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54
23화 탈출 (3) >
-타타타타탁!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우리들은 서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육혈곡은 산봉우리들로 둘러싸여 있는 산맥이다.
그렇기에 사방으로 수많은 산길이 있었지만, 그 길들 중에는 험준한 길도 있고 비교적 안전하고 빠르게 하산할 수 있는 길도 있었다.
지금 우리가 움직이고 있는 길은 육혈곡에서 예전부터 준비했던 퇴로였다.
내려가는 길목이 산세가 높아서 다른 산에서는 잘 보이지 않기에 가장 안전한 퇴로라고 할 수 있었다.
-근데 그 하 대주인가 하는 녀석이 제일 위험한 거 아냐?
‘위험하겠지.’
천리추향을 온몸에 묻혔으니 제일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패혈 단주 구상웅은 적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산하의 대주들 중에 가장 경공이 빠르고 은신술에 능한 자에게 임무를 내렸다.
-죽음의 임무잖아.
그 말이 맞다.
천운이 따르지 않으면 죽을 확률이 굉장히 높았다.
결국 희생을 요하는 임무였다.
지금쯤 그는 모두가 가지 않는 위험한 퇴로로 적들을 유인하고 있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들키게 된다면,
-자결하는 거야?
하기 싫어도 할 수밖에 없을 거다.
적에게 잡히면 온갖 고문을 당하게 될 테니까.
-누가 혈교 아니랄까봐 참 각박하네.
‘글쎄.’
꼭 혈교가 아니더라도 이런 상황에 처해진다면 어떠한 단체든 누군가를 희생시킬 것이다.
한 사람을 희생시켜서 다수를 살린다는 명목 하에 말이다.
냉혹하지만 그것이 무림이었다.
-어쨌거나 안 들키길 바라야 겠네.
어느 쪽이든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백련하가 있기 때문에 패혈 단주 구상웅이 우리 쪽에 합류해준 덕분에 산길을 이동하는 것에는 막힘이 없었다.
그는 육혈곡에서 대주 시절부터 일해왔기에 근방의 지리에 밝았다.
이렇게 가장 선두에는 구상웅.
가장 후미는 호종단주 장문웅이 지키고 있었다.
퇴로 행렬의 가운데서 해악천을 비롯한 육혈곡의 두 대주, 그리고 나와 송좌백, 송우현 쌍둥이들이 백련하를 호위하고 있었다.
-쟤 또 뭐 먹고 있다.
‘누가?’
-백련하.
그 말에 그쪽을 쳐다보니 백련하가 복면을 살짝 걷어 올리고서, 육포를 몰래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살이 빠졌지만 식탐이 아직 남아있는 듯 했다.
이런 와중에 저러는 걸 보면 병이 완치되지 않은 건가?
그때 내가 보고 있는 것을 의식했는지, 그녀가 후다닥 복면을 내리고서 육포를 품속에 숨겼다.
이미 봤는데 숨기면 뭘 하나.
잠깐만 방금 전에 쟤 또 먹는다고 한 거냐?
-틈 날 때마다 몰래 먹던데.
나는 그녀를 가늘어진 눈으로 쳐다보았다.
대체 저 품속에는 몇 개의 육포가 들어있는 거지?
“나도 먹고 싶다.”
“쳐다보지마. 인마.”
나만 본 것이 아닌 모양이다.
동생인 송우현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하자, 송좌백이 속삭이는 소리로 녀석을 나무랐다.
백련하의 정체를 알고 나서 조심스러워진 녀석이다.
“……..”
덕분에 민망해졌는지 백련하가 품속에서 주섬주섬 육포 세 조각을 꺼냈다.
그리고는 말없이 쌍둥이들과 내게 넘겼다.
하나 줄 테니까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라는 의미인가?
‘음.’
난 딱히 배고프진 않았는데.
그래도 입이 적적해서 그런지 맛은 좋네.
“조용히들 처먹어라. 이것들아.”
우리보다 선두로 가고 있던 해악천이 뒤에서 육포를 씹는 소리들이 거슬렸는지 짜증을 냈다.
이에 백련하가 조용히 사과했다.
“죄송해요. 해숙.”
“……..”
그 다음부터 해악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그렇게 반 시진 정도를 신속하게 산을 내려가고 있을 때였다.
-………….
귓가를 울리는 많은 이명들.
나는 인상을 찡그리고서 그곳을 바라보았다.
거의 비슷하게, 아니 나보다도 빠르게 해악천이 같은 방향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팟!
행렬의 선두로 다급히 경공을 펼치며 나아갔다.
이윽고 선두에 서있던 패혈 단주 구상웅이 손을 들어서 모두를 멈추게 했다.
“무슨…읍?”
송좌백이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런 녀석의 입을 틀어막고서 이명이 들렸던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조용히 전음을 보냈다.
그 말에 녀석이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적들이 있는 것보다도 내가 이를 알아차린 것이 더 놀란 모양이다.
나 역시도 거리가 있어서 기척을 느낄 순 없었다.
다만 검의 소리가 들린다.
대충 그럴 듯하게 얼버무렸다.
핑계가 괜찮았는지 녀석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백련하의 눈빛에 불안함이 스며들었다.
유일하게 저들의 기척을 알아낸 것이 해악천이었는데, 혹 매복한 이들이 많기라도 할까봐 걱정되는 모양이다.
그때 내 귓가로 전음이 들려왔다.
나와 대주 두 사람만 불렀다.
이에 나는 해옥선 대주와 양강일이라는 대주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들과 함께 앞으로 가려하자 백련하가 물었다.
그 말에 그녀가 약간은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매복한 이들이 소수일지도 모른다고 여긴 듯 했다.
나도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다.
검의 소리만 들으면 적어도 다섯 사람인데, 적수공권이나 혹은 다른 병장기를 사용하는 이들까지 껴있다면 인원은 더 늘어나게 된다.
행렬의 선두로 가자 해악천이 패혈 단주 구상웅과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를 부르자 곧장 내게 전음을 보냈다.
[저쪽 우측 언덕 뒤쪽에 일곱 명이 숨어 있다. 한 명이 절정의 고수고 나머지는 일류에서 이류 정도 실력인것 같다.]그렇다는 건 두 명이 다른 병장기를 쓰는 자들이란 소리였다.
다행히 그렇게 매복한 숫자가 적었다.
이 정도 숫자라면 매복보다는 척후병 내지 정찰에 가까웠다.
시간을 끌면 안 되니 무조건 빠르게 제거해야한다.]
시간을 끌면 다른 자들을 부를 수도 있으니 그 말이 맞았다.
해악천이 둘, 구상웅이 둘, 나머지 셋은 아마도 이류 정도라 대주 급인 우리 셋더러 빠르게 처리하라고 부른 듯 했다.
서로 수신호를 맞춘 우리는 기척을 죽이고 언덕으로 향했다.
-슥!
해악천이 손을 슬며시 들어올렸다.
잠시 멈추라는 신호다.
이 정도 거리에서부터는 해악천이나 구상웅이 아니면 절정의 고수들이 대주 급인 우리들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어서였다.
우리가 기다리자 두 사람이 동시에 신형을 날렸다.
-팟!
두 고수가 언덕을 넘어가자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병장기를 뽑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나와 대주 두 사람도 신형을 날렸다.
언덕을 넘어가자 해악천이 도와 검을 쓰는 자들을 그리고 구상웅이 도와 권을 쓰는 자들을 상대하는 모습이 보였다.
-팟!
나와 대주들도 각자 눈에 띄는 자들을 노렸다.
‘너로 정했다.’
눈매가 찢어진 청색 무복의 검사였다.
이류 수준의 무위를 지녔는데, 회귀 전이었다면 이 한 명을 상대하기도 상당히 버거웠을 텐데, 지금의 내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채채챙!
“헉?”
고작 세 합 만에 녀석을 무력화시켰다.
실력에서 완전히 압도하다보니, 굳이 초식을 펼칠 필요도 없이 네 합 만에 내 검은 녀석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푹!
“컥!”
뒤로 몸을 던지며 치명상은 피했지만 고통스러웠는지 녀석이 검까지 흘리고서 꺽꺽댔다.
나는 녀석의 입을 틀어막고서 넘어뜨렸다.
그리고 목에 검을 찔러 넣어 녀석의 목숨을 거두려고 했다.
-안 돼!
그때 머릿속으로 외침이 들려왔다.
녀석이 흘린 검의 소리였다.
주인을 죽이려고 하니까 절규를 하고 있었다.
‘아!’
문득 찰나에 나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타타타탁!
나는 이류 검사의 혈도를 점한 후에 녀석이 떨어뜨린 검을 주워서 말을 걸었다.
‘내 말 들리지?’
내 목소리를 들은 이류 검사의 검이 놀라워했다.
-뭐, 뭐야? 어떻게 인간이 내게 말을 걸 수 있는 거야?
‘어떻게는 뭘 어떻게야. 들리니까 말을 거는 거지.’
-진짜네?
검들의 반응은 하나 같이 똑같았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신기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시간이 없기에 나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네 주인의 목이 꿰뚫리는 건 원하지 않겠지?’
그런 내 말에 녀석이 애원했다.
-제발 주인을 죽이지 마. 얘가 죽으면 나는 주인을 잃은 신세가 되어버려.
뭔가 애처로웠다.
하지만 여기서 마음이 약해질 순 없었다.
‘그럼 네 주인의 정체와 이 녀석의 동료들이 숨어있는 위치를 전부 말해.’
-아, 안 돼. 가르쳐줄 수 없어.
녀석이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완강하게 거부했다.
확실히 검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해도 그들의 자아를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검들은 자신의 주인을 섬겼다.
-너 혈교인 맞지?
이 녀석 봐라.
오히려 녀석이 내 정체를 되물었다.
-혈교인은 잔인하고 악독하기 때문에 강호의 대의를 위해서 전부 죽여야 한다고 했어.
이 반응 덕분에 나는 이들의 정체를 대충이나마 추측할 수 있게 되었다.
대의 어쩌고 하는 걸 보니 정파인들이 틀림없었다.
‘그래? 그럼 별 수 없지.’
나는 녀석을 들어서 혈도가 점해진 검사의 목을 겨냥했다.
-야 그건 좀 잔인하다.
어지간하면 말하지 않는 소담검이 나를 나무랐다.
같은 검의 입장에서 제 손으로 주인을 찔러 죽이게 만드는 것만큼은 썩 내키지 않은 모양이었다.
좀 그런가 싶었는데 빠르게 효과가 나타났다.
-마, 말할 게! 말할 테니까 제발 그런 짓만은 하지 말아줘.
검이 굴복했다.
이렇게 빠르게 입을 여는걸 보니, 제 몸으로 주인을 찔러 죽이는 것이 굉장히 괴로웠던 것 같다.
녀석은 내게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전부 알려줬다.
그걸 듣고 나니 꽤나 심각해졌다.
-말했으니까. 내 주인의 목숨은 살려주는 거 맞지?
녀석이 기대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나는 녀석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고마워. 넌 그나마 양심 있는 혈교인인 것 같네.
‘목은 피할게.’
-뭐?
녀석의 반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남천철검으로 혈도를 점한 검사의 심장을 찔렀다.
꿈틀거리던 검사의 몸이 이내 목석처럼 굳어져갔다.
-야이 인간 새끼야! 어떻게…..
그 순간 검이 내게 쌍욕을 퍼부었다.
‘미안. 네게 해줄 수 있는 배려는 네 검날로 주인을 죽게 하지 않는 것뿐이야.’
여전히 검은 내게 욕을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도주하는 와중에 이 자를 살려두면 분명 큰 후환이 된다.
어차피 이 자도 나를 죽이기 위해서 온 자였기에 살려주는 것은 자비가 아니라 어리석은 짓에 불과했다.
-그래도 배려는 했네.
소담검이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네가 싫어하니까 그것은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뭔가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고 있는데, 해악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처리하라고 했는데 뭐하는 게야?”
주위를 둘러보니, 나머지 적들은 전부 죽어있었다.
전부 자신들보다 현저히 약한 자들을 상대한 것이기에 빠르게 처리했다.
“죽이는 것을 망설이는 걸 보니 아직 멀었구나.”
아아.
말없이 검을 들고서 대화를 나눈 게 그렇게 보였나보다.
괜한 오해를 받았네.
“끅!”
그때 어디선가 작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패혈 단주 구상웅이 누군가의 앞에 구부리고 앉아 있었는데,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저었다.
해악천이 이를 보며 혀를 찼다.
“쯧쯧. 실패했구나.”
구상웅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다가와 말했다.
“혀를 깨물었습니다. 독종이더군요.”
그의 말을 들어보니 정보를 캐내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다.
해악천이 실망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별 수 없지. 시신들은 대충 수풀에 가려질 만한 곳에 숨기고서 돌아가자.”
“알겠습니다.”
모두가 시신들을 처리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려 할 때였다.
내가 해악천에게 말했다.
“알아냈습니다.”
“뭐?”
“이 자들은 천진문과 해연파의 무인들입니다.”
‘!!!’
그 말에 해악천을 비롯한 모두가 발걸음을 멈추고서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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