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89
35화 무림 연맹 (3) >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네요. 할아버지가 팔대고수지. 본인이 팔대고순가요.]사마영이 내게 전음을 보내며 투덜거렸다.
역시 사대악인인 월악검 사마착의 여식이라 그런지 그녀는 그 정도로 위축되거나 겁을 먹지 않았다.
반면 조성원은 한바탕 폭풍이라도 겪은 듯이 벙 쪄 있었다.
송좌백과 송우현을 보좌하기 위해 따라온 두 부대주들인 하문찬, 이규 등은 열왕패도 진균이 보여준 신기에 놀라워할 따름이었다.
그때 귓가로 해악천의 전음이 들려왔다.
역시 눈치를 챘다.
떨어져 있어도 해악천 정도 되는 고수라면 술 방울 하나로 보여준 신기를 봤을 것이다.
해악천의 목소리가 고조되어 있었다.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명백한 호승심이자 전의였다.
내 예상대로였다.
해악천은 그와 겨뤄보고 싶어 했다.
말투를 들어보니 괜한 기우였던 것 같다.
아무리 기기괴괴라는 별호가 있는 그라고 해도 정파 무림의 중심부에서 호승심을 부릴 만큼 어리석진 않았다.
그보단 해악천이 내심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럽네.’
-왜?
수많은 무림인들 가운데 정점에 가까운 열두 초인 중 한 사람을 가까이서 보았다.
해악천은 전의를 불태운 반면 나는 솔직히 두려움을 느꼈다.
확연한 격차에서 오는 위압감에 억눌린 것이다.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운휘.
남천철검이 달래듯이 말했다.
‘응?’
-지금의 너보다도 강한 전주인 역시도 팔대고수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조급하게 마음먹지마라.
녀석의 말이 맞다.
팔대고수의 영역은 조급해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의 역량이 어떻든 누구이든 간에 호승심을 불태우는 해악천의 전의만큼은 배울 필요가 있었다.
그때 해악천이 다시 전음을 보냈다.
접선자가 온 것인가.
해악천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그들의 탁자 쪽으로 유엽도를 차고 있는 한 중년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 무림 연맹에 침투해 있는 첩자가 그였구나.
-아는 사람이야?
모를 리가 있겠는가.
상급 첩자 도영현.
그는 첩자들 중에서 가장 경력이 긴 세 조장 중 한 명이었다.
근 9년이나 투입되어 있을 만큼 노련한 첩자였다.
이맘때쯤에 나 역시 첩자로 투입되어서 그에게 간단한 교육과 당시 무림 연맹 현황을 전해들은 기억이 있다.
-너보다도 오래 있었네.
듣고 보니 그렇네. 나 역시도 9년을 채우지 못했으니까.
첩자로 9년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무림 연맹에 보낸 수많은 첩자들 중에 5년을 넘긴 자가 열 손가락에 꼽히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그도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죽는다.
……아직도 그가 한 말이 뇌리에서 잊혀 지지 않는다.
그는 일말의 희망도 주지 않았다.
뭐 어찌 되었든 이번 임무에 상급 첩자 도영현의 도움이 꼭 필요하긴 했다.
그는 무림 연맹에서 성 외곽 경비를 맡고 있는 고월당의 부당주로 역임하고 있었기에 후에 검을 탈취했을 때 그 역할이 중요했다.
-어? 그냥 지나치는데?
소담검의 말처럼 도영현은 해악천이 아닌 다른 차양막 자리로 갔다.
그곳에 미리 도착한 것처럼 손을 흔드는 자들이 있었다.
‘제대로 하고 있는 거야.’
-제대로 하고 있다고?
인적이 드문 밤이 아니고는 미쳤다고 이렇게 인파가 많은 곳에서 대놓고 아는 척 하겠는가.
아마 이곳이 도영현의 접선 장소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장기 투입된 첩자들은 여러 곳의 접선지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접선지는 평소 동료들과 자주 가는 운신 경로에 포함되는 장소다.
혼자서 움직이게 되면 의심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미리 차양막 자리를 잡아둔 저 세 명의 남자들은 같은 고월당의 무사들일 거다. 그리고 저들은 이곳 객잔의 단골일 것이다.
‘이제 곁눈질로 주위를 훑어 볼 거야.’
-어? 진짜네.
내 말대로 도영현은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그 찰나에 나는 특정 자세를 취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차양막에 있는 송좌백 역시도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아. 이게 그 암호로구나. 그 임무를 맡았다는?
‘맞아.’
잘 기억하고 있네.
접선지에서 그와 직접 마주치는 것은 누가 임무에 투입되는지 알려주기 위함이다.
이름으로 알려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혼선이 올 수도 있다.
도영현이 두 번 정도 자연스럽게 주위를 훑어보았다.
이제 끝났다.
-이 정도만으로 충분해?
‘첩자의 기본이야.’
두세 번 정도 훑어보는 것만으로 얼굴 정도는 숙지할 수 있어야 한다.
나 역시도 한두 번이면 얼굴을 기억할 수 있다.
얼굴을 숙지한 도영현이 덥다는 시늉을 하며 자연스럽게 목을 가렸다.
누구한테 전음으로 알릴 까나.
아…..
송좌백 녀석이 갑자기 흠칫하고 몸을 움직였다.
어설프잖아.
여기에 첩자 추적대라도 있었다면 단번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해악천 역시도 혀를 차고 있었다.
* * *
접선지에서 정보를 얻은 우리는 무림 연맹의 성 외곽에 있는 마을로 왔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무림 연맹이기에 외성 주변에도 이렇게 커다란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을에 있는 한 객잔의 숙소.
숙소에는 우리가 머물 수 있는 방이 세 개가 계산되어 있었다.
그 중 가장 우측 방에 들어가 침상 밑의 세 번째 목판을 뜯어내자, 손바닥만 한 크기로 접혀 있는 서지가 숨겨져 있었다.
이것은 상급첩자 도영현이 미리 숨겨둔 현 무림 연맹 내부 현황이었다.
성 내 경비들의 위치부터 가장 취약한 위치, 그리고 경비들의 교대 시간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우리는 이 내용을 반 시진에 걸쳐서 외웠다.
그리고 종이는 당연히 태워버렸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해악천이 우리에게 말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네놈들뿐이다. 본좌는 후기지수 논무의 마지막 날까지는 성 외곽을 벗어나 있을 거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해악천은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무림 대회인 만큼 정파 무림의 거성들이 집합하게 된다.
해악천의 기도를 읽어낼 만큼 뛰어난 고수들은 드물겠지만 성내에는 중원 팔대고수의 이인인 태극검제 종선 진인과 무한제일검 백향묵이 있었다.
이들이라면 해악천이 축골공을 하고서 인피면구로 얼굴을 가린다고 해도 기도를 알아차릴 확률이 높았다.
그렇기에 그는 성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잠입하는 것은 우리들뿐이다.
성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또 일행은 둘로 나뉘게 된다.
나 소운휘 조와 송좌백 조가 따로 움직이며 각자가 후기지수 논무의 우승을 노린다.
마지막에 두 사람 모두 결승에 오른다면 송좌백이 양보하기로 했다.
-착!
해악천이 천으로 감싸고 있던 것을 풀고서 탁자 위에 올렸다.
그 안에는 두 개의 검집이 있었다.
겉으로 보면 평범해 보이나 이 검집들은 보통 검집보다 조금 더 길고 두꺼웠는데, 이것은 특수제작 되어 안에 또 다른 검 하나를 숨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숙지가 되어있겠지.”
“그렇습니다.”
“지금부터 검집을 몸에서 떼는 일은 없어야 할 거다.”
“명심하겠습니다.”
검집을 건네받은 나는 남천철검을 검집에 바꿔 넣었다.
-헐렁한 옷을 입은 느낌이다. 운휘.
안에 공간이 비어있으니 그렇겠지.
지금은 넓은 집을 즐기고 있어.
얼마 후면 다른 손님이 들어오게 될 테니까.
“아직 열흘 정도 여유가 있는데, 네 녀석은 그 전에 할 일이 있지?”
“그렇습니다.”
해악천의 말대로 해야 할 일 있었다.
후기지수 논무가 있기 전까지 남천철검의 검면에 녹을 벗겨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남천철검을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 * *
-땅땅!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풀무질 소리와 뜨거운 열기, 쇠가 달궈지면서 나오는 연기들이 곳곳 가득하다.
나는 지금 마을 서쪽에 있는 대장간 거리로 왔다.
무림 연맹의 성 외곽 마을은 무림인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로 가득한데, 그 중 하나가 이곳 대장간 거리였다.
여느 대장간들과 다르게 병장기를 다루는데 특화된 장인들이 많았는데, 내가 찾는 이는 한철도 다룰 수 있는 뛰어난 장인이었다.
대장간의 숫자만 해도 마흔 곳이 넘었는데, 유명한 곳에 들르게 된다면 주문이 밀릴 게 뻔해서 비교적 한가한 곳을 찾아야 한다.
-한가한 곳에서 한철을 다룰 수 있겠어?
‘생각해둔 곳은 있는데…..’
-있는데?
그곳이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그게 무슨 소리야?
회귀 전에 이곳 대장간 거리에서 굉장한 장인이 나타난다.
그는 선조 대대로 검을 만드는 장인으로 무림 연맹의 맹주인 무한제일검 백향묵의 보검 묵선(
팔대고수 중 한 사람의 병장기를 수리했으니, 유명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원래는 아는 사람만 알던 곳이라 들은 기억이 있는데, 지금이라면 그 사람에게 부탁할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어째 다 바빠 보이지 않아?
그래.
후기지수 대회를 앞둬서 그런지 대장간들이 하나 같이 바빠 보였다.
나 이외에도 병장기를 손보는 이들이 꽤 많은 것 같았다.
얼마 있지 않아 나는 대장간 거리의 가장 구석에 자리한 한 허름한 대장간을 발견했다.
-진짜 저기 맞아?
다른 대장간들 휘장을 감아둔다던가 눈에 띄게 한 반면 굉장히 허름했다.
심지어 안에서 쇠를 두드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때 남천철검이 말했다.
-전주인께서 말씀하셨다. 세상사는 무와 이치가 같아 상승의 경지에 오를수록 티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원래 맛있는 식당도 허름해 보이는 곳이 많지 않은가. 전주인께서는 그렇게 숨겨진 식당들을 많이 발견했다.
-네 전주인은 모르는 게 있긴 하냐?
-크흠.
뭐. 꼭 남천검객의 말이 아니더라도 알려지지 않으면 당연히 허름할 수밖에 없을 거다.
일단은 들어가서 장인을 만나면 알 수 있지 않겠나.
그렇게 대장간 거리를 구석으로 가려고 하는데, 머릿속에 한이 맺힌 이명들이 연달아 들려왔다.
-제발…..제발 죽여줘.
-이렇게는 살 수 없어.
-차라리 녹여줘.
이 소리들은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었다.
아!그래. 그때 백혜향이 들고 있던 검도 이런 소리를 냈던 것 같다.
검이 계속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이명들은 허름한 대장간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곳으로 다가갔다.
-드르렁! 드르렁!
그리고 대장간의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쪽에서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풀무질을 하는 곳 앞에 한 사십대의 남자가 빨개진 얼굴로 술병을 들고서 대(大)자로 뻗어서 잠들어 있었다.
‘뭐지?’
남자의 주변에는 부러진 쇳조각들이 넘쳐났다.
쇳조각들 옆에 망치가 나뒹구는 걸 보면 직접 부순 것 같다.
-………
오싹하게 만드는 이명 소리가 더 안쪽에서 들리고 있었다.
호기심이 생겨난 나는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대체 이런 소리들이 왜 나는지 궁금함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안에 들어간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
그곳에는 거의 백여 자루가 넘는 금이 간 검들이 거대한 향로 같은 곳에 꽂혀 있었다.
그런데 그 검들은 모두가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쟤들 대체 뭐야?
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묵선……”
향로에 꽂혀 있는 망가진 검들은 전부 묵선이었다.
아니. 묵선을 따라 만든 검인가.
묵선은 무림 연맹의 맹주인 무한제일검 백향묵의 보검이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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