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81
33화 만곡리 흑현정 (1) >
연회가 있기 전에 누이 동생인 영영이와 어릴 적 이후 처음으로 긴 대화를 나눴다.
덕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멀어졌던 그 아이와의 사이가 조금이나마 가까워진 것 같다.
영영이가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물었지만 나는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소익헌에게 이야기한 것과 동일하게 말했다.
다른 이는 몰라도 유일하게 피가 이어진 누이 동생에게 만큼은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가주 소익헌처럼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을 밝힌다면 까딱하면 영영이도 혈교와 엮일 수도 있었다.
위치가 확고하지 않은 상태에선 알린다는 것은 섣부른 짓이었다.
-내가 볼 때는 네 동생도 완전히 믿는 것 같진 않던데.
‘그래?’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나 보다.
여자의 감인 걸까 아니면 혈육의 감인 걸까?
영영이도 내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는 것 같다.
-마음씀씀이가 좋네.
그래.
나보다 훨씬 어른인 아이다.
-모순 아냐. 어른인 아이는 뭐냐?
‘…….’
대충 알아들었으면 따지지 마라.
영영이가 혈교에 휘말리지 않게 하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힘과 세력을 갖추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백련하가 혈교의 정권을 잡을 수도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중심은 잃지 마라. 운휘.
‘중심…..’
-힘과 권력은 부가적인 것이다. 거기에 휩쓸리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가라앉게 될 거다. 결국 중심이 되는 것은 너다.
남천철검의 조언에 나는 고맙게 생각되었다.
이 녀석들이 가까이 있기에 고난에도 중심을 잃지 않은 것일지도 몰랐다.
-흠흠.
-알아서 모셔라.
칭찬을 하면 반응이 제각각 다르긴 했지만.
슬슬 시끌벅적해진다.
장원의 본당에 마련된 연회장으로 의풍조가의 손님들, 그리고 소장윤의 지인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고 있었다.
정작 소장윤을 비롯한 소영현 형제는 부상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형산파의 손님들까지 오면 본격적으로 연회가 시작될 것이다.
조생남은 들어오자마자 나와 사마영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가주 소익헌의 눈치를 본다고 피했지만 낮에 있었던 일로 어지간히 마음에 담아뒀나 보다.
-좀생이 같네.
그러게 말이다.
저런 놈에게 누이 동생을 줄 오라버니가 있겠는가.
연회장의 가장 상석에 있던 가주 소익헌이 나와서 의풍조가의 손님들을 맞이했다.
“하하핫. 어서 오시지요.”
호탕하게 웃으면서 반기는데 어떤 면에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상이 아직 치료되지 않아서 쉬고 싶을 텐데 말이다.
저런 그를 여태껏 친부라고 생각했다니.
그와 거래를 하고서 연공실에서 나오기 전에 청령검에게 물었었다.
‘청령검.’
-말하렴.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혹시 가주에게 내 친부에 관한 진실을 밝혔어?’
-……..
이것이 제일 궁금했다.
시종 출신이라 여겼던 어머니를 소익헌이 이곳으로 데려왔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체 어머니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
또 진짜 친부는 누구일까?
어머니는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도 내게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당시에는 어렸고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 상처받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주 소익헌에게는 마지막에 와서 밝히지 않았을까?
-미안하구나.
청령검 역시도 모르고 있었다.
가주 소익헌도 임종 전의 어머니를 만났지만 그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고 했다.
조금이라도 분란을 일으킬 것은 남기지 않은 것일까?
정작 어머니와 친부에 관한 것을 모르니 절반의 진실만 알게 된 셈이었다.
-답답하겠네.
‘그렇네.’
회귀 전이나 회귀 후나 인생이 복잡한 것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러던 차에 연회장의 안으로 형산파의 손님들이 들어왔다.
형산일검 조청운과 형산여협 조일혜였다.
“오오! 조 대협. 조 여협.”
그들이 오자마자 의풍조가의 가주인 조생원이 교분을 쌓기 위해 얼른 인사를 했지만, 낯을 많이 가리는 형산일검 조청운은 형식적으로 인사만을 하고서 내게 다가왔다.
“사제 먼저 와있었군.”
“오셨습니까? 사형.”
“괜찮으면 같이 앉아도 되겠나?”
그런 그의 물음에 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상석으로 향했다.
상석에 있는 소익헌과 양 부인이 난처함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형산일검 조청운과 의풍조가주 조생원의 자리는 상석에 마련해뒀는데, 이쪽에 앉는다고 하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주 소익헌 역시도 이를 어찌해야 하나 망설이던 찰나에 형산여협 조일혜가 적절하게 나서서 해결해주었다.
“사형. 연회에는 주최 측이 정해준 자리가 있어요. 나중에 자리를 옮겨도 되니, 지금은 안내에 따르는 것이 좋을 듯 하네요.”
“아아.”
조청운이 못내 아쉬워했다.
아무래도 낮에는 본가 내 분위기가 좋지 않아 연회 때를 기다렸던 것 같다.
아마도 궁금한 것은 남천검객의 안부이겠지.
거짓말에도 법칙이 있다.
어느 정도 사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 때를 가장 주의해야 한다.
-슥!
나는 포권을 취하며 예의 있게 말했다.
“사저의 말씀대로 하시죠. 가주께서 실망하실 겁니다.”
“허참.”
“같이 합석할 기회야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알겠네. 그렇게 하세나.”
조청운이 내게 술잔을 마시는 시늉을 했다.
보내길 잘한 것 같다.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면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미리 준비된 것이 아니라면 이 자리는 피하는 게 맞았다.
-나는 네가 그냥 거짓말에 타고난 줄 알았는데.
‘사실이 기반 되지 않으면 탄로 나기 마련이야.’
-신기하네.
형산일검 조청운이 남천검객과 인연이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남천철검에게 물어서 합을 맞춰봐야 겠다.
‘괜찮겠어?’
-뭐. 네가 악의를 가지고 그러는 건 아니니 괜찮다.
사실 돌아가신 남천검객으로 거짓말을 할 때마다 남천철검에게 늘 미안했다.
녀석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줘서 다행이다.
형산일검 조청운과 조일혜가 지정된 자리에 착석하고 모든 자리가 채워지자 연회가 시작되었다.
연회의 시작은 늘 주최자의 말로 시작된다.
나는 상석에서 일어나는 가주 소익헌을 쳐다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슬며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소익헌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내 신호를 알아들었다면 이제 그걸 공표해주셔야죠.
소익헌이 깊은 숨을 내쉬더니, 이내 표정을 바꾸며 연회장 안에 있는 사람들을 차례로 훑으며 웃는 낯으로 운을 띄웠다.
“본가를 찾아주신 여러 무림의 귀빈들께 이 소모가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척!
그가 포권을 취하자 손님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정파인들은 이런 예를 중시하곤 한다.
스스로를 낮추는 것 또한 덕목 중의 하나다.
포권을 취하고서 손님들이 자리에 앉자, 소익헌이 말을 이었다.
“연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손님들께 이 소모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경청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그의 말에 엉뚱하게도 의풍조가주 조생원이 반응했다.
“하하하하하. 소 가주께서는 참으로 화통하십니다. 차차 이야기를 하자고 하더니, 이런 자리에서 공표를 하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그 말에 옆에 앉아 있는 조생남이 씨익하고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오해를 한 것 같았다.
낮에 혼담을 나눴다고 하더니, 가주 소익헌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조생원과 영영이를 맺어 주려하나 보다고 여긴 것 같다.
-부전자전인가 보네.
그런 것 같다.
헛물을 켜는 것마저 닮았다.
“하아.”
나와 같은 원탁에 앉아 있는 영영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혼담이 맺어질까봐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그때 가주 소익헌이 의풍조가주 조생원에게 포권과 함께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의풍조가의 가주께는 이 소모가 사과의 말씀을 드려야 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제 부족한 여식은 아무래도 가주의 아드님의 후처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혼담을 넣어주신 것은 감사합니다만. 아드님이 더 좋은 배필을 찾기를 바라겠습니다.”
‘!!!’
한순간 연회장이 정적으로 물들었다.
겸양 있게 말을 했지만 소익헌의 말은 결국 혼담에 관한 단호한 거절이었다.
잔뜩 기대하고 있던 조생원과 조생남의 얼굴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나는 영영이를 슬쩍 쳐다보았다.
녀석이 기쁨을 숨기지 못해서 입 꼬리가 활짝 올라가 있었다.
-보람 있는걸.
소담검의 말대로 소익헌과 단판을 지은 보람이 있었다.
이제 당분간 소익헌이 영영이의 혼담을 추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저 여자가 손을 쓰지 않는다면 말이다.
양 부인이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술잔을 잡고 있었다.
이번 영영이의 혼담도 저 여자가 꾸민 짓이다.
꼴 보기도 싫은 영영이를 치워버리면서 친정과 같은 강서성 삼대 무가 중 하나인 의풍조가와 돈독함을 맺기 위해 꾸민 술책이다.
전음을 들은 양 부인이 흠칫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앞으로 제 귀에 당신의 헛짓거리가 들어오지 않길 바랍니다. 제 입에서 상스러운 소리가 또 다시 나온다면 그 날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그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분노인지 공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경고는 알아들었을 거다.
나는 소익헌을 쳐다보았다.
이제 그걸 공표하셔야지요.
혼담을 거절한 파문이 가라앉기도 전에 소익헌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소모가 여러분들께 공표하고자 하는 것은 이번 무림 대회의 후기지수 논무에 본가의 삼남인 운휘가 후기지수 대표로 참가하게 되었음을 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됐다.
혈마검 탈환 임무의 첫 번째 단계를 달성했다.
본가에 복귀하여 하루를 넘기지 않았으니 성공적이라 할 수 있었다.
* * *
연회가 한참 진행되는 도중 나는 밖으로 나왔다.
이제 이곳에서의 볼 일은 끝났다.
“으음.”
술과 맛있는 음식들로 넘쳐나는 연회 도중에 빠져나와서 그런지 조성원이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왜 이렇게 빨리 가시려는 겁니까? 날도 저물었는데.”
임무를 위해 주어진 보름 중에 고작 하루 만에 후기지수 대표의 자리를 얻어냈다.
좀 더 여유롭게 움직여도 된다고 여긴 모양이다.
“할 일이 있어.”
“할 일?”
“사형의 말에 토 달지 마요.”
사마영의 한 소리에 조성원이 입을 꾹 닫았다.
그녀 때문에도 그랬지만 막 연회장에서 누군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누이 동생인 소영영이었다.
“오라버니. 정말 지금 출발할 거야?”
“스승님께서 시키신 일도 있고 가주께는 미리 말씀드렸어.”
“무림 대회로 가는 거면 같이 가면 좋을 텐데. 스승님과 사백께서도 오라버니랑 같이 가고 싶어하는데.”
그것도 부랴부랴 출발하는 이유 중 하나다.
형산일검 조청운이 생각 이상으로 호의적으로 나와서 부담스럽다.
“같이 가면 안 될까? 내가 스승님께 내일 일찍 출발하자고 말씀드려 볼게.”
그 말과 함께 영영이가 사마영을 힐끔 쳐다보았다.
뭐지?
사마영을 쳐다보는 녀석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절대로 연회장에서 마신 술 때문이 아니었다.
-반했네. 반했어.
소담검이 재잘거렸다.
머리가 지끈거리려고 한다.
안 돼. 영영아 걔는 여자야.
지금 이 자리에서 사실을 밝힐 수도 없고 미치겠다.
“소저. 무림 대회장에 가면 사형을 다시 볼 수 있으니까. 너무 아쉬워하지 마요.”
사마영이 영영이를 달랬다.
그것이 불을 지피는 격이었다.
영영이 내가 아닌 사마영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렇겠죠?”
목소리에 설렘이 가득했다.
저렇게 티를 내는데 사마영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 마냥 해맑게 웃고 있었다.
아무래도 당장 출발해야 할 것 같다.
“영영아. 그때 보자꾸나.”
“오라버니? 오라버니!”
부랴부랴 인사를 한 후에 나는 두 사람을 이끌고 장원의 바깥으로 향했다.
영영이가 쫓아올까 무서워 서둘렀다.
사마영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 정말 몰라서 저러는 건가.
저 잘생긴 인피면구는 꽤나 위험한 것 같다.
-정말 인피면구 때문인 것 같아?
소담검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때였다.
‘!?’
장원의 입구 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익숙한 검이 느껴졌다.
‘청령검.’
청령검이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뒤를 쳐다보니, 본당 쪽에서 가주 소익헌이 경공을 펼치며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오고 있었다.
미리 연회 도중에 간다고 말을 해놨는데 왜 쫓아오는 거지?
“잠시만 자리를 비켜줘.”
그런 나의 말에 사마영과 조성원이 먼저 장원 바깥으로 나갔다.
가까이로 다가온 소익헌에게 나는 물었다.
“왜 오신 겁니까? 나머지는 무림 대회가 끝나고 드린다고 했을 텐데요.”
나는 후반부 다섯 초식 중에 두 초식의 구결만을 넘겼다.
나머지 초식을 전부 넘기면 언제 그가 마음이 바뀔 지도 모르기에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것 때문이 아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설마 배웅하기 위해서 나온 것은 아닐 테고.
원래도 그랬지만 서로 그럴 만큼 살가운 사이가 아니다.
그때 소익헌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일렁이는 횃불에 보이는 그것은 둥근 옥패였다.
“가져가거라.”
소익헌이 옥패를 내게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네 어미를 처음 만났을 때 가지고 있던 것이다.”
‘!!!’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옥패라고?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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