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51
22화 누가 승자인가 (3) – 수정
-역시 그러면 그렇지. 그냥 손해 볼 네가 아니지. 요즘 들어 느끼는 건데 배짱이 해악천을 닮아가는 것 같다.
흠.
칭찬 같으면서도 아닌 느낌은 뭘까?
어찌 되었든 손해를 볼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다른 파벌에 밉보일 것을 각오하고 약세인 백련하의 산하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계약금은 받지 못할지언정 받을 것은 받아놔야 하지 않겠는가.
-뭐? 요구할 거야? 금은보화? 아님 직위?
소담검 녀석이 궁금했는지 재잘거렸다.
쓰지도 못하는 재화를 받아서 무슨 소용이 있겠나.
게다가 현 혈교의 상황에서는 그녀의 마음대로 직위를 내릴 수가 없었다.
[시간이 없어요. 빨리 말해요.]백련하가 나를 재촉했다.
대결에 들어가기 전에 내공을 닫게 되면 대화를 할 수가 없다.
나도 그걸 알기에 얼른 전음을 보냈다.
[저희 사형제와 스승님께 아가씨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주십시오.] [네?]나의 그 말에 그녀의 눈동자에 당혹감이 서렸다.
설마 내가 이런 걸 요구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나 보다.
면죄부는 말 그대로 면죄부였다.
교단 내에서 어떠한 죄를 짓더라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권리.
지금 당장에는 크게 쓸데없을지 몰라도 그녀가 만에 하나로 교주가 된다거나 혹은 우리에게 책임을 물을 일이 생긴다면 유용하게 쓰일 수 있었다.
가령……혈교와 인연을 끊을 일이 생긴다거나 한다면 더더욱.
-너……대비하는 거구나.
그래.
앞으로의 일은 어떻게 될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혈교에 적을 둔 이상 쉽게 빠져나올 수 없겠지만 훗날을 대비해두는 것이었다.
당혹스러워하던 그녀가 전음을 보냈다.
[제 각패까지 받아가 놓고 과한 요구를 하시는군요.]내 속내를 읽기라도 했을까?
그녀가 면죄부를 주는 것을 망설였다.
한 사람에게 이를 주는 것도 굉장히 큰일인데, 넷 모두에게 달라고 해서 더 그런가 보다.
그때 혈수마녀 한백하가 말했다.
“……아가씨께서 대결을 받아들이셨으니, 어쩔 수 없군요.”
시간이 촉박해졌다.
인상을 찡그리던 그녀가 다급히 전음을 보냈다.
[모두에게 주는 것은 과하군요.] [그럼?] [해숙과 당신께 면죄부를 드릴 게요. 이 정도면 충분히 합의가 되었나요?]시장터에서 값을 깎듯이 폭을 줄였다.
역시 그녀도 교섭에 능했다.
나는 슬며시 송좌백과 송우현 쌍둥이들을 쳐다보았다.
같이 지내는 동안 나름 정이 생겨서 녀석들의 몫도 챙겨보려 했지만 별 수 없을 듯 하다.
괜히 욕심 부리다가 그녀의 마음이 바뀌면 안 되니까.
[좋습니다.] [좋아요. 그럼 대결에서….] [하나 더 있습니다.]‘!?’
내 말에 그녀가 기가 차다는 듯이 전음을 보냈다.
[면죄부를 받고도 부족하다는 말이에요?] [하나만 여쭤 봐도 됩니까?] [네?] [신의 어르신의 각패를 하나 가지고 계셨던데?]그 말에 그녀의 말문이 없어졌다.
내가 이걸 그냥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 기회를 놓칠 것 같은가.
“아가씨와 소 공자는 아까처럼 두 존자께 점혈을 받도록 하세요.”
그 사이 혈수마녀가 우리 둘에게 말했다.
그녀가 해악천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면서 전음을 보냈다.
[하아. 그건…..제가 아니라 스승님, 아니 육혈성께서 덜 자랐다고는 해도 약초를 구했다고 받으신….]그녀는 순간 실수했다고 생각했는지 전음을 멈췄다.
이미 들었습니다.
아아 육혈성이 받으셨다고요.
[그럼 제게 주시기로 했던 그 각패가 맞군요? 그 하선부설초도 제가 찾은 거니까요.]그녀가 인상을 찡그렸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 자리에서 이존 서갈마의 환심을 얻기 위해 각패를 쓰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모를 뻔 했다.
해악천의 앞에 서서 한숨을 내쉰 그녀가 전음을 보냈다.
[…….제 각패가 그것을 대신했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이 본의 아니게 각패를 숨긴 게 되어버렸군요. 공자께 사과드릴게요.]혹 억지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녀는 내게 사과를 했다.
확실히 그녀는 보통 사람들과는 남달랐다.
[좋아요. 신의 어르신의 각패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썼으니, 그에 상응할 만한 대가를 치를게요. 하나 지금은 시간이 다 됐으니,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죠.]시간 초과였다.
해악천이 그녀의 혈도를 점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가 각패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른다고 했으니 얻을 것은 다 얻어냈다.
-뭘 요구하려고 했는데?
‘영약 같은 거?’
이번에 느낀 거지만 여전히 내공이 부족하다.
중단전이 아니더라도 안정적으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의 내공이 필요했다.
이미 체내의 맥 곳곳에 흩어진 기운들은 전부 흡수했다.
그것으로는 이 정도가 한계였다.
-들어준데?
‘아마도.’
들어줄 것이다.
적어도 그녀는 자신이 한 말을 어기지 않는다.
-타타타타탁!
그러는 사이 서갈마 역시도 내공을 닫는 점혈법을 끝냈다.
뭔가 아까보다 더 세게 하는 느낌이다.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아팠다.
그때 귓가로 서갈마의 전음이 들려왔다.
[아가씨를 상대로도 사술, 아니 환의안을 썼다간, 네 스승이 막는다고 해도 네놈만큼은 머리통을 아작 낼 테다.]‘……..’
환의안을 쓴 것을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서갈마는 사파인치고는 꽤나 독특한 사람이었다.
나를 두둔하는 입장을 떠나서 스승인 해악천도 그렇고 혈수마녀 한백하 역시도 승부에 환의안을 쓴 것에 대해서 크게 잘못 됐다고 여기지 않았다.
이는 사파나 혈교 내에 기상천외한 수법이나 좌도방문의 술법에 능한 자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었다.
정도를 고집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파인들은 그것이 잘못 됐다고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서갈마는 달랐다.
-꼭 내 전 주인을 보는 것 같다.
‘남천검객?’
-전 주인께서도 무(武)에 대한 자부심이 크셔서 환의안과 같은 술법을 경멸하셨다.
남천철검의 말을 들으니 그럴 듯 했다.
무도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면 사파인이더라도 이를 싫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나 역시도 지금은 사고관이 많이 바뀐 것 같다.
그래도 나름 명문 정파 출신인데 말이다.
10년 그리고 회귀 후의 1년 동안 사파인으로 살아오면서 그런 것일 지도 몰랐다.
“뭐하는 것이냐. 앞으로 가서 서라.”
-탁!
서갈마가 나를 방의 한가운데로 떠밀었다.
첫째 제자의 팔을 자른 것부터 여러모로 이 사람에게는 밉보인 것 같다.
따로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그런 나의 귓가로 해악천의 전음이 들려왔다.
[설마 정말로 아가씨가 마음에 들었던 게냐?]순간 나도 모르게 헛기침이 나올 뻔했다.
사람을 뭘로 보고.
백련하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한들 위험한 가시였다.
그녀의 배필 자리만큼 위태로운 자리도 없을 것이다.
[뭘 그렇게 전음으로 대화를 했는지는 모르겠다만, 네놈처럼 영악한 녀석이 본좌의 의중을 모르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당연히 알지요.
백련하를 지지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 정도는 옛적에 눈치 챘다.
아까부터 정통성, 정통성하고 이야기 하는데, 파벌의 약세마저도 감안해가며 그녀를 선택한 진짜 이유가 궁금하긴 하다.
[어쨌거나 네놈에게 맡겼으니, 그 판단을 믿는다.]전음을 할 수 없기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내가 백련하에게서 대가로 면죄부를 얻은 것을 알면 놀라지 싶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고 맞은편에 서있는 백련하를 바라보았다.
직접 겨뤄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솔직히 그녀가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뚱뚱한 몸이었을 때조차 대주 둘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는 무위를 보였던 걸 보면 확실히 일류의 벽은 넘어섰다.
-져주더라도 방심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혈교주의 손녀가 맞다면 혈수옥뿐만이 아니라 혈마의 무공도 전수 받았을지 모른다.
남천철검의 날카롭게 이를 지적했다.
녀석의 말이 맞았다.
한때 오대악인이라 불릴 만큼 천하제일의 무위를 갖췄다는 혈마.
그 무공을 전수받았다면 조심해야 했다.
‘응?’
그런데 아직 대결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백련하가 고개를 숙이며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아무래도 약조는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환의안을 방비하는 듯 했다.
철두철미하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개(開)!”
혈수마녀 한백하의 대결을 시작하라는 개시가 떨어졌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녀가 곧바로 앞으로 치고 나왔다.
내가 남천철검을 뽑기 전에 승부를 내려는 모양이었다.
-탓!
그래도 그럴 듯한 대결을 펼쳐야 할 테니, 뒤로 보법을 펼치며 거리를 벌렸다.
내공 없이 펼치는 보법은 원래보다 몸이 둔하게 느껴졌다.
-챙!
거리를 벌린 나는 검을 뽑지 않은 상태로 검집으로 찔렀다.
그때 그녀가 아주 미묘한 차이로 뒤로 고개를 젖히며 검 밑을 파고들었다.
-파아아아아아!
미끄러지듯이 검 밑을 파고드는 모습은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움직임 자체가 상급 무사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녀의 우수가 내 복부를 노렸다.
시작하자마자 당해주기에는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팍!
나는 왼쪽 팔을 들어 올려 그녀의 우수를 막아냈다.
확실히 내공을 닫았기 때문에 혈수옥이나 제대로 된 장력이 없어서 팔등이 살짝 아릴 정도였다.
‘무슨 힘이?’
겉보기에 살이 빠진 그녀는 호리호리했다.
그런데 통증이 느껴질 정도면 외공 역시도 보통이 아니라는 것이다.
옆으로 피해서 검초로 압박을 가해야 할 것 같….
-파악!
“헛.”
그때 그녀가 우수를 날렸던 손으로 팔목을 잡고서 잡아당겼다.
내 몸이 살짝 앞으로 당겨졌다.
그녀가 안면을 향해 좌수를 날렸다.
-푹!
그 순간 나는 남천철검을 바닥에 박아서 그것을 지지대 삼아 몸을 회전시키며 그녀의 어깨를 발로 걷어찼다.
-탁!
좌수를 날렸던 그녀가 다급히 이를 막아냈다.
하지만 내 몸의 중량이 더 컸기에 실린 힘이 강해 옆으로 다섯 보 가량 밀렸다.
그녀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기지가 뛰어나시군요.”
“운이 좋았습니다.”
나를 칭찬한 그녀가 기묘한 자세를 취하더니, 이내 펴고 있던 손바닥을 쥐었다.
그리고 두 손의 검지 손가락만을 폈다.
‘지공?’
손가락을 사용하는 무공이라면 분명 지공(指功)이었다.
미처 몰랐는데 그녀의 검지 손가락이 울퉁불퉁하고 굳은살 투성이었다.
권장보다 익히기 어려운 것이 지공이라 들었다.
연마 도중 수차례 손가락이 부러지기를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혈마의 무공일까?’
지공은 혈수마녀의 무공이 아니었다.
혹 혈마의 무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긴장이 되었다.
내공을 닫았다고 해도 한 시대를 풍미한 절세고수의 무공인 만큼 방심할 수 없으리라.
그녀가 나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팟! 파파파파파팍!
그 순간 그녀의 지공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나를 향해 뻗어왔다.
내공이 없이 펼치는 초식임에도 놀라울 정도였다.
허점이 보이지 않았다.
‘비추형검(泌鰍形劍).’
나는 이에 대항해서 성명검법의 3초식을 펼쳤다.
내공도 없고 검집을 씌우긴 했지만 검초의 변화는 여전했다.
버들가지처럼 휘어지는 검세가 그녀의 지공을 방해하기 위해 식과 식 사이를 파고들었다.
“왜 검을 뽑지 않는 거죠?”
아무리 져주기로 했지만 검마저 뽑지 않는 것이 의아했는지, 부딪치는 와중에 그녀가 물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초식에 열중했다.
사실 그녀의 지공이 맹렬해서 이를 막아내기도 버거웠다.
-혈마의 지공이 틀림없다. 이 정도로 뛰어난 지공은 처음 본다.
남천철검이 놀라워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약 내공을 쓸 수 있는 상태였다면 얼마나 더 대단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팍!
그때 그녀의 지공이 내 검초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위험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좌수로 소담검을 허리춤에 빼내 그녀의 지공을 막아냈다.
-팍!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지금 그 일격으로 싸움을 끝내려고 했던 모양이다.
“좌수도 연습했나요?”
왼손으로 단검을 쓴 것에 놀라했다.
이건 소담검과 남천철검이 같이 권해서 연습했던 것인데, 이렇게 도움이 될 줄 몰랐다.
“제법이로군.”
그런 나의 귓가로 서갈마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전의 한 수를 높이 평가한 듯 했다.
사술을 썼다며 나를 경멸했으면서도 저리 말하는 것을 보면 무에 관해서는 정말 솔직한 것 같았다.
“검을 계속 뽑지 않을 건가요?”
“아가씨의 지공을 제대로 막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런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이 묘해졌다.
내 의도를 알아차린 듯 했다.
애초에 지기로 한 대결이기에 공평함을 위해 검을 뽑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혈마의 무공을 상대해보고 싶어서였다.
“공자는 참 흥미로운 사람이에요.”
그녀가 피식하고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슥!
그리고는 다른 자세를 취했다.
아까보다 보폭이 더 넓어진 것이 분위기가 달라졌다.
단순히 기수식을 취한 것만으로 이런 위압감이 일어난다는 것이 놀라웠다.
-보통 초식이 아니다. 단단히 대비해라.
남천철검이 내게 경고했다.
나 역시도 소담검을 다시 허리춤에 차고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아무래도 성명검법의 절초를 써야 할 듯 했다.
긴장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팟!
박자가 어긋났다.
공격하리라 여겼던 시점을 벗어나 그녀의 신형이 움직였다.
나는 뒤늦게 그녀를 향해 검을 뻗었다.
-팍!
그 순간 그녀의 신형이 밑으로 파고들었다.
나 역시도 그에 맞춰 뻗었던 검을 밑으로 내리치려는 순간,
-창!
그녀가 독특한 자세로 검집을 발로 차낸 후에 반대 발을 박차며 내 위로 공중제비를 돌았다.
어찌나 날렵했던지 순간 그 움직임을 놓칠 정도였다.
-위다!
남천철검이 내게 그녀의 위치를 말했다.
여기서 소담검을 뽑아서 위로 손을 뻗는다면 그녀의 공격이 무산된다.
하지만 여기서 끝낼 때가 되었다.
나는 손을 쓰지 않았다.
‘후우.’
아프겠지?
그런 나의 귓가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플 거예요.”
‘………’
경고와 함께 그녀의 지공이 빠르게 나의 머리 혈들을 타격했다.
아무리 내공을 쓰지 않았다고 해도 머리의 혈들은 다른 곳보다 취약하기 그지없었다.
-파파파파파팍!
그녀의 지공이 혈들에 닿자마자 눈앞이 새하얗게 바뀌며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눈을 뜨니 사방이 어두웠다.
설마 벌써 밤인건가.
주위를 둘러보니 침상 몇 개가 놓여 있었고, 내 옆 자리에 누군가 누워있었다.
안력에 힘을 주니 그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호금원?’
녀석은 호금원이었다.
오른팔 전체를 붕대로 감고 있는 녀석은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사방에 약 냄새 진동하는걸 보면 만사신의가 그의 잘린 팔을 접합한 듯 했다.
-욱씬!
머리가 두통이 난 것처럼 아파왔다.
머리의 혈들은 조심하지 않으면 정말 위험했다.
게다가 일부러 선천진기마저 억눌러서 제대로 지공이 먹힌 것 같다.
-운휘!
-정신 차린 거냐?
소담검과 남천철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에 있는 거지?
-침상 밑이야.
침상에서 내려와 밑을 보니, 남천철검과 소담검이 같이 놓여 있었다.
옆에는 내 가죽신도 같이 놓여 있었다.
신을 신고 나서 이들을 챙긴 나는 물었다.
‘내가 얼마큼 기절해 있었던 거야?’
-너 거의 여섯 시진이 넘게 기절해 있었어. 하도 안 깨어나서 죽은 줄 알았잖아.
설마 죽기야 했겠어.
그런데 정말 길게도 기절해 있었다.
내공을 닫고 펼치는 데도 지공의 위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과연 혈마의 무공이라 할만 했다.
-욱씬!
골이 아직까지도 울린다.
적당히 해도 됐을 텐데 어지간히도 세게 머리 혈들을 타격했다.
뭐 그래도 얻을 것은 얻었으니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기절하고 어떻게 된 거야?’
-뭐. 예상한 그대로지.
-해악천이 백련하를 지지하겠다고 충성맹세를 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내가 대결에서 졌으니 말이다.
-그 다음에는 모르겠어. 너 곧바로 이 방으로 옮겨졌거든. 야. 나 그 신의라는 의원이 팔 붙이는 거 봤거든. 진짜 징그럽더라. 막 핏줄 같은 걸 하나하나 이으면서…..
그런 건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어쨌든 머리도 아프고 약내가 진동해서 더는 이곳에 있기 싫었다.
나는 호금원이 깨지 않게 기척을 죽이고서 조용히 방을 나왔다.
‘본당이었군.’
객당과 구조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여긴 본당이었다.
건물 안에 불이 대부분 꺼져 있었고 조용했다.
하긴 여섯 시진 정도 기절해 있었다면 축정시일 테니, 늦은 새벽이었다.
‘방으로 가야겠다.’
나는 조용히 본당 건물을 빠져나와 객당으로 향하려 했다.
그런데 객당 건물의 방 한 곳에서 누군가 조심스럽게 빠져나오는 것이 보였다.
-쟤 고은재인가 걔 아냐?
나도 봤다.
이존 서갈마의 둘째 제자인 고은재가 맞았다.
이 늦은 새벽에 혼자서 왜 나온 거지?
‘흠.’
뭔가 수상쩍다.
방으로 돌아갈까 하다 나는 호기심에 녀석의 뒤를 밟아보았다.
녀석은 은잠술이라도 익힌 것 마냥 보초들이 있는 곳을 절묘하게 피해서 어딘가로 향했다.
처음부터 녀석을 보았길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놓쳤을 지도 몰랐다.
녀석은 육혈곡 본당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숲속으로 향했다.
-되게 수상한데.
나도 녀석이 대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리 멀리 가지 않았다.
본당에서 고작 반의 반각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멈춰선 녀석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갑자기 신고 있던 가죽신을 벗었다.
-뭐하는 거야? 신발은 왜 벗어?
신발을 벗은 녀석이 가죽신의 밑창을 뜯어냈다.
그리고는 그 안에서 뭔가를 움켜쥐더니, 갑자기 뿌려댔다.
흰 가루가 연기처럼 사방으로 퍼졌다.
‘하!’
나는 녀석이 무엇을 뿌렸는지 알 것 같았다.
이를 다 뿌린 녀석이 밑창을 붙이고서 다시 신을 신으려 했다.
-챙! 팟!
남천철검을 뽑은 나는 빠르게 신형을 날렸다.
기척을 느낀 녀석이 화들짝 놀라서, 신을 신다 말고 장도를 뽑았다.
-챙!
“누구냐?”
당혹스러워하는 녀석에게 내가 물었다.
“너 정체가 뭐야?”
나를 알아본 녀석이 인상을 찡그렸다.
“소운휘?”
-척!
나는 녀석에게 검을 겨냥하고서 다시 물었다.
“대답해라.”
“……내가 뭘 하든 네놈이 무슨 상관이지?”
녀석이 시치미를 뗐다.
설마 내가 그걸 못 봤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눈짓으로 신발을 가리키며 말했다.
“천리추향 맞지?”
그 말에 녀석의 눈동자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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