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53
23화 탈출 (2) >
첩자라는 말에 모두가 놀라워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 존자 중 한 사람인 이존 난마도제 서갈마의 둘째 제자더러 첩자라고 하니 이런 반응도 당연했다.
서갈마가 노기가 서린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네놈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느냐? 누가 첩자라고?”
눈빛만으로도 위압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지만 나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말했다.
“지금 경종은 왜 울리는 것입니까?”
그 말에 답한 것은 백련하였다.
“산맥 인근으로 수백 명에 이르는 무장 세력들이 나타났어요. 그리고 척후병으로 보이는 자들이 산맥 곳곳에 진입했어요. 그들은 본교의 사람들이 아니에요.”
역시 예상대로였다.
척후병의 역할은 앞서 정찰을 하는 것이었다.
첩자인 고은재가 근방에서 천리추향을 뿌렸으니, 머지않아 척후병들이 육혈곡의 위치를 파악하게 될 거다.
산맥 인근이면 경계 무사들이 척후병을 발견하고서 보고하는 시간까지 친다면 대략 두 시진 채 되지 않아 무장 세력들이 이곳에 들이닥칠 것이다.
“시간이 없군요. 왜 이 자가 첩자인지 말씀….”
-챙! 챙!
-타타타타탁!
그때 내 주위를 다섯 사람이 에워쌌다.
그들은 육혈곡의 수장인 패혈 단주 구상웅의 다섯 대주들이었다.
이미 그들은 병장기마저 빼들고 기수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들은 나 역시 의심하고 있었다.
대주 해옥선이 당장이라도 검을 휘두를 자세로 말했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시고 해명하십쇼. 공자. 보초들까지 따돌리고서 대체 어디에 있던 겁니까?”
-쾅!
그때 해악천이 돌바닥에 진각을 찍으며 소리쳤다.
“지금 본좌의 제자를 의심하는 것이더냐!”
사나운 그의 기세에 놀란 다섯 대주들이 깜짝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와중에 나를 보호해주는 것을 보면 제자로 신뢰하는 모양이다.
-노인네 다시 보이는데.
‘그러게.’
하지만 해악천이 나를 보호해도 그것을 무시할 수 있는 이도 있었다.
“해 형. 그대의 제자도 경종이 울리는 상황에 사라졌었소. 그도 모자라 본인의 제자를 이 꼴로 만들었소.
이건 본인의 제자만 의심할 상황이 아니오.”
“뭐얏?”
“해 형의 제자가 본인의 제자를 이 꼴로 만들어 놓고서 죄를 뒤집어씌운 것인지 모를 일이 아니오?”
해악천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제자를 신뢰하는 서갈마였다.
“죄를 뒤집어 씌워? 하! 네놈과는 역시 말로는….”
그때 혈수마녀 한백하가 나서며 만류했다.
“두 분.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은 빨리 이 문제를 해야 합니다. 소 공자는 의심을 피하고 싶다면 제대로 된 해명을 하셔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자 역시도 억류해서 데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녀의 말에 나는 눈짓으로 고은재를 가리켰다.
“이존 어르신의 제자 분의 왼쪽 가죽신의 밑창을 뜯어보십쇼.”
“밑창?”
패혈 단주 구상웅이 조심스럽게 서갈마를 쳐다보았다.
허락을 구하는 것이었다.
서갈마가 심기 불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구상웅이 직접 나서 고은재의 가죽신을 벗겼다. 그리고 밑창을 뜯어내자 가죽 틈새가 드러나며 흰 가루들이 나왔다.
‘!!!’
바로 앞에 있던 서갈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구상웅이 코를 가까이 하고서 향을 맡았다.
그리고는 굳은 얼굴로 백련하와 한백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천리추향입니다.”
“천리추향!”
이들 중에 천리추향에 대해서 모르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쟤네는 모르는 것 같은데.
소담검의 말대로 송좌백과 송우현 형제들은 천리추향이 무엇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딱히 녀석들한테 설명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클클, 본좌가 말하지 않았느냐.”
증거가 나오자 해악천의 기가 살았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품속에서 얇은 실에 묶여 있는 독단을 꺼내들었다.
“그건 뭐죠?”
한백하가 내게 물었다.
“독단인 것 같습니다. 녀석의 왼쪽 아래 어금니에 이게 묶여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묶어뒀으니 그 흔적이 남아있을 겁니다.”
그 말에 구상웅이 직접 입을 벌리고 이를 확인했다.
손가락을 쑥 넣고서 어금니를 만져본 그가 안타깝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갈마가 당혹스러워하며 소리쳤다.
“그럴 리가 없네. 본인의 제자가 어찌 하여….”
“어르신…..송구스럽지만 소 공자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독단을 묶고 있으면 어금니 밑쪽의 잇몸이 그 형태로 파입니다.”
“그걸 자네가 어찌 안단 말인가.”
“저도 반 년간 무림 연맹에 첩자로 잠입한 적이 있습니다.”
구상웅도 첩자 경험이 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덕분에 신빙성이 높아졌다.
“어찌 이런…..”
서갈마가 복잡해진 눈으로 고은재를 바라보았다.
분노와 실망감, 허탈함이 섞여 있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자신의 제자가 첩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보통 충격이 아닐 것이다.
“더 해명이 필요한지?”
“……대주들은 병장기들을 거두세요.”
한백하의 명에 주위를 둘러싸던 대주들이 병장기를 거뒀다.
그리고는 내게 사죄를 하듯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때 구상웅이 내게 물었다.
“한데…..자넨 대체 이것을 어찌 안 것인가?”
그 말에 다른 이들도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지적이 꽤 날카로웠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답변은 이미 준비해뒀다.
“늦은 새벽에 깨서 객당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고은재가 객당을 나와 어디론가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보초들을 피해서 움직이는 것이 수상하게 여겨져 그를 쫓았습니다. 녀석이 반각 정도 떨어진 곳에서 그 천리추향이라는 것을 뿌리더군요.”
“내공을 실어서 소리라도 치지 그랬나?”
“그랬으면 도망치거나 저는 놈에게 살해당했을 겁니다.”
“아…..”
구상웅은 자신이 생각이 짧았음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경황이 없었기에 다른 방법은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신발을 신을 때 단검을 날려 급습하지 않았다면 제가 도리어 당했을 겁니다.”
고은재는 일류의 벽을 넘어섰다.
나보다 한 수 위의 고수를 정면으로 제압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에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녀석의 오른팔 쪽을 가리켰다.
이곳에 오기 전에 기습을 했다는 증거로 일부러 단검을 찔러서 상처를 냈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다.
-하여간 넌 정말.
소담검이 혀를 내둘렀다.
첩자 경력이 얼만데 의심받을 실수를 하겠는가.
갑작스럽게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이 정도 대비를 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네.”
“……그때는 첩자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공명심에 위험한 짓을 했군.”
말은 그리 하면서도 구상웅의 표정이 풀어졌다.
방금 전까지는 일말의 의심이 있었다면 지금은 대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클클, 그놈의 배짱은 알아줘야 겠구나.”
해악천이 대놓고 나를 칭찬했다.
혼자서 첩자를 잡아낸 것을 치켜세워주는 것이었다.
덕분에 대주들이 나를 보는 표정이 바뀌었다.
그때 백련하가 다가와 말했다.
“공자가 아니었다면 첩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도주 행로를 그대로 들킬 뻔 했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척!
그녀의 포권에 주위의 모두가 내게 포권을 취하며 감사를 표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공이 되었다.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우연히 고은재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도주하는 도중에 놈이 수작을 부리면 적들이 우리가 있는 위치를 파악할 수도 있으니 확실히 큰 공을 세운 셈이었다.
-팍!
그때 서갈마가 백련하에게 엎드려 죄를 청했다.
“신이 사람을 보는 안목이 없어 이런 사달이 벌어졌습니다. 이 죄를….”
“아닙니다. 지금은 서숙의 죄를 물을 시간이 없습니다. 서둘러 퇴로를 확보해야 할 때입니다. 그것은 후에 논의해도 늦지 않습니다.”
단호한 그녀의 말에 서갈마가 씁쓸하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제자의 문제로 존자인 그를 내치기에는 앞으로 미칠 영향력은 컸다.
아마 후에도 크게 죄를 묻진 않을 것이다.
다만 서갈마는 이것을 그냥 넘길 수 없는 듯 했다.
기절해 있는 고은재에게로 다가간 그가 손바닥으로 단전 부근을 내리쳤다.
-콰직!
녀석의 몸이 심하게 들썩이며 경련을 일으켰다.
-뭐 한 거야?
‘…..단전을 파괴시켰어.’
이 자리에서 곧장 단전을 부술 줄은 나 역시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행동은 모두의 앞에서 제자를 파문시켰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일 것이다.
고은재의 불행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그의 팔다리 근맥도 자르세요.”
백련하가 냉혹한 명을 내렸다.
확실히 혈마의 피를 잇기는 이었다.
지난번에 자신의 수족이라 할 수 있는 혈수마녀 한백하에게도 손가락을 자르게 하더니, 첩자에게는 더욱 자비가 없었다.
-꼴좋네. 너랑 백련하 앞에서 그렇게 깝죽거리더니.
참 공교로웠다.
내가 시작했다면 마무리는 그녀가 한 셈이었다.
어찌되었든 결국 고은재는 단전뿐만이 아니라 팔다리 근맥이 전부 잘렸다.
혼자서 걸어 다닐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나중에 배후를 알아내야 하기에 녀석의 신변은 혈수마녀 한백하가 데려온 대주 중 한 사람이 맡기로 했다.
문하에서 첩자가 나온 걸 수치스럽게 여겼기에 서갈마는 이견 없이 이를 따랐다.
빠르게 첩자 건이 정리되고 백련하가 화제를 돌렸다.
“그럼 퇴로에 관련된 이야기를 마무리 짓도록 하죠.”
내가 오기 전에 퇴로에 관한 상의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한 곳으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세 곳으로 퇴로를 나누어서 이동하려는 것 같았다.
그 이유는 백련하의 신변 때문이었다.
아직 적들의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혹여 차기 혈교주의 재목인 그녀를 노리는 것일 수도 있기에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듯 했다.
“아까 전 하명하신 대로 만사신의는 신이 호위토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서숙.”
“맡겨주십시오.”
다섯 단주를 이끌고 온 이존 서갈마가 만사신의를 맡기로 했다.
만사신의는 정사의 굴레에 속해 있지 않지만, 만에 하나 혼전이라도 벌어지면 위험할 수도 있기에 소수 정원인 그들이 맡는 것이었다.
문제는 백련하 본인이었다.
“사존께서 아가씨의 호위를 맡아주십시오.”
“본좌가 말인가?”
혈수마녀 한백하가 해악천이 그녀를 보호하기를 요청했다.
“어쩌면 저들은 아가씨를 노릴지도 모릅니다. 저희가 모시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흠……알겠네.”
그녀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한 해악천이 이를 받아들였다.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혈수마녀 한백하가 가짜 백련하를 호위하는 척 속인다면 적들도 혼선이 빚어지게 될 것이다.
“정해졌군요. 그럼 패혈 단주께서 육혈곡의 인원을 나눠주셔야겠습니다.”
“명대로 하겠나이다.”
육혈곡의 전력은 절반으로 나누기로 했다.
절반은 가짜 백련하를 호위하고 절반은 진짜 백련하를 호위하는 것이었다.
가짜라고는 하나 저쪽 역시도 잃어선 안 될 전력이었다.
“짐덩어리들이 많구만. 쯧쯧.”
해악천이 혀를 찼다.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이쪽에는 하급 무사들과 훈련이 덜 된 중상급 무사 후보생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 전력으로 치기에는 아슬아슬한 수준이다.
“사존께서 가장 고생해주셔야 겠습니다. 그럼 불을 지피세요.”
그녀가 명을 내렸다.
대주들 중 한 사람이 손짓을 하자, 횃불을 들고서 대기하고 있던 육혈곡의 무사들이 기름을 묻힌 짚단과 건물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불길이 활활 타오르며 건물 전체로 번져나갔다.
이 정도 기세라면 반 시진 채 되지 않아, 전부 타고 까만 재만 남을 것이다.
그때 해옥선 대주가 타오르는 불에 무언가를 던지려 했다.
그것은 천리추향이 들어 있는 고은재의 가죽신이었다.
“잠깐!”
이를 보고 있던 패혈단주 구상웅이 그것을 제지했다.
해옥선이 던지려던 것을 멈추자, 구상웅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며 백련하에게 말했다.
“아가씨. 이렇게 하면 어떨지요?”
“……?”
끝
ⓒ 한중월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