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124)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24화(124/599)
이미 목욕 중에 이야기를 전달받은 것인지 셰릴은 자연스럽게 아실리에가 묵고 있는 방으로 나를 찾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는 게 패시브인 셰릴의 단무지가 축 처져 있었다. 최대한 티를 안 내고 절도 있게 행동하려고 하지만 내가 얘랑 지낸 게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걸 모를까.
“성과는 좀 있었… 하지 마라.”
그리고 그건 쟤도 마찬가지지. 성큼성큼 다가가는 날 보며 말하다가 즉각 상황을 파악하고 딱 잘라 말한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어휴 이거 봐라. 맨날 호기롭게 치솟아 있던 눈썹 또 축 늘어뜨린 채 시무룩해져가지고.”
“안 시무룩 해. 하지 마.”
“차라리 귀신을 속여라.”
그대로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어 어깨를 들어 올리며 셰릴을 롱캣 셰릴로 강제 진화시켜 주었다. 애가 운동도 하고 근육이 탄탄한데도 묘하게 가벼운 편이라서 마력을 운용할 것도 없이 그냥 손쉽게 내 가슴 언저리까지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다.
다른 사용인들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겠지만 애당초 내 근본은 라그니스의 은인 겸 에카프 경의 손님이다.
자발적 집사 생활을 유지하고 있어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셰릴도 거기에 맞춰 행동을 맞추는 편이다. 애당초 상황에 따라 말투까지 조금씩 바꿔가며 철저하게 컨셉 플레이를 할 줄 아는 꼬맹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집사 업무 외적으로는 그냥 평범한 동갑내기 친구와 다를 바 없는 관계라는 소리다.
말로는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막상 들고나니 언제나 그렇듯 별다른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는 셰릴을 그 상태로 열심히 좌우로 흔들면서 말했다.
“넌 아직 아카데미에서 배운 것만 잘하면 된다니까. 네가 배우지 못한 부분이 부족한 건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너도 성과가 없나?”
“난 있었지. 근데 운이 너무나도 좋았던 게 컸다.”
임시 구금소의 경비들이 병신들이었던 것도, 그 사건을 계기로 레스롬 공작이 부른 것도 심지어 지크멜을 만나게 된 것마저도 운이고 그림자 발이라는 전혀 새로운 인연이 닿은 것까지 전부 운이었다. 당장에 추적자를 확인하기 위해 스파이 영화에서 보던 걸 흉내 내며 가판대를 기웃거리지 않았다면 지크멜은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고 거기서 시간을 잡아먹지 않았다면 그림자 발과 겹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귀족이 아니기에 지르고 볼 수 있는 행동과 4년 전에 뿌려 둔 씨앗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결실을 맺은 덕을 하필 오늘 보았지. 그러니 되도 않는 비교하며 조바심내지 마라.”
“…넌 조바심이라는 게 없나?”
롱캣 셰릴 상태에서 아무런 저항도 안 하던 그녀가 던진 질문은 조금 의아한 것이었다.
“이번 일에 대해서? 딱히?”
약간 두서가 없는 터라 한 번에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어서 적당히 대답하자, 역시 예상치 못한 대답이 이어졌다.
“그럼 이번 일 외의 상황에서는? 예를 들어 네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이라던가.”
흠. 지금 이 상황에서 셰릴이 느끼고 있는 게 조바심이라는 건, 셰릴 어語 마스터인 내가 이해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걸 왜 내 목표에 대한 조바심에 빗대어 물어본거지? 그만큼 이 일이 본인에게는 중요하기에 조바심은 필연적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좀 갑작스러운 질문이지만, 전혀.”
“다른 누군가가 너보다 빨리 죽일 수도 있잖아?”
“아하.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이미 복수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계획하며 살고 있다. 내 계획 속에서 이 이상 서두르는 건 오히려 해악이지. 조바심은 뭘 해야 할지, 혹은 자신이 얼마나 잘 계획에 맞춰 나아가고 있는지 감을 못 잡거나 노력하지 않는 경우에 느끼는 거니 지금의 나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다.”
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최선을 다한다고 변명하는 게 아니라 내 두 번째 인생을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복수에 눈이 먼 미친놈이 되지 않기 위해 상식을 배우고, 전투 외의 것들도 혼자서 할 수 있도록 지식을 배워왔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박증이 일어날 때가 있긴 하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지.
7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만만한 시간이 아니라고? 그 7년의 시간을 오직 살인 기술 배우는 데 전부 투자해야만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복수의 자세라고 남들이 말할 수는 있을지언정,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
복수 후의 삶까지 제대로 준비하고 나아갈 수 있어야 진짜 복수의 완성 아닐까?
적은 좆될 수 있게, 나는 행복하게.
나에게 빅 엿을 먹이고 자기가 행복해지려고 했던 놈에게 복수하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난 엄연히 복수 후 멀쩡히 판타지 라이프를 즐길 의향이 있고 이번만큼은 천수를 누리다가 갈 생각이다. 그러기 위한 지식도 어린 나이를 이용해 적절하게 습득하고 있으며 인간관계 역시 열심히 쌓는 중이다.
그 덕분에 맹목적으로 흘려보낸 인생에 대한 현자 타임없이 지금까지 잘 버티는 중이기도 하고.
모든 일이 계획대로는 안 될지언정 꾸준히 성장과 성과를 얻고 있는데 조바심따위 느낄 이유가 없지.
“난 평민이지만 넌 귀족이잖아. 귀족은 혼자 잘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널 따르는 이들을 이끌면서 그들의 능력을 온전히 쓸 줄 아는 자세도 중요하지.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혼자서 다 해결하려는 자세보다 남을 믿고 기다릴 줄 아는 자세도 필요한 거다.”
“…그러니 일단 들어봐라?”
“그래. 궁상떨지 말고. 우리의 불안과 달리 라그니스의 신변은 아무 문제가 없을 거 같다.”
아무리 그래도 에카프 경과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레스롬 공작과의 대화 내용을 털어놓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서 그 부분은 양해를 구하고 이야기를 진행했다.
사실 그 부분을 제외하고 말하더라도 꽤나 다사다난한 하루였던 만큼 할 말은 많았고, 그 이야기를 다 듣고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셰릴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 그림자 발이라는 자의 정보를 듣자마자 나서고 싶지만… 그럴 수 없군.”
“그래. 놈들이 날 미행한 이상 이건 내 문제니까.”
괜히 잘못해서 우리끼리 불필요하게 엮이면 풀릴 일도 꼬일 수 있다. 내가 마음 놓고 깽판칠 수도 없고 말이지.
“그럼 별다른 정보가 없을 경우 바로 노예 상인을 노릴 건가?”
“되도록이면 날 감시하는 놈들을 끊고 난 뒤에 치고 싶지만 그게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별수 있나,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은 없으니 꼬리를 달고 박아버릴 수밖에. 무엇보다 노예 상인에 대해서는 아실리에도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상황이다. 나와 아실리에가 만나게 된 건 따지고 보면 노예상들 덕분이라 할 수 있겠으나, 그걸 면죄부 삼아 봐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한 가지 의문이 스쳐 지나가서 조용히 아실리에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누나? 그러고 보니 노예상놈들 실력이 대체 어느 정도야?”
“천차만별이지. 엘프 사냥꾼 놈들은 솔직히 강해. 전투가 아니라 사냥을 한다고 해도 될 만큼 엘프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준비하는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강한 편이야. 그 외에는 그냥 다루는 노예가 주로 어떤 부류인가에 따라 다르지.”
“그런데 그때 도적놈들은 그냥 일개 도적이었잖아.”
“나한텐 운이 없었고 그놈들에겐 운이 좋았지. 날 싣고 가던 노예 상단이 습격을 받았었거든.”
“습격?”
혹시라도 아실리에에게 상처를 줄까 싶어 꺼내지 않았던 내용인지라 생소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였다.
“정말 순식간에 습격해서 노예 상단을 몰살 시켰었어. 혼자는 아니고 부대 단위로 움직이는 거 같았는데, 한밤중에 몰아쳐서 정체조차 몰라. 난 그 과정에서 하필 쓰러지는 짐더미에 깔려 기절했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노예들은 죄다 도망쳤는지 흔적도 없고 남은 건 시체와 이제 막 상단의 잔해를 뒤지고 있던 도적놈들이었지.”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기억을 꺼내 덤덤히 이야기하면서도 옅게 웃는 모습은 역시 엘프다웠다.
“그래도 더 험한 꼴 안 당하고 엘디를 만나게 되었으니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어.”
음. 괜히 부끄럽네.
수 년간 같이 지냈으면서도 굳이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나누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해는 점점 기울어져 갔지만 그림자 발도, 에카프 경도 오지 않았다.
결국 해가 완전히 넘어가 저녁이 내린 도시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도 좀 그래서 저녁이라도 먹기 위해 다 같이 방을 나오니 사용인 한 명이 마침 우리 방문을 두드리려 하고 있었다.
“아, 마침 잘됐네요. 엘드미아? 손님이 와 계세요.”
“혹시 풀링인가요?”
“네. 자신이 왔다는 걸 알면 매우 좋아할 거라던데요?”
그림자 발의 판단은 정확했다. 난 살짝 느껴지기 시작하던 허기마저 잊은 채 후다닥 뛰어내려갔다. 그렇게 서둘러 정문에 이르르자 눈앞에 서 있는 경비병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맨발로 탭댄스를 추며 시간을 떼우는 그림자 발을 발견할 수 있었다.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열성적인 춤을 추다가 날 발견한 그림자 발이 양팔을 좌우로 펼치며 춤을 멈추고는 쾌활하게 외쳤다.
“으하하! 내가 돌아왔다네 귀인!”
정말 정신 나간 하이 텐션의 소유자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질 정도네.
“고생하셨습니다 그림자 발. 시장하지 않으신가요? 일단 식사라도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당연히 오가토르프 가가 내 집도 아니고 그를 안으로 초대할 수는 없겠지만 그거야 나가서 먹으면 해결될 부분이다. 내친김에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고 싶기도 하고.
하지만 그림자 발은 검지 손가락을 들어 고개와 함께 좌우로 흔들며 거절 의사를 표했다.
“아. 아. 아! 당하지 않을 거라네 귀인. 식사 대접을 받으면 동화 한 장보다 더 많은 대가를 받는 것과 다를 바 없지. 혹여 각자 계산하자고 말한다 한들 귀인이 작정하고 달음박질하면 내가 이길 수가 없지 않은가? 사양하겠어!”
세상에. 능글맞게 웃으며 말하는 걸 보아하니 정말 호의를 사이에 두고 밀고 당기는 행위를 즐거운 장난 정도로 여기나보다. 저렇게까지 완고한 걸 보면 역시 아실리에가 알려 준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보였기에 나도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하하.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포기하도록 하죠.”
“좋아 좋아! 그럼 바로 본론부터 말하지. 사실 그리 멀지도 않다네. 오래 걸린 건 녀석들도 머리는 있는지 미행을 염두에 둬서 쓰잘데기 없이 싸돌아다닌 탓이야. 당연히 부질없는 짓거리였지. 너무 부질없어서 냅다 달려가서 뒤통수를 때려주고 싶었을 정도라네. 그 친구들이 신발 끈을 묶기 위해 허리라도 숙였다면 진즉 시도했을 거야!”
그림자 발은 속사포 같이 말을 내뱉으면서 품 안에 꺼낸 종이 한 장을 내게 건넸다.
“약도라네! 직접 안내해주고 싶지만 이런 건 신중해야 하니까! 혹여 날 봤던 다른 일반인들이 우리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나중에 가서 어이없게 꼬리를 물릴 수도 있다네!”
상상도 못했던 그의 치밀함에 난 박수를 참을 수 없었다.
대단하다! 그림자 발!