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59
25화 동굴 속의 괴인 (2) >
천령혈을 노리기에 나는 이대로 꼼짝없이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곳을 통해 들어온 것은 선천진기였다.
비도살왕 한지상의 말대로 천령혈은 또 다른 말로 백회혈이라 불리는데, 사혈이라 불리는 이곳을 통해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선천심법을 운기조식해라.”
‘!?’
아니. 선천심법은 또 어떻게 아는 거지?
대체 이 자가 어찌 선천심법을 알고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밀려들어오는 선천진기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목숨을 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후우.”
나는 호흡을 통해 운기를 시작했고 밀려들어오는 선천진기를 중단전으로 유도했다.
과연 이것이 제대로 받아들여질지는 나도 모른다.
하단전의 내공은 자신이 쌓은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을 받아들이게 되면 성질이 다르기에 상당 기운이 소실되어 많아야 3~4할 이상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한다.
‘아!’
밀려들어오는 선천진기.
그 기운들은 미묘하게 내가 가진 것과 달랐다.
하지만 그 성질은 매우 흡사했다.
이를 통해 나는 알 수 있었다.
‘……선천심법을 익혔어.’
기운의 성질이 흡사하다는 것은 같은 심법을 익혔다는 소리였다.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같은 심법을 익힌 덕분에 기운의 소실이 적을 거라는 것이다.
-쿵! 쿵!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선천진기가 중단전으로 밀려들어왔다.
나는 이것을 체화하기 위해 열심히 선천심법을 운기했다.
한지상이 가지고 있는 선천진기의 양은 당연히 나를 뛰어넘었고, 기존에 감당했던 기운을 넘어서다보니 전신의 기맥이 찢어질 듯 부풀어 올랐다.
“끄으으.”
“……참아라.”
기운을 넘기는 한지상 역시도 많이 벅찼는지 호흡이 거칠어져 있었다.
그렇게 이각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선천심법은 선천진기를 안정적으로 안착시키는 역할을 했다면 성명신공은 이를 원활하게 운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일주천, 이주천.
성명신공의 운기 경로를 따라 선천진기의 회전이 서서히 속도가 붙어갔다.
그런 나의 귓가로 한지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아…..하아…..이치란 복잡한 듯 하여도 그것은 허와 실이니, 이를 바로 보게 되면 허는 부질이 없음이다.”
‘!!!’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졌다.
그저 운기에만 매달려 있었는데, 머릿속에서 성명신공의 구결이 하나의 구조를 이루며 눈앞에 형상화되어갔다.
그렇게 반 시진 가량이 지났다.
운기를 마치고 눈을 뜨자 나는 환희로 차올랐다.
성명신공이 5성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4성부터는 아무리 선천진기가 많아도 깨달음이 없으면 그 위로 오르기 힘들었다.
하지만 비도살왕 한지상이 해준 말 덕분에 5성에 이르렀다.
게다가 지금 중단전 속의 선천진기는 60년을 넘어서는 정(精)을 형성하고 있었다.
-대박인데!
나도 얼떨떨할 지경이었다.
이 정도라면 한지상이 내게 넘겨준 선천진기의 6할 가까이를 체화시킨 셈이었다.
충분한 깨달음만 얻게 된다면, 언제든지 성명신공의 6성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축하한다. 운휘. 기연을 얻었구나.
한지상을 경계했던 남천철검이 나를 축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으로 일성만 이룬다면 생전의 남천검객이 이뤘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었다.
기연 덕분이라고는 하나 감회가 남달랐다.
영문을 떠나서 비도살왕 한지상에게 절이라도 올려야 할 것 같았다.
‘계속 저러고 있던 거야?’
-응.
한지상은 내게서 열 보 정도 떨어진 곳에서 좌선을 하고 있었다.
원래도 좋지 않았던 얼굴이 더욱 피폐해져 보였다.
원기라 할 수 있는 선천전기를 이렇게나 넘겼으니,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스르륵!
“아?”
팔에 감겨 있던 얇은 은사가 헐렁해졌다.
이 정도면 풀 수 있을 듯 했다.
-슈르르르르!
이를 풀어서 빼내는 순간, 은사가 갑자기 누가 끌어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
그것은 한지상의 팔꿈치에 착용되어 있는 갈색빛 보호구 같은 곳이었다.
한지상은 움직이지도 않는데 저절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신기했다.
‘깨어난 걸까?’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아직까지 눈을 뜨지 않았다.
혹 아직 운기가 끝나지 않은 것인가 살피려고 했는데,
“크아아아아!”
갑자기 한지상이 눈을 부릅뜨고서 내게 덤벼들었다.
그 모습을 보면 다시 정신이 나간 듯 했다.
놀란 나는 빠르게 보법을 펼치며 뒤로 물러났다.
-타타타타탁!
성명신공이 5성의 경지에 이르면서 나의 몸놀림은 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반면 한지상은 오히려 더욱 둔해졌다.
몸을 날리다가 이내 넘어져서는 바닥을 힘겹게 기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고기…..고기……”
처음 보았을 때처럼 나를 식량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한데, 선천진기의 거의 대부분을 소진해서인지 평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배고파…..너무 배고파.”
괴물 같이 강했을 때는 섬뜩할 만큼 무섭던 모습이 애처롭기 마저 했다.
정신이 나갔어도 자신이 약해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라도 한 것일까.
그가 자신의 하나 뿐인 팔을 물어뜯으려 했다.
‘이런!’
나는 다급히 한지상의 혈도를 점해서 그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품속에 먹다 남은 육포가 있던 것 같다.
‘물기로 축축하지만.’
먹는 것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고기다! 고기!”
나는 그의 입에 그것을 물려주었다.
몸만 움직일 수 없도록 혈도를 점한 것이기에 우물거리며 허겁지겁 육포를 먹어댔다.
-하…..
남천철검의 탄식을 내뱉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는 죽어 마땅한 자다. 하지만 지금 저 모습을 보니 천벌을 받은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는 조심스럽게 녀석에게 물었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떠올린 것처럼 입을 다물고 있던 녀석이 말했다.
-15년 전…..전주인은 금색 눈의 사내와 검을 겨뤘고 패했다. 그 부상은 매우 심각해서 목숨이 경각에 달할 정도였다.
이것은 예전에 남천철검에게 들었었다.
그때도 녀석은 이 이야기를 하다가 도중에 멈췄었다.
아무래도 그때 마무리를 짓지 못한 비화인 모양이다.
-금색 눈동자의 사내가 떠나고 난 후에 죽어가고 있는 전 주인의 앞에 비도살왕이 나타났다.
‘아…..’
그렇다면 설마 비도살왕이 남천검객에게 최후를 날린 것인가.
아니다.
그렇다면 남천검객이 그 동굴에 선천심법을 남기다가 죽었을 리는 없었다.
-……비도살왕은 당시에 가장 명성을 날리던 전 주인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하나 늘 만전이었던 전 주인을 노리는 일은 놈으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비도살왕이 남천검객의 목숨을 노리다니.
하긴 팔대 고수 중 한 사람의 목숨도 노렸었는데,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보다 누가 청부했는지가 오히려 궁금했다.
-그건 나도 모른다. 다만 놈은 주인이 약해지기를 기다렸던 것 같았다.
그도 그럴 만 했다.
손끝으로 건드려도 죽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닌가.
이런 기회를 살수가 놓칠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놈이 전주인에게 제안을 했다.
‘제안?’
-어차피 전 주인은 목숨을 건지기 어려울 테니, 자신에게 무공을 전수해달라고 했다.
그 상황에 무공을 탐냈구나.
하긴 다른 이도 아니고 차세대 팔대 고수로 거론되던 남천검객의 무공이다.
비도살왕이라도 탐이 날 수밖에 없었을 거다.
한지상이 선천심법을 익히고 있던 것이 이런 비화가 있을 줄이야.
-……전주인은 약해져 있었고 그의 말에 혹했다. 그래서 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뭔데?’
-전주인은 예전부터 늘 후인을 두고 싶어했다. 그래서 비도살왕에게 후인이 될 만한 재목에게 남천검객의 이름으로 무공을 전수한다면 대가로 무공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아…….
왠지 뒷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남천철검이 이렇게 분노한다는 것은 그가 기대에 부응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운휘 네 예상대로다. 전 주인에게서 선천심법과 성명신공, 성명검법의 구결을 알아낸 놈은 곧바로 태도를 바꿨다.
-와. 진짜 못돼 처먹은 놈이네. 그래도 죽어가는 사람이랑 약조한 건데.
소담검이 짜증을 냈다.
-놈은 그 자리에서 전주인의 두 다리를 부러뜨렸다.
‘그 금안의 사내가 그런 게 아니었어?’
나는 당연히 금안의 사내가 남천검객의 다리를 부러뜨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짜 범인은 바로 비도살왕 한지상이었던 것이다.
정말 악랄한 짓을 했다.
-혹여나 전주인이 천운으로 살아날까봐 다리를 부러뜨린 것 같았다. 한데 놈도 운이 없었다.
‘응?’
-그때 금안의 사내가 나타났다.
반전의 반전이었다.
원하는 것을 얻은 비도살왕 한지상의 승리가 아니었다.
-금안의 사내는 전 주인의 다리가 부러진 것을 보고서 한지상 놈의 두 다리를 잘라버리고 단전까지 파훼시켜서 계곡에 던져버렸다.
-와. 완전 속이 시원하네.
소담검이 신나서 떠들어댔다.
한지상이 인과응보를 당한 것이 좋았나 보다.
참 사람의 운명이란 모를 일이었다.
행운과 불행이 동시에 겪은 한지상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심경이었을 것이다.
-나는 저 자가 살아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것을 듣고 나니 남천철검이 왜 그렇게까지 분노하는지 알 것 같다.
나름 호적수라 할 수 있던 해악천은 그래도 남천검객의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했던 반면 한지상은 자신의 잇속만을 차리다 벌을 받았다.
-그런데 참 모를 일이다. 그때는 놈이 당연히 죽었을 거라고 여겼고, 또 당연히 죽었으면 했다.
남천철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다.
나 역시도 한지상이 아니었다면 급류에 휩쓸려서 목숨을 잃을 뻔했다.
심지어 이런 기연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운휘. 나는 도저히 그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남천철검의 심경이 백분 이해갔다.
전주인은 비참한 죽음으로 몰아갔으니 원망스러울 테고, 현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나를 살렸으니 은인인 셈이었다.
-그래봐야 잡아먹으려고 건진 거였잖아.
‘……..’
참 이래저래 이 자와 나는 복잡하게 인연이 얽혔다.
나는 한지상을 쳐다보았다.
육포를 다 먹고서 꿈틀대더니, 어느 순간부터 넋을 놓고 있었다.
이런 그의 상태를 보면 어째서 시간이 없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때 한지상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내가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나?”
정신을 차린 그였다.
오락가락 하니까 도통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에게 선천진기를 받았으니 인사를 올려야 할 것 같았다.
-슥!
나는 포권을 취하려고 했다.
“그만둬라. 나는 그저 빚을 갚았을 뿐이다.”
“…….알겠습니다.”
남천철검에게 사정을 들었기 때문에 그가 왜 빚을 갚는다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15년이라는 세월 동안 많은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듯 했다.
그때 그가 말했다.
“점혈까지 한 걸 보니 오랫동안 못 보일 꼴을 보인 모양이군.”
“아닙니다.”
영문이 궁금했던 나는 솔직하게 물어보았다.
“한데 선배께서는 어찌하여 이곳에 계셨던 겁니까?”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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