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64
26화 사마영 (4) >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
회귀 전 첩자로 있을 때는 여차하면 상황에 따라 아군을 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과감하게 나를 포기할 거라 여겼었다.
하지만 달랐다.
나 하나를 찾기 위해 존자 중의 한 사람이 정파인으로 변장까지 하고서 수색을 한 것도 모자라, 백련하와 행렬이 이틀 동안 기다릴 줄은 몰랐다.
이곳으로 오는 내내 이존 서갈마 또한 이례적인 일이니 충심을 다하라고 누차 강조했었다.
-그만큼 네가 인정받았다는 거 아냐?
그럴 지도 몰랐다.
사존의 제자이면서 몇 번의 공을 세운 게 컸던 것 같다.
아니면 해악천과 백련하의 입김이 작용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전주인은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본인이 하기 나름이라고 했다.
-네 전주인은 어찌 모르는 게 없누.
소담검이 저리 말했지만 남천철검의 말도 맞다.
스스로의 가치는 스스로가 만들어가기 나름이 아니겠는가.
-웅성웅성!
사찰에 도착하자마자 모두가 마당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끌벅적해졌다.
혈교 무사들의 반응을 보면 모두가 나의 생환을 반기고 있었다.
송좌백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새끼. 명도 질기구나.”
말은 저리하면서도 입은 웃고 있었다.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끼익!
그때 사찰 건물의 한 방문이 열리며 해악천과 백련하, 혈수마녀 한백하, 호송 단주 장문웅, 패혈 단주 구상웅이 밖으로 나왔다.
“공자!”
“너 이 녀석!”
그들은 생환한 나를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긴 그런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동귀어진을 당하고 살아 돌아왔으니 저런 반응도 당연했다.
특히 해악천의 얼굴은 거의 환희에 찬 수준이었다.
저 노인네가 저렇게까지 좋아할 줄은 몰랐다.
-입 꼬리가 찢어지는데.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해악천이 잔뜩 인상을 굳히더니 내게 호통을 쳤다.
“멍청한 녀석. 방심하니 그런 꼴을 당한 것이 아니더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빛은 전혀 아니었다.
그래도 장단은 맞춰줘야겠지.
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서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송구합니다. 제자가 아직 부족하여 방심한 나머지 적의 간계에 당했습니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못난 놈 같으니. 쯧쯧. 한참 멀었구나.”
해악천이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그를 보면서 백련하와 주위 사람들이 피식하고 작게 웃었다.
내버려두면 계속해서 일부러 심통을 부릴 것 같았는지, 혈수마녀 한백하가 개입했다.
“사존. 이쯤에서 노여움을 거두시죠. 무사히 생환하지 않았습니까.”
“크흠.”
해악천이 기침을 한 번 하더니, 백련하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가씨께서 네 녀석의 수색을 명하지 않았더라면 요행은 없었을 것이다. 감사의 인사를 올려라.”
그 말에 나는 얼른 절을 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백련하는 고개를 저으며 이를 만류했다.
“절은 됐습니다. 공자가 해준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첩자를 두 번씩이나 찾아내고 목숨을 걸고 시간을 끈 것이 컸긴 했나보다.
두 단주들도 흡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이럴 땐 겸양이 최고지.
“아닙니다. 아가씨께서 수색대를 보내지 않으셨다면 계곡을 빠져나오기 어려웠을 겁니다.”
“겸양을 가지실 필요 없어요. 오히려 공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군요.”
“네?”
“지금은 논공행상을 할 만한 시기가 아니지만 이 정도는 해야 제 마음이 편할 것 같군요.”
‘논공?’
의아해하는데 그녀가 손짓으로 다가오라고 했다.
뭘 하려고 부르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혈수마녀 한백하가 예를 갖추라고 하였다.
한쪽 무릎을 꿇자 백련하가 입을 열었다.
“소운휘 공자. 그간의 공을 인정하여 그대의 직위를 승진시키고자 합니다.”
‘!!!’
그녀의 입에서 나온 파격적인 결정에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설마 생환하고 돌아오자마자, 이 자리에서 공로를 인정하여 직위를 승진시킬 줄은 몰랐다.
다른 혈교인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난리가 났다.
특히 송좌백이 입을 벌리고서 쳐다보고 있었다.
-쟤는 네가 잘 나가기만 하면 저런 넋 나간 표정을 짓더라. 지 동생 좀 본받지.
그건 멍 때리는 거잖아.
송우현이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은 음식이 입에 들어갈 때뿐이다.
그때 해악천이 나무랐다.
“뭘 하는 게야?”
놀라서 머뭇거리고 있던 나는 얼른 혈교의 예법에 따라 두 손을 모으고서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그녀가 내 머리 위로 가볍게 손을 얹고서 공표했다.
“부단주로 본교를 위하여 맡은 소임을 다해주길 바랍니다.”
‘흡.’
그 말에 나는 순간 입술이 실룩거리는 것을 참았다.
두 단계나 직위가 올랐기 때문이었다.
대주 직의 위로 총대주(단주 보좌), 부단주, 단주 순으로 직위가 오른다.
-좋은 거야?
‘당연하지.’
부단주가 되면 한 단(團)의 부 책임자가 될 수도 있었고, 따로 세 개의 대(隊)를 산하 소속으로 이끌 수 있었다.
해악천이 나를 다른 누군가의 소속으로 밀어 넣지 않는 이상 내 밑에 세 명의 대주를 둘 수 있게 된 것이다.
“삼가 명을 받듭니다.”
공손히 답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나자 해악천 산하의 무사 후보생들이 환호성을 지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내 무산되었다.
이곳이 깊은 산중에 있다고 하나 비밀 가옥이나 다름없었기에 시끄럽게 하여 외부로 노출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크하하하하하핫.”
물론 이를 무시하고 광소를 내뱉는 이도 있었다.
지극히 해악천다웠다.
‘부단주라….’
감회가 남달랐다.
회귀 전에는 한낱 첩자였던 내가 부단주까지 올랐다.
이대로라면 단주도 그리 멀지 않았다.
-세 명이나 대주를 받을 수 있으면 두 명은 정해졌네.
소담검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슬며시 송좌백과 송우현을 쳐다보았다.
송좌백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거부하듯이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내 밑으로 들어오는 것은 극도로 경기를 일으키는 녀석이었다.
송우현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뭐 저 녀석들이 아니더라도 내가 생각해둔 두 명은 있었다.
-누군데?
‘조성원.’
녀석은 지금도 대주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일류의 벽을 넘을 수 있는 자질도 있어서 충분히 그 위를 노려볼 만도 했다.
다른 한 명은…..
-설마 쟤를 대주로 받으려고?
내가 두 번째 대주로 점찍은 자는 바로 사마영이었다.
실질적인 실력은 이미 단주 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녀였다.
그렇기에 서갈마가 나의 설득에 넘어가 그녀의 입교를 허락한 것이었다.
-쟤 감당할 수 있겠어?
‘다른 곳에 보낼 수는 없잖아.’
내가 데리고 있어야 앞으로 벌어질 일에 맞춰서 구상을 짜볼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염려되는 것이 있었다.
나는 해악천을 쳐다보았다.
“흥. 이 빚은 언젠가 갚도록 하지.”
무뚝뚝하게 서갈마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그냥 고맙다고 하면 될 텐데, 언젠가 원수를 갚겠다는 투로 말하고 있었다.
하여간 특이한 성격이다.
-해악천이 왜?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해악천에게는 그녀의 정체를 밝힐 생각이었다.
혹시나 나중에 그녀의 부친인 월악검 사마착이 들이닥친다면 나 혼자 감당할 수 없을 지도 몰랐다.
-…….어째 너는 조성원도 그렇고 저 미친 노인네를 방패막이로 잘 활용하는 것 같다.
소담검이 혀를 내둘렀다.
그때 내 귓가로 사마영의 전음이 들려왔다.
사마영이 멀뚱히 서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하필 모두의 신경이 무사 생환한 나에게로 쏠리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잊혀진 것이다.
이러면 내가 나서야 하나.
그런데 마침 백련하가 그녀를 발견하고서 물었다.
“한데 서숙. 데리고 온 저 소협은 누구죠?”
“아. 아가씨.”
해악천과 대화를 하고 있던 서갈마가 깜빡했다는 시늉을 하며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녀가 나를 도와준 것부터 혈교의 왜 입교하려하는지를 요점만 잘 간추렸다.
그런데 사마영이 여자라는 말에 백련하가 의아해했다.
“여자라고요?”
그녀의 인피면구가 워낙 교묘해서였다.
호리호리한 체구였지만 겉보기에는 잘생긴 청년이었다.
게다가 이곳에 와서는 아직까지 말문을 떼지 않았으니 의심할 구석도 없었다.
응?
그런데 여자라는 말을 듣자마자 백련하가 왜 나와 사마영을 번갈아 쳐다보는지 모르겠다.
사마영만 쳐다보면 되는데 말이다.
입교를 신청한다고 했는데 예를 취하지 않아서 그런 건가.
나는 사마영에게 얼른 전음을 보냈다.
내 말을 알아들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릎을 꿇고서 백련하에게 예를 갖췄다.
“입교를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녀. 사마영이라고 합니다.”
-웅성웅성!
“정말 여자잖아.”
“남자가 아니었네.”
그녀의 목소리에 장내가 술렁였다.
억지로 굵게 낼 때와 달리 사마영의 목소리는 청아하기 그지없었다.
백련하가 미간을 찡그리더니 이내 그녀에게 말했다.
“사마 소저라고 했나요? 인피면구를 벗을 수 있나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사마영이 귀밑 뒤를 만지작거리다가 면구의 경계면을 붙잡고서 이를 벗었다.
그녀의 얼굴이 드러나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만큼 그녀는 절세가인이었다.
백련하도 살이 빠지면서 아름다워졌지만 사마영은 여자가 봐도 넋을 놓을 만큼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괜히 인피면구를 쓰고 다닌 것이 아니었다.
멍한 눈으로 사마영의 얼굴을 쳐다보던 백련하가 나를 흘겨보았다.
아니 왜 또 저러는 거지?
-그게 질투라는 것이다. 운휘.
‘질투?’
-전주인께서 여자들은 잘 보이고 싶어하는 남자가 더 어여쁜 여자에게 시선을 보내면 기분이 얼음장처럼 가라앉는다고 하셨다.
-네 전주인은 이론으로는 모르는 게 없네.
-크흠.
이 녀석들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백련하가 그럼 질투라도 했다는 건가.
차기 혈교주 재목인 그녀가 뭐가 아쉬워서 나한테 그런 감정을 가지겠는가.
그때 귓가로 전음이 들려왔다.
해악천의 전음이었다.
그 역시도 사마영의 빼어난 외모에 놀란 것 같았다.
찬물을 끼얹기는 싫지만 사실은 밝혀야 겠지?
그래야 그녀가 다른 곳에 배치받기 전에 산하로 영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내 말에 해악천이 씨익하고 웃더니 전음을 보냈다.
[클클. 저 여아가 마음에 들은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본좌가 한 번 힘을….] [한데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 [……부디 스승님만 알고 계십시오.]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의아해하는 해악천에게 나는 사실을 밝혔다.
[사마 소저의 부친은 월악검 사마착입니다.] [!?]웃고 있던 해악천의 표정이 한순간에 굳어졌다.
꽤 충격이 컸나 보다.
굳은 얼굴로 사마영을 쳐다보던 해악천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전음을 보냈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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