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56
24화 함정 (1) >
방향을 돌려 퇴각하라는 나의 손짓에 모두가 의아해했다.
나는 선두에 있는 상급 무사들에게 전음을 보내 전방 쪽에 매복이 있음을 알렸다.
이를 뒤로 전달하게 하자 하나둘씩 빠르게 방향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때 이들을 지나쳐서 두 사람이 내게 왔다.
그들은 백련하와 호종 단주 장문웅이었다.
“공자.”
그녀가 속삭이듯이 뭔가를 말하려고 하기에 나는 소리를 낮추라는 시늉과 함께 전음을 보냈다.
[앞에 매복이 있습니다.]물론 장문웅에게도 같은 전음을 보냈다.
그러자 장문웅이 앞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르나 보네.
장문웅은 단주 급의 뛰어난 실력자라고 하나 해악천과 같은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니라면 기감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듯 했다.
물론 나 역시도 검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면 마찬가지겠지만.
백련하가 뭔가를 발견하고서 미간을 찡그렸다.
그것은 죽은 대주 양강일의 시신이었다.
그녀의 반응 덕분에 그것을 발견한 장문웅이 대체 무슨 일이냐고 추긍하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두 사람에게 차례로 전음을 보냈다.
반응은 다르게 나왔다.
단주 장문웅이 첩자인 것을 어찌 알았냐는 반응이면, 백련하의 말투를 보면 마치 그는 첩자일 리가 없을 텐데 이런 느낌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보여주기 위해 아직 털지 않았었다.
등 뒤에 묻어있는 천리추향을 본 그녀가 가까이서 그 냄새를 맡았다.
그녀 역시도 이를 곧바로 알아차렸다.
나야 첩자로 훈련을 받았으니 구분이 가능했지만 여자라서 그런 것일까?
생각보다 향에 민감했다.
그녀가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역시도 바로 뒤에서 이런 대담한 짓을 할 줄은 몰랐다.
“답답하군요. 적들이 전방에 매복해 있다고 해도 제가 기척을 감지하지 못할 정도의 거리라면 속삭이는 소리까진 듣기 힘들 겁니다.”
세 사람이서 전음으로 대화하는 게 답답했는지 장문웅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좀 더 신중을 기하려고 전음을 했을 뿐이었다.
“보셨습니까?”
“검집에 묻은 천리추향 때문에 양 대주가 첩자라고 생각하신 거군요.”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이들에게 보여줬으니 이제 검집의 역할은 끝났다.
나는 낭떠러지 아래로 검집을 던져버렸다.
-아……
오랫동안 함께 했던 검집이 떨어지자 남천철검이 아쉬워했다.
별 수 없었다.
저걸 가지고 다니면 위치가 노출되고 만다.
어쨌든 천리추향을 따라서 추격을 할 거면 저 까마득한 낭떠러지 아래 급류로 들어가야 할 거다.
그런데 그 사이 백련하와 장문웅이 서로 시선을 나누고 있었다.
왜 저러는 거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서둘러서 퇴각해야 합니다.”
검의 소리만 듣고는 매복한 적들의 전력을 파악할 수 없었다.
협소한 절벽 길에서 적들과 대치할 바에는 해악천을 도와서 추적자들을 처리하고 합류하는 편이 더욱 나았다.
그런 내게 백련하가 전음을 보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첩자가 아닌데 첩자가 맞다니?
‘언니?’
-………
‘!!!’
그녀의 전음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나는 다급히 뒤를 쳐다보았다.
검의 소리들이 점점 크게 들렸다.
-이곳으로 오고 있다. 운휘.
남천철검이 무겁게 경고했다.
매복해서 계속 기다릴 줄 알았는데, 이곳으로 오고 있는 듯 했다.
그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오고 있습니다!”
“아!”
적들이 가까워지자 단주 장문웅 역시도 이들을 감지했는지, 황급히 소리쳤다.
“모두 서둘러서 퇴각한다!”
-우르르!
그의 외침 소리에 조용히 움직이던 행렬이 빨라졌다.
가장 후미, 아니 이제는 반대로 선두가 된 송좌백과 송우현을 필두로 달리기 시작했다.
계곡 길에서 따라잡히게 된다면 정말 위태로운 상황이 된다.
“아가씨께서는 가운데로 가십쇼.”
단주 장문웅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 행렬의 왕이었다.
왕이 잡히는 순간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
“상급 무사들은 뒤로 빠져라. 공자님도 저와 같이 후미를 맡아주십쇼.”
“알겠습니다.”
여기서 최고수는 나와 단주 장문웅이었다.
상황이 참 급박하게 돌아갔다.
이제는 송좌백과 송우현 쌍둥이들이 앞을 치고 가야하고, 나는 뒤를 보호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나는 상급 무사들의 앞쪽에서 달리고 있는 중상급 후보생들 중에 조성원을 전음으로 불렀다. 혹시의 상황에 대비해 그보고 가운데 쪽을 보호하라고 당부했다.
개방 방주의 무공인 항룡십팔장을 익힌 녀석은 일류 중에서도 수위에 속하는 실력자이니 믿을 만하다.
“서둘러라!”
장문웅의 외침에 퇴각 행렬에 속도가 붙었다.
그러나 이 속도로는 적들의 추격을 뿌리치는 것은 무리다.
적어도 계곡 길만이라도 벗어나야 하는데.
-늦었어.
소담검이 암담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 역시도 알고 있다.
-……………
검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너무도 가까워졌다.
뒤를 힐끔 쳐다보니, 한 무리의 검은 복면을 하고 있는 자들이 빠르게 경공을 펼치며 우릴 향해 오고 있었다.
수는 대략 사십여 명쯤 되었다.
‘복면?’
뭔가 이상하다.
저들은 어째서 복면을 쓰고 있는 거지?
이쪽은 아직까지 혈교인이라는 것이 드러나면 안 되기에 복면을 쓴 것이다.
한데 저들은 복면을 쓸 이유가 전혀 없었다.
처음 제압했던 척후병들 역시도 그렇기에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큭.”
저들을 바라본 장문웅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인원은 이쪽보다 작았으나, 저들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고수들인 듯 했다.
특히 맨 선두에 있는 둘은 위압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한 사람은 보기만 해도 흉악스러워 보이는 큰 도끼를 짊어지고 있었고, 한 사람만 권사인 듯 한데 신장이 굉장했다.
해악천보다는 작은 듯 했지만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컸다.
‘어떻게 해야 하지?’
상급 무사들과 남아서 이들을 막아야 할 것 같다.
지금 거리로 봐서는 금방 따라잡힌다.
‘엇?’
“단주님!”
나의 부름에 장문웅이 뒤를 쳐다보았다.
“이런! 상급 무사들은 당장 멈추고 뒤를 막아라!”
복면인들이 투창으로 보이는 무기를 던지려고 하고 있었다.
이 정도 거리면 충분히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거구의 권사 역시도 투창 하나를 잡았는데, 멀리서 보는데도 그 기세가 매우 위협적이었다.
-파파파파파팍!
복면인들이 던진 투창들이 공간을 가로지르며 날아왔다.
나 혼자서 이것을 다 막는 것은 무리다.
못해도 두세 개 만이라도.
-팟!
나는 검을 두 손으로 쥐고서 날아오는 투창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것이 도달하는 순간 빠르게 검을 휘두르며 투창을 베어냈다.
-차차창!
목표치를 이뤘다.
투창 두 개를 베어냈고, 하나는 아슬아슬하게 튕겨냈다.
-차차차차차창!
옆쪽에서 상급 무사들이 투창을 막아내는 소리가 들렸다.
투창 역시도 내공이 실려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그것을 막아낸 것이 아니었다.
-푸푹!
“컥!”
“으억!”
상급 무사 두 명이 당했다.
한 명은 그대로 복부를 관통당해 꼬챙이 신세가 되었고, 한 사람은 허벅지에 꽂혀서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지만 기동력을 잃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아니었다.
거구의 권사가 날린 투창은 다른 복면인들이 날린 것과 차원이 달랐다.
-슈우우우우!
공기를 가르는 소리부터 달랐다.
중단전을 개방해도 막을 수 있을지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모두 비켜!”
이에 장문웅이 나섰다.
여기서 유일하게 이것을 막을 만한 자는 그뿐이었다.
-슈우우우우우!
장문웅이 한가운데로 날아오는 엄청난 기세의 투창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투창이 바로 지척까지 다가오자 이를 빠르게 낚아챘다.
막는데 성공하나 싶었다.
그 순간이었다.
-푸욱!
“큭.”
투창을 잡아냈는데 그것이 장문웅의 우측 가슴 어깨를 파고들었다.
그 상태에서 장문웅의 몸이 부웅하고 떠오르더니 뒤로 튕겨났다.
-파파파파파!
“으악!”
“억!”
뒤에 있던 상급 무사들이 장문웅을 받아주려다, 넘어지면서 같이 튕겨나가고 말았다.
격물전경의 수법이었는데, 말도 안 되는 위력이었다.
투창 한 자루로 절정의 고수와 일류 고수 여럿을 나가떨어지게 만들었다.
덕분에 퇴각 행렬이 도중에 멈춰지고 말았다.
“하아…하아….”
-팍!
장문웅이 어깨로 파고든 투창을 빼냈다.
그리고 점혈술로 지혈을 했다.
-괴물인데?
네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이미 눈으로 확인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투창만으로 이 정도 위력을 보일 정도의 무위라면 저 거구의 권사는 적어도 혈성이나 존자급에 이른 절세고수였다.
그러는 사이에 그들이 우리가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나는 낭떠러지 옆쪽을 바라보았다.
‘……목숨을 걸어야 하나.’
이런 상황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계곡 낭떠러지였다.
까마득할 정도로 높아서 살 수 있을 확률이 매우 낮았지만 적어도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었다.
아니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까?
인원은 우리 쪽이 훨씬 앞섰기에 적어도 백련하가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냥 너만 도망가는 건 어때? 뭐 하러 얘네까지 신경 써?
아…..
소담검의 말에 나는 문득 깨달았다.
마치 내가 혈교의 충신이라도 된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여차 한다면 나를 더 우선시 여겨야 하는데 말이다.
그때 복면인들 중에 흉악한 도끼를 짊어지고 있는 자가 우릴 향해 소리쳤다.
“너희들 중에 백련하라는 계집이 있느냐?”
‘백련하?’
놀랍게도 그들이 노리는 것은 백련하였다.
차가운 물을 끼얹은 것 마냥 순식간에 행렬이 정적으로 물들었다.
도끼를 짊어진 복면인이 말을 이어갔다.
“백련하가 없다면 네놈들을 전부 죽일 것이다. 만약 백련하가 있다면 그 계집을 내놓거라. 그렇다면 네놈들을 살려주도록 하마.”
그 말에 상급 무사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다른 이도 아니고 차기 혈교주를 노리는데 분노하지 않을 자들이 있겠는가.
하지만 이것이 독이 되어버렸다.
“호오라. 놈의 예견이 통했구나. 역시 여기에 있구나.”
도끼의 복면인은 백련하가 이곳에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런 그의 태도를 보면 이들 역시도 백련하를 노리지만, 이곳에 나타날 지는 확신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계집이 있다면 썩 내놓거라!”
도끼의 복면인 옆에 있던 거구의 권사가 다그쳤다.
목소리에 실린 힘만 보더라도 그는 정말 엄청난 고수였다.
위압감에 상급 무사들조차 주눅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상대의 위압에 질려서 그녀를 내놓을 자들은 없었다.
-꽉!
상급 무사들의 병장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
이들의 기세를 보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자리에서 목숨을 걸고 그녀를 지키려는 듯 했다. 저런 고수들을 상대로 도망은 무의미하긴 했지만 대단한 충성심이었다.
이런 것 때문에 무림 연맹에서는 이들의 씨를 말리려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상처부위를 붙들고 있는 장문웅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도 결사 항전할 기세다.
‘……..’
잠시 고민에 빠져있던 내가 장문웅에게 전음을 보냈다.
[단주님.]그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제가 시간을 끌면 단주님께서는 아가씨를 데리고 도망치십쇼.] [공자님!]그가 커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전음을 보냈다.
-야 네가 뭐 하러 그런 짓을 해?
소담검이 나를 나무랐다.
‘됐어. 여차하면 낭떠러지로 뛰어내릴 거야.’
어차피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해악천이 내게 맡긴 일만 완수한다면 일말의 확률에 목숨을 걸 거다.
저들과 싸우는 것보다는 확률이 높지 않겠는가.
-에휴.
그때 복면인들 중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장주님. 시간이 없습니다. 어차피 안 되면 전부 죽여도 좋다고 했으니, 닥치는 대로 죽여버리도록….”
-슥!
그때 내가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에 적측과 아군 측의 모든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아군 측은 당혹감을 보였고, 적측 복면인들은 드디어 걸려들었구나 싶은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척!
나는 그들에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선배님들께서는 무림 연맹의 분들이 아닌 듯한데 어찌하여 저희를 핍박하시려는 겁니까?”
그런 내 말에 뒤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이들이 무림 연맹이나 혹은 정파인들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그때 도끼를 짊어지고 있는 복면인이 말했다.
“흥.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우리들은 무림 연맹의 사람들이다.”
내 말을 부정했다.
“한데 어찌하여 ‘백련하’를 내놓으면 저희를 살려주신다고 하시는 겁니까?”
애초에 말이 되지 않았다.
무림 연맹의 목적은 혈교의 절멸이었다.
씨조차 남기지 않고 전멸시키는 것이 목적인데, 단지 혈교주의 재목만을 노린다? 그건 어불성설이었다.
“이놈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대고 있구나!”
권사의 복면인이 내게 호통을 쳤다.
다행히 늘 해악천을 경험했기에 이런 위압감에는 적응해있었다.
“산 곳곳에 연맹의 사람들이 깔려있는데 목숨이 아깝지 않나 보구나.”
권사의 복면인이 상황을 상기시켜주었다.
나는 흔들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럼 같은 연맹이신데 무엇이 시간이 없다는 말씀이신지요?”
“……..”
그 물음에 시간을 언급했던 복면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그런 것까지 새겨들을 줄은 몰랐나 보다.
놈들의 눈빛에 살기가 감도는 것을 보면 위태로워지고 있다는 것이 확연이 느껴졌다.
다 자극하는 건 위험한 짓이지만, 시간을 끌고 이들의 시선을 내게로 모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저희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천리추향을 뿌리더군요. 한데 이 향이 산맥을 수색하고 있는 무장 세력들이 쓰는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것 같더군요.”
그 말을 들은 복면인들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내가 천리추향의 향마저 구분할 수 있는 것이 놀라웠나 보다.
첩자 생활만 8년 정도 하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것만으로 우리가 연맹이 아니라고 확신하다니, 참으로 멍청한 놈이구나.”
도끼를 짊어진 복면인이 나를 비웃었다.
“처음에는 그 자 역시도 무장 세력의 첩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데 잘 생각해보면 아닌 것 같더군요. 저희를 자연스럽게 이쪽 계곡 길로 유도하는 것부터 말이죠.”
만약 이들과 마주치지 않았다면 나는 끝까지 착각했을 거다.
대주 양강일도 같은 한패였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아니었다.
“그 사람은 선배님들께서 보낸 첩자가 맞으시죠?”
“흥!”
그런 내 말에 복면인들이 부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왜냐하면 어차피 우리들은 함정에 빠진 쥐새끼들이나 다름없으니까 말이다.
복면인이 내게 소리쳤다.
“네놈들 안에 첩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우리가 얼마든지 백련하를 찾을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겠지?”
이간계를 펼치려고 하고 있었다.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려는 수작이었다.
“참 감사할 일이로군요.”
“뭣?”
“덕분에 더는 저희 쪽에 세작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배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
“있었다면 진즉에 찾아내셨겠죠. 전음으로 알려줬을 테니 말입니다.”
그런 내 말에 복면인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나와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오히려 자신들이 휘말린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것이다.
도끼를 짊어진 복면인이 살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놈이 세치 혀로 시간을 끌려는 수작이구나. 네놈부터 죽여주마.”
도끼의 복면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복면인들 중 한 사람이 내게 투창을 던지려고 했다. 이 거리라면 피하는 것도 어렵다.
그때 내가 다급히 소리쳤다.
“백혜향이나 혹은 그 산하의 누군가가 사주를 하셨습니까?”
‘!!!’
그 외침에 투창을 던지려던 복면인의 움직임이 멈칫했다.
당연하겠지.
나는 저들을 움직인 자가 백혜향이나 관련된 자들이라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는 육혈곡의 대주라는 작자가 첩자인데, 그 위치가 무림 연맹이나 정파 측에 드러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애초에 목표가 백련하 한 사람일 테니까.
“백혜향 아가씨라니?”
뒤에서 술렁이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설마 우리의 앞을 가로막은 자들이 같은 혈교 측에서 보낸 자들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놈을 죽여!”
권사의 복면인이 소리쳤다.
나는 다급히 중단전을 해하고서 선천진기를 끌어올렸다.
-슉! 팍!
그리고는 날아오는 투창을 잡아냈다.
권사의 복면인의 눈이 커졌다.
고작 일류 고수 정도로 봤던 애송이가 이 거리에서 투창을 잡아냈으니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도로 드리겠습니다.”
-팍!
나는 십성의 공력을 실어 권사의 복면인을 향해 투창을 던졌다.
그리고는 외쳤다.
“모두 도망쳐!”
백련하도 피신을 했을 테니, 이제 각자가 목숨을 구제하는 것이 살 수 있는 길이었다.
그때 권사의 복면인이 내가 던진 투창을 가볍게 낚아챘다.
그리고는 나를 죽일 생각이었는지, 전력을 다해 투창을 날렸다.
-슉!
‘젠장!’
괜히 오지랖 부리지 말고 내 목숨이나 챙길 걸 그랬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팍! 파르르르르르르!
투창의 날 끝이 내 코앞에서 멈췄다.
날이 진동을 일으키는데 순간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이게 왜 갑자기 멈춘 거지?
“공자. 고마워요.”
‘응?’
뒤에서 들리는 이 목소리는 백련하의 목소리였다.
도망가라고 했는데 어째서?
“애송이 주제에 제법이구나.”
‘이 목소리는?’
나는 떨리는 눈으로 옆을 쳐다보았다.
내 옆에 한 복면인이 투창을 잡고 있었다.
그가 이것을 절묘하게 잡아내지 않았다면 나는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팍!
복면인이 쓰고 있던 복면을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벗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바로 이존 난마도제 서갈마였다.
“어……르신이 어떻게?”
분명 만사신의를 모시고 북동쪽 산길로 간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이곳에 어째서 이곳에 있는 것일까?
한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공자 덕분에 저희 쪽에 다른 세작이 없는 것도 확인하게 되었군요.”
내 옆으로 또 다른 누군가가 나왔다.
복면을 쓰고 있었지만 붉게 물든 양손과 그 목소리를 듣고서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혈수마녀 한백하였다.
가짜 백련하를 데리고 간 줄 알았는데 그녀 또한 이곳에 있었다.
‘하!’
나는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럼 이때까지 이들은 아군조차 속이고서 숨어있었단 소리가 아닌가.
서갈마와 한백하의 등장에 분위기가 한순간에 바뀌었다.
목숨을 각오하고서 결의를 다지고 있던 상급 무사들의 전의가 살아났다.
“이런 젠장!”
“우릴 속였구나!”
두 고수들의 등장에 복면인들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아무리 그들의 전력이 강하다고 해도 이쪽에 혈성과 존자 급의 고수가 있다면 승부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거구의 권사의 복면인이 가장 먼저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팟!
“퇴각한다!”
자신들이 불리하다고 판단한 그들은 퇴각하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파파파파파파팍!
한 인영이 우측 절벽 위쪽에서 엄청난 속도로 직립 보행을 하며 내려오는 신기를 보이더니, 이내 도주하려고 하는 복면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쿵!
복면인들을 아이처럼 보이게 하는 엄청난 거구의 사내.
그는 바로 해악천이었다.
해악천의 한 손에서는 혓바닥을 늘어뜨리고 있는 한 중년인의 수급 하나가 들려 있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데 모두를 오싹하게 할 지경이었다.
제일 앞장 서서 도주하던 권사의 복면인이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기기괴괴.”
“이깟 놈으로 본좌의 시간을 끌 수 있을 것 같았더냐.”
-찌익!
해악천이 상의를 거칠게 찢으며 수급을 내팽개쳤다.
그의 전신이 진한 구릿빛으로 물들었다.
해악천의 독문무공인 진혈금체였다.
“흥! 지금부터 본좌의 앞을 지나가고 싶거든 그 목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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