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63
26화 사마영 (3) >
중원 무림을 통틀어 초인이라 불리는 12명의 고수가 있다.
정도에 가까운 여덟 명을 무림인들은 중원 팔대고수라고 하였고, 사도와 흑도에 가까운 이 네 명을 중원 사대악인이라고 칭했다.
악인이라는 호칭을 가진 그들은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일화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월악검 사마착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일화들 중 하나가 사천성 동남부의 고월방이라는 방파가 있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이백여 명이 넘는 방도들이 참살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범인이 바로 사마착이었는데, 이를 분노한 고월방과 관련된 문파들이 힘을 합세하여 사마착의 근거지인 계월곡을 찾아내 그곳으로 쳐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을 쳐들어간 사백여 명의 무림인들 중 누구 하나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었다.
-와…..그럼 혼자서 그 많은 사람들을 죽였단 말이야?
소담검이 혀를 내둘렀다.
사대악인 중에 살인과 동떨어진 이는 누구도 없었다.
사람 죽이기를 밥 먹는 것보다 쉽게 여기는 자들이니까 말이다.
-그럼 쟤가 그 사마착이라는 악인의 자식이야?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
성이 사마이고 이름이 영이라고 했다.
계월곡 출신에 사마라는 성을 가졌다면 그 후인이 틀림없었다.
사대악인의 후인이 혈교에 입교 신청을 하다니.
참 놀랄 일이었다.
‘잠깐만……뭔가 좀 안 맞는데.’
-뭐가 안 맞아?
그래.
이제 기억이 난다.
회귀 전에 무림 연맹에 첩자로 파견되면서 있었던 일이다.
그때 월악검 사마착과 관련되어 큰 사건이 터졌었다.
-무슨 사건인데?
‘그때 사마착과 무쌍성이 부딪쳤었어.’
-무쌍성? 그 단일 방파로 최고의 성세를 누린다는 그곳?
워낙 큰 사건이라 무림 연맹에서도 추이를 지켜본다고 관심을 가졌었다.
당시에 동맹이 깨진 상태였기 때문에 무림 연맹에서는 무쌍성에서 상당한 타격을 받기를 바랐지만 그것이 이뤄지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왜?
‘도리어 사마착이 무쌍성의 일원으로 들어갔거든.
-응? 무쌍성에 들어갔다고?
모두가 예상지 못한 사건이었다.
무림 연맹 측에서는 사마착이 자신의 근거지인 계월곡의 위치가 고월방 사건으로 알려지면서 들어간 게 아닐까 추측했었다.
하지만 후에 그 배경에는 월악검 사마착의 후인이 무쌍성의 일원이었던 것이 그 원인이 되었다고 알려졌다.
결국 자식을 따라서 무쌍성에 들어간 셈이었다.
-어? 그럼 쟤가 그 자제란 말이야?
그건 나도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맞다면 사마영이라 밝힌 저 황건의 청년은 혈교가 아니라 무쌍성으로 투신해야 할 운명이었다.
사실 이렇게 육혈곡이 무림 연맹에 습격 받은 것도 회귀 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이렇게 터져버렸다.
‘꼬인 건가?’
그렇게 밖에 추측할 수가 없었다.
무쌍성으로 가야 할 사람이 혈교로 오게 되다니.
여기서 사마영을 받지 않게 된다면 원래의 역사대로 움직이게 되지 않을까?
그때 소담검이 한 가지 사실을 꼬집었다.
-그런데 네 말대로라면 지금은 사마착인가 하는 그 사대악인의 근거지가 계월곡이라는 거 아무도 모르는 거 아냐?
어라?
소담검의 말이 맞다.
생각해보니 고월방 사건도 후에 터질 일이었다.
그렇다면 월악검 사마착의 근거지인 계월곡도 아직까지 누구도 모르는 일이 된다.
한데 서갈마는 왜 놀란 거지?
“자네는 사마세가 출신이 아닌가?”
사마세가?
아……
사마세가는 무림 연맹의 요직에 있는 명문 무가였다.
사대악인인 월악검을 떠올린 나와 달리 서갈마는 사마라는 성을 듣고서 그녀가 사마세가라고 추측한 모양이다.
하긴 계월곡 사건이 터지지 않았는데 사마착을 떠올리는 게 이상한 일이다.
“명문 무가 출신이 본교를 선망했다고?”
무림 연맹의 요직을 맡고 있는 명문 무가 출신으로 오인했다면 서갈마의 이런 반응도 당연했다.
그때 황건의 청년이 고개를 들고서 말했다.
“저는 사마세가와 관계가 없습니다!”
힘이 들어간 목소리에 서갈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황건의 청년의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원한 같은 것이 느껴졌다.
서갈마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서 말했다.
“그걸 어찌 증명할 텐가?”
“사마세가는 제 어머니의 원수이니까요.”
“어머니의 원수?”
서갈마의 반문에 황건의 청년이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로 인해서 제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무림 연맹의 울타리 안에 있는 그들을 저 혼자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기에 혈교에 투신하고 싶었습니다.”
황건의 청년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묻어났고 눈가가 촉촉해지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나는 어릴 적을 떠올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익양소가의 가주, 즉 아버지를 비롯한 익양소가의 사람들이 죽이고 싶을 만큼 원망스러웠다.
그래서일까.
황건의 청년에게서 내 모습이 비춰졌다.
서갈마 역시도 진정성을 느꼈는지 의심의 눈초리가 한결 수그러져 있었다.
“하면 어째서 인피면구로 얼굴을 가린 건가? 본교로 입교를 원한다면 아무 것도 숨기지 말아야 할 터인데.”
“……..”
그 말에 잠시 망설이던 황건의 청년이 얼굴로 손을 가져갔다.
귀 밑쪽을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허물을 벗듯이 얼굴의 껍질이 벗겨졌다.
고무처럼 늘어나던 인피가 벗겨지자, 그 안에 감춰져 있던 원래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나와 서갈마의 입에서 동시에 탄성이 흘러나왔다.
여자라는 것은 목소리 때문에 짐작하고 있었지만 얼굴은 꽤 충격이었다.
백자를 연상케 할 만큼 새하얀 얼굴에 홍조를 띠고 있는 두 볼. 유순한 눈매에 부드럽게 내려오는 코의 선,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야말로 미녀라고 할 수 있는 요건을 전부 갖추고 있었다.
-예쁜 거냐?
소담검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저 정도면 한 성을 대표하는 미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아름다웠다.
-백련하랑 비교하면?
‘……음.’
-그래 그 정도면 대답이 됐다.
아니.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어찌 되었든 사마영은 회귀 전에 보았던 무림 연맹 내의 미녀들과 비교해도 세 손가락에 꼽을 만한 미녀였다.
왜 인피면구를 했는지 새삼 이해가 되었다.
그때 그녀가 서갈마에게 입을 열었다.
“성별이나 얼굴이 아닌 오직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런 그녀의 말에 소담검이 중얼거렸다.
-…….저거 지가 예쁜 거 아는 거지?
부정하긴 어렵네.
하지만 분명 외모에서 오는 선입견은 있었을 듯 하다.
자루에 못이 담겨 있으면 튀어나오듯이 저 정도 외모라면 어딜 가나 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외모에 실력이 묻힐 수도 있었다.
그때 서갈마가 내게 전음을 보내왔다.
설마 나의 의견을 물을 줄은 몰랐다.
의아해하는데 그가 말했다.
서갈마의 물음에 나는 사마영을 쳐다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꼭 입교하고 싶다는 굳은 의지를 눈빛으로 보내고 있었다.
이러니까 꼭 심사를 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다.
-한데 운휘. 사대악인의 딸이면 위험하지 않겠나?
가만히 듣고만 있던 남천철검이 내게 말했다.
소담검과 다르게 녀석은 아마도 제 전주인인 남천검객을 통해서 사대악인의 악명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녀석은 위험부담을 우려하고 있었다.
-아니면 난마도제에게 그녀의 정체를 알려주면 판단을 내리지 않겠나?
사마영의 정체를 알려주라고?
그렇게 되면 서갈마는 절대로 받지 않으려고 할 거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졌다면 누가 사대악인의 딸을 들이려고 하겠는가.
차후에 어떤 사달이 벌어질지 몰라서라도 거부하지 않을까.
-괜히 사대악인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옛날에도 그들을 부려보려고 했던 자들 중에 대가를 치르지 않은 자들이 없었다.
남천철검은 마치 야생마처럼 표현했다.
억지로 길들이려고 하다가 낙마하기 십상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경우가 달랐다.
다른 사대악인이거나 미래를 알지 못했다면 당연히 받지 말라고 권했겠지만, 나는 그녀의 행보와 월악검 사마착의 행보도 알고 있다.
-운휘 너 설마?
‘이런 패를 어디서 찾겠어.’
잘만하면 백련하의 세력을 백혜향과 비등하게 올릴 수 있었다.
아니 꼭 백련하 측이 아니더라도 우리 쪽에 호의적인 패로 활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전에 합의부터 해야겠다.
사마영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녀가 기대감에 찬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 그녀에게 슬쩍 운을 띄웠다.
‘!?’
그 말에 사마영의 고운 미간에 주름이 접혔다.
* * *
육혈곡이 있는 산맥에서 200리(里) 정도 떨어진 깊은 산속.
이곳에는 오래된 사찰이 있었다.
겉보기에는 불상도 있고 합장을 하며 절을 하고 있는 스님들도 있어 평범한 사찰처럼 보이지만 이곳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이 사찰은 혈교에서 오래전부터 임시 거처로 쓰는 곳이었다.
평소에는 당연히 사찰로서의 본분을 다하지만 그들이 오게 되면 사람들의 이목을 피할 수 있는 거처의 역할을 했다.
사찰의 한 건물 안.
둥근 탁자에 다섯 명이 앉아 있다.
그들은 백련하와 기기괴괴 해악천, 혈수마녀 한백하, 호송 단주 장문웅, 패혈 단주 구상웅이었다.
한시도 쉬지 않은 그들은 이곳까지 백련하를 데리고 피신할 수 있었다.
패혈 단주 구상웅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어르신. 기다리기로 한 시간까지 1시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의 말에 해악천이 입을 열었다.
“알고 있다.”
“……시간이 되면 출발해도 괜찮을 련지요?”
구상웅의 그 말에 해악천의 인상이 무섭게 구겨졌다.
“알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구상웅이 뭔가를 더 이야기하려 했지만, 백련하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
해악천의 심경을 헤아려서였다.
겉으로 아닌 척 했지만 해악천은 이틀 내내 심기가 불편했다.
그런 그에게 백련하가 말했다.
“해숙. 서숙께서 위험을 무릅쓰고 찾고 계시니, 믿고 기다려 봐요.”
“클클. 괜찮습니다. 아가씨.”
해악천이 애써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괜찮다고 했다.
지금은 이런 모습이었지만 어제만 하더라도 자신이 남아서 소운휘를 찾겠다고 난리를 쳤었다.
하지만 워낙 거구인 그는 눈에 띌 수밖에 없었기에 서갈마가 수색을 지원했다.
서갈마 역시도 자신이 방심하지 않았다면 소운휘가 절벽에 떨어지는 일이 없었을 거라며 미안한 마음에 지원한 것이었다.
‘이놈. 정말로 죽은 것이더냐.’
시간이 지날수록 해악천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계곡 하류에서 복면인의 시신만이 떠내려 온 것을 찾고서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희망을 가졌지만 기다리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한 곳에 이틀 이상 머무는 것은 위험부담이 컸다.
백련하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다음 목적지로 이동해야만 했다.
‘해숙.’
그런 해악천을 백련하가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소운휘의 활약이 없었다면 자신들이 이곳까지 오는데 많은 장애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 역시도 마음 한구석에선 소운휘가 꼭 살아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가망이 없었다.
절정의 벽을 넘어선 고수가 작정하고 동귀어진의 수를 펼쳤다.
그 정도로 까마득한 높이에서 떨어지게 된다면 아무리 심후한 내공의 고수라고 해도 생명을 보장할 수 없었다.
‘공자…….’
참으로 안타까운 인재를 잃었다.
그 정도 영리한 자라면 더욱 큰일을 했을 텐데 말이다.
이 기다림이 해악천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지기를 바랄뿐이었다.
그렇게 한 시진이 흘렀다.
모두가 눈치를 보고 있는데 해악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발할 시간입니다. 아가씨.”
담담한 목소리에 모두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괴팍하기로 유명한 그가 이렇게 제자를 아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해숙.”
“녀석의 명운이 그 정도인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더 지체하면 이곳이라고 안전할 수 없을 터이니, 출발하도록…..”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의아해진 그들이 방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보았다.
‘!!!’
바깥으로 나온 다섯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건물 앞 마당에는 회색 도복을 입은 열다섯 명의 무사들과 난마도제 서갈마, 황건을 쓴 청년, 그리고…..
“공자!”
“너 이 녀석!”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침체되어 있던 해악천의 얼굴이 되살아났다.
죽었다고 단념했던 소운휘가 살아 돌아왔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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