 들려왔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공자.] [제가 배필감으로 싫으신 겁니까?]순간 그녀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하지만 이내 원래대로 돌아와서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나를 흘겨보았다.
뚱뚱했을 때보다 지금의 얼굴로 흘겨보니 그 모습도 예뻤다.
내가 말없이 미소를 짓자 그녀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대체 무슨 속셈이죠?] [저는 아가씨께서 하신 말씀을 따르는 것뿐입니다.] [그건……]그녀의 말문이 막혔다.
분명 자신의 입으로 대결을 하겠다고 했으니 부정할 순 없을 거다.
그녀에게 확실히 충성할지를 결정했다면 나 역시 자연스럽게 넘어갔을지 모르겠지만, 이건 스승님이나 내게 손해가 컸다.
세력의 판도는 여전히 백혜향 쪽이 더 컸으니 말이다.
[저를 이기시면 원하시는 것을 얻으실 텐데, 망설일 이유가 있으십니까?]백련하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왜 망설이는지는 안다.
내공을 닫았을 때 나와 호금원의 대결을 통해 그 결과를 보았다.
그녀라고 해서 환의안에 걸리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기에 이러는 것일 거다.
하지만 한 일파를 끌어야 할 종사인 이상 자신이 내뱉은 말에 책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좋아요. 대결을 받아들이겠어요.”
그와 동시에 전음으로는 다른 말이 들려왔다.
[…….원하는 것을 제시해보세요.]입술이 실룩거리며 올라가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