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112)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12화(112/599)
평온이라는 게 이렇게나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생각한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저택으로 돌아온 내 앞에 펼쳐진 것은 문지기들의 평온한 인사와 언제나처럼 조용하기 그지없는 저택의 분위기였다.
그리고 이 모든 요소들은 방금 내가 겪고 온 상황에 대해 아무런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다는 반증이지.
평범하게 아실리에를 소개하고 하하 호호 웃으며 하루가 마무리되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마는, 이미 글러 먹은 상황 속에서 그럴 여유는 없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나를 향한 정겨운 인사들에 제대로 된 화답도 못하고 뛰쳐 올라가다시피 해 도착한 에카프 경의 앞에서, 나는 최대한 간단히 아실리에를 소개한 다음 라그니스가 끌려갔다는 소식을 전달해야만 했다.
처음엔 사뭇 당황스러운 기색 속에서도 이변을 눈치채지 못하고 평온하기 그지없던 에카프 경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정말…예상치 못한 곳에서 치고 들어오는군. 이번에 엮인 게 아무리 많다 한들 이런 강수를 두려고 하다니…”
“짐작되는 부분이 있으십니까?”
“아직은… 말해주기 애매하다네. 지금 당장 폐하를 만나뵙고 다른 이들과 의견을 나눌 필요가 있어. 레니사 경의 응대에 관한 부분은 집사장에게 전달해 놓지.”
말을 하면서도 계속 고심 중이던 에카프는 황급히 외투를 챙겨 일어나면서도 아실리에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았다.
“이렇게 먼 길을 오게 되셨는데 제대로 된 응대를 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실리에. 일이 정리되는대로 찾아뵙겠습니다. 방을 마련하도록 이야기해둘 테니 내 집처럼 편히 쉬시지요.”
“배려 감사합니다 오가토르프 경.”
“그가 저희를 도와준 것에 비하면 별거 아닙니다. 그럼, 엘드미아. 나중에 셰릴에게도 이야기를 부탁하네.”
“아카데미에 가 있지 않습니까?”
“딸아이 성격을 알잖나. 이야기를 안 할 수도 없고, 알게 되면 당장 뛰쳐오겠지.”
에카프 경은 자신의 딸을 사랑하는 만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나 역시도 길길이 날뛰는 셰릴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엔 좀 암담했지만 아카데미에 남아 있다가 이번 일과 연루되어 있는 귀족 자제들에게 손찌검을 하는 최악의 상황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급격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셰릴이 한순간의 감정에 휘둘려 자기 앞가림을 못할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아카데미 학생이라는 동등한 지위를 아주 악랄한 수준까지 이용해먹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불안 요소를 남겨 놓을 바에야 차라리 저택으로 돌아오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득임이 분명하다.
그런 결론을 내리는 동안 보기 드물게 당황한 에카프 경이 집사장에게 간단한 지시사항을 전달한 뒤 직접 말을 몰고 저택을 벗어났고, 그와 동시에 저택은 방금 전까지의 평온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뒤숭숭해졌다. 집사장을 따라 아실리에가 묵을 방으로 가는 와중에도 이미 에카프 경의 다급한 모습에 이상을 눈치챈 이들이 저들끼리 모여 의문을 나누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일부는 내가 달려가자마자 에카프 경이 달려 나갔다는 점에서 실마리를 얻어 나에게 질문하려 하기도 했으나, 아실리에가 아무리 나의 지인이라한들 결국은 손님이다보니 예의를 중시하는 집사장의 눈초리에 막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 방을 쓰시면 됩니다. 필요한 게 있으실 경우 비치되어 있는 종을 울려주시면 바로 대응해드리겠습니다. 엘드미아? 당장은 일이 없으니 쉬면서 담소를 나누도록 하시지요.”
그렇게 내가 처음 저택에 왔을 때 셰릴과 만났던 방으로 우리를 안내해 준 집사장은 나를 향한 배려를 마지막으로 방문을 닫고 나갔다.
“상황이 안 좋아서 그렇지 좋은 사람들이네.”
“가주의 올바른 성품이 옳게 작용한 모습이지.”
하지만 당장의 문제 앞에 두고 그런 일상에 대한 대화를 나눌 여유는 없었다. 천천히 방을 구경하는 아실리에를 두고 소파에 앉은 난 그대로 고민에 빠졌다.
지금의 내가 아무리 고민해봤자 귀족원이 주장할 핑곗거리를 예상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니 내가 당장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은 그런 게 아니라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에 대한 구분과 더불어 이런 행동을 취하게 된 경위였다.
일단 국왕파와 귀족파 간의 갈등은 골이 깊으니 에카프 경만 따로 빼놓고 나머지가 손을 잡아 라그니스와 척을 졌을 가능성은 한없이 0에 가깝다. 그런 와중에 이런 문제가 일어날 것을 국왕파가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면 당연히 에카프 경에게도 이야기가 전달되었어야 마땅하다.
누가 뭐라해도 그는 라그니스가 수도로 귀환할 때 선봉에 섰던 인물이니까. 국왕파 내에서도 믿을 수 있는 핵심 인물로 구분되어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런 그에게 아무런 언질도 없이 다른 국왕파 사람들끼리 이야기가 진행되었을 가능성 역시 없다고 봐도 무관할 것이다.
즉, 국왕파는 이제야 이 문제를 알게 될 거라는 소리다.
“귀족법 공부는 안 했는데…”
뭐라도 좀 알고 있는 게 있었다면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지 어떤지 고민이라도 해볼텐데 개뿔도 아는 게 없다보니 당장 할 수 있는 건 결국 주워들은 것을 기반으로 한 유추 뿐이다.
라그니스는 체포를 위해 놈이 주장했던 내용에 대해 반박하지 못했다. 하지만 처음에 왕실 성명문을 언급한 것도 사실이지.
그렇다면 이 나라에서 귀족을 체포하는데 있어 왕실에서 공문을 내리는 형식과 귀족원에서 일종의 체포영장을 발부하는 형식이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거다. 오늘은 당장 내일 있을 재판에 앞서 혐의가 의심되는 자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구금하는 것에 가까웠지만, 불응할 경우는 강제 집행도 가능한 뉘앙스였으니까.
거기에 더해 재판까지 다이렉트로 열어버릴 재량권까지 가지고 있는 상황.
펼쳐진 것들만 볼 경우 귀족원에게 너무나도 유리한 조건들이다. 왕가와 국왕파가 머저리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일이 돌아갈 리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움직였다는 건…
“미리 준비를 했거나… 엄청 서둘렀거나.”
라그니스가 수도로 돌아온 뒤 1년 반 남짓한 시간 동안 귀족파 측에서는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다고 알고 있다. 이미 수도로 들어온 이상 대놓고 손댈 수도 없었고, 라그니스도 내실을 위해 최대한 몸을 사리면서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것이 뻔했기에 귀족파가 비룡과 델트라는 극단적인 인력을 투입하면서까지 공식적인 수도 입성 전에 라그니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던 것이고, 그게 실패했으니 이 쪽에서 빌미를 주기 전에는 움직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떤 빌미가 생길 지 모르니 만반의 준비를 해놨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인력도, 자본력도 부족하다. 그들은 국왕파를 견제하는 거지 라그니스 혼자만을 견제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서둘렀다. 그것도 엄청나게. 어째서?
앞뒤 정황을 맞춰 봤을 때, 그들이 서두르게 된 원인이라 할 만한 건 이번 제국 방문말고 없다.
그리고 그 제국 방문으로 인한 모든 사건들은 내가 핵심이죠.
“씨발.”
라그니스는 분명 우리가 제국에 머무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보고서같은 걸 왕실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분명 그 과정에서 유출이 된 거겠지. 정보라는 건 그런 거니까.
용사를 이긴 자. 루드라의 개새끼를 죽인 자. 황녀를 구출한 자. 그런 수행원을 소리소문 없이 데리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제국의 직접적인 초대까지 받은 인물이 무조건 국왕파에 붙는 상황을 귀족파는 어떻게 바라봤을까.
제국과는 아무런 친분도 없었음에도 단 한 번의 방문으로 엄청난 흔적들을 남기며 왕국과 제국 간 외교에 청신호를 울린 교두보와 같은 존재. 일반적인 관점이라면 좆 됐다를 연발하며 손톱이나 씹어 먹겠지만, 아무래도 귀족파 놈들은 발상의 전환을 한 듯 싶다.
다리를 점령할 수 없으면 박살 내버리자는 형태로 말이다.
표면 상 이번 방문 때 라그니스는 내 주인이었다. 신하의 공은 주인의 위업이라는 귀족적 사상에 맞춰 생각해 보면, 당연히 나로 인해 라그니스는 제국 황가와 엄청난 친분을 가지게 된 것으로 비춰지게 된다.
하지만 그런 라그니스가 왕국 내 반란을 준비하고 있던 인물로 낙인 찍힌다면, 일반적인 경우라면 어떻게 될까?
그들의 뜻대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가정하에서 라그니스는 완전히 몰락하게 될 뿐더러 왕국의 반역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제국은 일단 발을 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의 처우에 대한 부분은… 당장은 어떨지 몰라도 나중엔 그녀와의 연관성을 의심받으며 어떻게든 귀족파가 손을 쓰겠지. 그래도 앞서 보여 준 세 가지 위업 덕에 제국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두다가 아예 나를 제국에 선물해버리자는 계획을 세웠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과정을 주도하면서 제국과의 친교와 관련된 주도권을 귀족파가 재정립하고자 할지도 모르고.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경우였다면 말이다.
애석하게도 나와 에스뮈에와 라그니스의 관계는 조금도 일반적이지 않지.
“뭘 그렇게 고민하고 있니?”
“제발 이번만큼은 내가 예상하는 불안이 모두 들어맞길 간절히 기도하는 중이야.”
“…불안이 들어맞는 게…좋은 거야?”
“이번만큼은.”
아무리 귀족파라고 해도 내 개인적인 여자관계까지 계획에 넣을 수는 없을 것이기에, 난 아실리에에게 대답하면서도 열심히 기도했다.
신이시여. 제발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인생의 파도 하나 정도는 날로 먹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