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78
32화 천기(天璣) (2) >
진(進) 축아회검(逐亞回劍).
성명검법의 초식들 중에 원래부터도 가장 강한 위력을 자랑하는 절초이다.
거기서 더욱 강한 회전력이 가미됨으로써 폭발적인 위력을 자랑한다.
“큭!”
검초에 휩쓸린 소익헌이 어떻게든 스스로를 방어하려 했다
그러나,
-채챙! 푹!
폭풍과도 같은 축아회검의 위력을 막지 못한 소익헌의 청령검이 튕겨나가 연공실의 천장에 박혀버리고 말았다.
소익헌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검초를 막아내면서 그는 알아차렸을 것이다.
내가 자신조차 넘지 못한 한계의 벽을 넘어섰음을 말이다.
“어떻게 네가?”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검초를 최대한 빗겨나가게 했지만, 회전력에 실린 검세에 의해 소익헌의 몸이 물레방아처럼 빙그르 돌면서 연공실의 벽면을 뚫고서 박혀버리고 말았다.
-콰앙!
“크헉!”
소익헌이 비명과 함께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그러더니 반쯤 감긴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 이내 기절하고 말았다.
“후우.”
성명신공의 운용을 멈춘 나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운공실의 벽은 보통 재질과는 다른 더 단단한 돌로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운공실의 벽이 검초의 흔적으로 엉망이 되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제대로 검초를 적중시켰다면 소익헌은 필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가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면 적어도 몇 초식 이상은 버텼을 텐데, 힘을 숨기고 있던 덕분에 방심하여 일 초식만에 승부를 볼 수 있었다.
‘내가 가주를 이기다니.’
기분이 묘했다.
회귀 전에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던 장벽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가 나의 검을 버티지 못하고 이렇게 됐다.
-많이 발전했다. 운휘. 이 정도라면 전주인의 전성기 시절의 절반 정도는 따라온 것 같다.
남천철검이 나를 칭찬했다.
지금 나의 실력이 남천검객의 절반 수준인 건가.
5성과 6성의 차이가 크긴 한가 보다.
그런 남천검객의 전성기 시절을 능가한 해악천은 또 얼마나 강한 것일까?
이를 생각하면 여전히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조급해 하지마라. 너는 누구보다 빠르게 강해지고 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어째 너희들이 더 가족 같은 느낌이다.
-흠흠.
그런 내 말에 남천철검이 기분이 좋았는지 헛기침을 해댔다.
소담검이 내게 말했다.
-그렇게 벼르고 있던 사람한테 이겼는데. 그렇게 기뻐보이진 않네.
녀석이 내 속내를 알아차렸다.
하도 붙어있으니까 표정만으로 기가 막히게 눈치 챈다.
그래 솔직히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가주 소익헌은 나를 조금도 혈육으로 여기지 않는 듯 했다.
‘……..’
솔직한 심경으로 그에게 묻고 싶었다.
내가 그렇게 싫은 거냐고?
그렇게 모질게 굴 것이라면 왜 나를 낳았는지 따지고 싶다.
“하아…..”
벽에 등을 기댄 나의 입에서는 그저 탄식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혈교의 다시 가게 되었을 때도 이런 기분까진 아니었는데.
이 빌어먹을 집안을 망하게 하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영영이의 인생은 나 이상으로 처참해지겠지.
-누이 동생 때문에 참은 거야?
‘왜 내가 아버지를 해코지라도 할까봐. 그러는 거냐?’
-네가 이렇게까지 화가 난건 처음 보니까.
‘화가 난다고 다 풀면 뒷감당은 어쩌고.’
한순간의 기분에 휩쓸려 가주의 목숨을 앗아간다면 누이 동생에게 씻을 수 없는 굴레가 씌워질 것이다.
패륜아의 누이 동생이라는 굴레가 말이다.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네 누이 동생이 너를 붙잡아주는 버팀목 같네.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가 아니라면 이 망할 가문이 사라지든 어떻게 되든 신경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영영이가 있기에 나는 선을 넘지 않았다.
지금 나의 운명은 혈교에 얽매여 있다.
나 역시도 어떻게 될지 모를 상황 속에 익양소가를 풍비박살 내놓고 누이 동생을 끌어들일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어떻게 해야 하나.’
후기지수 대표부터 꼬일 대로 꼬였다.
어차피 첫 번째 안이나 두 번째 안은 가주와 손을 섞은 이상 물 건너갔다.
이제 남은 안은 세 번째와 최악의 안뿐이다.
그때 소담검이 내게 말했다.
-쟤랑 대화해보는 건 어때?
‘쟤?
-천장에 박혀 있는 애 말이야. 안 그래도 내가 대화를 시도해봤거든.
청령검?
워낙 조용해서 있는 줄도 몰랐다.
검들마다 성향이 다르긴 한데, 청령검은 과묵 그 자체였다.
‘흠.’
나는 살짝 뛰어서 천장에 박힌 검을 빼냈다.
청령검은 가주가 늘 가지고 다니는 익양소가의 보검이었다.
소담검의 말대로 녀석이라면 가주 소익헌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기에 아송을 비롯한 숨겨진 진실들을 알지도 몰랐다.
‘청령검.’
-……..
뭐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말을 걸었다.
‘청령검.’
-……..
‘안 들려?’
-설마 내게 말을 거는 겐가?
‘그래. 너 맞아.’
그런 내 말에 청령검이 놀라워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이제는 익숙하다.
검들은 내가 자신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대부분 같은 반응이었다.
청령검의 말투는 나이든 노학사와 비슷했다.
느긋느긋하고 품격이 있다고 해야 할까.
-너와 이렇게 대화를 나눌 기회가 올 줄은 몰랐구나. 아이야.
심지어 나를 아이라고 불렀다.
왜 그러는가 싶어 물어봤더니 청령검은 가문의 일대조 어르신부터 내려왔기에 그 후손들이 하나 같이 손주처럼 생각된다고 했다.
-영감이네. 영감.
소담검이 혀를 내두를 만큼 검계의 대선조였다.
청령검이 내게 말했다.
-늘 너를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었단다. 아이야.
‘안타깝게 지켜봤다고?’
-그렇단다. 너만큼 힘들게 자란 소가의 아이도 없었단다.
청령검의 말에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조부, 즉 할아버지란 존재가 살아계셨다면 이런 기분이었을까?
청령검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달래주듯이 말하고 있었다.
-익헌이가 조금만 살갑고 마음이 열려있었다면 네가 상처받았을 일은 없을 터인데 늘 안타까웠단다.
청령검조차 내 사정을 이해했다.
어쩌겠어.
이미 그건 포기한지 오래다.
애초에 그랬다면 혈교의 첩자로 살아갔을 일도 다시 회귀할 일도 생기지 않았겠지.
-그래도 익헌이를 너무 미워하지 마렴.
‘그건 네가 관여할 바가 아니야.’
-…….지금에 와서 말 몇 마디로 네 마음이 풀리기란 어렵겠지. 하지만 익헌이도 나름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단다.
‘나름의 책임감?’
웃기는 소리다.
책임감을 가진 자가 자식을 가문에서 내치는가.
그리고 자식을 혈교의 주구라고 의심하는 순간 이런 식으로 몰아붙일 리가 있나.
-익헌이가 정말로 너를 혈교의 주구로 몰아서 처리할 생각이었다면 이목이 없는 이곳 연공실로 데려올 이유가 있겠니? 오히려 형산파 손님들이나 다른 자들이 있는 곳에서 공론화를 했겠지.
‘그건 가문을 위해서야.’
손님들이 있는 앞에서 익양소가의 삼남이 혈교의 주구가 되었다고 밝혀봐라.
그 파장이 얼마나 크겠는가.
다른 것은 몰라도 익양소가의 명예를 끔찍이 여기는 자였다.
-네 속에 있는 한이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이구나.
‘천출로 살아간다는 괴로움을 네가 알아?’
어릴 적에는 매일 같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영영이라는 유일한 버팀목이 없다면 목숨을 내던지고 싶다는 충동을 가졌을 때가 많았다.
물론 더 많은 일들을 겪으며 내 마음은 단단해졌지만.
‘네게는 원망이 없지만 내가 알고 싶은 것에 대해서 알려줘야 겠어. 그렇지 않다면 나는 이 자에게 무슨 짓을 할지도 몰라.’
나는 청령검으로 벽에 반쯤 박혀 있는 가주 소익헌을 가리켰다.
검들은 자신의 주인이 해를 입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일종의 협박이었다.
오래된 검이라고 할 지라도 이것이 통하리라 여겼다.
그런데 청령검의 반응이 사뭇 달랐다.
-…….아무래도 진실을 아는 편이 네게 더 나을 것 같구나.
‘진실?’
뭐가 진실이라는 거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녀석이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충격적인 사실을 밝혔다.
-넌 익헌이의 아이가 아니란다.
‘!?’
순간 머릿속에 하얗게 바뀌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멍해져서 힘이 풀린 나는 벽에 기댄 채 눈을 깜빡거리며 가주 소익헌을 바라보았다.
내가 그의 자식이 아니라니?
-20여 년 전 나의 주인은 익헌이의 아비인 익겸이었단다.
소익겸.
돌아가신 조부의 이름이었다.
정사 대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막바지에 전사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때부터 난 익헌이의 곁에 있었다.
당대 가주였던 소익겸이 전사했으니 당연히 검은 소익헌에게로 갔을 것이다.
-익헌이는 젊었고 아비의 죽음에 실의에 빠졌다. 네가 네 어미가 돌아갔을 때 술독에 빠져 살았던 것처럼 지냈다.
저 냉혈한 같은 자가 실의에 빠져 지냈다고?
-매일 같이 밖을 주유하며 취해서 들어오기 일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이 한 부상을 입은 여인을 데리고 왔다.
부상을 입은 여인?
설마…..
-그래. 네 어미인 한 부인이다.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어머니께서는 그저 오래 전부터 시종이 아니었던 건가.
-익헌이는 네 어미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알 수 있었지. 그것이 인간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졌다는 것을 말이다.
가주 소익헌이 어머니를 사랑했다고?
-그래. 적어도 그때까지는 순수한 사랑으로 보였다. 실의에 빠졌던 익헌이는 점점 기운을 되찾아갔고 네 어미를 곁에 두기위해 시종으로 삼았다.
‘사랑을 했는데 시종으로 삼는 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네 어미인 한 부인이 자신의 과거를 숨긴 것도 있었지만 버젓이 명문가의 정처를 두고서 신분이 불분명한 여인을 후처로 받을 수가 없었지.
‘하…….’
-사실 네 어미는 부상이 나은 후에 떠나고 싶어했다. 그러나 네 어미에게는 숨길 수 없는 비밀이 있었단다. 그게 차츰 드러날 수밖에 없었지.
‘…….나구나.’
-그래. 네 어미는 부상을 입고 발견되었을 때부터 회임을 했었지. 참으로 강인한 여인이었다. 그 부상 중에도 너를 잃지 않을 만큼.
다리에 힘이 풀린 나는 벽에서 미끄러지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익양소가와 조금의 관계도 없는 사생아란 소리가 아닌가.
이게 진실이었다고.
-운휘……
소담검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충격에 빠진 내게는 녀석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런 내게 청령검이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네 어미는 떠나려고 했지만 익헌이는 붙잡았다. 그리고 그녀를 설득했지.
‘……뭐라고?’
-아이를 밴 몸으로 아무런 연고도 없이 도망치듯이 떠돌이처럼 지낼 거냐고 네 어미를 설득했다. 모성애 때문인지 결국 네 어미는 익헌이의 청을 받아들였다.
‘………’
-그때 무렵에는 이미 가문에 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네 어미의 배가 불러오면서 그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었고 양 부인의 귀에도 들어갔지.
‘그래서?’
-그 소문을 명분 삼아 익헌이는 네 어미를 후처로 받아들였다. 가주인 익헌이가 자신의 자식을 배었다고 말을 하니 누구도 이견을 제기할 수 없었지.
‘어머니가 그걸 받아들였다고?’
-너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러지 않았을까?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생판 관련 없는 남자의 후처로 들어가다니.
어머니를 떠올리자 눈이 따가워졌다.
이런 게 진실이라니 도저히 믿기 힘들었다.
-이해한다. 쉽게 믿기 힘들겠지.
내 눈으로 보지 않는 이상 이것을 어찌 믿으라는 것인가.
-나도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보았던 것들을 네게 전부 보여주고 싶구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검심(劍心)과 인심(人心)이 통할지어니, 천기(天璣)가 열렸도다.]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더니 오른손에 푸른 불꽃이 일렁였다.
-치이이이!
타는 소리와 함께 손등의 점에 변화가 생겨났다.
‘아아!’
북두칠성의 형태의 일곱 개의 점들 중에 세 번째 별에 해당하는 천기(天璣)가 푸른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천기의 위치에 있던 점이 완전하게 푸르게 변하자 불꽃이 수그러들었다.
‘천기가 열리다니.’
천선이 열린 후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때 눈앞이 검게 바뀌어가며 주위의 풍경이 달라졌다.
마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시선으로 보는 듯 한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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