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73
31화 남천검객의 제자 (1) >
“나, 남천검객!”
“세상에…..”
“그 분의 제자가 되었다고?”
발칵 뒤집힌 장내 반응에 나도 약간 얼떨떨했다.
남천검객의 위명이 대단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15년 전에 사라졌다고 믿기 힘들만큼 사람들의 반응은 굉장했다.
과연 전설이라 불릴 만한 검객다웠다.
-이야. 이 정도야?
-흠흠. 당연한 반응이다.
남천철검이 헛기침 소리를 내가며 뿌듯해했다.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었다.
내게는 늘 엄하고 화를 내는 모습만 보이던 가주 소익헌이 저렇게 입을 벌리고서 놀라는 모습은 처음 본다.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사공을 익혔다고 주장하던 소영현은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래. 믿기 싫겠지.
나는 슬쩍 누이동생을 쳐다보았다.
늘 사나운 고양이 마냥 뚱한 표정을 짓고 있던 녀석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를 보고 있었다.
이제야 제 나이 또래 같은 표정을 짓네.
“정말…..정말인가? 자네가 정녕 호종대 대협의 제자란 말인가?”
그때 형산일검 조운청이 내게 되물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의심으로 가득했던 얼굴이 백팔십도 바뀌어 있었다.
그런 내 머릿속에 남천철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뭐가?
-인간은 노화 때문에 얼굴을 알아보기 힘든 것 같다.
‘만난 적이 있는 거야?’
-그래. 네 앞에 있는 도사는 이십여 년 전 운남 구북에서 전주인께서 도와주신 적이 있다.
‘그게 정말이야?’
오. 이건 전혀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었다.
형산일검 조청운이 남천검객과 인연이 있는 줄은 몰랐다.
하긴 지금은 형산의 기인이라 불렸던 그라고 해도 이십여 년 전이라면 한참 새파란 후기지수에 불과했을 것이다.
-슥!
나는 조청운에게 포권을 취하며 당당한 정파의 후기지수처럼 호협지심이 넘쳐나게 말했다.
“스승님께 대협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게 정말인가?”
뭐야?
방금 전에 그 사람이 맞던 건가?
뭔가 전형적인 앞뒤가 꽉 막힌 정파인의 모습은 사라졌다.
동경하는 무인을 앞에 둔 사람처럼 눈을 반짝이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십여 년 전에 대협과 운남 구북에서 교분을 쌓은 것을 종종 말씀하셨는데, 향후 정파 무림을 빛낼 영웅이라고 칭찬이 자자하셨습니다.”
“허 참.”
그런 내 말에 조청운이 갑자기 쑥스러운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렇게나 좋아할 줄은 몰랐다.
조청운이 낯간지럽다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대협께서 빈도의 이야기를 그리 하셨는가?”
칭찬에 약한 유형이었구나.
아니다.
그만큼 남천검객을 동경해서일 지도 몰랐다.
그때 누군가 이곳으로 다가왔다.
도복에 백건을 쓰고 있었지만 젊었을 적에는 한 미모 했을 것만 같은 형산여협 조일혜였다.
“사형.”
“사매. 사백께서 살아계셨네. 그 분이 살아계셨어.”
조청운이 감격했다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뭉클해진 그의 목소리에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남천검객이 정파인으로서도 귀감이 되는 자라고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후학도의 존경을 받을 줄은 몰랐다.
“소형제가 정말 그 분의 제자분이었군요.”
조일혜가 놀랍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말학 소운휘가 형산여협께 인사 올립니다.”
예를 갖춘 인사에 그녀가 아차 하는 말과 함께 포권을 취했다.
무림에서 꽤 배분이 높은 그녀가 정중하게 예를 갖추니 살짝 당혹스러웠다.
“어찌 그러십니까? 편하게 대해주십시오.”
“정말 남천검객의 제자 분이라면 우리와 같은 배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찌 그럴 수가 있겠어요.”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지?
같은 배분이라니?
-전주인은 이들의 스승인 호심항이라는 도사와도 교분이 있었다. 그래서 당시 형산파의 젊은 도사들은 전주인께 사백이라고 불렀던 걸로 기억한다.
잠깐.
호심항은 지금 형산파의 장문인이다.
아아 그래서였구나.
하긴 그 당시 남천검객과 교분을 쌓은 세대라면 지금쯤 한 파의 수장을 맡을 배분이었다.
정파인들은 사파에 비해 이런 예법과 배분에 더 예민했다.
-척!
그때 감격스러워하던 조청운도 내게 예를 갖춰 포권을 취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푹 숙여서 사죄했다.
“미안하네. 빈도의 성질이 고약하여 사공이라는 말에 괜히 흥분했었네. 불혹(不惑)이 넘어서도 이렇게 못났네.”
스스로를 타박하는 모습마저 보였다.
형산일검은 생각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자였다.
“아닙니다. 선배….”
“선배라고 하지 말게.”
“네?”
“자네 스승님을 우리 사형제들이 사백이라고 불렀는데, 어찌 그렇게 부르는가. 조 사형이라고 부르게나.”
그런 조청운의 말에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형산파의 기인인 형산일검이 오랜 교분을 나눈 사이처럼 나보고 사형이라고 부르라고 하니, 부러워하지 않을 이가 누가 있겠는가.
나조차도 예상치 못한 행운에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그래도 관리해야지.
나는 짐짓 이래도 되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어찌 선배께….”
“자네가 그리 말하면 내 입장이 어찌 되는가.”
조청운이 눈짓으로 주위를 슬쩍 가리켰다.
“소 사제 너무 부담스러워 하지 마요.”
형산여협 조일혜가 은근슬쩍 내게 사제라고 불렀다.
나는 그들의 청에 못내 받아들이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답했다.
“제가 그리 해도 괜찮을지.”
“괜찮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조청운의 말에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사형.”
“하하하하하하핫. 참으로 기쁜 날일세.”
그런 내 말을 들은 조청운이 호탕한 목소리로 웃었다.
평소에는 낯을 많이 가리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섞지 않아서 이런 면모가 있을 줄은 몰랐다.
남천검객의 제자인 나와 교분을 쌓게 된 것을 기뻐하는 듯 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야 있나.
“사형이 계셔서 오해가 풀려서 다행입니다. 하마터면 사공을 익힌 악인으로 몰릴 뻔 했는데 말입니다.”
“누가 어찌 남천검객의 후인에게 그런 오명을 뒤집어씌운단 말인가.”
그런 그의 말에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내가 쳐다보고 있는 곳에서 소영현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나의 말로 인해 녀석은 남천검객의 제자를 사공을 익힌 악인으로 몰아간 파렴치한 놈이 되어버렸다.
“그, 그게 아닙니다. 저는 그저….”
“그만!”
녀석이 변명을 하려는 것을 누군가 가로막았다.
그는 가주 소익헌이었다.
소익헌이 이곳으로 다가왔다.
내가 남천검객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로 그의 심경은 굉장히 복잡해보였다.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여태껏 나를 인간 같이 취급도 하지 않고 가문에서 내쫓은 당사자였다.
어찌 보면 버림받은 자식이 과거에 급제하여 금의환향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그것을 좋아할 수도 없는 입장일 거다.
‘후우.’
그의 얼굴을 보니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가 책임감을 가지고 무게를 잡았다면 어머니의 대우는 달라졌을 것이다.
무림에서 그의 명망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한 사람의 가장으로서는 실격이었다.
하지만 화를 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목적을 달성하려면 그에게는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탁!
나는 무릎을 꿇고서 절을 했다.
“소자. 아버님께 문안 인사를 올립니다.”
“…….”
절을 하자 아무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회귀 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그때도 가주 소익헌에게 이렇게 문안 인사를 올렸었다.
-뭐라고 했었는데?
‘네놈 같은 놈을 아들로 둔 적이 없다고 내쫓았지.’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때는 내가 절을 하자마자 그 말부터 튀어나왔었다.
한데 지금은 말이 없었다.
계속 엎드려 있으면 그것도 문안 예에는 맞지 않으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나자 가주 소익헌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구나. 무탈해서 다행이다.”
속으로 나는 그를 비웃었다.
형산일검과 형산여협이 있으니 가식적으로나마 인사를 하는 그였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웃는 낯으로 말을 하진 않았다.
“흠흠.”
그때 형산여협 조일혜가 끼어들었다.
영영이를 알고 본가와도 인연이 있으니 우리 부자가 어떤 관계인지 그녀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가주께서는 복이 많으시군요. 막내 아드님이 남천검객의 제자가 되었으니 감축드릴 일이 아닙니까?”
그녀는 분위기를 전환하려는지 일부러 가주 소익헌을 띄워주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나를 치켜세워주는 것도 있었다.
좋은 날이니 서로 기분 좋게 가자는 의미도 들어 있을 것이다.
“조 여협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가주 소익헌이 두 손을 모아 가볍게 예를 표했다.
하지만 여전히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쓰러져 있는 두 아들을 눈짓으로 슬쩍 가리키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손속이 지나쳤구나.”
그 와중에 전후 사정을 알아본 모양이다.
아마 내가 형산일검과 손을 섞으며 대화하는 동안이었겠지.
나는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송구합니다. 두 형님들이 감정적으로 격해져서 제 목숨을 노리면서 저로서도 호신을 위해서 손속이 과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어쩌죠.
제게는 명분이 있습니다만.
많은 이목이 있는 곳에서 이런 일을 벌인 이유가 달리 있겠는가.
여기서 그들을 두둔할 수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과연 그가 어떻게 나올까?
“…….그렇구나. 네 형들이 실수한 것은 나중에 문책토록 하마. 지금은 손님들을 모셔야 하니,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자꾸나.”
확실히 소장윤, 소영현과는 달랐다.
나이도 있고 경험이 많은 소익헌은 노련미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들을 문책하겠다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며 이 순간을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넘어가겠는가.
“아버님. 제가 왜 본가에 돌아왔는지는 물어보시지 않는군요.”
그런 내 말에 가주 소익헌의 인상에 주름이 갔다.
아마 내 속내가 궁금해 미칠 것이다.
자신을 원망하는 버린 아들 놈이 대체 무슨 일을 꾸미는지 말이다.
의아하게 쳐다보는 그에게 나는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아버님. 본가의 후기지수를 대표하는 자리를 소자에게 주시옵소서.”
‘!!!’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소익헌의 두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 * *
본가의 객당.
그 일이 있고 한 시진이 지났다.
지금 우리는 익양소가의 객당에서 늦은 점심을 하고 있었다.
-쩝쩝. 우걱우걱.
먹을 때 온갖 소리를 내고 있는 조성원을 사마영이 탐탁지 못하다는 듯이 흘겨보았다.
개방의 거지 출신이라 그런지 녀석은 밥을 먹을 때 유독 소리가 컸다.
뭔가 게걸스럽게 먹는다고 해야 하나.
“교양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쩝쩝거리면서 흘리고 먹지 좀 마요.”
사마영의 타박에 조성원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마십쇼. 이 정도면 복스럽게 먹는 거 아닙니까?”
“복스럽기는. 한 대 때려주고 싶네.”
그녀의 말에 조성원이 눈치를 보았다.
처음에 그녀의 실력도 모르고 같은 대주가 되었다고 덤볐다가 죽사발 나게 얻어터진 이후로 서열 관계가 확립된 그들이었다.
조성원이 기가 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거지가 이 정도면 나름 품격 있는 건데.”
물론 그녀가 한 번 쳐다보자 깨갱하고서 야무지게 밥을 먹었다.
버릇이 제대로 고쳐지고 있었다.
녀석을 쏘아붙인 사마영이 내게는 베시시 웃으며 말했다.
“사형. 시장하실 텐데 많이 드세요.”
태도가 확연히 다르자 조성원이 탐탁지 않다는 듯이 입 모양으로 그녀의 말투를 따라했다.
-스릉!
“죽고 싶으시죠?”
“……죄송합니다.”
참 저렇게 당하면서도 까부는 걸 보면 녀석도 대단하다.
-거지들 특성인가 보지. 뭐.
그러게 말이다. 혈교를 벗어난 이후로 원래 모습이 점점 나오고 있었다.
소담검이 내게 물었다.
-어떻게 될 것 같아?
‘글쎄.’
나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가주 소익헌은 그 자리에서의 대답을 회피했다.
좀 더 몰아붙이고 싶었으나, 형산여협이 중재를 하는 바람에 그것은 힘들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후기지수 대표의 자리는 넘길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러기 위해서 소장윤의 손목과 소영현의 정강이를 부러뜨려놓은 것이다.
시기적으로 약간 여유가 있긴 하지만 부상이 낫자마자 논무에 출전시키는 무리수는 두지 않겠지.
-하긴 그렇겠네.
아마 저녁이 되면 어느 정도 결론이 나올 것이다.
형산파의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한 작은 연회가 마련될 테니, 그때가 되면 알 수 있겠지.
-그나저나 정말 아들 취급을 안 해주긴 한다.
소담검이 이렇게 투덜거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객당의 앞을 지키고 있는 시비들은 그냥 시비가 아니라 무공을 익힌 자들이었다.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마영이 우리 셋만 있는 데도 내게 사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아까 사마영 말대로 일반 시비로 바꾸라고 하는 편이 낫지 않아?
당연히 사마영은 이것을 불쾌해했었다.
무공을 익힌 시비를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굳이 그런 시비를 문 앞에 둔다는 것은 우리를 대놓고 감시하겠다는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아니. 일단 내버려둬야지.’
지금 이것은 일종의 보여주기였다.
내가 남천검객의 제자인 것과 상관없이 이곳은 익양소가의 영역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무공을 익힌 시비들로 배치한 것이다.
-치사하네.
‘영악한 거지.’
이건 나를 향한 가주의 경고다.
자신이 지켜보고 있으니, 아까처럼 섣불리 그런 짓을 하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두 아들들을 그 꼴로 만든 것이 화가 나긴 했나 보다.
그나저나 영영이가 늦는다.
원래는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그 동안 못했던 대화를 나누기로 했었다.
그런데 오지 않아서 기다리다가 이렇게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그럴 리는 없다.
형산여협이 있는데 누가 영영이를 건드릴까.
‘응?’
누군가 방문 쪽으로 다가왔다.
가벼운 발걸음 소리를 보면 여자였다.
다가오는 기척에 우리 세 사람의 시선은 저절로 방문으로 향했다.
-똑똑!
문을 두드리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련님. 작약당의 시비입니다. 마님의 초대를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작약당?”
사마영이 의아해했다.
흐음.
설마 작약당에서 움직일 줄은 몰랐네.
-작약당이 뭔데?
‘들었잖아. 마님이라는 말.’
작약당.
그곳은 익양소가의 가주 소익헌의 본처인 양 부인의 거처였다.
후기지수 대표 자리만 아니었다면 결자해지를 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그녀로 인해 많은 일들을 겪었으니까.
두 형제들의 어머니인 양 부인이 나를 부른다라.
* * *
붉은 꽃잎의 작약 꽃들이 화원을 이룬 작약당.
이 무렵을 제외하고는 꽃이 피지 않는데 공교롭게 꽃이 만개할 때였다.
이 꽃들을 보니 기분이 더러워진다.
양 부인을 보는 것만 같아서 전부 태워버리고 싶다.
작양당에서 일하는 시비들이 나를 보자마자 묘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왜 저러는 거야?
‘소문이 났겠지.’
한 시진이면 장원 내에 소문들이 충분히 퍼질 만한 시간이었다.
작약당의 시비들은 양 부인이 처가에서 데려온 자들로 전부 무공을 할 줄 아는 이들이었다.
그래봐야 전부 이류, 삼류에 불과하지만.
“이쪽으로….”
양 부인이 보낸 시비를 따라 나는 작약당으로 들어갔다.
작약당에 들어선 것만으로 역겨운 기분이 내 전신을 휘감았다.
과연 무슨 말을 하기 위해서 나를 부른 것일까?
-드르륵!
작약당의 안방이 열리며 고풍스러운 탁자 앞에 앉아 있는 중년의 미부인이 보였다.
가는 눈매의 저 여자가 바로 양 부인이었다.
‘일류.’
무공을 익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한데 그녀의 기도를 느껴보니 일류의 무위를 지녔다.
무가 출신다웠다.
-얼굴이 왜 저래 하얗누.
주름을 감추기 위해 하얀 분을 덕지덕지 바른 그녀의 모습에 절로 콧방귀가 나오려 했다.
-슥!
나는 가볍게 목례만을 했다.
무례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녀에게만큼은 예를 취하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가 당한 수모가 내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
“왔구나. 너희들은 물러나 있거라.”
“네. 마님.”
양 부인의 나지막한 명에 안방에 있던 시비들이 물러났다.
시비들까지 물리다니 무슨 의도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왔다.
큰 결의라도 한 것처럼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털썩!
‘!?’
그때 그녀가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에 나는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왜 그러시는 겁니까?”
나의 물음에 그녀가 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야기는 들었다. 남천검객의 진전을 이었다고 하더구나. 기연을 만난 것을 축하한다.”
하!
고작 축하를 위해 무릎을 꿇었다고?
왠지 그녀의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이 갔다.
양 부인이 내게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걸 부정하지 않으마.”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
“거두절미하고 말하마.”
“……..”
“네가 원한다면 이 자리에서 수 십, 아니 수백, 수천 번이고 무릎 꿇고 사죄를 할 수 있다.”
그 당당하던 여인이 내게 사죄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더러운 천 것의 피를 가졌다며 혐오스러워하며 볼 때마다 뺨을 날리던 게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있는 데 말이다.
양 부인이 내게 결의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제발 우리 영현이의 자리를 탐내지 말아다오.”
아……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 악녀이든 아니든 세상 모든 어머니의 마음은 같겠지.
아들의 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나를 부른 것이다.
“이러려고 부른 것입니까?”
차가운 내 목소리에 양 부인이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 평생을 놀고 먹을 수 있을 만한 재화도 줄 수 있다. 그리고 네가 일가를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해줄 수 있다. 그러니 부디 아들의 자리는 탐하지 말거라.”
어떻게든 나를 설득하기 위해 작정한 모양이다.
남천검객의 제자라는 자리가 대단하기는 대단한가 보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위기의식을 느끼고서 몸을 낮춰가며 애원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후우.”
한숨이 나왔다.
사람의 태도란 게 이렇게 쉽게 바뀔 줄이야.
회귀 전에는 꿈도 꾸지 못한 광경이다.
하지만 그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한이 고작 한 번 무릎 꿇는 것에 흔들릴 리가 있나.
나는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
“죄송합니다. 못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양 부인의 안방에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그녀가 다급히 일어나 방문 앞을 가로막고서 말했다.
“이러지 말거라.”
“그건 제가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만.”
그런 나의 말에 양 부인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러더니 힘겹게 입을 뗐다.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 보거라. 무엇이든 들어주겠다.”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고?
발걸음을 멈춘 내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 말 정말입니까?”
“그래.”
그녀가 희망의 끈이라도 붙잡은 것 마냥 얼굴이 환해져서 말했다.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그럼 어머니의 위패를 모셔와 정부인으로 적을 올려주시고, 매 하루 세 시진씩 사죄의 절을 십 년간 올릴 수 있겠습니까?”
나의 요구에 양 부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당연하겠지.
그렇게 천하다고 무시했던 어머니를 정부인으로 인정하고, 그것도 모자라 십 년 동안 사죄의 절을 하라고 하니 자존심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이다.
오만상을 찌푸리고서 말이 없던 그녀가 겨우 입을 열었다.
“정말……그렇게 한다면 내 아들의 자리를 탐하지 않을 것이냐?”
참으로 지극한 모성애였다.
그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어머니가 살아계셨을때 베풀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은 나를 자극하는구나.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용히 귓가로 얼굴을 가져가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라면 하겠냐? 이 썅년아.”
‘!!!’
욕이 섞인 거친 내 말에 그녀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너! 너! 감히!”
화를 내려고 하는 그녀에게 말했다.
“12년 전 주화입마를 입은 날. 내 영약을 당신의 시비가 가져왔지.”
그 말을 듣자 그녀의 표정이 새하얗게 바뀌어갔다.
왜?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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