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8
7화 육혈곡(育血谷) (2)
갑작스러운 방귀 덕분에 제대로 쪽팔림을 당하고 말았다.
소담검은 지루했던 차에 아주 좋았다며 놀려대는데, 심란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쪽팔림은 잠시였다.
‘이상하네.’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방귀 뀐 게? 푸하하하하핫.
‘하아….그거 말고.’
-그럼 뭐가?
‘통증이 완전히 멎었어.’
-잘됐네. 안 그래도 많이 걱정했거든.
‘……네가?’
-당연하지. 우린 운명 공동체잖아.
‘웃기네. 지나가는 벼룩을 믿는 게 낫겠다. 아무튼 그런 게 아니라 느낌이 달라.’
-무슨 느낌인데?
‘뭐라고 해야 하지? 속에 이질감이 없어. 오히려 상쾌한 기분이랄까.’
전생에는 그랬다.
혈고를 받아들인 후에 특유의 이질감이 있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의 벌레가 몸속에서 꿈틀 거리다 보니, 그 거북한 느낌이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다.
“으으….”
혈고를 먹고서 제 자리로 돌아오는 저 녀석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송좌백, 송우현 쌍둥이 형제들은 똥이라도 씹은 얼굴로 자신의 가슴을 움켜잡고서 거북해하고 있었다.
-넌 저렇지 않다는 거네? 적응 돼서 그런 거 아냐?
‘전혀.’
저런 게 적응될 리가 없었다.
신기하게도 적응은 둘째치고 몸이 상쾌하면서 원기가 돋는 것이 의아했다.
‘설마…..’
내 몸속의 혈고에 이상이 생긴 것일까?
사실 이런 의문을 풀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기는 했다.
-그게 뭔데?
‘내공으로 혈고를 살짝 자극해 보면 돼.’
-그렇게 하면 알 수 있는….
바로 그때였다.
“끄게게게겍.”
옆에 있던 송좌백이 경련을 일으키며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놀란 송우현이 자신의 형을 붙잡고 난리쳤다.
“형! 형!”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쯧쯧, 딱 저렇게 돼.’
어설프게 내공으로 혈고를 어찌 해보려 하면 벌레가 날뛰고 만다.
그럼 기절할 정도로 아프다.
심후한 내공을 지닌 내가고수가 아니면 체내의 혈고를 건드리거나 제압하려는 짓은 수명을 단축하는 지름길이었다.
단상 위의 패혈 단주 구상웅이 마침 잘됐다며 말했다.
“보았느냐? 혈고에 괜한 허튼 수작을 부리면 저렇게 된다. 알겠나?”
“충!”
나의 외침 소리를 들은 소년, 소녀들이 얼른 따라서 외쳤다.
“충!!!”
그 모습에 구상웅의 한 쪽 입 꼬리가 올라갔다.
아마도 내가 본보기가 되어서 알아서 분위기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저들을 돕는 게 목적은 아니었지만 내가 먼저 나서주는 편이 희생도 줄이고, 내 입지도 높일 수 있을 거다.
-뭐야? 너 혹시 저 녀석들한테 잘 보이는 게 목적이야?
‘그래.’
이번 생에는 삼류 첩자가 될 생각은 없었다.
위로 올라가서 날 가지고 놀았던 놈들에게 제대로 갚아줄 거다.
그러려면 내가 버리는 패가 아니고 충분히 써먹을 수 있는 대박 패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모두가 혈고를 먹는 것이 완료되자, 패혈 단주 구상웅이 작은 호리병에서 손톱 만한 크기의 환단 하나를 꺼내들고서 말했다.
“이게 보이나.”
저건 생단이었다.
“이건 생단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열두 시진 내로 한 번씩 복용하지 않으면 죽는다.”
그 말을 들은 소년, 소녀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무림 연맹에 패한 혈교가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데는 강제로 교인을 늘려가는 방법뿐이었다.
그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혈고였다.
12시진을 넘기게 되면 혈고가 폭주해 숙주의 심장을 뜯어먹는다.
“지금부터 나눠줄 호리병 안에는 네 개의 환단이 있다. 제때 생단의 보급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결과는 짐작할 거라 생각한다.”
구상웅의 시선이 단상 앞에 거적때기로 덮어놓은 시신으로 향했다.
소년, 소녀들의 눈동자에 절망이 서렸다.
공포를 통한 통제야말로 가장 혈교스러운 방법이었다.
“뭐. 본교를 향한 충성만 증명된다면 제때 보급이 이뤄질 것이다. 그리고 본교는 철저히 능력을 중시하지.”
그가 단상 앞의 대주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대주들의 허리의 띠가 보이나?”
상급 무사인 대주들은 파란 허리띠를 차고 있었다.
“저 띠는 본교의 상급 무사를 의미하지. 능력과 공을 인정받아 상급 무사가 되면 몸속의 혈고를 제거해준다.”
그 말을 들은 소년, 소녀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혈고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당근이었다.
무조건 채찍만으로 조직을 운영할 수 없다.
저렇게 일말의 희망을 심어줌으로써 철저하게 혈교인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인정받고 위로 올라가라. 그렇다면 보상받을 것이다.”
헛된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결국 나나 이들이나 조삼모사(朝三暮四) 속 원숭이나 다름없었다.
-탁!
구상웅이 모두를 향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본 혈교에 입교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이다. 너희들은 오늘부로 본교의 수련 생도가 되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가 소리쳤다.
“혈세! 혈세! 혈혈세!”
눈치를 보고 있던 소년, 소녀들이 따라서 외쳤다.
“혈세! 혈세! 혈혈세!”
내가 본보기가 되어준 덕분에 자신들이 나서서 혈교의 충성 예법을 설명할 필요가 없어지자 대주들은 편했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딱 한 사람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오 대주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못마땅할 사람이었다.
“지금부터 수련 생도들의 등급 편성을 시작 하겠다. 대주들은 준비하도록.”
“충!”
단주의 명을 들은 대주들이 단상 뒤로 향했다.
단상의 뒤쪽에는 산봉우리 절벽 안으로 들어가는 동굴의 입구가 있었다.
동굴의 입구는 세 개였는데, 세 명의 대주들이 한 명씩 그 안으로 들어가고 오 대주와 여자 대주가 앞에 남았다.
-끼이이이익!
혈교인들이 단상을 치우고 수련 생도들을 동굴 입구 쪽으로 유도했다.
그들이 앞으로 다가가자 동굴 앞에 선 단주가 품속에서 나무로 만든 호패 비슷한 것을 보여주며 말했다.
“너희들의 자질을 확인할 것이다. 좋은 등급을 받도록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을 거다.”
단주의 손에 쥔 나무 호패에는 상(上), 중(中), 하(下)가 새겨져 있었다.
전생에 내가 받은 패는 하(下)였다.
저건 최악의 패였다.
-왜 최악이라는 거야?
‘저걸 받으면 무조건 하급 무사부터 시작하게 돼.’
그냥 하급 무사가 아니라 혈교에서 언제든지 버리는 패로 활용한다.
못해도 중(中) 패를 받아야 위로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괜찮겠어? 자질을 확인해본다고 했는데, 넌 단전이 부서졌잖아.
소담검이 웬일로 우려를 보였다.
운명 공동체라고 하더니 걱정은 되는 모양이었다.
“반대편에서 기다리겠다. 좋은 패를 받기를 바라마.”
그 말을 마지막으로 패혈 단주 구상웅은 동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뒤를 두 대주들도 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동굴로 들어가는 오 대주가 뒤를 힐끔 쳐다 보더니, 나를 향해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였다.
‘꿍꿍이가 있군.’
뭔가 수작을 준비한 듯 했다.
대주들까지 들어가자 혈교의 중급 무사들이 수련 생도들을 통제했다.
수련 생도들이 입고 있는 옷에는 표식이 그려져 있었는데, 납치당할 때 그들이 남겼던 등품 표식이었다.
내 옷에도 표식이 있었다.
중(中) 등품이라 적혀 있었는데, 가운데 동굴로 들어가야 한다.
가장 앞 열에 있었던 내가 가장 먼저 동굴로 들어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혈교의 중급 무사가 이를 막았다.
“너는 가장 마지막이다.”
“네?”
일부러 가장 먼저 뛰어왔는데 마지막이란다.
아무래도 오 대주가 손을 쓴 듯 했다.
-오 대주인가 걔 되게 피곤하게 군다.
‘…….동감이다.’
변수가 될 거라고는 여겼지만 꽤 빨리 움직였다.
덕분에 다른 수련 생도들이 전부 들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순서가 된 송좌백이 나를 향해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 이렇게 된 이상 상급 무사가 된다. 네 녀석 보다 먼저 될 거다!”
“그래. 먼저 될 거다.”
“야. 아직 네 차례 아니야. 앉아있어.”
“어어.”
자연스럽게 뒤를 따라 들어가려 하는 동생 송우현을 앉힌 송좌백이 콧김을 뿜으며 동굴로 씩씩하게 들어갔다.
내가 무슨 자신의 호적수도 아니고 쓸데없이 열의를 불태운다.
‘부럽네.’
-왜 쟤는 상(上)을 받아?
‘그래. 확정이지.’
겉보기에는 어수룩해 보이는 녀석들이지만 자질은 뛰어난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악명을 떨치는 백흑쌍귀가 될 리가 없었다.
그때 분명 단주라 불렸던 걸로 기억한다.
근 반 시진 정도가 지나서야 모든 수련 생도들이 동굴로 들어갔다.
드디어 내 차례였다.
“잠시 기다려라.”
그런데 곧바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약간의 시간을 두고서 기다리게 한 중급 무사가 그제야 동굴로 들어가라 하였다.
뭘 준비했기에 그런 건지 이제 곧 알 수 있을 거다.
-저벅저벅!
횃불로 밝혀놓은 동굴 안에는 공동이 있다.
그 공동 안에 대주 한 명이 상주하며 수련 생도들의 자질을 파악한다.
아까 가운데 동굴로 들어간 대주는 해겸이라는 자로 다른 대주들에 비해서 그나마 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
그런데 공동에는 전혀 뜻밖의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쪽 눈에 안대를 착용하고 있는 콧수염을 기른 삼십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이 사내는 바로 혈랑 대주 노성구였다.
‘아아……..이걸 준비했구나.’
어쩐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는 이유가 있었다.
전생에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젊어보이는 그의 모습이 반갑기는커녕 당혹스럽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팟!
혈랑 대주 노성구가 번개처럼 신형을 날리며 내 목을 움켜잡았다.
“켁!”
피할 틈도 없었다.
무슨 인간이 이렇게 빠른지 모르겠다.
-야. 너 혼자 감당할 수 있겠어? 빨리 날 꺼내.
소담검이 자신을 품속에서 빼내라고 소리쳤다.
한데 빼낸다고 한들 이 자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상급 무사인 그는 일류 고수였다.
소담검이 나를 돕는다고 해도 내 몸이 이 자의 움직임을 따라잡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팍!
혈랑대주 노성구가 내 다리를 발로 걷어찼다.
당연히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꽈당!
“크윽!”
허리가 부서질 것 같았다.
-스릉!
그때 혈랑대주 노성구가 도를 뽑아서 내 목에 겨냥했다.
그리고는 노기가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의 외조부가 내 부친의 밑에 있었다고?”
“……그렇습니다.”
-슥!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성구의 도가 내 목을 살짝 파고들었다.
“우왁! 무, 무슨 짓입니까? 설마 죽이려는 겁니까?”
당황해하는 내게 노성구가 기가 차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하! 네놈이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혈랑대의 훈련을 받았던 본 대주가 부친의 밑에 있던 무사들의 이름 하나 기억 못할 것 같으냐?”
‘!!!’
나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너무 빨리 들통나버렸다.
-푹!
“억!”
노성구가 더욱 도 날을 짓누르며 말했다.
“네놈 정체가 뭐야?”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나를 죽일 기세였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쿵! 쿵! 쿵!
그때 무슨 용기가 생겨난 것일까?
한 번 죽어봤기 때문에 오기라도 생긴 것일까?
-팍!
내가 노성구의 도 날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손가락이 도날에 베이는 것조차 개의치 않고서 그에게 말했다.
“나와 거래합시다.”
“뭐?”
뜬금없는 내 말에 노성구의 한 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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