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93
36화 뜻밖의 (4) >
어깨동무에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조익.
그 모습을 본 도경욱의 목젖이 떨렸다.
아마 전음으로 무슨 짓을 하냐고 영문을 물어보기 위해서일 거다.
하지만 대답을 할 턱이 있나.
사람의 목은 취약한 부위 중 하나다.
목이 부러질 수도 있다고 압박감에 조익은 전음은커녕 말조차 하기 힘들 것이다.
나의 전음에 도경욱의 두 눈이 커졌다.
그도 그럴 것이 녀석들은 내가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이라고 생각하고 함부로 굴었었다.
한데 전음을 들었으니 멍청이가 아니고는 내공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차렸을 거다.
나의 경고에 녀석의 표정이 굳어졌다.
조금이라도 경각심이 있다면 물러날 테고 아니면 알량한 자존심이 우선이라면 헛짓거리를 하려고 들겠지.
그 전에 함부로 못하도록 멍석을 깔아놔야 겠다.
나는 어깨동무를 한 상태로 청성파 청명과 전진교의 현진, 사천당문의 당혜화를 쳐다보며 웃으면서 말했다.
“본가의 후기지수 대표로 참여하게 되니, 이렇게 명성이 자자한 분들을 연도 맺게 되고 영광인 것 같습니다.”
“후기지수 대표?”
그런 내 말에 모두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이 녀석들이 말을 해줬던가 아니면 익양소가의 후기지수 대표는 장남인 소영현이라고 알려진 모양이었다.
“아. 모르셨을 수도 있겠군요. 제 형님들께서 몸이 편찮으셔서 부득이 제가 후기지수 대표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후기지수 대표라고 해놓는다면 더는 함부로 굴지 못하겠지.
나는 너희들이 알고 있던 예전의 율랑현 망아지가 아니다.
“영현 형이 몸이 편찮다고?”
도경욱이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모르셨나보군요.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 말과 함께 어깨동무로 목을 압박하던 조익에게서 팔목을 뗐다.
목이 부러질 뻔 했던 녀석은 겁을 먹었는지 내게서 떨어졌다.
실력의 차를 여실히 느꼈겠지.
“영현 오라버니께서 정말 몸이 많이 안 좋아?”
강혜소의 언니인 강혜미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예전부터 나를 함부로 대했던 것이 몸에 배겨있어서 자연스럽게 하대하는 그녀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걱정되면 나중에 문병이라도 가봐. 혜 누이.”
“너…..”
그녀가 순간 아차 싶었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왜 그러는 거야?
왜 그러겠는가.
업신여기면서 자신더러 깍듯하게 누나 대접을 하라고 했는데, 내가 누이라고 해서 심기가 뒤틀려서 그렇겠지.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뭐 잘못 된 거라도 있어? 누이.”
그녀의 볼살이 파르르 떨렸다.
내게 화가 난 모양인데, 애초에 내가 한 해 더 나이가 많았다.
나를 흘겨보던 그녀가 빈 정 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 참 안타깝게 되었네. 오라버니가 나왔다면 좋은 결과가 나왔을 지도 모를 텐데. 네가 후기지수 대표라니.”
어리긴 어렸다.
감정이 상했다고 판단이 흐려져서 유치하게 굴고 있었다.
소영현과 소장윤 형제를 상대할 때도 느꼈지만 회귀 전 내가 어쩌다 이런 녀석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다.
그때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듣고 있던 사마영이 풋하고 웃었다.
이에 강혜미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 비웃은 건가요?”
“네.”
“네에?”
“사형의 실력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평가하는 모습이 재밌네요.”
그런 그녀의 말에 강혜미의 눈꼬리가 매섭게 올라갔다.
반면 청명과 현진 등이 난처함을 금치 못했다.
대문파의 출신답게 청명은 일류의 벽을 넘어섰고 현진은 벽을 넘기 직전이라 어느 정도 내 실력을 짐작하고 있었다.
화가 났는지 부들거리던 강혜미가 도경욱에게 말했다.
“도 오라버니.”
“혜 매.”
“그래도 같은 호남 무림 지회의 동도인데, 오라버니께서 논무 전에 너무 자만심이 들지 않도록 한 수 가르쳐주시는 게 어떨까요?”
-여우 같은 계집애네.
소담검이 혀를 내둘렀다.
그 와중에 자신이 손을 쓰는 우를 범하지 않고 도경욱에게 떠넘긴 것이다.
그녀의 그 말에 도경욱은 섣불리 답하지 못했다.
당연했다.
익양 소가의 후기지수 대표가 되었다는 것은 망아지라 불리던 시절과 다르게 가문에 인정받았을 지도 모른다는 의미도 된다.
녀석이 망설이자 강혜미가 목젖이 떨렸다.
이에 도경욱의 표정이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전음으로 녀석을 다그치나 보다.
아…..그러고 보니 도경욱과 강혜미는 약혼을 맺은 사이였다.
‘귀찮군.’
이런 애송이들을 상대로 감정 소모를 하는 게 귀찮다.
적당히 눌러 놓는 편이 나을까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였다.
“소 사숙!”
외침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계단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훤칠한 남청색 도복의 청년이 서있었다.
-운휘야. 쟤 걔 아니야? 형산일검의 제자.
소담검의 말대로 청년은 형산일검 조청운의 첫째 제자인 서일주였다.
그와 이곳에서 마주칠 줄은 몰랐다.
그 말은 형산파의 사람들이 도착했다는 거겠지?
영영이도 왔겠구나.
“사숙?”
그때 청성파의 청명이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아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지금 이곳에는 사숙이라 불릴 만한 연배로 보이는 자가 없었다.
물론 그 사숙은 나였다.
형산일검과 사형 사제를 맺은 나였기에 서일주는 자연스럽게 나를 소 사숙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때 서일주를 알아본 전진교의 현진이 인사를 했다.
“형산파의 서 형이 아니십니까?”
“현 형. 오랜만에 뵙습니다.”
같은 도가 계열의 대문파라고 서로를 알아보는 그들이었다.
당혜화를 비롯한 청명, 그리고 호남 지회 출신의 세 명도 형산이라는 말에 포권을 취하며 예를 갖췄다.
전진교의 현진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한데 서 형 사숙이라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호오.’
이거 잘됐는데.
잘 이용하면 귀찮은 일을 간단히 처리할 수 있겠다.
나는 서일주를 바라보며 포권을 취했다.
“오셨군요.”
그런 내 말에 서일주가 당황해하더니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사숙. 어찌 그러십니까? 말씀 편하게 해주십시오. 그러시면 나중에 제가 스승님께 혼납니다.”
공손한 서일주의 태도에 모두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정파 무림은 유독 항렬이나 배분을 중시 여기는 곳이 많다.
같은 항렬을 가진 서일주가 내게 사숙이라고 하니 영문을 몰라하던 현진이 물었다.
“서 형. 혹시 여기 계신 소 형께서 귀파의 속가 제자이십니까?”
“아아, 모르시고 계시군요.”
그 말과 함께 서일주가 나를 슬며시 쳐다보았다.
이야기해도 괜찮냐고 허락을 구하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서일주가 나와 탁자에 앉아 있는 사마영을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가리키며 현진에게 말했다.
“여기 계신 서 사숙과 마 사숙은 남천검객 호종대 대협의 후인이십니다.”
‘!!!’
그 말에 여섯 사람뿐만이 아니라 객잔 2층이 순식간에 정적으로 물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호남 무림 지회 녀석들과 다툼의 분위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귀를 열고서 우리에게 집중하고 있었었다.
그런 와중에 남천검객이 거론되자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남천검객이라니?”
“호종대 대협의 후인이라고?”
객잔 2층이 술렁거렸다.
말문을 잃었던 청명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내게 물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이에 나는 겸양의 표정을 지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답했다.
“부족하지만 스승님께 무공을 사사 받았습니다.”
“아아아!”
청명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전진교의 현진의 태도는 빨랐다.
그는 내게 정중하게 고개 숙여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진즉에 말씀해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서 형의 사숙이시면 제게도 사숙이 되십니다. 하마터면 큰 결례를 범할 뻔했습니다.”
항렬을 중시하는 도가 계열 대문파의 제자다운 처세였다.
“제게도 사숙이 되십니다.”
탄성을 내뱉고 있던 청명 역시도 내게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
같은 도가 계열이라 일사천리였다.
한 순간에 나는 세 사람의 사숙 뻘이 되어버렸다.
“이것 참 난처하군요.”
의도한 것이었지만 나는 괜히 곤란한 척 했다.
그리고는 강혜미를 비롯한 도경욱과 조익을 넌지시 차례로 훑어보았다.
그들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까 뭐라고 했죠? 한 수 가르쳐주신다고요?”
‘!?’
그 말에 주위가 술렁였다.
남천검객의 후인이 등장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화제 거리였는데, 그 후인을 한 수 가르쳐준다는 이들이 누군가 싶어 이목이 더 집중된 것이다.
이에 세 사람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누가 한 수 가르쳐주시겠습니까?”
이윽고 누구 할 것 없이 동시에 손사래를 치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 * *
“아아. 배부르다. 완전 만족.”
식당을 나오는 사마영이 귀엽게 살짝 불러온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등정 객잔의 동파육은 명성만큼이나 정말 맛있었다.
과연 일품이라 할만 했다.
형산일검의 제자인 서일주 덕분에 귀찮은 일을 피하고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뭐 아직까지 위층에 있는 호남 무림 지회의 세 사람은 속이 거북했겠지만 말이다.
“포장도 되는 것 같은데 챙겨갈까요?”
조성원의 그 말에 사마영이 동의했다.
“맞네요. 아까 그 형산파의 서일주 도사도 동파육을 포장해서 갔잖아요.”
그녀의 말대로 서일주는 동파육을 포장해서 갔다.
들으니 형산파의 일행들은 곧장 무림 연맹의 성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대문파답게 그들의 숙소는 안에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영이도 성 안에 있는 듯 했다.
“부단주님?”
두 사람이 애절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이에 나는 피식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문하고 오겠습니다!”
조성원이 신이 나서 객잔 안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녀석이 들어가고 나서 나는 문득 해악천이나 쌍둥이 형제들 몫도 사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마영에게 이를 부탁했다.
그녀가 객잔 안에 들어갔을 때, 내게 한 여섯 살 배기 아이가 다가왔다.
“저기요. 저기요. 이거 받으세요.”
“응? 나?”
아이가 내게 작게 접힌 서지를 주었다.
그리고는 볼 일이 끝났다는 것처럼 쏜살 같이 어딘가로 달려갔다.
뭐지 싶어서 아이가 준 서지를 펴보았는데,
‘…….’
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 *
날이 저물 무렵이라 대장간 거리에도 사람이 드물었다.
의도적으로 이 시간 대를 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장간 안으로 들어가자 식어가는 용광로와 나뒹굴고 있는 망치와 주조 도구들이 보였다.
향로가 있는 안쪽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한 사람뿐이었다.
“들어와라.”
목소리가 들려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구석에 혈도가 점해졌는지 장인이 쓰러져 있었고 향로에 걸터앉아 있는 죽립을 쓴 복면인이 보였다.
-운휘!
남천철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복면인의 손에는 남천철검이 들려 있었다.
거의 복구가 끝났는지 검신에서 은은한 광채를 보이고 있는 남천철검을 복면인이 손으로 매만지고 있었다.
“좋은 검이군. 이게 그 유명한 남천철검인가?”
복면인이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답했다.
“너…..뭐야?”
그런 나의 물음에 복면인이 피식하고 웃더니, 남천철검을 바닥 목판에 꽂았다.
그리고는 팔짱을 끼고서 오만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아가씨의 전언을 전하러 왔다.”
“아가씨?”
그제야 나는 녀석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복면인은 백혜향이 보낸 자였다.
죽립도 모자라 복면으로 얼굴까지 가리고 있는 것을 봐서 분명 후기지수 논무에 참가하는 녀석일 테지.
“무엇을 말이지?”
“후기지수 논무를 포기해라. 그리고 돌아가서 백련하 아가씨께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항복하라고 전달해라.”
녀석의 그 말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그러자 복면인이 남천철검의 검병을 쥐고서 고정하더니, 검면을 발바닥으로 밀어 넣었다.
남천철검의 검면이 녀석의 힘에 의해 살짝 휘어지려 했다.
“검을 잃고 싶지 않겠지?”
이제는 검을 가지고 협박하고 있다.
내가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검을 부러뜨려버릴 기세다.
녀석의 눈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었다.
“무슨 의미지?”
녀석의 물음에 나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백혜향 아가씨의 전언이 아니라 네놈의 전언이겠지?”
‘!?’
그 말에 녀석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 순간 나는 왼손을 뻗었다.
그러자 은연사의 줄이 번개처럼 뻗어나가 남천철검에 휘감겼다.
-촤르륵!
“아닛?”
은연사에 공력을 주입하자 이내 줄이 빨려들어오며 내 손에 남천철검이 빨려들어왔다.
나는 당혹스러워하는 녀석에게 말했다.
“검이 어쨌다고?”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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