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1)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화(1/599)
환생. 얼마나 감미로운 단어야.
현생이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힘들기 그지없으니 환생을 바라지 않을 수가 있나. 하지만 난 바라지 않았다.
현생도 이 따위인데 환생한다고 뭐 얼마나 좋은 뽑기가 걸릴 줄 알고? 온갖 소설 속 화려한 설정이 덕지덕지 붙은 거면 쌍수들고 환영할지언정 그게 아닌 이상 난 현생 살기도 바빴다.
근데 재수없게 뒤져서 환생을 했다. 그리고 판타지 세계였다. 삶이란 정말 알 수가 없어.
그래도 별 수 있나. 신이 장난질을 친 건지 못난 자식 끝까지 위했던 부모님의 은혜인지 몰라도 다시 얻은 목숨 뭐가 되었든 또 열심히 살 수 밖에.
그런데.
그런데 다른 건 다 그렇다쳐도 씨발.
태어난 지 8년 만에 마을이 마왕군의 침공으로 다 날아간 건 진짜 개 씨발 선 넘는 짓이다.
8년.
이세계에 다시 태어나 새롭게 정을 쌓고 삶에 적응한 시간.
겁나게 긴 세월인 건 맞는데 어린애 처지에서는 정말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다. 아무리 환생을 했어도 머리 좀 여물고 제대로 활동하기까지 4년은 소모됐으니까.
“더럽게 힘드네 진짜.”
그리고 오늘은 내가 이세계에 태어난 지 8년 하고 12일째 되는 날이다. 우리 마을이 사라지다시피 한 지는 3일째 되는 날이고…
“개 같은 몸뚱어리 진짜 더럽게 약해.”
대장간이었던 곳에서 자루가 다 타버린 삽 대가리를 찾아 들고 무덤을 파기 시작한 지는 이틀째 되는 날이다.
“물집 겁나 쓰라려!”
식수로 사용 가능한 계곡 물도 흐르고 마을 곡창에는 타다 남은 감자 같은 게 있다 보니 당장 먹고 마시는 건 문제가 아니었지만, 어린아이의 몸은 어쩔 수 없이 너무 약했다.
판타지 세계답게 마법은 존재한다니 그걸 배웠으면 땅 정도는 좀 수월하게 팠겠지만, 내가 살던 마을은 촌 동네라서 그런 귀한 걸 배울 수는 없었다. 그나마 3년 정도 전에 우연히 마법사가 한 명 방문한 적이 있어서 온갖 아양을 떨어가며 마력이라는 걸 느끼는 시늉까진 따라 했는데 그거로 마법을 쓰진 못했다.
그는 4년 뒤에 다시 돌아왔을 때 내가 열심히 했음이 확인되면 마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마법사는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1년만 늦게 마왕군이 습격했어도 최소한 땅파는 마법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은 아직 3년째다.
불행 중 다행으로 느껴진 마력을 움직여 몸을 강화 시킨다는 지극히 판타지스러운 행동은 가능했다. 정말 개 쩐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판타지스러운 체험에 심취해 3년간 부단히 연습했다. 절대 8살 아이가 낼 수 없는 속도로 달릴 수 있고, 순간순간만 놓고 보면 무거운 장검 정도는 평범한 어른에 가까운 속도로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근데 그거랑 별개로 단련 안 된 몸뚱이는 한계가 있다. 손바닥의 물집이 그 증거였고, 빨리 달리면 근육통이라 생각할 수 없는 통증을 느껴야하는 게 증거였다. 덕분에 난 오롯이 내 순수한 육체와 삽대가리 하나만 믿고 땅을 팠다. 결국 부모님의 무덤을 다 파는데 이틀이 걸렸다.
“그래도 8살 먹은 자식치고는 열심히 했습니다.”
몸은 8살이어도 머리는 전생까지 합쳐 서른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어머니를 데려오겠다며 은신처를 떠난 아버지가 하룻밤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수 없었고, 좆 같은 심정으로 새벽 일찍 내려온 마을 외곽에서 함께 쓰러져 있는 부모님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짜 내가 봐도 서럽게 울었다. 울다가 탈진해서 기절할 정도였다. 3일째인데 무덤파는데 2일이 걸린 건 그 때문이었다.
“내일이면 울타리 남은 거 짜집어서 묘비까지 완성 시킬 수 있겠네요.”
지금은 사냥꾼으로 살았지만 부모님은 한 때 모험가 일을 하며 대륙을 여행하다가 정착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두 분 모두 한 손에 어디서 뺏어 쥔 건지 알 수 없는 피 칠갑이 된 검을 쥔 채 숨을 거둔 상태였다. 다행이라고 하기도 민망하지만 화재에 휩쓸리지도, 시체를 훼손당하지도 않은 채 그저 깔끔하게 심장을 관통당한 걸 보아 크게 아프지는 않으셨을 거 같다.
내 전생의 죽음이 그랬거든.
“간만에 생각하니 화나네.”
점심까지 무덤을 다 파고 지하 저장고에 있던 운 좋게 타지 않은 포대자루를 찢어 부모님의 시신을 올려 옮기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져 버렸다. 마력을 운용해 체력을 강화해서 옮겨봤자 다 옮기고 나면 오히려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한 채 쓰러질 게 뻔했기에 그냥 쌩으로 옮겼다.
한창 가을이 무르익고 겨울이 코 앞인 시점이라 아직 부패가 일어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흐. 다행은 지랄.”
8살 꼬마애가 홀로 겨울을 어떻게 버티겠어? 은신처라고 했던 것도 아버지가 겨울 동안 육류 보관용으로 쓰던 작은 토굴에 불과했다. 좀 더 늦었다면 거기엔 겨울을 나기 위한 식량이 조금이라도 쌓여 있었겠지만 지금은 텅 비어 있을 뿐이다. 식량 창고의 타다만 음식들을 긁어 모아 봤자 일주일도 못 버틴다.
당장 자식된 도리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이럴 뿐이지 다행인 것도, 여유로운 것도 하나 없다.
“판타지인 줄 알았더니 이세계 서바이벌을 찍게 생겼네.”
노을이 지고 있었다. 평소 이맘때면 어머니가 끓인 스튜 향을 맡으며 아버지와 함께 집에 이르렀을 시간이다. 6살이 된 후로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사냥의 기술이나 모험가 시절 익혀둔 약초 지식 같은걸 물어보고 익혀가며 지냈었다. 촌장님의 집에 가서 책을 읽는 것도 좋았지만, 대학이다 취업이다 같은 거 없이 그저 삶을 위한 지식을 익히는 그 과정은 여유로우면서도 평생 느끼지 못했던 즐거움의 형태로 가득했다.
그 즐거운 나날이 거짓말처럼 날아갔다는 사실에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정말로 순수한 행복이었다. 내가 어린애가 아니라서 그 행복을 제대로 만끽하고 즐겼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껴야 할 정도로.
“하…돌아가자.”
그나마 계곡물은 멀쩡해서 식수 걱정은 없다는 게 천만다행이다. 안 그러면 울다가 탈수로 죽게 생겼으니.
저녁으로 먹을 감자를 골라 들고 은신처까지 가면 깜깜해질 것이 분명했다. 불 지필 것 하나 없는 지금으로서는 쉴 틈이 없었다. 빨리 토굴로 돌아가서 긁어모은 옷가지를 두르고 체온을 올려놓지 않으면 더럽게 추울 것이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앉아 있는 엉덩이를 통해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전생에서는 단 한 번도 직접는 못 들어 봤지만 현생에서는 익숙한 소리.
말발굽이 땅을 박차는 소리와 말의 투레질 소리.
“씨발.”
소름이 돋는다. 그 어느 때보다 공포스럽기 그지없는 소리였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부모님께 쥐어드렸던 장검을 꺼내 옆에 두고서 살짝 고개를 돌려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자, 마을 입구였던 곳에서는 노을을 등진 채 서 있는 집단이 있었다.
실루엣만으로도 정상적인 군대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용병들조차 들고 다니는 소속을 알리는 깃발 하나조차 없었다. 무엇보다 그리 숫자가 많지 않았다.
“개 씨발.”
도적이다. 마을이 불탄 걸 봤던 건지 마왕군의 흔적을 본 건지는 몰라도 뭐 하나 건져먹을 게 있나 확인하러 온 게 분명했다.
지금 산으로 뛰어 도망치면 별 탈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다.
근데 그러면 저 씹새끼들이 우리 부모님께 쥐어드린 검 뿐만 아니라 얼마 없는 장신구마저 다 털어먹겠지.
오늘 내 전신이 찢겨 죽는 한이 있어도 그 꼴을 방관할 수는 없다.
놈들이 내가 있는 언덕으로 오기 시작했다.
내가 있는 곳은 마을 언덕에 위치한 작은 만신전萬神殿’이었던’ 곳이다.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그저 부모님이 신앙심이 있는 편이었으니 이곳에 묻어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수는 7명. 인근까지 다가온 녀석들은 이내 말에서 내리더니 주변을 둘러보면서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나마 한 명은 몸매를 보아 여자인 거 같았는데 노예라도 되는지 쇠 목줄을 찬 채 반강제로 끌려오고 있었다.
갑옷은 부실하다. 투구를 쓴 녀석은 하나도 없고, 가장 잘 갖춰 입은 게 앞장서서 걷고 있는 녀석의 흉갑과 그리브 그리고 건틀릿 정도다. 칼을 든 것도 녀석 뿐. 나머지는 단검이나 도끼같은 것만 들고 있을 뿐더러 활같은 무기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활은 있었는데 말에 두고 내렸다.
긴장감에 손발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내게 있는 건 뭐지? 8살 외형. 부모님이 쥐고 있던 칼. 주변의 돌멩이들.
그리고…마력. 신체를 강화시켜 줄 수 있는 마력. 3일간 한 번도 안 쓰고 보존해 둔 마력.
“야. 꼬마.”
가장 앞에서 무리들보다 조금 더 빨리 걸어온 대장처럼 보이는 남자가 나를 불렀다. 너저분하고 며칠은 씻지 않은 것처럼 떡진 머리를 산발하고 있었지만 얼굴에 흉터같은 건 없었다.
“누, 누구세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마치 부모님의 유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칼을 꼭 끌어안고 바들바들 떨며 물어 봤다. 속으로는 제발 그냥 모험가라서 정황만 확인하고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가능성의 희박해 보였다.
애당초 8살짜리 애를 두고 긴장하는 이상한 놈이 흔할 리는 없겠다만 당장 내 목숨이 걸린 마당에 최선을 다해 연기를 펼칠 수밖에 없다. 내 질문에 남자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어 보이며 다가온다.
“흐흐. 씨팔 그딴 건 알 거 없고 그 칼 이리 줘 봐라.”
“이, 이건 저희 부모님 거예요.”
몸을 옆으로 돌리면서, 무게에 못 이겨 검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시늉 하며 검 손잡이를 잡는다. 그러자 녀석이 인상을 팍 찡그리며 허리까지 숙여가며 나에게 고함을 쳤다.
그걸 노렸다 이 개새끼.
온몸에 퍼트린 마력을 터트리며 검을 휘둘렀다.
“이 씨팔 뒈지기 싫으면 당장….컥?”
검술의 조예? 조예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전생의 취미가 무술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아예 검도에 빠져 살아 사범이나 될까 한 적도 있었다.
힘만 받쳐준다면 목을 노리고 수평베기를 할 정도의 기술은 있다. 그리고 내겐 마력이라는 힘이 있었다.
“커흡. 이, 무스…”
사람을 죽인다는 압박감따위 개나 줘버리라지. 난 전생에 살인강도한테 죽었다. 마지막 온 힘을 다해 목을 꺾어 죽여 버렸지만 거의 동시에 심장을 찔려서 꼼짝 못 하고 죽었다. 이미 살인을 한 전적이 있는 몸이다.
그렇게 시작한 환생이었다. 근데 그마저도 다 날아갔다.
난 지금 눈에 뵈는 게 없는 놈이다.
“어? 대장?”
머리부터 땅에 처박고 쓰러져 인지부조화 속에서 컥컥거리는 녀석이 대장은 맞았나 보다. 다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양이 되어 불안에 떨며 바들바들 떠는 척을 하고 있자 한 녀석이 상황 파악 못하는 얼굴을 하고 뛰어와서 놈의 옆에 쭈그려 앉는다.
내가 들고 있는 칼에 피가 묻은 걸 신경 썼어야지.
“대장 무슨…피? 잌?”
그대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간격을 잡은 뒤 녀석의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사선으로 내려 베는 동작은 내가 보기에도 깔끔하게 녀석의 경동맥 깊숙이 칼집을 내주었다. 놀란 눈이 날 바라보지만 이미 늦었다.
“어? 어? 씨발 너 이 새끼 무슨 짓을 한 거야!”
그제야 나머지 놈들이 정신을 차리고 내 쪽을 바라본다. 하지만 내 연기는 아직 안 끝났다.
“저, 저도 몰라요. 가, 갑자기 검이 막…”
경악하는 4명의 도적놈들과 기묘한 표정을 짓는 노예 하나의 시선이 나에게 쏟아졌다.
“뭐?! 씨, 씨팔 저거 마검인 거 아냐?”
와 진짜 그딴 게 존재하나보다. 살벌한 세상이네.
혹여라도 냅다 달려들어 죽이려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녀석들은 공포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이 미친 이딴 촌구석에 그게 왜 있어!”
“하, 하지만 마왕군이 지나갔잖아?! 흘리고 간 거 아냐?”
염병 어느 병신이 그런 걸 흘려? 하도 어이가 없어서 혼신의 연기가 풀어질 뻔했잖아 씨발.
슬픈 생각. 돌아가신 부모님 생…이런 씨발 진짜 슬퍼졌어. 개새끼들 용서 못 한다.
“야, 야. 꼬마. 이, 일단 그거 이리 내.”
그나마 담력이 있어 보이는 녀석 하나가 주춤거리는 자세로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쪽 팔을 쭉 핀 채로 주춤 주춤 허리를 숙여 나와 높이를 맞추면서 다가온다.
“흑, 이, 이거 엄마 건데…”
“애미 씨팔. 알겠으니까 일단 이리 내놔! 나중에 돌려줄게!”
숨을 헐떡이며 양손에 쥐고 있는 손잡이로 검을 넘겨 주려는 것처럼 다가간다. 살면서 검이라는 걸 잡아본 적 없는 녀석인건지 내가 그대로 검을 휘두를 수 있다는 걸 조금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 큰 녀석은 아니다. 키는 160정도 됐으려나? 팔 길이는 길어봐야 60~70센티 사이일 것이다.
거의 손끝에 폼멜이 닿을 정도까지 다가가자마자 녀석의 목을 향해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커헉!”
“으아아아앙!”
“으아악 씨발 글렌!!”
“마검이야! 마검이라고 씨발!”
아직 내 연기는 더 이어질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