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87
35화 무림 연맹 (1) >
귀주성 동남쪽
강구현 서쪽 외곽의 장원.
장원의 본당의 회의실로 급보가 들어왔다.
의자에 앉아 있는 백련하와 혈수마녀 한백하, 난마도제 서갈마의 탁자 맞은편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있는 혈교의 무사가 보고를 했다.
“익양소가, 조항송가 모두 후기지수 대표 자리를 무사히 쟁취했습니다.”
내심 불안해하고 있던 세 사람의 표정이 동시에 풀어졌다.
첫 걸음부터 실패했다면 곤란할 뻔 했다.
“다행이군.”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다음 보고에 그 분위기가 바뀌고 말았다.
“소운휘 부단주 쪽에서 중간에 문제가 생겼었습니다.”
“문제? 그게 무슨 일이죠?”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백련하의 눈빛은 걱정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런 그녀의 물음에 무사가 보고를 이어갔다.
“후기지수 대표 자리를 쟁취할 당시 익양소가의 가주가 만곡리 흑현정에 의뢰를 했다고 하여 소운휘 부단주가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만곡리로 향했습니다.”
“……계획에 어긋나는군요.”
혈수마녀 한백하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에 서갈마가 본의 아니게 변호를 하게 되었다.
“혹 흑현정에서 의뢰를 받았을 수도 있으니 그냥 넘어가기도 힘들지 않겠소?”
“계속하세요.”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아랑곳하지 않고 백련하가 보고를 재촉했다.
이에 무사가 말을 이어갔다.
“흑현정이 당시 본교의 행사라 의뢰를 거절했다는 것을 알아낸 소운휘 부단주가 복귀하는 도중 파응사 나육형과 조우했습니다.”
“파응사?”
그 말에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파응사 나육형이라면 사파에서 악명 높은 악인이 아닌가.
남천검객과 대결하고도 살아남을 만큼 초고수로 알고 있었다.
“특별히 그와 접점이 없으면 싸울 일은…..설마?”
백련하의 머릿속에 남천검객의 스쳐지나갔다.
지금 소운휘는 무림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익양소가의 소생이자 남천검객의 제자를 표방하는 중이다.
무사가 들고 있는 보자기를 열었다.
그 안에 머리를 집어넣을 수 있을 만한 크기의 목함이 들어 있었다.
백련하가 두 눈이 커져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그건?”
그녀의 머릿속에 불길함이 스쳐지나갔다.
저 안에 그의 수급이 들어있기라도 할까봐 불안했다.
나육형은 존자 급이나 혈성 급의 고수들이 아니면 상대할 수 없는 초고수였다.
무사가 목함의 뚜껑을 열었다.
그 순간 모두의 입에서 동시에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하…..”
목함 안에 들은 것은 반백에 두 눈이 없는 머리가 들어 있었다.
파응사 나육형과 안면이 있었던 난마도제 서갈마는 어처구니마저 없어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해 형, 아니 사존께서 개입한 건가?”
“아닙니다. 사존과 저희들이 도착했을 때는 소운휘 부단주와 두 대주가 파응사를 비롯한 그 제자와 수하들을 사살한 후였습니다.”
“세상에. 그럼 그들이 파응사를 처리했다고요?”
어지간한 일에는 무표정하게 대응하는 혈수마녀 한백하였지만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파응사라면 자신조차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고수였다.
설령 합공이라 하더라도 그런 고수를 잡았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소 공자. 당신은 정말…..’
백련하는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가 무사하다는 것도 다행이었는데, 자신을 놀라게 만들 줄은 몰랐다.
‘아닌가.’
생각해보면 그는 매번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참 특이한 남자였다.
난마도제 서갈마가 입을 다시 열었다.
“세 사람은 무사하다던가?”
“사존께서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면 부상으로 위험할 뻔 했지만 무사합니다. 남은 기간을 꽉 채워서 정양하다가 무한시로 출발한다고 사존께서 전달하라 하셨습니다.”
남은 기간을 정양한다는 것은 부상이 있었다는 말이었다.
서갈마가 납득이 갔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파응사의 머리를 쳐다보며 기가 차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놈들이 괜히 진 것이 아니었군.”
그놈들이란 자신의 두 제자들을 의미했다.
한 명은 파문시키긴 했지만 심혈을 기울여 키운 녀석들이었다.
어느 정도 안도했는지 백련하가 말했다.
“그리 해야죠. 회복하지 않고 무림 대회로 향하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 테니까요. 사존의 판단이 옳습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무사가 예를 표했다.
보고가 끝났다고 판단한 혈수마녀 한백하가 무사에게 말했다.
“보고가 끝났다면 수급을 가지고….”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존께서 첨언을 꼭 전달해달라고….으음.”
뒷말을 우물쭈물 거렸다.
무엇이기에 그러나 싶어 백련하가 물었다.
“무엇을 전달해달라는 거죠?”
“파응사의 수급을 동봉했으니, 성과로 인정해서 소운휘 부단주를 단주로 승격시켜달라고…..”
그 말에 보고를 듣던 세 사람의 얼굴이 벙 쪄 버렸다.
잠시 후 난마도제 서갈마가 피식거리며 웃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극히 기기괴괴다운 첨언이었다.
* * *
안휘성 오하현.
늦은 밤.
한 평범한 규모의 장원.
대문 바깥을 보면 문지기들도 서있어서 아무 일도 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나 문을 열고 몇 발자국만 앞으로 걸어가면 차마 입을 뗄 수 없을 만큼 참혹한 광경이 펼쳐진다.
하나 같이 사지가 잘려나가서 죽은 시신들.
그 시신들을 검은 복면인들이 빠르게 정리를 하고 있었다.
시신들이 있는 곳을 따라가게 되면 장원의 본당으로 이어지고 있었는데, 그 안방에서 창밖을 쳐다보고 있는 죽립의 여인이 있었다.
얼마나 많은 이를 죽였는지 여인의 검은 경사가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달이 밝네. 죽기 딱 좋은 날이야. 안 그래?”
창밖의 보름달을 바라보던 그녀가 고개를 돌려서 무릎이 꿇려 있는 한 중년인을 쳐다보았다.
아혈이 점혈 당했는지 중년인이 벙어리처럼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에 그녀가 피식 웃으며 손을 들었다.
그러자 중년인의 옆에 있던 복면인이 중년의 여인의 목에 갖다 대고 있던 서슬파란 도날을 떼었다.
중년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안도했다.
죽립의 여인이 가까이 다가오며 허리를 숙이며 중년인의 턱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죽립을 위로 들어보였다.
‘!?’
피를 연상케 하는 붉은 안광을 내뿜는 눈동자.
이를 보는 순간 중년인은 눈이 커져서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녀는 현 혈교에서 가장 정점에 가까운 여인, 백혜향이었다.
“네 솜씨면 이 눈도 가릴 수 있다지?”
그 말에 중년인이 머뭇거렸다.
이에 그녀의 다섯 손가락이 중년인의 허벅지를 파고들었다.
-푹!
“끄으읍.”
“할 수 있어? 없어?”
이에 중년인이 고통스러워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백혜향이 빙그레 웃더니 일어났다.
“진작에 협조했으면 얼마나 좋아. 달밤에 피도 안 보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중년인은 속으로 기가 차했다.
그가 본 그녀는 그야말로 살성이었다.
누군가를 죽이면서 저렇게 해맑게 웃는 자는 본 적이 없다.
“사흘 줄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가 안방을 나갔다.
마루 위를 걸어서 나오는 그녀에게 복면인 중 한 사람이 다가왔다.
눈가의 잔주름이 많은 것을 보면 연령이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자였다.
“벌써 왔네?”
그런 그녀의 말에 복면인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다섯 명 모두 침투에 성공했습니다.”
다섯 명 모두 침투했다는 말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그 말에 그녀의 붉은 입 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우리 련하는 몇 명이나 넣었을 려나.”
이에 복면인이 비웃음이 담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쪽에는 그만큼의 여력이 없을 겁니다. 설사 침투시켰다고 해도 저들은 절대로 우승할 수 없습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검을 아가씨께 갖다 바치겠습니다.”
* * *
보름하고도 스무날이 지났다.
정파 무림의 성지라 불리는 호북성의 무한시(武漢市).
지금 우리는 무한시의 초입에 들어섰다.
‘오랜만이네.’
회귀 전에 이곳이 내 주무대였다.
언제 들킬지 모르는 심장 떨리는 첩자 생활을 8년이나 이어온 곳이다.
-만곡리와는 분위기가 천차만별인데.
당연하지.
이것은 정파의 성지다.
중원팔대고수 중 두 사람이나 호북성을 지키고 있기에 이곳 호북성만큼은 사파나 흑도의 문파가 존재하지 않았다.
무당파의 장문인 태극검제 종선 진인, 무림 연맹의 맹주 무한제일검 백향묵.
두 사람은 무림 연맹의 최고 전력이자 정신적 지주들이었다.
-무림 연맹에는 괴물들이 많네?
소담검이 내 말에 놀라워했다.
그래. 무림 연맹에만 초인이라 불리는 팔대고수가 두 명이나 속해 있다.
그것도 모자라 팔대고수를 두 명이나 배출한 무쌍성과 손을 잡으니, 당연히 혈교는 정사대전에 패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단순 숫자 계산으로 해도 패할 게 뻔하지 않아?
소담검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에 어느 정도 무림의 사정을 알고 있는 남천철검이 대신 답해줬다.
-당시 혈마는 사파였지만 천하제일에 가까운 자라 불렸다. 그리고 그를 보좌하던 육존십이혈성들 중에서도 오대악인의 일인이 있었다. 동맹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밀리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알고 있다.
-응? 육존십이혈성?
아 몰랐구나.
정사대전에 패하기 전에는 혈교는 육존십이혈성 체제였다.
그 중 절반 가까이가 전사하면서 지금의 사존칠혈성이 된 것뿐이다.
그리고 오대악인 중 두 사람이 죽고, 새로운 괴물인 살흉(殺凶)의 절심이 등장하면서 지금의 사대악인의 시대가 열렸다.
-그래도 지금도 불리한 거 아냐? 무림 연맹에 팔대고수 중 두 사람이 있다며? 혈교는 쥐뿔도 없잖아.
‘아니. 그렇지 않아.’
사존 중의 한 사람이 초인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알고 있다.
누군지는 혈교에서 정보를 감춘 바람에 하급 첩자에 불과한 내게는 들어오지 않았다.
-오!
일존이 아닐까 짐작하는데 모를 일이다.
칠혈성들과 달리 네 존자들의 무위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니 말이다.
또 이 뿐만 아니라 딱 여섯 달 뒤쯤에 큰 사건이 터진다.
-사건?
‘팔대고수가 바뀌거든.’
회귀 전 십 년 사이에 팔대고수의 두 명이 바뀌었다.
그 중 제일 빠른 한 사람이 바로 무당파의 장문인인 태극검제 종선 진인이다.
-어떻게 죽는데?
살흉 절심의 손에 죽는다.
더 놀라운 것은 그는 다른 곳도 아닌 무당산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이렇게 보면 결과적으로 혈교와 무림 연맹의 전력은 거의 비등해진다고 할 수 있었다.
회귀 전 무림은 각 세력들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다.
혈교, 무림 연맹, 무쌍성, 그 외에 중립을 표방하고 있는 초인들.
-……운휘 네 말대로라면 지금까지의 평화로운 시기는 폭풍 전야라고 할 수 있겠군.
‘그래.’
지금은 폭풍 전야다.
무림 연맹과 무쌍성의 동맹 파기, 그리고 태극검제 종선 진인의 죽음은 무림을 다시 혼란의 전국 시대로 되돌린다.
물론 일부 사건들로 그 시기가 더욱 빨라지고 있지만.
“저곳이구나.”
일행의 선두에서 앞장 서고 있던 해악천이 한 객잔을 손으로 가리켰다.
차양막 위로 남색 작은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객잔의 이름은 도연 객잔.
무림 연맹의 성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에 있는 이곳에서 우리는 무림 연맹에 침투해 있는 첩자와 접선하기로 했다.
“젠장. 덥구나. 어서 가자.”
해악천이 뒤뚱거리면서 객잔으로 달려가다시피 했다.
축골공으로 골격을 강제로 줄이고, 인피면구에다 근육을 두꺼운 옷으로 가리면서 해악천은 남들보다 더욱 더워보였다.
-고생이네. 미친 늙은이.
그러게 말이다.
한 여름의 무한시는 열탕이나 다름없었다.
원래는 그의 임무는 난마도제 서갈마가 맡기로 되어 있었다.
그 임무란 후기지수 논무가 끝나는 마지막 날에 무림 연맹의 성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거나 퇴로를 여는 것이었다.
해악천의 체구나 인상착의가 워낙 많이 알려져서 서갈마가 맡겠다고 했는데, 해악천이 극구 우겨서 축골공까지 익혀가며 맡았다.
“어휴. 덥긴 하네요.”
숨소리에 옆을 쳐다보니 조성원도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인피면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더 심한 모양이다.
내공을 운기 하면 더위가 어느 정도 가신다.
하지만 운신하는 내내 운기를 할 수 있을 만큼 내공이 남아돌거나 아끼지 않는 고수들이 몇이나 될까.
해악천조차 축골공을 유지하느라 내공을 아끼는 판국에 말이다.
-네 옆에 있네.
‘응?’
왼쪽을 쳐다보니 사마영이 있었다.
사마영은 인피면구를 썼는데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뽀송뽀송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쳐다보자 그녀가 싱긋거리며 웃었다.
‘……..’
음. 더운 것보다 내공 소모가 낫다는 건가.
그러고 보니 나는 땀이 거의 나질 않았다.
특별히 내공으로 몸을 더위로 보호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땀이 난다거나 덥다는 느낌은 없었다.
-선천진기 때문이다. 전주인께서 선천진기는 의식하지 않아도 해가되는 것으로부터 몸을 보호한다고 했다.
‘아…….’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가끔씩 중단전에서 뜨거운 기운이 일어난 것도 그 때문이구나.
객잔으로 가니 해악천과 송좌백, 송우현 형제가 차양막이 있는 한 자리를 차지하고서 물을 벌컥거리며 마시고 있었다.
‘자리가…..’
여섯 사람이 앉을 자리였는데, 이 덩치가 커다란 세 사람이 앉으니 공간이 없었다.
이왕 이면 개별 의자를 놔두지 저렇게 긴 목판 의자를 둬가지고.
객잔은 손님으로 바글거렸다.
무한시 외곽임에도 불구하고 무림 대회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객들이 많았다.
반 이상이 무림인들이다.
특별히 유명하거나 강한 자들은 없어보였다.
‘으음.’
그보다 분위기를 보니 우리는 자리가 날 때까지 계속 서있어야 판국이다.
해악천도 그걸 의식했는지 내게 말했다.
“우리는 여기 있을 터이니, 너희들은 안에 자리가 있나 찾아 보거라.”
“알겠습…”
대답을 하고 있는데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쪽에도 자리가 없으니 젊은이들 우리와 합석하는 게 어떻겠는가?”
그곳을 쳐다보니, 좀 떨어진 차양막 아래 두 명만 앉아 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 두 명 중 모시옷을 입은 흰머리가 지긋한 노인이 우리에게 말을 건 것이었다.
노인은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의 앞에 앉아서 등지고 앉아 있는 이의 등에는 비파처럼 보이는 크기의 무언가를 매고 있었다.
해악천이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노인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했다.
“호의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일행들과 함께 그곳에 다가가 합석을 하려 했는데,
‘!?’
등지고 있는 자를 본 나는 순간 그 자리에서 얼어버리고 말았다.
-왜 그래?
소담검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여, 열왕패도야.’
-!!!
짙은 눈썹에 짧은 턱수염을 기른 강렬한 인상의 중년인.
그는 중원팔대고수의 일인인 열왕패도 진균이었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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