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68
28화 익양소가로 (3) >
무림 대회의 후기지수 논무에 우승해서 혈마검을 얻어라.
얼핏 들으면 간단해 보이는 작전이지만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첫 번째 조건인 우승부터가 최악의 난관이니까 말이다.
-쟤들은 모를 거 아냐?
알 리가 있나.
무림 연맹에서 베일 속에 꼭꼭 숨겨뒀던 괴물이다.
-그 정도면 후기지수가 아니지 않아?
후기지수는 후기지수다.
단지 그 시작점이 남들과는 확연하게 달라서 문제인 거다.
게다가 이 벽보의 공문도 뿌려진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누가 출전할지 조차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언니 쪽에서도 무림 대회를 노릴 거라 생각해요.”
백혜향 측에서도 논무에 누군가를 파견시킨다는 말일 것이다.
‘흠.’
심히 걱정된다.
이 임무는 허점도 있었고 매우 위험했다.
얼핏 떠올려도 여러 변수들이 잡히는데 정말 괜찮은 것일까?
백련하가 나를 보더니 의아해하며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군요.”
잠시 망설이다 입술을 뗐다.
어차피 내가 맡아야 할 임무라면 이야기를 하는 편이 나았다.
“…….임무에 관한 확실한 방비가 되어있는 겁니까?”
그런 내 말에 답한 것은 그녀가 아니었다.
호송 단주 장문웅이 답했다.
“이 임무는 사활을 걸어야 할 만큼 많은 것이 걸려있습니다. 작전을 허투루 짜지 않았습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장문웅이 자신감을 보였다.
지난번에 육혈곡 탈출 당시도 아군을 속이는 작전을 그가 책략 했다고 들었다.
해악천이 그를 기용하는 것도 그런 능력 때문이었다.
백련하가 내게 말했다.
“혹 걸리는 것이 있다면 허심탄회하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공자의 식견을 들어보고 싶군요.”
해악천도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윗사람인 그녀가 좋다고 했으니 말해도 괜찮겠지.
“우승을 하는 것과 별개로 정말로 무림 연맹에서 혈마검을 상품으로 허하겠습니까?”
내가 우려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다른 병장기들은 몰라도 혈마검은 정사 대전의 승전물이었다.
무림 연맹에서 이것을 순순히 넘겨줄지가 의문이었다.
-의심이나 안 받으면 다행 아냐?
소담검의 말대로 오히려 혈교와 관련된 자로 의심 받을 확률도 지극히 높았다.
그런 내 말에 해악천이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클클. 곱게 줄 리가 있느냐.”
응?
그럼 이것을 상정했단 말인가.
장문웅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무언가를 가져왔다.
그것은 목판으로 만든 상자였는데, 길이가 검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길었다.
-달칵!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정말로 몇 자루의 검이 들어 있었다.
그것도 전부 같은 모양, 길이, 문양을 하고 있는 검이었다.
“이건?”
의아해하는데 장문웅이 검 한 자루를 꺼내서 기이한 무언가를 보여줬다.
-투둑투둑!
검신이 몇 단계로 꺾이며 접혔다.
그 광경에 나와 송좌백은 할 말을 잃었다.
장문웅이 씨익하고 웃으며 말했다.
“이 정도면 답이 되었습니까?”
‘하!’
요 근래 호송 단주가 계속 어딘가에 다녀왔던 것이 이것을 제작하기 위해서였구나.
간부들이 무엇을 계획했는지 머릿속에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다.
더 자세한 것은 들어보면 알겠지만.
“아니. 이걸로 뭘 한다는 건지?”
물론 내가 이해했다고 송좌백까지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이 녀석도 무투파에 가까워서 은근히 단순하다.
장문웅이 간략하게 이야기를 해줘서야 겨우 이해했다.
“지난 십 년간 본교에서는 어떻게든 신물을 탈환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도를 했습니다. 실패가 누적되면서 그만큼의 무림 연맹의 병기고에 관한 정보도 모을 수 있었죠. 이번 무림 대회는 유일하게 병기고를 개방하는 기회입니다.”
축적된 정보와 기회인가.
어쩌면 가능성이 있을 지도 몰랐다.
“이제 걸리는 것은 없습니까?”
그때 송좌백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데 단주님…..무림 대회의 논무는 정파의 후기지수들만 참가할 수 있는 대회가 아닌지?”
-이야. 우리 좌백이도 머리를 굴릴 줄 아네.
얼마나 단순한 모습만 보였으면 소담검이 놀릴까.
그런데 녀석이 그런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우리의 신분은 혈교인이니까.
녀석의 물음에 호송 단주 장문웅이 웃으며 답했다.
“다행히 공자님들이 본교의 충성스러운 교인이라는 사실은 정파인들 누구도 모르고 있죠. 심지어 공자님들의 가문에서도 말이죠.”
역시 예상대로였다.
우리 세 사람을 부른 것도 그런 이유였다.
송가네 쌍둥이들과 나는 정파의 명문 무가 출신들이었다.
송좌백의 표정이 묘해졌다.
-뚱하네.
이 녀석들도 그렇고 나도 가문에서 그리 입지가 좋지 않았다.
쓰레기 취급을 당하고 버림받은 나보다야 낫겠지만, 녀석들도 모종의 이유로 가출하다시피 가문을 나온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다시 가문과 엮일 줄은 몰랐다.
참 묘한 상황이 되었다.
혈교의 교인이 되어 가문으로 돌아간다라.
-그러고 보니까 네 손으로 가문을 끝장낸다고 하지 않았던가.
소담검이 예전에 했던 말을 상기시켰다.
그래. 그랬지.
그런데 일이 공교롭게 되었다.
“…….설마 논무를 참가하기 위해 가문의 후기지수 대표가 되어야 하는 겁니까?”
“맞습니다. 그게 기본 자격입니다.”
역시였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무림 대회의 논무에 참가하기 위해 가문의 후기지수 대표 자격을 얻는 것.
-가문을 끝장내는 게 아니라 가문의 대표가 돼야 하네.
기분이 뒤숭숭하다.
그 인간들을 다시 봐야 하는 건가.
그때 해악천이 나와 송좌백, 송우현을 차례로 쳐다보며 말했다.
“흥! 본좌의 제자란 것들이 고작 그깟 무가의 대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해서 빌빌거리진 않겠지?”
지극히 그다운 말이었다.
다만 그깟 무가라고 하기에 익양소가는 명문 무가다.
그 규모도 호남성에서 손에 꼽혔고 나아가서는 오대세가와 비견될 정도였다.
물론 썩어도 준치라고 혈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익양소가는 한 지방의 호족이나 다름없겠지만 말이다.
‘……녀석들을 제치고 후기지수 대표를 차지한다고?’
머릿속을 스쳐가는 경멸로 가득했던 얼굴들.
살짝 떠올렸는데, 오랫동안 억눌러 놓았던 화가 슬금슬금 치밀어 올랐다.
‘기회인가.’
차라리 잘됐다.
혈교에 얽매여 있느라 언젠가는 결착을 짓고 싶었다.
그것이 예상지 못하게 빠르게 다가온 것일 뿐.
지금의 나는 예전과 다르다.
단전이 파훼되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버림받았던 그 시절의 나는 사라졌다.
“받아라.”
“네?”
그때 해악천이 탁자 위에 있던 찻잔을 던졌다.
-슉!
그냥 던진 것이 아니라 내공을 실었다.
갑작스럽게 던졌지만 나는 내공을 끌어올려 부드럽게 날아오는 찻잔을 손바닥으로 살짝 감쌌다.
역시 힘을 죽이지 않으면 찻잔이 내공에 의해 깨진다.
-휘리릭!
손으로 감쌌던 찻잔을 회전시키며 내공의 기세를 죽였다.
손바닥 위에서 찻잔이 팽이처럼 빠르게 돌다가 이내 멈춰 섰다.
해악천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내공이 늘었군.”
난마도제 서갈마가 제법이라는 듯이 말했다.
이에 옆에 있던 혈수마녀 한백하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영약을 거의 다 흡수했군요.”
“영약? 육혈성이 영약을 주었소?”
“네.”
정확히는 백련하의 명으로 준 영약이었다.
강구현에 도착하고 나서 백련하는 전에 약조한 것을 들어준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모자란 하단전의 내공을 보충하기 위해 영약을 요구했고, 보름 동안 부단히 그 기운을 흡수한 덕분에 절정의 고수에 걸맞은 내공을 가지게 되었다.
“클클, 그 정도면 어지간한 후기지수 애송이 놈들은 네놈의 발끝도 못 쫓아올 게다.”
해악천이 흡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대로 내 또래 후기지수들의 실력이 일류고수임을 감안한다면, 나는 상위권에 속하는 실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은 하단전을 기준으로 했을 때다.
“얼마나 필요하다고 했느냐?”
해악천의 물음에 장문웅이 우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무림 대회가 열리는 것이 두 달 뒤쯤이니, 두 공자님들이 호남성으로 가는 기간을 고려한다면 적어도 보름 내로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합니다.”
“들었겠지? 본좌를 실망시키지 마라.”
보름.
열닷새면 굉장히 촉박했다.
그 안에 쓰레기로 불렸던 입지를 바꿔야 한다.
-척!
그때 송좌백이 포권을 취하더니, 의욕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기대에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후기지수 대표가 되어 논무에서 반드시 우승하여 아가씨께 혈마검을 갖다 바치겠습니다.”
그런 녀석의 포부에 장문웅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난처하다는 듯이 말했다.
“음…..공자님. 이번 작전에서 공자님들의 역할은 우승이 아닙니다.”
“네?”
“우승 후보인 자들을 최대한 많이 탈락시키고 소운휘 공자님이 혈마검을 탈환하도록 돕는 것이 공자님들의 임무입니다.”
그런 장문웅의 말에 송좌백 녀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자신에게 막중한 임무를 맡겼다고 생각했는데, 거의 보조나 다름없자 자존심에 금이 간 모양이었다.
녀석의 분한 감정을 느꼈는지, 이를 수습하기 위해 장문웅이 말을 덧붙였다.
“공자님들께서는 무위가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이번 임무는 검을 얻어야 하고 남천검객의 검법을 익힌 소 공자님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 큰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장문웅의 달래는 말을 들으니 어째서 내가 주가 되는지 알 것 같다.
나는 정파에서 명성을 떨친 남천검객의 검법을 익혔다.
반면 쌍둥이들은 해악천의 독문절기를 익혀서 기본 권각술 만으로는 후기지수들을 상대로 제 실력을 발휘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때 말없이 멀뚱히 앞만 쳐다보고 있던 송우현이 입을 열었다.
“…….형과 제게도 기회…..를 주십쇼.”
어눌한 말투였지만 의사를 분명히 했다.
설마 제 형을 대신해서 말한 것일까.
“너?”
송좌백 역시도 놀란 표정으로 송우현을 쳐다보았다.
“그건 안…”
장문웅이 딱 잘라서 이를 정리하려고 했는데 해악천이 끼어들었다.
“자신 있느냐?”
“어르신!”
장문웅이 그를 만류하려 들었다.
그러나 이미 해악천의 말에 전의와 의욕이 되살아난 송좌백이었다.
녀석이 뒤로 몇 보 물러나더니, 이내 짧은 기수식과 함께 권각술을 펼쳤다.
-파파파팍!
그것은 해악천의 독문무공인 현철진권이 아니었다.
현철진권이 패도적인 기세에 파괴적인 권이라면 녀석이 지금 펼치는 권은 부드러움도 담겨져 있었다.
‘해원명륜권.’
-그 명륜선공의 권법 아냐?
맞다.
명륜선공의 권법이었다.
나 역시 요즘 들어 권각술의 필요성을 느껴서 익히고 있었다.
한데 녀석의 부드러우면서 막힘없는 권초를 보면 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성취를 얻었다.
-저걸 숨기고 있었네.
지금까지 수련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걸 보면 비장의 한수로 연마한 듯 했다.
녀석도 확실히 무재는 타고났다.
장문웅을 쳐다보니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
이 정도 성취면 누구도 녀석이 사파의 권사라고 생각지 못할 것이다.
해악천이 클클거리면서 웃더니 옆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쩌시겠습니까?”
송좌백의 권각술을 바라보던 백련하가 생긋하며 앵두같은 입술로 읊조렸다.
“패는 많을수록 좋은 법이죠.”
* * *
여드레 후.
호남성(湖南省) 율랑현의 북쪽.
수천 평에 이르는 드넓은 장원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장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으리으리한 대문 전각 위의 현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益阳昭家(익양소가)
이곳은 율랑현의 자랑인 익양소가의 장원이었다.
호남성을 대표하는 명문 무가답게 대문을 지키는 문지기들마저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한낱 문지기에 불과하나 그들은 이류 무사들이었다.
그들은 익양소가의 일원임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마저도 무더운 더위 앞에서는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다.
“어우. 더워.”
“전각 그림자를 벗어나질 못하겠네. 그려.”
얼마나 더운지 그들은 손바닥으로 손부채를 부쳤다.
그러나 땀을 식히기에는 부족했다.
뜨거운 여름의 정오는 눈앞에 아지랑이마저 보일 만큼 대지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교대까지 얼마나 남았나?”
“정오니까 반 시진은 남지….응?”
“왜 그러나?”
“누가 오고 있네.”
문지기들의 시선이 정면으로 향했다.
그들이 바라보는 곳에서 아지랑이 열기를 뚫고서 걸어오는 세 명의 죽립인이 보였다.
선두에 서있는 자는 등에 낡은 천으로 감싼 철검을 차고 있었고, 그 뒤를 따르는 두 사람 중 한 명은 유생들이 입을 듯 한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등허리에 가로로 검을 착용했다.
유일하게 맨손인 한 사람은 병장기가 없었지만 다부진 풍채를 가진 것이 문지기들은 한눈에 저들이 무림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무림인이다.”
“똑바로들 서라.”
-슥!
더위로 흐트러져 있던 그들이 자세를 고쳐 잡았다.
손님이 올 거라는 통보를 받지 않았기에 저들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착!
문지기들이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병에 손을 얹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림인들이 대문 앞에 당도하자 문지기들의 선임이 그들에게 포권을 취하며 정중히 물었다.
“이곳은 익양소가의 장원입니다. 용무가 있으시면 신원을 밝히기 바랍니다.”
선두에 있던 죽립인이 입을 열었다.
“나도 이름을 밝혀야 하오?”
문지기들의 선임이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제깟 놈이 뭐라고 대익양소가의 입구를 통과하려 하는데 신분을 밝히지 않는단 말인가.
“하! 당연한 소리를 하시는 구려. 신분을 밝힐 수 없다면 대문을 통과할 수 없….”
“익양소가.”
‘응?’
죽립인이 죽립을 슬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삼남 소운휘. 가문에 들어가길 원한다.”
‘!!!’
죽립 밑으로 보이는 약관 청년의 얼굴에 문지기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문을 통과하길 요청한 정체불명의 무림인은 1년도 전에 행방불명된 익양소가의 삼남 소운휘였다.
끝
ⓒ 한중월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