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97
37화 일군사 (4) >
“조만간에 혈교가 다시 일어설 것 같네.”
‘!?’
갑자기 튀어나온 혈교라는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눈앞에 혈교의 첩자가 있다는 걸 알면 더 놀라겠는데.
소담검이 중얼거렸다.
지금 농담할 그런 상황이 아니야.
심각해하는 내 모습에 제갈원명이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충격이 크겠지. 이것은 기정사실이네.”
‘음…..’
금안의 사내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혈교로 넘어가다니.
설마 지금 혈교와 그 금안의 사내가 연관이 되어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속내를 감추고서 조심스럽게 입술을 뗐다.
“혹 말씀하신 금안의 사내가 혈교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까?”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칠할 정도 그렇다고 생각하네.”
“……어째서인지?”
“웅천도, 장천제.”
응?
-알고 있는 자들이야?
모를 리가 있겠는가.
한때 명성을 떨치던 정파의 최고수들로 명성만으로는 남천검객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이들이었다.
-그런데 왜 놀라?
놀라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제갈원명이 말한 두 고수는 제각각 시기는 달랐지만 전부 죽은 자들이었다.
“그리고 자네 스승과 여기 계신 북영도성.”
‘설마?’
“이 네 고수들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네.”
뭐라고 이야기할지 짐작이 갔다.
“이들 네 고수들은 누가 차기 팔대고수가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절세고수들이면서 향후 정파 무림을 책임질 미래였네. 그런 이들이 모두 한 사람에게 당했지.”
“……그게 금안의 사내라는 것입니까?”
제갈원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다네. 솔직히 자네의 스승인 남천검객 또한 오랫동안 자취를 감춰서 그저 추측으로 남겨놓고 있었는데, 그것이 자네의 증언으로 사실이 되었지.”
지금 제갈원명이 하는 말은 이렇다.
향후 정파를 이끌어갈 네 명의 최고수들이 금안의 사내로부터 당했다.
그로 인해 정파의 전력에 손실이 갔다.
-그건 맞는 말이네.
문제는 그게 아니다.
이것이 무림 연맹의 장로들이 알고 있는 기밀이라고 했다.
그 말은 현재 무림 연맹, 즉 정파 측의 고위 간부들은 이 금안의 사내가 혈교와 관련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었다.
물론 일리는 있다.
다시 일어서려 하는 혈교의 입장에서는 정파의 전력을 어떻게든 낮춰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건 혈교가 한 일이 아니다.
‘……설마 상황을 이용하는 건가.’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현재 무림 연맹은 무쌍성과의 동맹 파기로 사기가 저하되어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무림 대회를 여는 것이지만 여기서 목적의식을 고취시켜준다면 정파에 활활 불을 지피기에 충분해진다.
정파를 상징하는 최고수들마저 죽이고 준동하려하는 혈교.
무림 연맹의 입장에서는 정파를 다시 하나로 묶기에 얼마나 좋은 그림인가.
그때 제갈원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집무실의 벽면 한복판에 세워진 천으로 덮어놓은 큰 목판을 가리켰다.
목판의 천을 치우자 커다란 중원 전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
중원 전도의 곳곳이 붉은 점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 중 낯익은 곳도 보였다.
‘육혈곡?’
순간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킬 뻔했지만 이를 참았다.
훈련 받지 않은 첩자들이라면 당혹스럽게 만들 만한 중원 전도였다.
제갈원명이 입을 열었다.
“정사 대전 이후 본 맹은 오랫동안 혈교의 잔당들을 찾기 위해 발본색원하며 정보를 수집해왔네. 이 많은 붉은 점들을 보면 심장이 떨리지 않나?”
점들만 수십 개가 넘었다.
저 중에 몇 곳은 나도 알고 있는 곳이다.
현 무림을 양분하는 무림 연맹답게 그 정보력은 경탄이 나올 수준이었다.
“혈교는 정사 대전 이후 점 조직처럼 나눠져 벌레가 파고 먹듯이 아주 서서히 힘을 키우고 있다네.”
-탁! 탁! 탁!
제갈원명이 목판에 끼워져 있던 목봉으로 몇 군데를 가리켰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육혈곡이었다.
최근에 무림 연맹에 가입된 중소문파들이 쳐들어왔으니 당연히 파악했을 것이다.
“등잔 위는 밝더라도 그 밑은 어둡기 그지없다네. 간교한 혈교의 무리들은 우리의 턱밑에서 언제든지 찌를 준비를 하고 있지.”
뭔가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나는 일부러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혈교가 이십여 년 전에 멸망했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숨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건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무림에 공표를 해 그들을 발본색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단해. 대단해.
혈교와 전혀 관련이 없는 것처럼 연기하는 나를 소담검이 혀를 내둘렀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소담검마저도 대단하다고 하는데, 다소 격해진 나의 반응을 제갈원명은 냉철한 눈으로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남천검객의 제자임이 밝혀졌는데도 의심을 완전히 풀지 않은 건가.’
이 사람은 참 위험하다.
경각심을 조금이라도 늦춘다면 곧바로 파고들 자다.
“자네의 말이 맞네. 이 사안은 심각한 일이지. 하지만 저들은 점 조직으로 있기에 섣불리 이것을 공표하면 더 수면 아래로 숨게 될 걸세.”
“그럼 어찌?”
“이 붉은 점이 찍힌 전도에서 해결된 것이 몇 건인 줄 알겠나?”
그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제갈원명이 말을 이어갔다.
“고작 이 중에 3할 정도만 처리된 상황이지. 아주 용할 정도로 놈들은 본 맹의 손에서 빠져나갔다네. 자네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줄 아나?”
“……..”
제갈원명의 질문의 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대번에 알아들었다.
단지 이것을 내 입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껄끄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대답을 해야겠지.
“……정보가 유출되고 있군요. 무림 연맹에 세작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너도 대담하네.
첩자인 내 입으로 세작을 거론하는 상황이 일어날 줄이야.
이건 회귀 전에도 겪어본 적이 없는 일이다.
세작이라는 말을 꺼내자 제갈원명의 표정이 달라졌다.
“과연 남천검객의 제자다운 식견이로군.”
방금 전까지 일말의 의심이 담겨 있었다면 지금은 그것이 조금이나마 풀렸다.
완전히 믿는 정도는 아니지만 약간의 신뢰를 찾은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북영도성 곽형직과 다른 방법으로 나를 시험했던 것 같다.
제갈원명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자라나는 장강의 뒷물결을 보니 든든하기 그지없구만. 남천검객께서 검을 맡길만 하네. 그려.”
“아닙니다. 말씀 거둬주십시오. 스승님의 명예에 누가 될까 두렵습니다.”
“겸양도 지나치면 미운 법일세.”
“……감사합니다.”
“자네의 말대로 본 맹에도 혈교의 세작이 있네. 파악된 바만 하더라도 열댓 명이 넘지. 아마도 그 이상 더 있을 걸세.”
“그렇게나 말입니까?”
“수만 명을 아우르는 조직에 세작이 없는 것이 말이 되겠나.”
역시 세작들을 일부 파악하고 있었다.
점 조직으로 숨은 혈교와 달리 무림 연맹은 만인에게 열려있다.
그만큼 세작을 심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단지 정보의 요추라 할 수 있는 간부 급에 세작을 심는 것이 힘들 뿐이었다.
“첩자들을 전부 잡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곽형직의 제자 장명이 입을 열었다.
이에 제갈원명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세작이라 하더라도 무작정 잡아들여봐야 계속 새로운 자들이 들어오기 마련일세.”
“하나 내버려두는 것도…..”
“정보를 교란하기 위해서일 겁니다.”
그런 나의 말에 제갈원명과 곽형직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세작을 살려두는 이유는 간단했다.
세작을 이용해 거짓 정보를 유출해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교란책이다.
“흠.”
제갈원명이 가는 눈매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냥 가만히 있을 걸 그랬다.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조금 더 나선다는 것이 너무 아는 체가 된 것 같다.
그러나,
“이거 탐이 나는 인재로군. 자네가 후기지수 논무로 한 당의 당주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 일군사부로 데려가고 싶을 정도일세.”
“과찬이십니다.”
다행히 칭찬을 했다.
그런데 방심하고 있을 때 뜻밖의 말이 이어졌다.
“이 정도 인재라면 염치를 무릅쓰고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네 그려.”
‘부탁?’
점점 상황이 난처해지고 있었다.
제갈원명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정파 무림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이 될 수도 있네. 그리고 이건 자네에게도 하고 싶은 부탁이로군.”
“제게도 말입니까?”
장명이 의아한 표정으로 제갈원명을 쳐다보았다.
그의 반응을 보면 사전에 이야기가 된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대체 무슨 부탁을 하려는 것일까?
“걱정 말게. 두 사람이 지금 나가려는 후기지수 논무와도 연관되어 있으니 말일세.”
“무슨 말씀이신지?”
“이번 무림 대회에 혈교의 세작들도 참여할 가능성이 다분히 높네.”
“…….”
네. 바로 당신 앞에 있습니다.
정말 한치도 방심할 수 없는 자리다.
“아마도 그들의 목적은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네.”
“두 가지라면?”
“후기지수 논무에서 순위권에 들게 되면 본 맹의 요직으로 들어올 수 있지. 아마 그것을 노릴 걸세. 그리고 두 번째는…..”
불안하다.
저 입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제발 그것이 거론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 정도 정보력이라면,
“본 맹의 비고에 있는 혈마검을 노릴 걸세.”
‘아아……’
속에서 탄식이 절로 나온다.
안 그래도 어려운 일이 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무림 연맹에서 혈마검을 노린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다면 더 탈취하기 어려워진다.
머리를 굴려야 한다.
이 상황을 이용해서 정보를 얻는 것이 활로가 될 수 있다.
“이번 대회에 특별히 비고를 개방한다고 했으니 아마도 더더욱 그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할 걸세.”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들이 그 검을 노린다면 더욱 경계를 늦추면 안 되겠군요. 혹시 저희에게 할 부탁이 혈마검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그 말에 제갈원명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걱정하지 않아도 되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설사 그들이 천운으로 후기지수 논무에서 우승한다고 할지라도 비고에서 혈마검을 가져갈 수 없을 걸세. 닷새 후면 혈마검은 무당산으로 옮겨질 테니 말일세.”
‘!!!’
“종선 진인께서 무림 대회 기간 동안 혈마검을 맡기로 했으니, 자네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네.”
중요한 정보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혈마검이 무림 연맹의 비고에서 무당산으로 옮겨진다라.
팔대고수 중 한 사람인 무당의 장문인 태극검제 종선 진인이 맡았으니 그 안전은 확실하게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장명이 입을 열었다.
“그럼 저희들에게 맡기실 일은 무엇입니까?”
“자네들이 해줄 일은 후기지수 논무에서 의심이 될 만한 세작을 찾는 것일세.”
‘……이것 참.’
상황이 요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혈교의 첩자인 나더러 첩자를 찾아달라라.
나와 같은 심경이었는지 사마영 역시도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갈원명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왕이면 자네들이 후기지수 논무에서 높은 성적을 거둬서 혈교의 세작들이 조금도 요직으로 들어오는 일이 없도록 막아줬으면 한다네.”
그런 그의 말에 장명이 일어나 포권을 취하며 힘차게 말했다.
“정파의 일원으로서 어찌 그런 중임을 피하겠습니까?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젠장.
장명이 호기롭게 나선 덕분에 나 역시도 마지못해 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본의 아니게 양쪽에 발을 전부 얹게 되어버렸다.
* * *
소운휘가 집무실을 나간 이후,
가만히 앉아서 듣고만 있던 북영도성 곽형직이 입을 열었다.
“제갈 군사. 그게 사실인가?”
“어떤 것이 말인가?”
“아까 전 남천검객의 후인이 있을 때 혈마검을 무당에 맡긴다고 했는데, 그건 얘기가 되어 있지 않지 않았나?”
그의 물음에 제갈원명이 옅게 웃었다.
“후후후.”
‘!?’
이에 곽형직이 기가 차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그 아이를 속였군?”
“확실하게 해둘 필요가 있어서 그런 것일세.”
“그 아이를 믿지 못하는 건가?”
곽형직 본인이 직접 소운휘를 시험했다.
그를 시험한 결과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정한 남천검객의 후인이었다.
그런데 제갈원명은 아닌 모양이었다.
“곽 대협이 직접 확인해줬는데 어찌 믿지 못하겠나. 본 군사 역시도 9할은 그 아이가 남천검객의 후인이라고 믿네.”
“9할?”
“그저 1할이 마음이 걸릴 뿐이네.”
“어째서인가?”
“그 아이 이외에도 일 년이 넘게 사라졌다가 돌아온 아이들이 있더군.”
“그게 누군가?”
그 물음에 제갈원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 탁자 위에 서지 하나를 살폈다.
“조항송가의 아이들이네. 같은 호남 무림 지회 소속이더군.”
“조항송가? 그게 정말인가?”
제갈원명이 고개를 끄덕이자 곽형직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조금이라도 의심할 여지가 있다면 확인해봐야 하지 않나?”
“할걸세.”
“어떻게 말인가?”
“이미 미끼를 뿌리지 않았나.”
“미끼?”
“거짓 정보에 움직여서 혈마검을 노린다면 한 번에 일망타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나.”
제갈원명이 빙그레 웃으면서 장명을 쳐다보았다.
장명이 탄성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교란책!”
“후후후. 알겠나? 이렇기 때문에 세작들을 전부 잡지 않는 것이라네.”
그런 제갈원명의 말에 장명은 내심 그가 무서운 사람이라 생각이 들었다.
무(武)가 뛰어난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배웠다.
만약 1할의 확률로 정말로 소운휘가 세작이라면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곽형직과 장명 역시도 인사를 나눈 후 집무실을 나서려했다.
그런데 나가려고 하던 곽형직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응? 저게 뭔가?”
“그게 무슨?”
그들을 배웅하던 제갈원명이 뒤를 돌아보았다.
의자와 탁자 사이에 끼어서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단검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장명이 그걸 보고서 말했다.
“저 단검. 소 형의 것 같은데요?”
단검은 다름 아닌 소운휘의 소담검이었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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