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58
25화 동굴 속의 괴인 (1) >
순간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감사의 인사마저 잊고 말았다.
눈앞의 괴인의 몰골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거의 해골을 연상케 하는 앙상한 얼굴은 한동안 빛을 보지 못했는지, 창백하다 못해서 핏줄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게다가 머리털부터 눈썹까지 하나도 없었다.
-…….송우현이는 상대도 안 되겠는데.
소담검마저도 괴인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누구라도 위압감을 느낄 얼굴이다.
이런 자가 나를 보면서 누런 이를 드러내고 씨익하고 웃으니 소름마저 돋았다.
‘아?’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이 있었다.
얼굴 때문에 미처 몰랐는데, 괴인은 두 다리가 없었다.
심지어 오른팔도 팔꿈치까지 밖에 없었는데, 그 말은 이런 불구의 몸으로 왼팔 하나로 나를 끌어올렸단 말인가?
“크켈켈.”
괴인이 특이한 웃음소리를 냈다.
쉰 목소리가 쇳소리처럼 들렸다.
속에 있던 계곡물을 게워내면서 한결 나아진 나는 급히 인사를 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르신.”
이마와 볼이 쭈글쭈글한 주름으로 가득한 것이 이순(耳順-60)은 족히 되어 보인다.
해악천과 비슷한 연배로 보였다.
그때 괴인이 어깨에 얹었던 손을 위로 올렸다.
-손톱 좀 봐.
소담검이 호들갑을 떨었다.
괴인의 하나 뿐인 왼손의 손톱은 흉기마냥 굉장히 길었다.
손톱을 길러서 날카롭게 갈은 것 같았다.
-슥!
순간 찔릴까봐 이를 피하려 했는데, 괴인이 손바닥을 펴고서 내 볼을 더듬었다.
그러더니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살이 토실토실하게 붙었다.”
‘!?’
이 사람 방금 뭐라고 한 거지?
당황해하고 있는데, 남천철검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운휘. 놀라지 말고 밑을 쳐다봐라.
그 말에 나는 조심스럽게 밑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런데 그것을 본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랄 뻔 했다.
동굴 바닥에는 수많은 뼛조각들이 널브러져 있었는데, 이것은 어떻게 봐도 인간의 뼛조각들이었다.
중간 중간에 물고기의 가시 뼈들도 보였으나 그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벗어나야 할 것 같다. 이곳은 위험하다.
-너 이러다 먹히는 거 아냐?
내 생각도 같았다.
도저히 좋게 생각하고 싶어도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자는 인육을 먹는 듯 했다.
그렇지 않고는 뼈들이 저렇게 난잡하게 해체되어 있을 리가 없었다.
괴인이 나를 쳐다보며 혀를 날름거렸다.
“맛있겠다.”
젠장.
불길한 예상이 들어맞았다.
이러다가 잡아먹힐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나는 다급히 괴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남천철검을 잡고 있었던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팍!
그 순간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거의 기습적인 일격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괴인이 남천철검을 맨손으로 붙잡았다.
하단전도 아니고 중단전의 9성 공력이었다.
“크켈켈.”
-파팍!
“윽!”
그때 괴인이 독특한 수법으로 손목을 타격한 후에 남천철검을 빼앗았다.
그리고는 검을 동굴 벽면에 던져버렸다.
-이런!
-푹!
남천철검의 검신이 동굴 벽면에 반이나 파고들었다.
놀라운 공력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괴인이 내 손목을 붙잡고서 꺾으려고 했다.
‘큭!’
나는 다급히 왼손에 들고 있던 소담검으로 괴인의 목을 노렸다.
그러자 괴인이 슬그머니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히며 소담검을 피한 후에 이내 갑자기 팔꿈치만 있는 오른팔로 뭔가를 잡아당겼다.
-파악!
그 순간 내 소담검을 들고 있던 왼팔이 앞으로 쏠렸다.
“엇?”
손목을 감고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미세하게 가는 실이었다.
-운휘 베어내!
소담검의 외침에 나는 손목을 살짝 꺾어 실을 베어내려 했다.
-팅!
‘뭐야?’
그런데 실이 베이지 않았다.
휘두르는 힘은 없다고 해도 공력이 실었는데 오히려 단검이 튕겨나갔다.
고작 이렇게 얇은 실이 어떻게 이런 탄력을 가진 거지?
“크켈켈.”
-팍!
그때 괴인이 내 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나를 확 끌어당겼다.
버텨보려고 했지만 괴인의 공력은 나를 훨씬 상회했다.
“케엑!”
나를 잡아당긴 괴인이 입을 쩌억하고 벌렸다.
그러더니 내 왼쪽 어깨로 이빨을 박아 넣었다.
-콰득!
“끄아아악!”
이빨이 살점을 파고들자 전신이 굳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 괴인한테 먹힐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겁한 나는 소담검을 튕겨서 오른손으로 낚아채서 놈이 방심한 틈을 노리려고 했다.
그러나 이 괴인의 반응 속도는 귀신과도 같았다.
괴인이 물어뜯으려고 하던 이빨을 떼고서 이를 피하더니, 이내 소담검을 들고 있는 오른손을 그대로 꺾어버렸다.
-뿌득!
“으악!”
손목이 제대로 꺾였다.
불룩 튀어나온 걸 보면 부러진 듯 했다.
“반항하지 마. 고기야.”
피골이 앙상한 괴인이 섬뜩하게 미소를 지었다.
빌어먹을 이런 듣도 보도 못한 괴인한테 인육이 되어서 죽게 되는 건가.
괴인이 다시 입을 벌리고서 나를 물어뜯으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운휘!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
그것은 동굴 전체를 울리는 계곡물의 소리마저 뚫고서 들려왔다.
-미친 노인네다!
소담검이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차렸다.
-…..망할 제자 놈아!
연이어 바깥에서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소리를 질러 나의 위치를 알리려 했다.
“스…”
-팍!
그때 괴인이 내 머리를 후려쳤다.
정신을 잃으면 안 되는데 시야가 검게 변하고 있었다.
* * *
-운휘! 운휘!
-야! 일어나! 일어나라고!
머릿속으로 시끄러운 소리들이 울렸다.
남천철검과 소담검의 목소리였다.
계속 기절해 있던 건가.
-깨어났구나!
눈을 뜨려고 하는데, 소담검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눈뜨지 마! 계속 감고 있어.
녀석의 말에 나는 눈을 뜨려던 것을 멈췄다.
왜 눈을 감고 있으라고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
나는 문득 스승님인 해악천을 떠올렸다.
그에게 내가 살아있다고 알렸어야 했는데, 괴인에게 머리를 맞고서 기절했다.
놈에게 맞았던 부위가 욱씬거렸다.
머리 쪽이 뭔가 끈적거리는 걸 보면 피까지 흘렀던 것 같다.
망할 개자식.
부러진 손목도 너무 아팠다.
-괴인이 방심했을 때를 노려야 하니까. 가만히 있어.
‘……알겠어.’
지금으로서는 소담검의 말을 따라야 했다.
급류의 소리 때문에 동굴이 울려 퍼져서 괴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대체 이런 괴물 같은 작자가 어째서 이런 곳에 있던 거지?
-너 기절하고 나서 저 괴인이 이상한 행동을 보였어.
‘대체 무슨?’
-기절한 널 끌고서 동굴 안쪽까지 들어와서 저기 구석에서 겁에 질린 것처럼 계속 숨을 죽이고서 떨고 있었어.
‘지금도?’
-응. 지금도 구석에 있어.
‘왜 그러는 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설마 동굴의 위치가 발각될까봐 그런 것일까?
그렇지 않고는 숨어 있을 이유가 없었다.
한데 몸이 성하지는 않다고 해도 괴이할 정도로 강한 자가 대체 무엇이 두렵다고 벌벌 떤다는 거지?
-모르겠어. 반나절이 지나도록 저러고 있어.
반나절이나 지난 건가?
그래서 눈을 감고 있을 때 이렇게 어두웠구나.
눈꺼풀을 덮고 있어도 빛이 비치면 밝다 어둡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노인네는?’
그게 중요했다.
아직도 나를 찾기를 바랐다.
-…….실망하지 마라. 거의 두 시진 가까이 근방에서 주기적으로 외침 소리가 들렸는데, 그 후로 들리지 않았다.
남천철검의 그 말에 나는 속이 문드러질 것만 같았다.
결국 이 상황을 나 혼자 헤쳐나가야 한다.
이보다 더 절망스러운 상황도 겪어보고 죽음마저 경험하지 않았다면 냉정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상황을 정리해보자.
괴인은 고작 왼팔만 있지만 절세고수다.
정확하게 판단 내리기는 힘들지만 멀쩡한 몸이었다면 해악천에게 버금가는 괴물일지도 몰랐다.
다만 상황을 보면 정신이 온전치 못한 듯 했다.
말투도 어눌했고 그저 밖에서 외침 소리만 들렸다고 숨어서 벌벌 떠는 모습을 보면 멀쩡한 정신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분명 괴인은 너를 먹으려고 할 거다.
-그때를 노려.
녀석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방법은 오직 그뿐이었다.
왼손 손목에는 아직도 괴인이 묶어놓은 그 단단한 실이 감겨 있었다.
‘후우.’
진정하자.
나는 조심스럽게 선천진기를 가다듬었다.
혹 괴인이 내 혈도를 점했나 확인해보려고 했는데, 의외로 혈도는 점하지 않았다.
왜 기절만 시킨 거지?
이 정도 고수라면 만약을 대비해서 혈도를 점해놓는 편이 안전했을 텐데.
이유는 알 수 없어도 다행이었다.
‘단 일격.’
일격에 놈을 쓰러뜨려야 한다.
그러려면 사혈을 노려야 했다.
가장 효과적인 사혈은 천령혈과 기문혈, 장문혈, 제문혈 등이 치명적이다.
놈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부위를 달리해야 했다.
-기다려. 움직이면 곧바로 알려줄게.
그렇게 피가 말리는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일각, 이각, 삼각, 반 시진, 그리고 한 시진……
긴장한 상태로 가만히 있으려니 온몸이 경직되는 것만 같았다.
그러던 찰나였다.
-움직인다!
소담검이 내게 알렸다.
두 다리가 없었기 때문에 한 손으로 더듬어서 오는지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렸다.
점점 놈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 한 번의 기회를 놓치면 나는 인육의 신세가 되고 만다.
-거의 다 왔어.
가까워지니까 확연하게 느껴진다.
-탁!
놈이 어기적거리며 내 가슴 위로 기어 올라왔다.
워낙 앙상하고 팔다리가 없어서 그런지 그렇게 무겁진 않았다.
다만,
“고기….고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런 섬뜩한 경험은 회귀 전과 현생을 통틀어 처음이다.
어둠 속에서 놈의 숨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하아….하아….”
-입을 벌렸어. 물려고 한다.
소담검이 외쳤다.
아직이다.
지금 노리면 놈이 알아차릴 수도 있다.
-콱!
그때 우측 쇄골 위쪽으로 놈의 이빨이 파고들었다.
고통스러웠지만 나는 선천진기를 극성으로 끌어올려 놈의 우측 갈비뼈 쪽을 노렸다.
놈이 귀신처럼 알아차리고서 내 오른손을 잡아냈다.
‘큭.’
부러진 손목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이건 노림수였다.
놈이 오른손을 잡는 순간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왼손을 오므리고서 정수리 중앙인 천령혈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빠악!
“끄아아아아아아악!”
괴인이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펄쩍 날뛰었다.
빌어먹을 어떻게 된 일이지?
사혈을 정확하게 맞췄는데 죽지 않았다.
“끄가가각!”
비명을 지르던 괴인이 한 손으로 나를 밀어내며 몸을 튕겨내더니, 이내 동굴의 입구 쪽에서 자신의 머리를 붙잡고 뒹굴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어디야?’
-여기다.
남천철검이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나는 신형을 날려서 벽에 꽂혀 있는 남천철검을 재빨리 뽑았다.
그리고는 괴인을 향해 단번에 검을 내리쳤다.
그 순간이었다.
-팍!
‘빌어먹을!’
괴인이 갑자기 오른팔 팔꿈치를 움직였는데, 옆으로 균형이 쏠리면서 검이 빗나갔다.
안되겠다 싶어 발에 공력을 모아 놈을 안면을 차려고 했다.
그때 괴인이 왼손으로 이를 잡아냈다.
-팍!
그리고는 내 발을 거칠게 밀어냈다.
내 몸이 동굴 천장까지 떠올라 부딪치고 말았다.
-쾅!
“크헉.”
천장에 부딪쳤다가 바닥에 떨어졌는데 그때 괴인이 내 등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내 뒷목을 움켜쥐었다.
빌어먹을 이렇게 실패로 돌아가는 건가.
그때 귓가로 괴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 무엇이냐? 어떻게 선천진기를 익힌 것이냐?”
‘!?’
아까처럼 어눌한 말투가 아니었다.
오히려 또렷또렷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자는 내가 선천진기를 익힌 것을 알고 있는 거지?
선천진기는 내공으로 감지할 수 있는 기운이 아니었다.
-꽉!
“끄윽.”
괴인이 나의 뒷목을 더욱 세게 움켜잡았다.
“당장 말하지 못할…..아니? 그 검…..남천철검이 아니느냐?”
뭐야?
대체 이 자는 누구지?
심지어 녹이 슬어있음에도 남천철검까지 알아보았다.
아는 자였다면 남천철검이 진즉에 이야기했겠지만, 녀석도 모르는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래도 어쩌면 살 수 있는 기회일 지도 몰랐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면 모를까. 정신이 들었다면 대화를 할 수 있지 않나.
“저…..저는 남천검객의 후인입니다.”
“뭣? 그놈의 후인이라고?”
‘그놈?’
설마 남천검객의 적인가?
그렇다면 정신이 멀쩡해도 이곳은 사지나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끝인가.
그때 뒤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끄흑.”
뭐지?
설마 이 자 울고 있는 건가?
-어…..울고 있는데.
소담검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말했다.
남천검객의 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우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감정에 복받쳤는지 괴인은 계속 끅끅거리며 울었다.
미치겠다.
언제까지 뒷목이 잡혀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지?
한참을 끅끅거리던 괴인이 감정을 추스렸는지 이내 입을 열었다.
“참으로 기이하구나. 기이해.”
“후배는…..선배께서….대체 무슨….말씀을 하시는 건지….모르겠습니다.”
“이것도 운명인가 보구나.”
-팍!
그때 괴인이 뒷목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는 내 등에서 내려왔다.
더 이상 해하려는 의사가 없어보였다.
나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서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괴인은 두 다리가 없는데도 마치 정좌를 한 것처럼 가지런히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기 전까지 미친놈이었다면 지금은 한 사람의 종사를 보는 듯 했다.
그 정체가 궁금해졌다.
“…….후배. 결례가 되지 않는다면 선배님의 존함을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그런 나의 물음에 괴인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나는 한지상이다.”
‘한지상?’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대체 누구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남천철검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저놈이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무슨 소리야? 아는 거야?’
아까 전만 하더라도 전혀 모르는 것처럼 이야기를 했었는데,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그런 내게 남천철검이 이를 악문 것처럼 말했다.
-비도살왕이다.
‘…..비도살왕? 비도살왕!’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눈앞에 있는 이 앙상한 괴인이 비도살왕이라니?
-왜 놀라는 거야?
소담검은 그 이름을 모르는지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 녀석은 전전 주인이 무림인이라면서 무림인들에 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비도살왕(飛刀殺王).
살수들의 왕이라고 불리던 자였다.
-뭔가 있어 보인다. 그렇게 대단한 자야?
말뿐이겠는가.
내가 알기로 그는 살수의 역량을 넘어섰다고 불리는 전설적인 살수였다.
-살수의 역량을 넘어서?
그는 평범한 살수가 아니었다.
그 무공 또한 비범하다고 알려졌는데, 그를 유명하게 만든 사건은 공교롭게도 유일한 살행 실패였다.
그는 대담하게도 중원 팔대고수 중 한 사람인 열왕패도 진균을 노렸었다.
팔대고수가 괜히 초인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살행은 실패로 돌아갔다.
한데 비도살왕은 열왕패도 진균과 십수 초식을 겨루고도 멀쩡히 살아 돌아간 유일한 살수였다.
그 일화가 그를 살수의 왕으로 명성을 떨치게 만들었다.
-운휘. 이놈은……남의 뒤통수나 노리는 비겁한 자다. 절대로 믿어선 안 된다.
그때 남천철검이 노기가 서린 목소리로 내게 경고를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녀석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탁!
갑자기 비도살왕 한지상이 불편한 몸으로 내게 엎드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그가 내게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남천검객의 후인이여. 부디 내게 빚을 갚을 수 있게 해다오.”
나는 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남천철검의 경고도 있어서 그런지 경계심이 풀어지지 않았다.
저렇게 보여도 살수의 왕이라 불리던 자가 아닌가.
“선배님. 후배는 도통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자초지종이라도 말씀해주신다면…..”
“내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우선 빚부터 갚도록 하지.”
“네?”
그 순간 비도살왕 한지상이 팔꿈치를 뒤로 당겼다.
손목에 감겨져 있는 얇은 은사로 인해 내 몸이 강제로 꿇려졌다.
나는 놀라서 다급히 그에게서 멀어지려 했다.
하지만,
-팍!
어느새 한지상의 손이 내 정수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
그곳은 그가 멀쩡하지 않을 때 노렸던 천령혈의 위치였다.
설마 앙갚음을 하기 위해서 이런 것일까?
“큭!”
나는 선천신공을 운기하여 그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자네가 거부해도 나는 빚을 갚아야 겠다.”
-팍!
그의 손바닥에 힘이 들어갔다.
“억!”
그 순간 한지상의 손에서 뜨거운 기운이 천령혈을 타고서 흘러들어왔다.
그런데 이 기운은 내공이 아니었다.
‘…..이건?’
바로 선천진기였다.
놀랍게도 한지상은 선천진기를 운용할 수 있었다.
놀라워하고 있는데 한지상이 내게 말했다.
“천령혈은 다른 말로 백회혈이라고 한다. 선천진기를 가장 받아들이기 좋은 혈이다. 집중해라.”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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