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113)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13화(113/599)
무엇 하나 뚜렷한 것 없이 추측만을 이어 나가며 피로를 쌓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쉬는 게 나을 거라는 판단하에 나는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잠깐 눈을 붙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태평하게 잠이 오진 않았지만 당장에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방 안에서 아실리에와 함께 침묵을 고수하며 우리는 레니사가 새로운 정보를 들고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 에카프의 예상대로 셰릴이 나타났다.
“엘드미아아아!”
그것도 마차가 아니라 아예 말 한 마리를 몰고 직접 내달리며 말이다.
-까앙!
문제는 그냥 나타난 게 아니라 경비병들이 인사를 하며 예를 취하는 것조차 못 기다려주고 저택의 대문을 박살 낼 기세로 걷어차며 나타났다는 점이지. 몸을 일으켜 창밖을 바라보니 몇몇 하녀들을 뒤에 달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셰릴이 눈에 들어왔다.
모습만 놓고 보면 사내대장부가 따로없는데 예쁘장한 애가 저러고 있으니 갭이 엄청나다.
“엘드미아! 엘드미아는 어디 있나!”
“아, 아가씨 제발 조신하게…”
“그건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야! 엘드미아!”
지난 과거가 새록새록 떠오르면서도 그때와는 달리 눈에 띄게 당황한 셰릴의 모습이 솔직히 참신하게 느껴진다. 평소라면 그 모습을 음미하며 놀림거리로 삼았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럴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창문을 통해 얼굴을 비추고 있는 나를 발견한 셰릴이 교복치마를 휘날리며 달려 올라오는 건 정말 순식간이었지만, 손님용 방이다 보니 방금 전 대문을 박차던 기세와는 달리 매우 정중한 태도로 방문을 두드렸다.
“괜찮아 셰릴. 들어와.”
내가 대신 답하는 걸 듣고 방에 들어온 셰릴은 정중할지언정 자신이 방금까지 보였던 태도에 대해서는 한 점 부끄러움도 없다는 듯이 당당하게 행동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아실리에가 매우 흥미롭다는 듯 눈동자를 굴리며 나에게 소개를 요구했기에 난 두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간단하게 통성명을 시켜줬다.
“셰릴, 이쪽은 아실리에. 아실리에, 이쪽은 셰릴. 우리 모두 라그니스가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해 한마음 한뜻으로 고민하고 있는 동료야.”
“널 키워주신 은인이셨군. 셰릴 츠신 오가토르프입니다. 제대로 된 자리를 가져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힘들 것 같군요.”
“이해해요 셰릴.”
“감사합니다. 엘드미아? 다른 소식은 없나? 레니사 경은?”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자마자 주저않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참 셰릴다웠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는 그녀에게 전달된 서신과 별 반 다를 바 없는 상태였기에 나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일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역모 혐의라니. 제국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아무 일도 없지는 않았는데, 그게 역모하고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들이었다고 확답해 줄 수는 있겠다.”
“후우…일단 간략하게라도 좋으니 이야기 좀 해 줘. 어차피 레니사 경이 오지 않았다면 당장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
언제나처럼 빠른 판단을 내리며 열심히 진정하려는 그녀에게 제국에서의 이야기를 추려 말하는 데에는 5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말을 마쳤을 때 그녀는 적잖게 당황한 눈치였다.
“지금은 따져 물을 여유가 없지만, 나중에 꼭 상세한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을 거 같군.”
“무사히 상황이 정리되면 얼마든지 말해 주마.”
깊은 한숨과 함께 일단 방으로 돌아가기로 한 셰릴을 뒤로한 채 한 시간 정도를 더 기다렸을까.
지친 걸음을 내디디며 레니사가 저택에 방문했다.
◈
“임시 구금 장소는… 말이 임시 구금이지 그냥 감옥이었습니다. 이미 귀족원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는지 항의를 해도 소용이 없더군요.”
그 짧은 사이에 일주일은 못 쉰 것처럼 수척해진 레니사가 힘겹게 입을 열며 나와 아실리에 그리고 셰릴과 집사장이 모인 자리에서 설명해 준 상황의 서두는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퍽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귀족원의 주장을 제 3자의 입으로 전달받은 것에 의하면 약 5년에 걸쳐 라그니스가 마족의 끄나풀로 움직이며 역모를 꾸미고 있었다는 정황들을 한 데 모았다는데, 레니사를 비롯한 국왕파들 중 대체 뭘로 트집을 잡고 있는 건지 알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딱히 국왕파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라그니스가 수도에 입성하기 이전의 4년 남짓한 시간들과 관련된 행적을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야 당연히 그렇겠지. 대충 내가 걜 구해주고 알리샤 여사님의 여관에서 묵게 만든 뒤부터 계속 오그웬에서 소일거리나 하며 지낸 게 그 4년이었으니까. 라드넬반데스에게 편지를 보낸 것도 성년에 임박해서 였다고 들었는데 아는 게 이상한 거다.
이걸 말해도 되는 건지 어떤 건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는 사이 나와 비슷하게 갈팡질팡하는 아실리에와 다르게 집사장과 셰릴의 표정은 더더욱 심각해졌다.
그런 와중에도 한숨 어린 레니사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판결에 영향을 준다고 여기고 철저하게 입단속을 시킨 탓인지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너무 적었습니다. 겨우겨우 수소문해서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라고는 레비엥 변경백령이 초토화 된 뒤 꽤나 다방면으로 변경백님과 신체적 특징이 비슷한 이들을 찾아왔다는 것과… 그분을 찾기 위해 비밀리에 파견 중이던 귀족원 소속의 소규모 수색대가 몰살을 당했다는 이야기 정도였습니다.”
순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나와 아실리에가 눈을 마주쳤다. 그 찰나에 불과한 시간에 정말 눈으로 많은 대화가 오고가는 듯한 착각 속에서 셰릴이 던진 질문이 귀에 들어온다.
“비밀리에 파견한 기사요?”
에이, 아니겠지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며 다시금 이야기에 집중하자 레니사가 조금 더 살을 덧붙여 이야기해줬다.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한 명의 기사와 준기사 몇 명이라고 하더군요. 심지어 비룡과 비룡 조종사까지 동원했지만 모두 죽었다고 합니다.”
등골을 타고 소름이 쫙 끼치며 오싹해졌다.
이거 델트 이야기잖아.
놈들이 죽은 걸 마족이랑 엮을 수가 있다고? 심지어 비룡조종사 기에스는 아직도 오그웬 인근 작은 마을에서 라그니스의 도움을 받아 조용히 몸을 사리고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
너무 예기치 못한 상황인지라 나도 모르게 경직되어 버린 것을 사태의 심각함으로 인한 것이라 여긴 것인지 레니사는 한층 더 우울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실제로 집사장과 셰릴은 총체적 난국을 맞이한 것처럼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으니 그 지레짐작을 뭐라 하긴 힘들다.
“그나마 구체적인 정보는 그 정도입니다. 최근 수도 인근에서 일어난 몇몇 사건들 중에서 연관성을 찾았다는 말도 있었습니다만, 이런 세상이다 보니 그 사건이라는 것을 추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더군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무거운 침묵이 방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으나, 정작 나와 아실리에는 거기에 일말의 공감대도 형성하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해당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우리가 입을 열어서 분위기를 환기 시키는 게 맞을지, 아니면 귀족원에게 정보가 들어갈 것을 감안해서 아직은 입을 다물어야 하는지 쉽게 판단이 서질 않았다.
적을 속이려면 일단 아군부터 속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당장 뭘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지금은 입을 다무는 게 맞을 거 같다.
이 방안의 사람들을 못 믿을 건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그렇게 결정한 나는 일단 라그니스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라…레비엥 변경백께서도 이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아뇨. 일단은 오가토르프 가문에 도움을 요청한 뒤에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행동할 수 있는 이에게 먼저 알리는 것이 더 유용하니까요.”
주군을 두 번이나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여서 멘탈이 터질 법도 한데 레니사는 그런 힘든 상황에서조차 판단만큼은 냉철하게 하고 있는 듯 싶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셰릴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엘드미아. 길드에 가 보자.”
“길드? 모험가 길드?”
“그래. 귀족원이 라그니스를 마족과 엮으려 하고, 레니사 경의 말대로 최근 사건들 중에서도 연관성을 찾았다고 말할 정도라면 길드에서도 마족과 관련된 정보를 찾아볼 수 있을 게 분명하다.”
“그거…타당한 의견이네.”
확실히 최근 수도 밖의 치안은 군대보다 모험가들을 통해 해결하는 경향이 강했으니까. 셰릴의 주장은 생각보다 일리가 있었다.
당장 그녀와 나만 하더라도 파바에라인지 뭔지 하는 놈과 엮이고 나는 폐던전에서 마족하고도 엮였잖는가? 그런 사건이 몇 개 더 있었다면 실마리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집사장. 아버님은 그대에게 뭐라 하셨지?”
“레니사 경을 예의를 갖춰 대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잘 부탁한다. 나는 엘드미아와 함께 밖에서 도움이 될 만한 걸 찾아보도록 하지. 일단 옷부터 갈아입고 오겠다.”
셰릴은 바로 방을 뛰쳐나갔고, 아직까지 라그니스 가문의 의복을 입고 있던 나도 일단 모험가용 복장으로 갈아입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니기로 했다.
레니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집사장을 뒤로하고 나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아실리에가 애매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셰릴은 뭔가… 엘디같네.”
“대체 어딜 봐서?”
“묘하게 불같이 행동하는 거 같은데도 상황 판단은 감정에 치우치지 않게 하는 점? 무엇보다도 자신의 행동에 거리낌이 없으면서 자신감이 있어.”
“나를 저렇게 폭력적인 꼬맹이랑 동일선상에 놓으려고 하다니 믿을 수가 없네.”
진심을 담아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아실리에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날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