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120)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20화(120/599)
절망. 공포. 혼돈. 슬픔. 불안.
온갖 부정적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것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른 몸뚱이와 달리 지크멜의 머리는 이 상황을 무마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향해 나아갔다.
“이 분이!! 누군지 알고!! 개짓거리를 한 거야아아악!”
쥐어터진 것이 확실한 몰골로 부어 있는 벤을 보고 상황을 파악한 지크멜은 스스로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내지른 외침과 함께 공중을 날아 화려한 날아차기를 벤에게 명중시켰다.
-뻐어억!
“으어아악!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책상 위의 문서들을 지르밟으며 혼신의 힘을 다해 시도한 날아차기에 적중한 벤도, 날아차기를 시도한 지크멜도 사이좋게 바닥을 나뒹군다. 전력으로 부하를 걷어찼을 뿐만 아니라 앞뒤 안 가리고 밟고 뛰어오른 탓에 책상이 난장판이 되어 버렸지만 지크멜은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상황에서 자신과 부하 모두를 챙긴 이상적인 선택이었다고 지크멜은 언제라도 당당하게 주장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기에 지크멜은 쓰러진 자세에서 일어날 생각조차 못 하고는 그대로 쿵 소리가 나게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외쳤다.
“그동안 격조 하셨습니까! 엘드미아 에가님!!”
“그치? 너, 나 아는 거 맞지?”
이 정도 격한 반응을 보였으면 그래도 주춤거릴 만도 하다고 여겼는데 대체 그간 무슨 삶을 살아온 것인지 현신한 공포는 태연하기 그지없다.
그 모습에 속으로 혀를 내두르면서도 ‘분명 봤는데 어디서 봤었지.’ 라고 고민하는 엘드미아 때문에 지크멜의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감추면 안 된다.
심지어 엘드미아가 먼저 떠올리는 것조차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정보통으로서 수년간 굴러 온 지크멜의 지성과 본능이 동일한 신호를 보냈다.
그때 이미 두 다리 박살 나는 거로 보내줬으니 뒤끝은 없을 것이 분명하다. 오히려 어중간하게 침묵하면 잘못을 회피하려는 거라 여겨 작살 날 수 있다고 판단을 마친 지크멜이 일사불란하게 혓바닥을 놀렸다.
“오그웬에서 주제도 모르고 동거인 엘프님을 욕 보이는 소리를 지껄였으나, 다리만 부러뜨리는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몸 성히 살아나갈 수 있었던 지크멜입니다!! 간만에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부하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쿵 소리가 아니라 쾅 소리가 나는 수준으로 연거푸 바닥에 머리를 박았지만 지크멜은 통증을 느낄 틈이 없었다.
그에게 있어 수년 만에 느껴보는 공포의 재림은 통각이라는 걸 느낌 틈을 주지 않았으니까.
“아! 그때 그 창고 알려 준?”
“그렇습니다!”
“와, 세상 참 좁네. 수도에 있었다고?”
정말 좁아도 너무 좁아 터져서 오늘만 무사히 넘긴다면 짐 싸서 제국으로 넘어가버리고 싶을 정도라고 지크멜은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있을 거라 생각도 못 한 것처럼 보이는 그의 반응과 직접 끌고 온 조직원이라는 게 장물 판매 쪽 인원이라는 점, 족쳐서 데려왔는데도 아지트를 박살 내며 들이닥치는 게 아니라 굳이 손님이라는 형태로 접근했다는 점을 취합하여 냉정하게 평가하고 나니 의외로 희망이 있었다.
“지금은 엘드미아 에가님 덕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 폭력과 거리를 두고 정보상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입구부터 다 박살 내지 않고 이렇게 조용히 왕림해 주셨다는 것만으로도 벤을 통해 이야기를 듣고 정보상으로서의 제 능력이 필요하다고 예상하는바! 이 지크멜! 전력을 다해서 찾아낼 테니 맡겨만 주십시오!!”
“허어. 다른 건 몰라도 네가 엄청 똑똑해졌다는 건 알겠다. 말하는 것부터 상황 파악하는 거까지 여간 내기가 아니네?”
“나름 이 바닥에서는 잘 나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꼭! 도움이 되겠습니다!”
제발, 제발 칼만 뽑지 말아라.
4년 전에도 큰 키였지만 이젠 그냥 제복만 입고 있는데도 갑옷 입은 기사를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대체 저런 인간에게 무슨 깡으로 시비를 턴 것인지에 대한 강렬한 의문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억지로 밀어 넣으며 지크멜은 숨 쉬는 것마저 멈추고 엘드미아의 대답을 기다렸다.
“원래 반 정도는 박살 낼 각오로 온 거였는데 이렇게 말이 잘 통하니 얼마나 좋아? 신념 주입이 확실히 된 것만으로도 넌 합격이야. 일어나. 머리 아프겠다. 그래도 이제 조직의 대장인데 체면도 신경 쓰고 해야지.”
그리고 지크멜의 바람이 이루어졌다.
통했다. 살아남았다.
직접 자신을 일으켜 세워 주는 과거의 공포를 바라보며 지크멜은 감격의 눈물을 흘릴 뻔 했다.
◈
“그런데 내가 필요한 게 귀족이랑 연관된 거거든. 내가 네 업종엔 문외한이지만 그래도 이게 분야가 확실하게 갈린다는 건 알고 있어. 가능하겠니?”
제 스스로 두개골을 쪼갤 기세로 머리를 박아대던 지크멜을 일으켜 세워주면서 질문했다.
애당초 과거는 과거인데다가 이미 신념 주입까지 마쳤던 녀석인지라 그냥 평범하게 대해도 상관없었는데 이렇게까지 극적으로 반응하니 나도 자연스레 사근사근 대하게 된다.
그나저나 그 빈약한 어휘력의 대가를 뼈로 지불했던 지크멜이 불구가 안 됐을 뿐만 아니라 수도 한 켠에서 정보상을 당당하게 차리며 부업까지 챙길 수준이 되었다니. 겨우 4년 남짓한 시간이었을 텐데 얘도 엄청 독하게 살았나보다.
“다른 도시에서부터 귀족과 관련된 정보만으로 식구들을 먹여 살려왔습니다!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 아주 멋지다! 그래도 이게 좀 애매해. 일단 저 친구는 좀 물리고 마저 이야기하고 싶은데…”
“물론이죠! 벤! 밖에 나가서 내가 말하기 전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아니, 차! 차만 내오고 그 뒤로는 아무도 못 오게 해라!”
“네 대장!”
그야말로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뛰쳐나가는 벤이라는 놈의 태도도 그렇고 꽤나 조직을 잘 이끄는 듯 싶다. 대체 나에게 처맞고 뭘 깨달았는지는 몰라도 이 정도면 개과천선이지.
자신이 어지럽혔던 책상 쪽으로 돌아가 노빠꾸로 책상 위의 문서들을 그냥 싹 다 옆으로 밀어 버리고 깔끔하게 나를 맞이해주는 지크멜에게 감격하며 의자에 앉은 뒤 바로 본론을 꺼냈다.
“수도에 반역자 새끼가 있어서 말이야. 그 새끼에 대한 정보를 좀 찾고 싶어. 위험한 거 아니까 무리해서 알아내라고는 안 해. 나도 그냥 기회가 생겨서 시도하는 거니까.”
지극히 상식적인 일반 시민이 된 지크멜은 반역이라는 말만으로도 이미 두 눈을 크게 치켜뜨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래, 충분히 이해한다. 반역이라는 단어는 원래 저 정도의 무게를 가지고 있는 거니까.
“그, 그걸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오늘… 잠깐. 어조가 좀 이상하다?”
어떠한 경위로 그런 낌새를 느꼈냐가 아니라… 반역자 새끼가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는 기분이네? 혹시…?
“너, 뭔가 알고 있냐?”
“…예.”
어설프게 속이려 들거나 모르는 척 하는 게 아니라 수긍하는 걸 보니 그나마 다행이네. 숨기려 했다면 이놈이 반역에 가담했을 가능성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했을 텐데 말이지.
그나저나 이렇게 당첨 뽑기가 걸릴 거라고는 예상도 못했는데? 아닌가? 아직은 두고 봐야 하나?
턱에 조금 나기 시작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잠깐 생각을 정리한 지크멜은 딱히 숨기는 기색 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제가 수도로 이주한 게 한 석 달 정도 전인데, 그 전에 있던 도시에서도 이야기가 좀 들렸거든요. 일부 변경에서 왕명을 어기는 행동들이 종종 목격된다고 말이죠. 이거 어쩌면 수도에 자리 잡을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거기는 부하들에게 맡기고 달려온 거였죠. 그래도 누가 반역 아니랄까봐 그간 실마리 하나 못 잡았는데… 한 5일 정도 전부터? 뭘 자꾸 흘리더라구요.”
“흘린다고? 뭘?”
“아, 정보 말입니다. 통제가 잘 안 된다고 해야 할까, 꼼꼼하게 숨기던 걸 더럽게 서두르다 보니 자꾸 하나씩 놓치는 거 같다고 할까. 누가 일부러 뿌리는 거 같기도 하다고 할까… 이게 설명은 잘 못하겠는데 아무튼 그런 느낌이죠.”
아마 여기 어딘가에 정리해 뒀을 텐데, 라고 중얼거리며 다른 책상에 쌓인 문서의 산을 능숙하게 뒤지던 지크멜이 종이 몇 장을 쏙쏙 찾아내 내 앞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제국에 방문한 레비엥 변경백이 거기서 느닷없이 성과를 올리는 바람에 귀족원에서 국왕파와의 파벌 싸움을 하느라 가지치기 준비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움직임이 좀 이상하더라구요. 오히려 국왕파는 조용하고 귀족원 내부가 시끄럽지 않나, 젊은 신흥 귀족들이 평소같지 않게 갑자기 저들끼리 조용해지지 않나. 구 귀족파 일부는 잘 지내던 신 귀족파 몇몇하고 갑자기 거리를 두고.”
내가 반 병신으로 만들었던 뒷골목 부랑아가 정보상으로 진화한 게 진짜였구나!
내가 모르는 분야라서 그런가? 어쩜 이렇게 별거 없는 말을 떠들면서 종이만 만지는데도 막 전문적으로 느껴지는 거지?
“그러다 알아낸 게 이겁니다. 수년 전 레비엥 변경백령이 마왕군한테 초토화 된 뒤, 당시엔 생사불명이던 레비엥 변경백. 그러니까 선대 레비엥 변경백의 딸 라그니스 리엔 다 레비엥을 찾기 위해 꽤나 많은 재산과 인력을 투입한 귀족이 하나 나오더라구요.”
“그 옛날 일까지 뒤져가며 찾았다고?”
“이런 식으로 찾아낸 금싸라기 정보들이 생각보다 많은 편입죠.”
지크멜이 건넨 문서엔 어느 귀족의 인적 사항이 세밀하게 적혀 있었다.
“당연히 선대 레비엥 변경백의 유산이 있을 테니 그러려니 했는데 무슨 도둑새끼마냥 몰래몰래 움직인 전황이 보이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좀 더 열심히 파헤친 결과가… 그거죠.”
“사채업, 노예시장, 변경에서 비룡 육성에 사병 보유 수 초과도 모자라서 심지어 마족과 접촉했을지도 모른다고 씨발?”
“아주 법 무서운 줄 모르고 제 세상인 것처럼 날뛰어서 보는 제가 다 철렁거리지 뭡니까.”
이 정도면 빼도 박도 못 하는 반역 혐의 아닌가? 아니, 근데 지크멜조차 알 수 있는 정보를 왕국에서 모르…지 않았구나.
“이걸 알고 있으니까 레스롬 공작이 그런 반응을 보인 거였군.”
“고, 공작이요?”
“어. 방금 만나고 오는 길이었거든. 이 새끼가 그 새끼인지는 몰라도 반역자 이야기도 거기서 들은 거고.”
“…..세상에. 임시 구금소에서 칼부림 냈다는 레비엥 변경백의 수행원. 그게 엘드미아 님이었습니까?!”
“와. 진짜 놀랍네. 그게 벌써 정보가 들어왔어? 아니, 그렇게 정보가 빠른데 왜 내가 있다는 건 몰랐다는 반응이었냐?”
방금 그렇게나 줄줄 정보를 쏟아 내던 놈이 내가 수도에 있다는 것도, 계속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는 게 더 신기한 거 아닌가?
“이게 귀족들 이야기는 결국 관계 속에서 흘러나오는 거라서요. 제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귀족일수록 정보를 알아내기 힘듭니다. 레비엥 변경백은 엄연히 그쪽 부류…어? 그러면 이번 제국 사태에서 용사를 이기고 황녀를 구했다는 것도…?”
“이야, 이게 또 이런 자리에서 들으니까 더럽게 부끄럽네.”
진심으로 머쓱해져서 진중한 상황임에도 헛웃음이 나왔다.
그와 별개로 나를 보는 지크멜의 시선에 공포가 어리기 시작했고, 그 대수롭지 않은 오해를 풀기 위해 난 그의 부하가 차를 내올 때까지 입씨름을 좀 해야 했다.
겨우 4년 남짓한 시간 동안 자기 힘으로 이렇게까지 엄청나게 정보를 긁어 모으는 정신 나간 재능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뭔 겁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사실 이것도 한 발 삐끗 했으면 역으로 꼬리 잡혀서 싹 다 칼 맞고 죽는 수준의 일 아닌가?
그렇게 물어보자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결국 이놈들은 아직도 절 찾아내지 못했지만 엘드미아님은 당장 제 눈앞에 계시지 않습니까.”
너무나도 맞는 말이라서 씨발 할 말이 없네.
신념 주입의 효과가 너무 좋은 것도 생각해 볼일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