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69
29화 소장윤 (1) >
율랑현의 북동쪽 편에는 작은 호수가 있다.
소정호(小靜湖)라 불리는 호수의 옆에는 율랑현에서 가장 큰 주루인 향화루가 있었다.
향화루는 소정호의 정취를 즐기며 술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아무리 주루라고 해도 태양이 중천일 때부터 술을 즐기는 이는 많지 않을 거라 여겨지지만, 한 무리의 청년들이 누각을 통째로 빌려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코가 유독 두드러진 청년이 잔으로 마시다 못해 술병으로 나발을 불고 있었다.
-쿵!
“크으.”
술병을 내려놓은 청년이 콧김을 내뿜었다.
붉게 상기된 볼이나 술내가 진동하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짐작하게 만들었다.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청색 비단 옷을 입은 청년이 말했다.
“소 형. 기운 내시게. 이번만 기회겠소.”
“조강 아우의 말이 맞네. 자네가 형님에 비해서 뭐가 떨어진단 말인가. 장자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한 구색이니 너무 상심하지 말게.”
그들은 상석에 앉은 청년을 달래주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말에 청년은 말없이 술병을 들이켰다.
코 큰 이 청년의 이름은 소장윤.
호남성 익양시를 주름잡고 있는 익양소가의 이남이었다.
-쿵!
거칠게 탁자 위로 술병을 내려놓은 소장윤이 토로를 했다.
“젠장. 일 년 먼저 태어난 게 뭐가 대수라고 한 번 겨뤄보지도 않고 가문의 후기지수 대표를 맡는 게 말이 되나?”
소장윤이 대낮부터 술을 퍼마시는 이유였다.
낙양에서 있을 무림 연맹의 큰 행사인 무림 대회에 그는 가지 못하게 되었다.
가문의 대표 후기지수로 일남인 소영현과 일녀인 소영영이 정해졌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천출 년의 계집조차 후기지수로 데려가는데.”
-으득!
어찌나 분한지 이를 갈았다.
그런 그의 말에 청년들 사이 껴있던 두 명의 여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그의 심경을 이해해도 계집이니 년이니 비하하는 말은 썩 듣기 좋지 않았다.
배다른 남매라고 해도 같은 핏줄이 아닌가.
두 명의 여인들이 전음으로 속삭였다.
그녀들은 이곳 호남성에서 꽤 명망 높은 무가 출신이었다.
물론 그녀들 외에 세 명의 청년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호남성 무림 지회에서 연을 맺었기에 이들 여섯은 어렸을 때부터 친분이 깊었다.
보랏빛 경장을 입은 여인의 이름은 송양화
도법으로 유명한 조항송가 장녀였다.
한 시를 대표하는 가문이 아니라 한 현을 주름잡고 있는 가문이지만 무가로서 전통이 깊은 곳이기에 오래 전 소장윤과 혼약을 맺게 되었다.
‘익양소가만 아니면 이런 놈과 혼인따윈 하고 싶지 않은데. 제 형의 반만 쫓아가도 좋을련만.’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소장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순전히 가문의 후광만을 보고서 체념한 것뿐이었다.
‘차라리 영현 공자님의 후실로라도 들어가고 싶다.’
익양소가의 일남인 소영현은 그와 비교하면 고고한 학과도 같았다.
그녀의 가문에서도 어떻게든 소영현과 맺어주기 위해 힘을 썼지만, 제갈세가의 차녀와 혼약을 맺으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후우. 그래 좋게 생각하자. 가출한 오라버니들에 비하면 낫지 않은가.’
마음을 비우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그러던 차에 소장윤의 우측에 앉아 있는 조강이라는 청년이 말했다.
“소 형. 지금쯤이면 가주님께서 형산파의 손님들과 오고 계시겠구려.”
“이야. 그럼 그 유명한 형산일검 대협과 형산여협을 뵐 수 있겠네. 그려.”
“이거 부럽소이다.”
오악검파(五岳劍派) 중 남악(南岳)인 형산에 근간한 형산파는 검으로 유명하다.
익양소가와 더불어 호남을 상징하는 무림인들을 배출했는데, 그들이 형산일검과 형산여협이었다.
이들이 이렇게 율랑현에 온 것도 형산파의 검객들과 교분을 쌓기 위해서였다.
누각에 있는 청년들 중에 무림 대회에 참가하는 자들은 아무도 없기에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흥. 부럽기는 뭐가 부럽다고.”
소장윤은 탐탁지 않다는 듯이 짜증을 냈다.
그는 형산파를 좋아하지 않았다.
오 년 전 형산파의 속가 제자로 들어갈 기회를 소영영에게 빼앗긴 이후로 인재도 알아보지 못하는 머저리로 생각했다.
‘휴.’
송양화가 조강을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뻔히 소영영이 형산여협의 속가 제자로 들어간 것을 알면서 뭐 하러 이런 얘기를 꺼내서 소장윤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러니 누구도 후기지수 대표가 못됐지.’
이런 생각이 드니 자신도 이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에 침울해졌다.
그때 누각 위로 누군가 뛰어올라왔다.
“응?”
복장을 보니 익양소가의 무사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의 등장에 술병을 들려고 하던 소장윤이 이를 멈추고서 물었다.
“무슨 일이느냐?”
-척!
무사가 청년들에게 포권을 취하고서 소장윤에게 다가가 보고했다.
“도련님. 지금 본가에 소운휘 도련님이 왔습니다.”
“뭐?”
소운휘라는 이름이 거론되자 웃고 떠들던 청년들이 관심이 쏠렸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에 익양소가의 삼남 소운휘를 모르는 이가 누가 있던가.
“율랑현 망아지?”
“소 형의 동생 분이 아니오?”
“집에서 내쫓았다고 하지 않았소?”
청년들은 하나 같이 비웃음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송양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운휘 공자가 왔다고요?”
그녀가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있었다.
1년 하고도 몇 달 전, 율랑현 망아지 소운휘는 가문에 내쳐져서 행방불명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시기 때 그녀의 쌍둥이 오라버니들도 사라졌다.
‘혹시 그 망아지가 알지 않을까?’
아무래도 그를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소 공자님.”
-벌컥벌컥! 쿵!
그녀가 말을 거는데 소장윤이 술병에 남은 술을 한 번에 들이키고는 입 꼬리를 비릿하게 올리며 말했다.
“안 그래도 요 근래 기분도 더러웠는데 잘 됐네.”
“소 형 그게 무슨 말이오?”
“자네들 오늘 좋은 구경하게 해주겠네. 우리 집으로 가세나.”
그 말을 끝으로 소장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누각을 내려갔다.
그를 쳐다보던 청년들이 피식하고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충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직감한 것이다.
“언니?”
“후우.”
송양화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하루 파혼 욕구가 높아지고 있었다.
* * *
율랑현 익양소가.
고향과 집.
정말 오랜만이다.
고향이라는 말은 모두에게 향수를 자극하는 단어였지만 내게는 애증의 장소다.
어머니마저 없었다면 증오만 남을 지도 모른다.
소담검이 물었다.
-회귀 전에도 혈교에 납치되었으니까 합치면 여기 온지도 꽤 됐겠네?
그건 아니다.
회귀 전에도 익양소가 삼남이라는 신분이 유용하다며 무림 연맹의 첩자로 들어가기 전에 익양소가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거의 십 년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그런데 고작 하루 만에 쫓겨나다시피 나갔다.
-이번에도 그러는 거 아냐?
뭐 그런 분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회귀 전에 가문으로 돌아왔을 때는 여전히 내공도 익힐 수 없었고 삼류 무사에 불과했다.
쓰레기라 불렸던 가장 큰 이유가 그것이었다.
-그래도 같은 핏줄일 텐데 너무하네.
‘무가의 자식이 내공도 못 익히니 가문에 수치로 여겼겠지.’
물론 어머니 출신도 한 몫 했겠지만.
매일 같이 쓰레기 취급을 당하고 서럽게 지냈던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어린 나이 때부터 술에 손을 댔다.
그 덕분에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나를 율랑현 망아지라 불렀다.
‘차라리 악에 받친 것처럼 살아볼걸.’
이곳에 오니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러기에 너무 철부지였고 단전이 파훼된 것이 너무 컸다.
“와. 사형 장원이 엄청 넓네요.”
그때 내 뒤를 따라오고 있던 사마영이 말을 걸었다.
일부러 목소리를 굵게 내고 있는 그녀는 인피면구로 남장을 한 상태였다.
그녀는 내 사제의 역할을 맡았다.
“넓기는 넓군요. 주….아니 소 형.”
조성원 역시도 장원의 크기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녀석은 나와 교분을 나눈젊은 후기지수의 역할이었다.
아직은 개방 출신이라는 것이 드러나면 안 되기에 인피면구를 착용시켰다.
사마영이 전음으로 내게 물었다.
그녀가 불쾌감을 표한 이들은 본가, 즉 익양소가의 무사들이었다.
외당 무사들이 우리를 안내하고 있었는데, 태도가 썩 좋지 않았다.
개방의 정보력으로 나에 대한 것을 잘 알고 있는 조성원과 다르게 그녀는 간단한 정보만 숙지하고 있어서 기분이 나빴나 보다.
그런 내 말에 그녀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부단주님은 저보다 상관인데 언제까지 그렇게 말할 생각이에요?] [이게 편합니다.] [치.]사마영의 현 직위는 대주였다.
내가 상관이기에 말을 편하게 해도 괜찮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거리를 두는 게 아니라 그녀에게는 깎듯이 대해줘야 할 이유가 있었다.
-쟤 아빠가 무섭긴 한가 보지.
두 말 하면 잔소리지.
월악검 사마착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데 잘해줘야지.
그래야 사달이 일어나지 않을 것 아닌가.
‘음?’
그런데 이들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다.
나는 당연히 이들이 어머니가 쓰던 별채로 안내할 줄 알았다.
다른 녀석들과 다르게 나는 따로 각을 받지 못했기에 어머니의 별채에서 지냈었다.
“이쪽은 객당 쪽인 것 같은데.”
그런 내 물음에 앞서 걸어가던 무사들 중 선두에 있던 이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소가의 외당주 출신의 선임무사로 웅부라는 자였다.
웅부가 내게 말했다.
“별채는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지었습니다.”
“뭐?”
나는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별채에는 어머니의 위패를 모시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별채를 함부로 허물고 다른 건물을 지었다고?
“도련님은 집을 나가셨던 분. 가주님께서 출타 중이시기에 본가로 들이기는 했지만 그것에 대해 관여할 권한은 없으십니다.”
-야. 이 정도였냐?
소담검이 혀를 끌끌거리며 찼다.
그래.
이 집에서 내가 받는 대우는 이 정도다.
그나마 익양소가의 피가 섞여 있어서 적당히 예우를 갖추는 것뿐이다.
-이게 적당한 거냐?
일단 가만히 있어봐.
기분이 착 가라앉은 나는 가던 것을 멈췄다.
내가 따라오지 않고 멈춰 서자, 고개를 돌리고서 말하던 웅부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이 녀석들이 가문에서 쫓겨났던 나를 본가로 순순히 들인 이유는 가주가 출타 중인 것도 있겠지만, 내가 무공을 익혔을 지도 모른다는 짐작 때문이었다.
혹시나 내 입지가 달라질 수도 있어서 가문에 들였으면 어느 정도 비위는 맞춰줘야지.
“도련님?”
“그래. 별채를 허문 것은 그렇다 치고 그럼 두 가지만 묻자.”
차갑게 가라앉은 내 목소리에 불안함을 느낀 것인지 녀석이 그제야 진중해진 목소리로 답했다.
“……말씀하십쇼.”
“그렇지 않아도 물어보려고 했는데. 혹시 아송이 오지 않았어?”
아송은 나의 시종이었다.
1년 하고도 몇 달 전 혈교로 들어오기 전에 나는 살해당할 운명이었던 녀석을 뒷간 똥통에 빠트렸다.
내가 유일하게 안위가 걱정된 두 사람 중 한 명이 이 아송이었다.
녀석은 나를 모시기 위해 따라 나왔지만 원래는 별채를 관리하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모셨었다.
“혹시 별채의 시종을 말씀하시는 건지?”
“그래.”
제발 녀석이 살아있기를 바랐다.
녀석이 죽었다면 내가 똥통마저 양보한 보람이 없지 않은가.
“1년도 전에 본가에 왔었습니다.”
“왔었다고?”
나는 순간 기분이 들떴다.
그 상황에서 살아서 돌아온 것이었다.
살해당하지 않았을까 노심초사 했는데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나 보다.
“그럼 어디 있는 거야?”
녀석의 성정이라면 가문으로 와서 내가 납치당했다고 구해달라고 했을 것이다.
살아있다면 녀석을 데리고 가고 싶다.
그런데 웅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외당 출신이라면 방문자들에 관한 것 정도는 숙지하고 있을 텐데.
“…..쫓아냈습니다.”
“쫓아냈다고?”
나는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웅부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분내를 풍기면서 본가로 들어와 가주님을 뵈어야 한다고 난리를 쳐대는 통에…..”
“어떻게 했는데?”
“…….두드려 패서 내쫓았습니다.”
하.
진짜 좆같네.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녀석을 두드려 패서 쫓았다고?
“…….그게 쫓아낼 일이야?”
“그때는 녀석이 온몸에 더럽게 분칠을 하고 나타나서 도련님을 구해야 한다고 난리를 쳐서 누구 하나 들을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그러니까. 나를 구해야 한다고 가주를 뵙겠다고 했는데, 분내가 나서 두들겨 패서 쫓아냈다고?”
“그, 그게 도련님….”
“분칠했는데 어떻게 때릴 생각은 했대?”
웅부는 당황해서 식은땀마저 흘렸다.
녀석 말고도 무사들 역시도 이를 어찌해야 하나 당혹스러워했다.
“아……손이 아니라 몽둥이로 팼어?”
그런 내 말에 웅부가 손사래를 치면서 변명했다.
“도련님 그때는 상황이….”
-팍!
그때 누군가 웅부의 멱살을 붙잡고 들어올렸다.
사마영이었다.
호리호리하고 작은 체구의 그녀가 건장한 자신을 들어 올리자, 녀석이 당황해서 멱살을 잡은 손을 풀어내려고 했다.
“가만히 있어.”
-타타타타탁!
사마영은 녀석의 혈도를 번개처럼 점했다.
“헛?”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무사들이 그녀에게 소리쳤다.
사마영이 싸늘해진 얼굴로 무사들에게 물었다.
“여기 뒷간이 어디에요?”
뜬금없는 물음에 무사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뒷간이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장원이 워낙 넓다보니까 건물 곳곳에 뒷간 정도는 설치되어 있었다.
“사마….”
내가 그녀를 부르기도 전이었다.
사마영이 멱살을 잡아 올린 채 성큼성큼 뒷간 쪽으로 가더니 문을 거칠게 열고는,
“똥이나 처먹어!”
“읍읍!!!”
웅부를 뒷간 똥통에 냅다 집어넣어버렸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에 무사들이 두 눈이 커져서 얼이 빠졌다.
사마영은 성난 황소처럼 씩씩거리더니, 건물 옆에 놓여 있던 땔감용 나무를 하나 들고 와서 내게 말했다.
“제가 할까요? 사형이 할래요?”
끝
ⓒ 한중월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